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최신 소설의 제목은 제목부터 묵직한 [언어의 무게]. 사실 이 두 소설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언어에 예민한 주인공,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 교사, [언어의 무게]의 레이랜드는 번역가이자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의 언어를 전부 배우고 싶다'는 욕망에 충실히 살아 온 인물이다. 이들은 언어라는 종교의 성자들이다.
이 성자들과 마주한 소설 속 주변인물들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의를 베풀며 숭배의 감정을 느낀다.
소설의 중심 사건이자 갈등의 주 요소는 우연히 삶을 뒤바뀐 사건,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포르투갈 여성과 마주쳐 학교를 무단결근하고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충동적으로 오른다.
레이랜드는 편두통으로 쓰러졌다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운영하던 출판사를 파는 등 주변 정리를 하다 오진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극적으로 삶을 되찾는다.
'나'라고 확신하던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우연한 사건들, 혼란 속에서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그레고리우스와 레이랜드에겐 언어였다. 얇은 삶을 문진과 같이 지그시 누르는 언어의 무게.
[언어의 무게]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보다 심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건 앞의 소설보다 더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고(아마데우의 삶이 극적이고 훨씬 열정적인 부분이 있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덩달아 뜨거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고전 언어의 해석자로 남았으나 레이랜드는 소설 끝에 가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시간으로 뭘 했던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언어를 사용해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경건해지는 마음.
그리고 한창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파스칼 메르시어, 본명 피터 비에리로 철학자이자 작가분이 6월 말 타계하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신작 소설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