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17)

: 군대에 와서 '달빛'을 알게 되었고, 느끼게 되었다.

사회 있을 땐 가로등, 간판등, 그리고 여기저기 창문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달은 볼 수 있어도 '달빛'은 볼 수 없었다.

사람 손으로 만든 빛이 자연 빛을 삼켜 버리니 볼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밤이 어둡다 해도 별빛이 있고 달빛이 있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해 간다고 해도 묵묵히 자기 일 다 하며
서로서로 돕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밤이 어둡다 해도 별빛, 달빛이 있기에 결코
'어둡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아무리 외롭고 추운 야간 근무 시간이라도
초소까지 가는 길을 밝혀주는 달빛이 있기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군대란 곳은 작은 것 하나에 기쁨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을 알게 해준다.

/*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보통 '무월광'이라고 하죠.                 

   달 없는 밤.

   보름달 하고 무월광인 날하고 진짜 하늘,땅 차이입니다.  
   도시에서는 이 차이를 알기가 무척 힘들 겁니다. 
   저도 군대 가서야 알게 되었죠.  */

 

: 99년 1월29일 자정이 좀 지나서...

불침번이 깨운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잠결에 시간을 물어보니 00시 50여분

"어?!! 나 주간 초번초인데????"

불침번이 잘못 깨웠나 싶어 도로 자려고 하니
불침번이 하는 말

"눈! 옵! 니! 다!"

.....
하필 야간에 근무 없는 날
그것도 다음 날 초번초인날

/* 초번초, 다시 말해 주간 첫 번째 근무를 말합니다.   
   초번초가 6:00에 교대를 해줘야하니
   적어도 05:30에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니까 남들보다 1시간은 덜자는 거지요.   */

아주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그리고 원활하게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눈 때문에 잠을 방해받은 고참 5명과 후임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겨울 가뭄 때문에 큰일이라며 TV에서 난리를 치더니
방심하다가 결국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격이다.

역시 사람은 항상 긴장해야 하나 보다.




그럭저럭 포상 위장망을 치우는 작업은 금방 끝났다.

//   포상은 '포'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작업은 일찍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선 눈에 대한 원망과 짜증들이 계속 튀어 나왔다.
3월에 전역하는 최고참은 이렇게 눈 내리는 날
뭐가 가장 생각나느냐며 그럭저럭 여유 있는 물음을 꺼내기도 한다.

한 숨을 돌리고 주위 경치를 살핀다면
그런 대로 멋진 경치가 되겠지만
그 경치를 만든 눈 때문에 달디 단 잠을 방해
받은 사람들한텐 그 아름다운 모습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올 겨울 들어 이렇게 큰 눈이 내리기는 요번하고 작년 12월 중순, 딱 2번 뿐이다.
하지만 그 때도 눈 치운다고 자다가 일어났었다. 근무가 없었기 때문에... T_T


뭐!  좋게 좋게 생각하자.

작년 이 맘 때 나 대신 고참들이 내려가지 않았나.
2000년엔 지금 이등병, 일병인 녀석들이
그 때 들어올 신병들 대신 나가겠지...   거둔 만큼 뿌린다고.....

군대 아니면 이런 경험 또 어디서 할까?
이런 게 다 추억이 되겠지.
부산에서 보기 힘든 눈도 보고
좋네 뭐... 괜찮은 경험했다 치자.
.........

'눈'같은 여자를 조심하자 --;


/* 다른 부대는 잘 모르겠고요.
   제가 있던 부대에는 포상에 위장망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물 같은 건데 말 그대로 위장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거지요.

   눈이 오면 그 위장망에 눈이 쌓이는 데 이걸 그냥 놔두면 나중에
   눈 무게 때문에 위장망이 찢어질 수 있습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밤에 근무 없는 사람들을 깨워서
   위장망을  전부 다 거두라고 시키지요.   ^^;  
   제가 왜 위에서 처럼 짜증을 많이 냈는지 이제 이해가 될 겁니다.

   여름, 겨울 군인들이 싫어하는 것 하나씩만 꼽으라면
   여름엔 풀, 겨울엔 눈을 꼽을 겁니다.

   겨울에 눈 내리면 진짜 끌장 납니다.
   사회에서는 첫 눈 내리면 전부 좋아하겠지만
   군대에서 눈 내리면 다른 것은 다 제껴 놓고 제설작업부터 합니다.

   눈이 쌓이는 걸 그냥 놔두었다간 보급로가 막히고 
   땅은 나중에 진흙탕이 되어서 생활하는데 아주 불편해 집니다.
   그래서 만사 다 제쳐놓고 제설작업을 하는 겁니다.
   연휴, 훈련, 주간, 야간 다.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제설 작업입니다.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98년 1월 1일 새해 첫 날, 눈 내려서 쉬지도 못하고 눈 치웠습니다.
   오전 내내~~~    (T^T)

   99년 설날 연휴 첫날 눈 내려서
   제설 작업한다고 그 날 오전 다 까먹었습니다.   (T^T)

   눈도 꼭 주말이나 노는 날만 골라서 내리더군요.  

   참고로 저.. 부산 사람입니다.
   부산 사람들 일년에 눈 한 번 보면 정말 많이 보는 사람들입니다.
   저! 군대에서 처음 눈을 봤을 때 진짜 좋아했습니다.
   일부러 눈 있는 곳만 골라서 다녔습니다.
   처음엔 뽀드득 뽀드득 하고 눈 밟힐 때 나는 소리가 정말 좋더군요.

   하지만......   나중엔 심장 갈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_-;)
   눈 보면 진짜 이가 뿌득 뿌득 갈립니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함부로 눈 내려서 좋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특히 여자분들!!!   조심하십시오.

   군대 있는 애인한테 
    "자기야 눈 내려서 너무 좋아~~~! "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애인 가슴에 고드름을 박는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_-;)

   군인들한테 눈은

      적이요,
      원수요,
      홧병나게 하는 애물단지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눈 내리는 거 안 좋아했습니다..  상 당 히!  

   그런데 저번 주에 스노보드를 한 번 타보고 생각을 바꾸었지요.  헤 헤 헤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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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5-01-2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스노보드는 싸나이 로망이 아닙니까? 히히히.
스노보든는 눈이 안내리면 못할게요 ---------------------------
그러나, 군대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장난이 아니겠죠. 그건 저두 상상할 수있어요. 상상만이지만.

세벌식자판 2005-01-2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에궁... 그게 또 그렇게 되나... (^^)a
생각해 보니 스노보드가 있었군요.
이제부터 눈 내리는 거 좋아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세벌식자판 2005-01-26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 ^^;
Chin Pei님 댓글을 보고 끝 부분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역시나 스노보드는 싸나이 로망~~! (^o^)=b

ChinPei 2005-01-2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