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 1 - 세계문화산책 01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은 중국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 중국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두 권의 책이다. 외국인들이 중국을 겉으로 훑어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광범위한 시대의 중국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제법 맛깔나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한 입문서로도, 깊이 이해하기 위한 담론의 시작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뜻밖에도 ‘영욕의 발해 유적지’다. 과거 아시아 최대의 도시였던 발해국의 성대했던 절정기와 야만적이었던 최후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척에 있는 경박호의 고즈넉한 웅장함(모순적인 설명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과 대조되는 화려함을 갖추었을 도시가 돌덩이가 갈라지도록 불타버렸다는 이야기는, 한국사의 관점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글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진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부유했던 성이 바로 산시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에서 나오는 핑야오 성내의 고대 민가의 현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한때 번성했던 산시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핑야오 고성 밖의 풍경은, 성벽이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쪽에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성벽의 규모를 보여준다. 명대의 화가 사시신의 <광여폭포도>와 그림의 무대가 된 삼첩천 폭포 사진이 나란히 실린 것을 비교하며 살피다 보면 여산 제1의 경관이라는 삼첩천의 지난한 여행(오르고 또 오르고 내려갔다가 또 오르는 일의 연속) 끝에 펼쳐지는 절경에 압도당하는 위치우위의 감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국 문화의 일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일화들도 흥미롭다. 전국 제일이라고 불리며 중국사에도 이름을 남긴 두 상업관리 전문가들, 뇌이태와 모홍홰의 이야기가 그렇다. 암투를 거듭하던 두 지략가는 비열한 수법을 거듭하다가 결국 자신의 손자에게 상대방의 이름을 지어주어 상대방의 이름을 모욕했다. 상대를 증오하는 건 그렇다치고, 할아버지의 원수 이름을 갖게 된 손자는 무슨 죄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위치우위의 말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방법은 완전히 중국식이다”.

저자 위치우위는 중국의 예술평론가이자 문화사학자다. 문화혁명기에 대학생이었던 그는 병을 얻어 벽촌에 파묻혀 동, 서양 고전을 섭렵하며 사상적 깊이를 다졌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저술활동으로 이름높은 그는 장자와 소동파를 젖히고 ‘현대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100명의 중국 작가’ 9위에 오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정말 책 자체가 전설이 될 만큼 재미있다. “나는 바로 이 작품을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스티븐 킹의 말을 듣고 한껏 기대심을 품고 읽어도, 절대 실망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로버트 네빌은 낮에는 시체들에 말뚝을 박고, 밤이면 돌아다니는 흡혈귀/좀비들과 사투를 벌인다. 원치 않아도 자꾸 떠오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네빌은 고독하고 괴롭기 그지없다. 그는 흡혈귀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최후의 인간이므로, 싸움은 끝날 리가 만무하며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싸우기를 멈추지도 못한다. 성욕은 틈만 나면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잠깐만 방심하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그의 얼굴을 따라 흐른다. 홀로 멀쩡하기 때문에 홀로 광란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 네빌은,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며 쉬이 동일시하게 만든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로버트 네빌은? 윌 스미스의 네빌은 영화 도입부, 네빌의 집 냉장고에 붙은 <타임>지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구원자(savior)/영웅에 가깝다. 그는 바깥 어딘가에 존재할 희망을 믿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사람들을 구하고,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어한다. 성욕에 시달려 괴로워하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책 속 네빌에 비하면, 1000일동안 여자 구경도 못한 남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시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 보기를 돌보듯 하는 평정심을 지닌 영화 속 네빌은 초인적인 의지의 소유자다. 그가 분노하는 건, 이곳이 아닌 바깥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에 대해서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아쉬움은, 원작의 네빌이 지니고 있는 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욕망, 두려움이 영화에서는 초연한 의지, 영웅적 책임감으로 바뀐다는 데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분은 누구신가’싶은 마음이 들 정도. 인간 한 명이 작품의 90%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달라져버렸으니, 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더리스 브루클린 밀리언셀러 클럽 72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의 캐릭터다. 화자가 어린이라면 어린이의 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어린이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읽는 성인 독자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 서술자가 범인임을 감추고 관찰자인척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추리소설에서 서술트릭은 이런 때 특히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범인은 바로 나다”라고 말하면 애초에 끝났을 이야기를, 모르는 척 의뭉스럽게 이런저런 단서를 늘어놓아 읽는 사람을 헤깔리게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페어플레이인가 아닌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반칙인가를 두고 독자들은 투덜거리며 독서 후일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머더리스 브루클린》의 화자인 라이어넬은 투렛 증후군 환자다.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이야기의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다.

