디셉션 포인트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고상숙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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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2001년작 정치 스릴러. <다빈치 코드>나 이 책이나 책장은 잘 넘어간다. 베스트셀러작가들에게서 늘 감사의 인사를 듣는 그 대단한 편집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장면 구성에 관한 노하우를 작가들에게 전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엄청나게 잦은 행갈이와 대사의 묘, 각 장이 끊기는 시점, 결코 길게 이어지지 않는 챕터의 길이 같은 것은 정말, 영화 대본 읽는 것 같을 때가 많다(대개의 영화대본들보다 실제로 훨씬 재미있다) 사실 댄 브라운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내친 김에 그냥 다 읽어버렸다. 블록버스터급 스릴러긴 하다. 이렇게 지적인 주인공들로만 구성된 스릴러물에서 람보 급의 난장판을 엮어내다니. -ㅅ- 대통령 선거 두 번만 했다가는 백악관 주변에 시체만 즐비하겠구나.

주인공 레이첼 섹스턴은 대통령 후보인 상원위원 섹스턴의 하나 뿐인 딸이다. 레이첼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재선을 위해 노력중인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 그건 좀 과장이고(하지만 이 책은 매 순간 이런 식의 과장을 저지르니까 이해하시길) 레이첼은 국가정찰국에서 일하는 영민한 여성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던 중 급한 호출을 받는데, 대통령이 그녀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상사에게서 받는다. 섹스턴 상원위원의 승승장구에 비해 한동안 수세에 몰려있던 대통령은, 레이첼에게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말한다. 레이첼은 통신장비를 빼앗긴 채 전투기를 타고 북반구로 배달(?)된다. 그리고 우주 생명체의 증거를 목도하고, 아버지가 주장하던 NASA 축소(그리고 이후의 민영화)가 고비를 맞았음을, 대통령의 재선이 유리해졌음을 깨닫게 된다.

는 게 줄거리인데, 사실 저기까지의 이야기는 아무 것도 아니고 사람들도 엄청 많이 등장한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 두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음모에 휩쓸려간다. 레이첼은 북극에서 생명의 위협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죽을 고생을 다해 도망다닌다. 음, 당연히 여자 혼자 주인공일리는 없겠지. 30대 초반의 매력적인 여성인 레이첼과 짝이 될 운명의 남자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해양생물학자 마이클 톨랜드다. 40대 중반의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인 그는 아내를 잃은 오랜 슬픔에서 벗어나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일단 살아남고 봐야 한다.

꽤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생각하게 하는 면이 약간씩 있었는데, <디셉션 포인트>는 흠... 스케일이 훨씬 크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운다. 사건이 벌어지는 시간은 1주일이 채 못되는 정도인데, 그 동안 사람이 쉬지 않고 죽어나가는 건 물론, 무려 해저의 마그마 돔까지 폭발한다;;;;;;;;(댄 브라운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자연현상까지;;; 거긴 좀 심했어.)

너무 투덜거린 것 같은데 잘 읽히는 책이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도 나쁘지 않다. 2권에 끝없이 등장하는 숨막히는 추격전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멸의 길로 들어가는 모 씨의 운명도 보기에 꽤 즐거웠다. 블록버스터 영화 보는 기분으로 한 큐에 해치우기 딱 적당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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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변 천국 - 잘 먹고 잘 싸는 법
후지타 고이치로 외 지음, 이승남 감수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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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변이란,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안녕하지 못함'의 증상이다. <쾌변천국>은 초절정 귀여운 일러스트와 유머러스하고 짧은 글로 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똥은 재활용하지 않아도 식물의 영양분이 되거나 산소와 음식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완성품이라는 이야기 등은 가볍게 읽어넘길 수 있는 잡담이 되어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은 여러 용도를 지니고 있어서, 인도네시아 원숭이의 똥이 최고급 커피로 쓰인다던가, 휘파람새의 똥이 세안제로 쓰인다던가 하는 잡다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똥의 상태를 통해 건강을 체크하는 대목은 한번쯤 꼼꼼히 읽어야 할 정보.

