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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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무조건적으로 사랑스러워야 할까?


몰입도 높은 이 소설의 주인공 주디스 헌 양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일찍 부모를 잃고 아픈 이모 병수발하다 혼기를 놓친 독신녀 헌 양은 재산도 거의 없고 외모는 못생긴, 재산도 미모도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가진 건 끝을 모르는 망상, 약간의 연금. 자수와 피아노를 가르치며 하숙집을 전전하는 그는 알코올 의존증을 가지고 있고, 소설 본편 속 라이스 부인의 하숙집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알콜중독으로 급격하게 내리막을 탄다. 상대의 말을 부풀려 해석하고 쉽게 의지하다 상대가 손절하면 악한 인물로 매도하고 공격하며 집착한다. 절망 속에서 술을 마신다. 계속해서 마신다.


-393쪽, 당신에게는 남은 희망이 없어요, 모이라. 그럼 당신도 나처럼 되는 거예요. 대낮에 망상이나 하면서 그 꿈을 붙잡고 싶어 하는 거죠. 하지만 붙잡을 수 없어요. 그래서 술을 마셔요. 그 망상을 실현해주는 힘을 얻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모이라, 그 인간이 실제로는 어떤 인간이건 간에, 그는 당신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는 왕자님이 되요.


내 주변에 헌 양 같은 이가 있다면,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집 문을 두드리며 내 얘기 좀 들어 달라 절규하는 이가 있다면 순순히 받아줄 자신은 없다. 조용히 손절하고 외면하지 않을까..


외로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능동적인 고독과 수동적인 외로움의 어마어마한 차이. 외로움은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도 독신 남성과 독신 여성의 차이를 비교하며 묘사하듯, 과거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외로움을 견디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어렵고, 돈을 버는 일에도 한정적이고, 수입 자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종착지는 수녀원이나 요양원 뿐이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술을 마시며 망상 속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독신 여성에 대한 경고나 풍자, 조롱이 주제가 아니다. 동정하기 쉽고 받아들이긴 어려운 이 주인공은 외로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발버둥치는 실존적인 인간이다. 배우자와 친구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욕망했고, 그 단순하고 평범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할 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망상이 비대해져만 갔다. 욕망이 좌절될수록 발버둥치고 발버둥칠수록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불편하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불편한 소설이다. 


'너는 추하고 가난하여 외롭게 살아야 한다'는 선고에 납득하지 못하고 애써 보지만 카프카적인 소송은 집행되고 주디스 헌은 병원에 갇힌다. 우리는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함부로 그의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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