투렛 증후군은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하거나 욕설 등의 언어를 뱉어내는 ‘틱’이라는 증상을 보인다. ‘틱 장애’라고도 하는데, 라이어넬은 끊임없이 숫자를 세거나 뭔가를 두드리고 만지며, 욕설이 섞인 말투로 쉴새없이 되뇌인다.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라이어넬 자신이나 책을 읽는 독자나 그가 어떤 행동을 개시할 때면 불안해지기 일쑤다. 증세가 약해지는 건 섹스를 할 때 정도인데, 모두에게서 ‘병신’ 취급을 받는 그가 여자와 원만한 관계를 맺는 건 꽤 힘든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증세가 책을 관통하는 불안한 기운을 조성하는 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라이어넬은 참선을 하는 장소인 ‘선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린다. ‘선당 몰라? 천당, 간당간당, 난 오늘 홍콩 간당? 버거 안이 클리토리스 튀김, 죽여!’ 그 말들을 용케 꾹 참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끝없이 라이어넬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 내용은 대개 라이어넬 자신이 인정하듯 자신이 들은 말의 ‘저질 버전’이며 대개의 경우 “죽여!”를 비롯한 각종 욕설과 뒤섞인다. 누군가에게 추궁당할 때 그렇게 저절로 흘러나오는 진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목은, 극적 긴장감 조성을 넘어 라이어넬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 같지만 묘하게도 투렛 증후군의 결과인 단어의 홍수는 라이어넬의 무의식을, 그의 욕망을 대변하곤 한다. 마치 약물을 하고 자동기술법에 의존해 작품을 쓰려고 했던 초현실주의자의 혼란스러운 보랏빛 환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라이어넬, 모두가 무시하는 라이어넬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법을 알고 있다는 역설은 일종의 반전 효과를 낳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조차도 라이어넬의 투렛 신드롬에 휩쓸려버린다”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카쿠치바 전설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1950년대, 일본 주고쿠 지방의 독토리 현 베니미도리 촌에 미래를 보는 한 소녀가 살고 있다. 만요는 산 속에 산다는 ‘변경 사람들’이 두고 간 계집아이. 변경 사람들의 특징인 검고 긴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다부진 체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만요를 거두어 키운 것은 젊은 부부. 부부는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자애롭게 만요를 키우지만 어쩐 일인지 만요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좀처럼 글을 익히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제철업으로 거부가 되어 가장 높은 산 위에 단풍잎처럼 붉은 대저택을 짓고 살아가는 아카쿠치바 가문의 마님인 다쓰가 만요를 발견한다. 마님 다쓰는 어째서인지 어린 만요에게 이담에 크거든 자기네 집으로 시집오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보게 되는 만요는 아카쿠치바 집안에 시집을 가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미래를 환시하는 만요의 능력은 자신이 진통을 겪으며 낳는 아이의 미래까지 보아버리고 만다. 한참 뒤 있을 큰아들의 비극을 출산의 순간에 보아버린 만요는 이후 아이를 낳을때면 눈을 꼭 감고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는 백말띠의 계집아이인 게마리였다. 주고쿠 최고의 폭주족이 된 게마리는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유명한 소녀만화가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게마리의 딸은….

사쿠라바 가즈키는 라이트노벨 작가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가사이 기요시에게 발탁되어, 유망한 신인들의 미스터리 작품을 주로 발간하는 일본 도쿄소겐샤의 미스터리 프론티어 시리즈를 통해 첫 책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발표했다. 사쿠라바 가즈키가 《고식(Gosick)》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 수 없어》로 이름을 얻은 뒤 고향인 돗토리 현에 틀어박혀 두 달만에 완성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아카쿠치바 전설》이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연상시킨다.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낚여 읽기 시작했는데 미스터리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어처구니없게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미래를 보는) 만요가 등장해 구불구불 굽이친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만요-게마리-도코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는 마치 50여년간에 걸친 통속극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도련님의 손을 탄 가정부가 옷을 홀딱 벗고 집안에서 스트리킹을 하고, 그렇게 태어난 혼외 자식은 이복 언니의 남자들을 골라 같이 자는게 유일한 목표이고, 폭주족 소녀는 손을 씻나 싶더니 폭주족 시절을 그린 만화로 성공해 죽는 날까지 만화만 그린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런 통속적 사건 사고들의 배경이자 원인이 되는 일본 사회의 격변기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유류파동, 경제급성장과 환경오염, 소녀만화의 급성장, 양키문화, 일본 산업 구조의 변화, 버블경제와 버블 붕괴, 청년실업 같은 최근 50년간 일본의 상황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여성 삼대의 극적인 이야기와 세계사 시간에 도표를 그려 암기했음직한 사회의 변화상을 잘 엮어냈다는 점은, 《아카쿠치바 전설》이 장르적 매력을 떠나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굳건한 토대가 되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단꽃 넘세 - 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
김금화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김금화는 나라굿으로 유명한 큰무당이다. 12살 때 무병을 앓았고, 외할머니였던 큰만신 김천일로부터 내림굿을 받았다. 무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감부터 느끼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넓은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김금화는 1982년 한미수교 백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을 비롯해, 1985년 백두산 천지에서의 대동굿, 독일 베를린에서의 윤이상 진혼굿 등을 해 왔다. 김금화에게 있어 자연재해로 죽는 이가 많은 지방 작은 마을의 뒤뜰에만 존재하는 문화가 아라는 말이다.

<비단꽃 넘세>는 김금화의 자서전이다. ‘금화’는 비단꽃이라는 뜻인데 열 세 살 이 이름이 있기 전까지 그녀는 ‘넘세’라고 불렸다. 넘세는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들을 학수고대하던 부모님이 지은 이름이다. 열네 살 되던 해 정신대 훈련을 나가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정신대에 가는 걸 면하기 위해 금화를 시집보냈다. 호된 시집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은글바위’란 마을에 며느리를 때려 죽인 집이 있어 두려움을 더했다.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지는 김금화의 이야기는 한 무녀가 자신의 무병을 거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나라굿으로 유명한 큰무당이 되기까지를 보여준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실패하기도 하고, ‘소리’를 듣고 아무 연고 없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새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던 이야기다. 미국 공연 이야기는 토크쇼에서 들려준다면 ‘큰웃음’얻기 딱 좋을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김용옥은 <비단꽃 넘세>에 부치는 말에 “풍류야말로 우리 민중의 토착적이고 자생적인 ‘신바람’ 즉 신명의 세계라 할 것이다. 그것을 현대 인류학 술어인 ‘샤머니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심히 부당하다 할 것이다. 그것은 우주론적 의미를 지니는 우리 민족의 본래적 심성의 바탕인 것이다”라고 썼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존재하는 것에 대한 예우, 그것으로 김금화의 <비단꽃 넘세>는 충분히 의미있는 독서로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