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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ㅣ 메피스토(Mephisto) 14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척 팔라닉을 좋아하는가? 아마도. 그렇지만 그의 책을 다 읽거나 한 건 아니다. 그의 책이 술술 읽히더라-고 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이게 뭐지? 응? 뭐라 그랬지?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지? 누구였지? 내가 그의 책을 읽은 경험으로 말하자면, 척 팔라닉의 책은 절반 가까이 읽을 때 까지는 계속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하다. 중간에 독서를 잠시 멈추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생겨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진다. 심지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모든 물음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다시 앞부분을 뒤적거린 뒤에야 알게 된다. 척 팔라닉이 설명이나 해명에, 인과관계의 명쾌한 답변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다이어리>의 책 뒷표지에는 줄거리가 나와있지 않다. 혹시나 해서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는데, 그래도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런지는 알 수가 없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알라딘에서 책의 줄거리를 옮겨오자면 다음과 같다.
줄거리-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웨이탠시 섬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휴양지. 이동 주택 주차구역에서 자란 미스티는 웨이탠시 섬 출신인 부유한 청년의 청혼을 받자 자신의 꿈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후, 여느 날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미스티는, 차 안에서 자살을 시도한 남편 피터를 발견한다.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고, 그녀는 혼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허영심 많은 시어머니와 괴짜인 딸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미스티가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술과 아스피린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견디던 미스티는 미술학교를 그만둔 지 13년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스티를 제외한 섬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비밀이 한 가지 있었는데...
문제는, 책을 읽다 보면 미스티가 정말 피터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가 의문이 든다. 어쨌건,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책의 절반 정도까지는 읽어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공포소설이라고 했는데, 어디가 공포인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할 정도였다. 나중에야 알 수 있다. 귀에 매달린 귀걸이를 찢듯이 빼 내어 미스티에게 건넨 사람이 혹시-. 뭐 이런 것. 결과적으로, 영화로 만든다면 대단히 매혹적일 것 같다. 하지만 영화로 만드는 게 쉬울 것 같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바꾸려면, 일단 이야기를 해체해 어둠 속에 앙상한 뼈대를 더듬어 하나씩 붙여 나가야 할 것이고, 그렇게 이야기가 형체를 갖추면 다시 이야기를 장조림 고기 뜯듯이 다시 떼어내고 섞어서 마치 이 책의 상태처럼 정신없이 흔들어 던쳐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척 팔라닉의 매력이다. 의미없어보이는 문장들의 나열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팔라닉의 맛을 알 즈음이면 익사 직전까지 이야기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이야기 속의 미스티가 강요된 예술가의 고통 상태에 놓일 즈음, 읽는 사람 역시 비슷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이게 어떻게 생겨먹은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는 커다란 수레바퀴가 끼익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게 들리니까. 사족 하나. 미스티를 임신시키기 위한 피터의 행동들은 그야말로 urban girls' niightmare.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척 팔라닉의 책은 <서바이버>. 그런데 <다이어리>를 읽고 나니 <자장가>가 심히 궁금해진다.
ps. 한국판 표지나 내지 편집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국판의 표지와 내지 편집은 대단히 훌륭하다. 책 속에 나오는 다이어리를 닮은- 피로 쓴 듯한 글씨체로 제목 와 Chuck Palahniuk의 이름이 적혀있다. 푤치면 역시 피로 쓴 듯한 글씨체로,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Where do you get your inspiration?"이라고 적혀있다. 명심해야 할 것 한가지. 절대 질문에 답하지 말 것. 원서에는 각 챕터의 날짜들 역시 피로 공들여 쓴 것 같은 음산함-을 지니고 있다.
궁금한 점 한가지. anchor books의 이 판본에는 맨 마지막에 편지 하나가 게재되어 있다. 척 팔라닉에게 보내는 편지로, "많은 편지를 받으시겠지만, 이 글을 읽어봐주세요."라면서 "이 글의 대부분을 이번 여름에 썼습니다. (중략) 정말 돈은 제 목표가 아닙니다. 나는 이 글이 출판되어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어떤 점에서는 이 책이 한 사람을 계몽할 수 있겠지요."라고 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미스티가 이 책을 읽고 그녀의 삶을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담고 있는 것. 노라 아담스라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마치 이 책의 진짜 저자인양, 이 이야기가 사실인 양 암시하는 이 마지막 장이- 왜 이 부분이 한국 출판본에서는 빠져 있는 것인지? (겨우 한장밖에 안되는데.) 아니면 내가 산 한국판 책에만 그 한장이 빠져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