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스내처 - 이색작가총서 1
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 너머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잭 피니의 <바디스내처>를 다 읽었다. SF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다른 SF 소설 류를 읽었을 때 처럼 과학적인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공상과학공포소설.


미국의 한 소도시의 의사 마일즈가 옛 여자친구 베키의 방문을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등학교 때 연인 사이였지만 이제 두 사람은 나이도 들었고 둘 다 이혼 경력이 한번씩 있는 상태. 베키는 친구 윌마가 자기를 키워준 삼촌이 삼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청한다. 베키와 함께 윌마를 찾아 이야기를 들은 마일즈. 생긴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옛 기억도 다 똑같은데 그 사람이 아니라니! 문제는 그런 증상(?)의 식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마일즈는 친구 잭의 부름으로 그의 집에 찾아간다. 잭은 이상한 물체를 보여주는데, 시체인 동시에 시체가 아닌, 그러니까 한 번도 생명을 얻은 적이 없을 것 같이 생겼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긴 물체(?)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그 물체가 잭과 거의 흡사하게 생겼다는 것. 잭과 잭의 아내, 그리고 마일즈와 베키는 거대한 꼬투리에서 사람이 자라나 진짜 그 사람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잭과 잭의 아내, 마일즈와 베키, 이 네 사람은 자신들을 닮은 물체가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책 자체로 이미 베스트셀러였던 데다가 영화로도 몇 번이나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55년에 씌여졌다. 사랑하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간다는 설정, 생김새는 똑같지만 특유의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로 알맹이가 쏙 바뀐다는 설정은 무섭기 그지없다. 이른바 "내가 니 엄마로 보이니" 얘기인 것이다. 인격이 사라진 인격체들, 게다가 거대한 포자에서 사람들이 만들어진다는 설정, 그리고 진짜 사람과 그 물체가 바꿔치기당한다는 설정은 공포 그 자체. 잭과 베키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이 상황과 맞부닥치는 며칠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350여 페이지임에도 금방 읽힌다. (그리고 진짜 무섭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은 확실히 공포소설에서 가장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장치인 것 같다.


진짜 재미있는 건,
1. 밀 밸리라는 소설 속 소도시는 실제로 잭 피니가 죽을 때 까지 살던 도시 이름이라는 것.
2. 주인공 마일즈의 친구 잭(잭 피니와 이름이 같은)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것.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쩌면 경험담인지도 모른다- 는 것이다. 헤헤.


마일즈는 그렇게 교체된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지만, 가짜에게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가짜는 말한다. "그건 그리 나쁘지 않아. 야망이나 희망, 그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덧붙인다. "그런 감정에 수반되는 긴장과 고민까지 자네는 갈망의 대상이라고 말할 셈인가? 그건 그리 나쁘지 않아, 마일즈.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그건 평화롭고, 조용해. 음식은 여전히 맛있고, 책을 읽어도 재미있고..."
"하지만 글을 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거지."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더 이상 힘겹게,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악전고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군. 아니면 그런 감정들을 더 이상 느끼지 않거나. 그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야. 안 그런가, 매니?"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잘 써 지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절망을 느끼지 않고, 그저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구나, 음식은 맛있구나 하는 생각을 건조하게 하는 삶이 살아있는 것이냐, 아니냐. 아니다. 공포소설이지만, <바디스내처>는 진짜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섹스가 오로지 종족 보존의 수단인가? 식사는 오로지 생명 연장의 수단인가? 그런 거 아니란 말이다. 잭 피니는 글을 쓰는 것에 비유했지만 사실 글 뿐이 아니다. 잘 생긴 사람을 보면서 그냥 잘생긴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이 주는 절망과 희열을 모두 겪게 만드는 욕망 없이 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어지겠지만, 그래서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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