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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등불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2
엘러리 퀸 지음, 장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신의 등불>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 -ㅅ- 책을 집에 사 놓고도. 이건 정말 반성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ㅠㅠ (하지만 주위에 <신의 등불>을 읽지 않는 게 범죄행위에 가까운 죄라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끙) "트릭의 힌트는 케이조쿠 극장판"이라는 D님의 말까지 듣고도, 케이조쿠 극장판이 안 떠올라서 막막한 상태였다. 새벽에 집에 와서 한참 "케이조쿠 극장판 트릭이 뭐였더라"를 고민하다가(<신의 등불> 책과 <케이조쿠 극장판>이 있는 컴퓨터는 둘 다 동생방에 있었는데 내가 집에 온 시간은 새벽 2시였으니까) 어렴풋이... 혹시 그것이었나? 하고 떠올랐다. 아침에 동생 방에서 <신의 등불>을 발견하고, 책 뒤의 <신의 등불>에 관한 설명, "대저택이 홀연히 지상에서 사라졌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놀라운 트릭"을 읽고 푸하하 웃어버렸다. 그것이었던 거군, 트릭은! 하고 김전일처럼 음침한 표정으로 웃었다;;;;;
결국 트릭을 다 알고 읽은 셈인데, 그래도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니까. 하하. 이 트릭은 <트릭>에서도 나온다. 거기서 사라지는 것은 다리. 계곡에 놓인 다리다. <케이조쿠> 극장판은 섬이 없어진다. 뭐, D 님 말대로 그 두 드라마 뿐 아니라 이 트릭은 워낙 마르고 닳도록 응용되고 복제되어 등장해왔으니까.
<신의 등불>은 엘러리 퀸이 친구 손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검은 집"이라는 저택에 가게 되면서 시작한다. 저택의 주인인 괴상한 노인은 모든 재산을 물려줄 딸 엘리스가 오랜 이별 끝에 그를 만나러 오기 직전에 죽었다. 집에 모든 재산을 숨겨두었다는 말에 재산을 가로챌 궁리를 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엘러리는 엘리스를 지키고, 가능하다면 재산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검은 집 옆에 있던 하얀 집에 머무르던 일행은,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검은 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이 눈 앞에서 사라진다. -ㅅ- 이제는 이런 거 읽어도 놀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막상 그 대목을 읽을 때는 충격이 있더라. (뭐냐, 순수의 시대냐;;) 마지막에 엘러리가 사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약간의 감동도. 이 책은, 이런 트릭을 세상에 처음 내 놓은 책이니까, 아아, 이런 트릭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신의 등불>의 간결함 또한 감동적이다. 이런 규모의 트릭이라면 장편으로 쓸 수 있다, 능히. 트릭만 베끼면 <명탐정 코난>의 사건 하나로도 가능하지만, 설정까지 모든 걸 베끼면 2시간짜리 영화로도 만들 수 있는 충격이 이 이야기에 있으니까. 장편으로 썼다 해도 지루하다고 욕 먹지 않게 쓸 정도의 필력은 지닌 사람이 엘러리 퀸이고. 가족 이야기 이런 것, 더 세세하게 풀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만으로 구성해서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니까 대단한 거겠지, 엘러리는.
ps. 덕분에 <케이조쿠> 극장판을 다시 봤다. 다시 봐도 꽤 재미있다. 와타베 아츠로 만세! ㅠㅠ 당신은 정말 최고야.
ps2. 재미있었던 대목.
손이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나처럼 착한 사람이 신에게 버림받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잠을 잘 잘 수 있겠나? 그런데 자네는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 보이는군?"
"좋은 게 아니야. 살아 있을 뿐이지."
엘러리, 넌 언제 봐도 싸가지없고 귀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