물론, 똥을 잘 싸는 법은 상식적이다. 열심히 일해 배가 고파지고, 기분 좋게 먹는다. 규칙적으로 세 끼 식사를 챙긴다. 감동하기도 하고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는 등 마음에 리듬이 있다. 는 식이다. 마음과 식사, 생활리듬이 균형을 맞출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다가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은 이유는?"을 풀어놓은 곳이다. (이런 사람들이 은근 있었다!) 이유인 즉슨, 나무 냄새나 나무 성분의 냄새를 맡으면 똥이 마렵게 되어 있다 -> 책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 책은 나무로 만든 펄프로 만들어지므로, 서점은 숲과 마찬가지이다. 크하하핫.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친 청결 의식이 오히려 쾌변에 좋지 않다는 지적은 새겨 들을 만 하다. '똥 제대로 그리는 법' '숫자로 보는 똥'과 같은 코너는 웃기기도 하고. 똥 컬러 차트까지 가면 약간 허걱;;; 한 구석도 있지만... 일러스트가 귀엽고 워낙 엉뚱해서, 회사에서 인기 폭발인 책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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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등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2
엘러리 퀸 지음, 장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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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등불>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 -ㅅ- 책을 집에 사 놓고도. 이건 정말 반성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ㅠㅠ (하지만 주위에 <신의 등불>을 읽지 않는 게 범죄행위에 가까운 죄라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끙) "트릭의 힌트는 케이조쿠 극장판"이라는 D님의 말까지 듣고도, 케이조쿠 극장판이 안 떠올라서 막막한 상태였다. 새벽에 집에 와서 한참 "케이조쿠 극장판 트릭이 뭐였더라"를 고민하다가(<신의 등불> 책과 <케이조쿠 극장판>이 있는 컴퓨터는 둘 다 동생방에 있었는데 내가 집에 온 시간은 새벽 2시였으니까) 어렴풋이... 혹시 그것이었나? 하고 떠올랐다. 아침에 동생 방에서 <신의 등불>을 발견하고, 책 뒤의 <신의 등불>에 관한 설명, "대저택이 홀연히 지상에서 사라졌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놀라운 트릭"을 읽고 푸하하 웃어버렸다. 그것이었던 거군, 트릭은! 하고 김전일처럼 음침한 표정으로 웃었다;;;;;

결국 트릭을 다 알고 읽은 셈인데, 그래도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니까. 하하. 이 트릭은 <트릭>에서도 나온다. 거기서 사라지는 것은 다리. 계곡에 놓인 다리다. <케이조쿠> 극장판은 섬이 없어진다. 뭐, D 님 말대로 그 두 드라마 뿐 아니라 이 트릭은 워낙 마르고 닳도록 응용되고 복제되어 등장해왔으니까.

<신의 등불>은 엘러리 퀸이 친구 손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검은 집"이라는 저택에 가게 되면서 시작한다. 저택의 주인인 괴상한 노인은 모든 재산을 물려줄 딸 엘리스가 오랜 이별 끝에 그를 만나러 오기 직전에 죽었다. 집에 모든 재산을 숨겨두었다는 말에 재산을 가로챌 궁리를 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엘러리는 엘리스를 지키고, 가능하다면 재산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검은 집 옆에 있던 하얀 집에 머무르던 일행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검은 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이 눈 앞에서 사라진다. -ㅅ- 이제는 이런 거 읽어도 놀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막상 그 대목을 읽을 때는 충격이 있더라. (뭐냐, 순수의 시대냐;;) 마지막에 엘러리가 사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약간의 감동도. 이 책은, 이런 트릭을 세상에 처음 내 놓은 책이니까, 아아, 이런 트릭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신의 등불>의 간결함 또한 감동적이다. 이런 규모의 트릭이라면 장편으로 쓸 수 있다, 능히. 트릭만 베끼면 <명탐정 코난>의 사건 하나로도 가능하지만, 설정까지 모든 걸 베끼면 2시간짜리 영화로도 만들 수 있는 충격이 이 이야기에 있으니까. 장편으로 썼다 해도 지루하다고 욕 먹지 않게 쓸 정도의 필력은 지닌 사람이 엘러리 퀸이고. 가족 이야기 이런 것, 더 세세하게 풀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만으로 구성해서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니까 대단한 거겠지, 엘러리는.

ps. 덕분에 <케이조쿠> 극장판을 다시 봤다. 다시 봐도 꽤 재미있다. 와타베 아츠로 만세! ㅠㅠ 당신은 정말 최고야.

ps2. 재미있었던 대목.
손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나처럼 착한 사람이 신에게 버림받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 잘 수 있겠나? 그런데 자네는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 보이는군?"
"좋은 게 아니야. 살아 있을 뿐이지."
엘러리, 넌 언제 봐도 싸가지없고 귀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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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커트 코베인 - 이룸의 평전 5
찰스 R. 크로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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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커트 코베인>은 찰스 R. 크로스라는 음악 전문 기자가 쓴 책이다. 레드 제플린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롤링 스톤과 에스콰이어에 기고하는 사람이라고. 커트의 초년기부터 죽은 직후의 이야기까지를 담고 있다. 평전이라 하기엔 너무 소설이다. 커트의 초년기를 쓰는 대목이 좀 특히 그랬고, 마음에 드는 대목들은 커트가 스타덤에 오르면서의 이야기들이다. 지독한 마약 중독. so stoned. 커트는 정말 죽기 전에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다. 정말로. 약 하고 그냥 심장이 멎은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그 나이에. (이런 때는 내가 정말 늙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커트와 코트니는 거의 자기파괴적인 것으로는 둘이 쌍벽이었다. <평전 커트 코베인>은 중간중간 사진들과 함께 커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을 수 있게는 해 주니 좋았다. 커트의 살해 의혹에 대해서 이 책은 별 관심이 없으니,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듯.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코트니 러브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겨난다. (그녀가 얼마 전 아이 양육권 문제로 법정을 드나들던 모습이 너무 엉망이라 놀랐던 기억이 났다)

