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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오히려 가난해야 행복할 수 있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주제는 그렇다. 이 책이 '내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작가가 한때 호경기를 누리던 언론사 기자였다가 불경기와 함께 해고된 인물이라는 데 있을까나. 나의 경우, 아직 해고는 당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뭐, 아직은.
이 책은 유럽의 역사와 각국, 각 도시의 생활양식 변화와 행복의 조건들을 연계시켜 이야기한다. 한 번도 잘 나간 적이 없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 책이 하는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자시고는 없었다. 나에게는 헝가리 귀족인 삼촌도 없고, 알리칸테 따위 가 본 적도 없으며, 크루즈 여행을 가 본 사람조차 주변에 없다. 하지만 가난은 익숙하다. 밥을 굶지는 않아도, 대학교 1학년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적은 없다. 다행히도, 연애운이나 부모운은 없어도 일 운은 졸라 많은 편이라, 취직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했고 그 이후로 일이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다. 그래도, 단 한 달이라도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니, 넉넉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중산층 따위는 절대 아니다. 책, 음악, 여행같은- 없으면 안되는 것들을 즐기기 위해 수시로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다. 취미활동이 직업과 관련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7년쯤 살고 나니, 확실히 나의 욕망과 사회의 욕망을 구분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건지, 남들한테 그럴듯해 보이려고 이러고 있는 건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보고자 중간에 회사를 옮겼었지만 결국 원래 회사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그 실험은 결국 실패인 셈인가. 여튼, 남이 생각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만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소맷부리가 나달거리는, 7년째 입는 티셔츠(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이 티셔츠를 처음 보는 남성동지들은 "어디서 샀냐"고 꼭 물어본다;;;)를 입으려고 하면 요즘은 약간 망설여진다. 너무 없어보이잖? 명품이라는 것도 단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휴가 때 질러버리기도 했다. 내가 정말 원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다들 이러니까 이러는 거야?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이래저래 잊고 살던 중요한 덕목들을 짚어내준다는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분별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이 본연의 삶을 가로막는 것이라 여겼다 (중략) 이제 다시 일을 구원의 수간이 아니라 필요악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대목은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몇년간 신조처럼 생각하던 것.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도 굼뜬 것은 못참는 중견회사원이 되어버렸다지.
이 책의 몇몇 대목은 정말 -ㅅ- 내 인생관과 똑같았다. 난 불행과 가난을 두려워하고 싫어하지만, 그렇다 해도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투덜거려도, 절망하지는 않는다. (어린 나이에 커다란 재앙을 경험하면, 웬만해서는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면 죽으면 된다)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도- 경험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정말 운이 좋아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회사에 들어왔을 때, 좋았지. 그런데 그 운이 악운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1달이면 족했다. 그로부터 2년은 정말 내 인생에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함으로서 자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절대 아니다.) 실수를 한 것 같았던 일이 결국 좋은 일로 연결되는 일도 엄청나게 많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불행이 때로는 행복의 가면을 쓰고서 유혹적으로 다가오듯이, 행복의 짖궂은 점은 이따금 감쪽같이 불행으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정말 그렇더라. 마치 죽은 아이를 되살려달라고 했더니 좀비가 되어 찾아오는 것처럼. 불가능해보였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가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어차피 계속 불행한 인생도, 계속 행복한 인생도 없다. 돈이 있건 없건, 행복해질 줄 아는 건 그 사람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