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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리스 브루클린 ㅣ 밀리언셀러 클럽 72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의 캐릭터다. 화자가 어린이라면 어린이의 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어린이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읽는 성인 독자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 서술자가 범인임을 감추고 관찰자인척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추리소설에서 서술트릭은 이런 때 특히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범인은 바로 나다”라고 말하면 애초에 끝났을 이야기를, 모르는 척 의뭉스럽게 이런저런 단서를 늘어놓아 읽는 사람을 헤깔리게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페어플레이인가 아닌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반칙인가를 두고 독자들은 투덜거리며 독서 후일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머더리스 브루클린》의 화자인 라이어넬은 투렛 증후군 환자다. 화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이야기의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다.
투렛 증후군은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하거나 욕설 등의 언어를 뱉어내는 ‘틱’이라는 증상을 보인다. ‘틱 장애’라고도 하는데, 라이어넬은 끊임없이 숫자를 세거나 뭔가를 두드리고 만지며, 욕설이 섞인 말투로 쉴새없이 되뇌인다.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라이어넬 자신이나 책을 읽는 독자나 그가 어떤 행동을 개시할 때면 불안해지기 일쑤다. 증세가 약해지는 건 섹스를 할 때 정도인데, 모두에게서 ‘병신’ 취급을 받는 그가 여자와 원만한 관계를 맺는 건 꽤 힘든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증세가 책을 관통하는 불안한 기운을 조성하는 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라이어넬은 참선을 하는 장소인 ‘선당’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린다. ‘선당 몰라? 천당, 간당간당, 난 오늘 홍콩 간당? 버거 안이 클리토리스 튀김, 죽여!’ 그 말들을 용케 꾹 참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끝없이 라이어넬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 내용은 대개 라이어넬 자신이 인정하듯 자신이 들은 말의 ‘저질 버전’이며 대개의 경우 “죽여!”를 비롯한 각종 욕설과 뒤섞인다. 누군가에게 추궁당할 때 그렇게 저절로 흘러나오는 진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목은, 극적 긴장감 조성을 넘어 라이어넬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 같지만 묘하게도 투렛 증후군의 결과인 단어의 홍수는 라이어넬의 무의식을, 그의 욕망을 대변하곤 한다. 마치 약물을 하고 자동기술법에 의존해 작품을 쓰려고 했던 초현실주의자의 혼란스러운 보랏빛 환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라이어넬, 모두가 무시하는 라이어넬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법을 알고 있다는 역설은 일종의 반전 효과를 낳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조차도 라이어넬의 투렛 신드롬에 휩쓸려버린다”라고 호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