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 - 거지에서 기생까지, 조선 시대 마이너리티의 초상 서해역사책방 21
최기숙 지음 / 서해문집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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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는 18, 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삶에 관해 기록한 글을 최기숙씨가 현대어로 옮긴 책입니다. 옛사람들은 무덤 안에 부장품과 함께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를 전하는 문서를 함께 넣었는데 그걸 묘지문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비석에는 비문을 써 죽은 사람이 조상과 후손과 관계를 맺은 방식을 기록했는데요. 이런 묘지문이나 비문은 고인의 가족이 문인 선비에게 의뢰해 짓는 사대부 문화였습니다. 신분제 사회의 그늘에서 산 조선의 마이너리티는 자신의 일생을 남길 수 없었던 셈인데요, 이 책이 소개하는 ‘전’이라는 장르는 고인과의 관계나 고인의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고인의 삶에 대해 쓸 수 있는 방식을 나태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천재라고 일컬어지며 성공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홍도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도 이름이 전해져오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죠. 신분제도가 엄격한 사회에서 피지배계급으로 나고 자라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죠. 예술가에 대한 천대는 사실 조선시대에는 공공연한 일이었죠.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남유용이 쓴 ‘김명국전’은 제목 그대로 유명한 화가였던 김명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고, 그래야 영감이 솟았지만 붓을 잡기 전에는 무엇을 그릴지 그 자신도 몰랐다고 합니다. 미치광이라고 불렸던 임희지는 역관이자 화가였는데, 배를 타고 가다 비바람을 만나자 다른 사람들이 부처님, 보살님을 부르는데 혼자 춤을 추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유는 “죽음은 평범한 것입니다. 바다에서 비바람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은 다시 얻기 어렵지요. 그러니 어찌 춤추지 않겠습니까?” 약간 과장이 섞였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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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처녀
권교정 지음 / 길찾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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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부분의 모험은 닥쳐올 때는 '괴로운 고난'에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생명을 잃지 않고 성공시킨 후엔 잊을 수 없는 모험이 되는 거니까." -알데히드의 말

"괜찮아... 정말 자유로울 때 제대로 의심할 줄 알아야 해." -국왕 데트

'모든 모험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부제는, 너무 잘 어울리는 나머지 약간 소름끼친다. 청년 데트의 모험담을 읽었던 안 읽었건 관계없이 그렇다. 그림체도 좋고- 이야기는 더더욱 좋다. 모험담을 읽을 때 늘 비딱한 마음으로 상상하던 게 데트의 생각과 일치한다니. 피끓는 청춘들이 모험을 하는 이유는, 그게 모험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인간은 늘 재미있고, 또한 재수없다. 결국 모두가 서로를 일종의 도구화하기 때문에.

권교정의 세계에 입문하는 책으로 꽤 멋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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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 - 원하는 것을 가져도 늘 부족한 사람들의 7가지 심리 분석
로리 애슈너.미치 메이어슨 지음, 조영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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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설명하기 이상한 습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습관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기질상의 문제들도 있을테고. 예를들면, 원하는 것을 얻은 뒤의 행복이 오래 가지 않는다거나(하지만 남에게 티를 내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배부른 투정이라는 말만 듣는다), 늘 남에게 좋은 일만 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거나, 자꾸 남하고 비교한다거나 하는. 할 일이 많아도 지루하고, 재밌는 일이 있어도 지루하고, 되는 일이 있어도 없어도 불안한 일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남에게 토로하면 "누구나 다 그렇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등등의 애매한 조언을 듣게 되고, 결국은 그냥 혼자 삭히게 되는데,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이 책은 그런 심리가 왜 생기는지를 알려준다.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재밌는 점은, 이 책에서 말하는 대개의 정신적 불만족의 원인은, 성장 과정에서 발견된다는 데 있다. 아이가 자꾸 부모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면, 그 경험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일을 잘 해 놓고서도 불안해지는 것이다. 성과에 대한 자기만족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가족의 영웅으로 자란 아이는 그런 칭찬에 길들어 자꾸 남을 위한 것을 과도하게 생각하다가 정작 자기는 불만족상태에 빠진다(그리고 그 사실을 내놓고 말하지도 못한다). 걱정근심을 막기 위해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과도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고, 나만 다르다는 두려움이 계속 자신과 남을 비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결정적인 조언을 해 주는 건 아니다.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과장되게 만사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았다. 사실 아무 문제 없다고, 안심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가 목표 달성 직전에 갑자기 무력감을 느끼며 후퇴하는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기쁜 때일수록 걱정거리를 찾는 성격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을 것. 각 사례들은 사실적이고, 책 자체도 쉽게 잘 읽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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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살인사건
아시베 다쿠 지음, 김시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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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기서의 하나인 <홍루몽>의 세계를 무대로 한 추리소설. 일본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선정 '올해의 작가' 아시베 다쿠가 10년간의 기획과 3년 여의 집필 기간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라는 출판사의 책 소개 덕에 이 책을 읽기 전에 꽤 궁금했다. 역사소설이니 팩션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는데, <홍루몽>을 재해석하면서 패러디했다고 해야 하나... <홍루몽>에 대해 배웠던 지식을 떠올려보면 접점은 있는 듯 하지만... 내가 <홍루몽>을 읽지는 않았으니 이 두 책들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먼저.