커트의 사진들을 보는데 정말 심장이 약간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까끌한 장갑을 낀 손으로 심장을 꼭 쥐는 듯한 느낌. 그 얼굴과 몸의 느낌(<라스트 데이즈>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이 너무 생생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커트는 꽤 예쁜 아이고, 웃으면 훨씬 예뻤을 것이다. 반짝이는 눈과 그 산발한 금발과 마른 몸과 늘어진 옷과 단단한 턱과... 코트니와의 결혼 사진을 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니까, 넌, 해피엔딩을, 믿고 있었구나.

그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자살이건 타살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빨리 죽은 건 최악은 아니니까. 안타까운 게 있다면 딸 프랜시스의 존재겠지. 하지만, 비틀스가 얘기했듯이, happiness id a warm gun. 살아남았다 해서 그가 행복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ps. 최근 이 책을 허겁지겁 읽은 건 <라스트 데이즈>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라스트 데이즈>를 약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나열을.) 커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기념방식은 <평전 커트 코베인> 보다는 <라스트 데이즈>일 것 같다. 커트의 끔찍했던 죽기 전의 시간을, <라스트 데이즈>는 정말 보여준다. 내면의 풍경, 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모든 것, 화면과 사운드가 커트의 황폐한 내면을 너무나 잘 그려낸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커트 코베인이랑 하나도 안 닮은 마이클 피트가 얼굴은 안 보여주고 완전 커트처럼 흐느적거리고 다니는 모습에 젖어들다 보면, 마지막 얼굴 클로즈업에서는 실로 감동해버리게 된다. 빌어먹을, 잘 가. 이게 마지막이라는 거야, 정말? 딱 그런 마음으로 커트랑 하나도 안 잚은 마이클 피트의 얼굴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게 된다. 커트의 혼이 빠져나오는 장면도 하나도 안 어색했다.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모든 게. 다행이야, 베이비. 죽어서, 더 늦기 전에 죽어서, 정말 다행이야,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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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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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이런 순간들이 있다. 아주 우연히 어떤 일인가가 때맞춰 일어나주는.

<도쿄기담집>은 "나, 무라카미는 이 글을 쓴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 무라카미 씨는 자신이 경험한 기이한 우연들을 이야기한다. 토미 플래너건의 라이브가 예상보다 별로라 실망하다가, 마음 속으로 흔하지 않은 곡 두 곡을 신청해 보는 상상을 하던 그는 놀랍게도, 플래너건이 실제로 그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하는 것을 듣는다. 입 한 번 열지 않았는데 마치 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플래너건은 두 곡을 연주한다. 세상에는 이런 우연이 있다. 생각보다는 꽤 많다, 신기하게도.

좋은 우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간 모은 적금을 타는 달, 우연히 부모님이 수술을 하게 되셔서 그 돈을 다 써버리는 일을 주변에서 종종 목격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적금액수와 너무 유사한 액수의 수술비용을 듣고 나면 다들 기운빠지는 얼굴이 되지만, 또한, 아, 이 돈이 아니었다면, 지금 탈 수 있는 이 돈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식은땀을 흘리게 되곤 한다.

첫사랑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생각하게 되는, 이삿짐을 정리하며 옛 물건을 꺼내 보는 일요일. "아, 얘는 어떻게 지내지"하고 궁금해했는데, 우연히 첫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일도 있다. 그리고 연락을 2년쯤 안 하던 사람 생각을 하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온다거나.

간절한 소망만이 가능케 하는 우주의 돌발적 운행이라고 할까.

<도쿄 기담집>을 읽으면서 내가 겪었던 많은 우연들,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 이루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했던(그리고 때로 이루어졌던) 작은 소원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때로는, 오래 묵은 나의 죄의식이 어떤 사건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도쿄 기담집>의 마지막 단편처럼).

제목을 보고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하루키의 단편이라면 언제나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나에게 이 책은, 하루키의 단편을 처음 접했던 어느 무료한 오후를 연상시켰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처럼, 이 이야기도 한 인간을 근본서부터 바꾸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런 책이 있었지,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다시는 옛날과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그런 작은 순간들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삶의 행로를 영원히 1도쯤 꺾어놓는 그런 순간들의 모음으로. 이 책 속의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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