책은 더디게 읽히는 편이다. 일단 등장인물이 많고 사건이 더디며... 충격적인 사건 운운하지만 글쎄, 그도 그렇지 않은...

별점을 정하기가 참 애매한 책인데, 이를테면 성실히 쓴 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황금가지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나온 디 공 시리즈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 추리물인데, 그 디 공 시리즈는 꽤 재미있었던 걸 생각하면, 단순히 내가 중국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장황하다는 인상이, 책장을 덮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면 책을 끝까지 읽기는 해야 한다는 일념에 열심히 읽긴 했는데. 결론은 이렇다.

추리소설보다는 중국 역사물 자체에 흥미를 가진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마지막 사건 해결 부분도... 속 시원하지 않았다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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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공시리즈는 재미있었는데, 이거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사실 저기 어딘가 잠자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새초롬너구리이고 전에 님 리뷰 읽고 즐찾해놓고선 시간이 없어서 인사도 못드렸어요 ^^

marina🦊 2007-09-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녕하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사실 디공시리즈처럼 잘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복잡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점에서 잠깐 책을 보시고 구매를 결정하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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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남의 독서일기를 읽을 때 늘 그렇듯, 나는 내가 읽은 책에 관해 쓴 글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 책의 저자에 그 정도의 예의는 차리는 편이 예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고 이 책의 각 장을 소화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결국 다른 책 읽어가면서 이 책을 읽어야 해서 시간이 한참 걸렸다는 이야기.

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듣는 편이다. 책들과 음악들, 영화들 사이에 줄을 세우고 그들을 분류하는 작업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런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은 책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식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뭘 알고 있는지 모른다는 데도 적용된다.

<독서일기>의 저자인 알베르토 망구엘은, 작가 설명에 따르면 유명한 작가이자 번역가이자 편집자라고 한다. (프로필 자체가 꽤 이상적이다) 게다가 학창시절에 서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무려 보르헤스를 만나게 되는데,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덕분에 보르헤스가 책에 덧붙이는 독특한 촌평을 얻어들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거기서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외교관인 탓에 이탈리아, 영국, 타히티, 캐나다 등지를 옮겨다녔다고. 운이 겁나 좋았던 셈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읽은 책들을 열거한 독서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흔히 독서일기라 함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단상을 붙이는 데 지나지 않지만, 망구엘의 <독서일기>는 그가 여러번 반복해 읽은 책들 중 12권을 골라 한달에 한 권씩 다시 읽으면서 단상을 정리한 책이다. 다시 말해, 새로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어간 책이다. "독서는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다"라는 자신의 말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독서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스스로 해박한 독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다독을 해 온 사람이니, 여러 번 읽은 책을 한 달 동안 다시 읽으면서 생각에 잠긴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나.

그는 10월에 <네 사람의 서명>을 다시 읽었다. 자, 이 독서일기에는 <네 사람의 서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줄거리를 모르고, 책을 모르고 이 글부터 읽는다면 망구엘이 인용하는 인용구에만 관심이 치우칠 수 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을 최소한 한 번 정도 정독해 본 독자라면, "국외자는 왓슨처럼 드러난 것 이상을 보지 못한다"는 말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고의 과정에서 신변에 일어난 자질구레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섞인다. "홈스의 도시(내가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찾으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끝내 찾지 못했던 그 런던)은 완벽하게 허구이고, 실재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불만이라면, 왓슨을 왜 굳이 웟슨이라고 썼는지, 그리고 <피네건의 경야>로 이미 잘 알려진 책을 언급하는데 왜 굳이 <피네건즈 웨이크>라고 썼는지 하는 것들일 것이다. 저자는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수많은 책을 인용하고 거기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보르헤스 아닌가.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책읽기다. 1년에 책 12권이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120권도 넘을 것이다. 관련된 책과 관련되지 않은 책들 모두가 한 사람의 서가에 꽂혀있고, 거기서 끝없이 길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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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2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이제, 그림일기와 독서의 역사를 읽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marina🦊 2007-09-2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서 망구엘이 쓴 책을 다 사버렸어요. 연휴 동안 열심히 읽어야 할텐데요. 이 책 정말 너무 좋더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