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2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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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리아 전쟁의 절정부터 내전의 전야까지를 다룬다. 갈리아에서 카이사르는 탁월한 전공을 거두지만, 바로 그 점이 그의 정적들을 더욱 두렵게 만든다. 가만 보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일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공포와 욕심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거진 이천 년 전의 고대사가 어쩌면 이렇게 현대사 같을까. 날 것의 정치 현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라이벌 간의 충돌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속도감에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게 된다. 벌써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옆에 있던 히르티우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런 게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랍니다. 루키우스 형님. 그는 상대를 살살 홀려서 이 일을 해낼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러면 당신은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죽도록 매질하겠죠. 그는 또한 자기 말을 그대로 지킨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당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거예요. _ 98쪽

누군가 거대한 조직체의 지도자로 나선다는 것은, 동시에 그의 머리에 번개가 떨어지고 그의 지혜에 비난이 퍼부어지며 그의 용기에 비판이 쏟아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오. _ 137쪽

"잘했지만, 충분히 잘하진 않았다. 너희는 카이사르의 군대다. 다시 말해서 용기와 대담성만이 너희에게 기대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아, 물론 성벽의 높이나 까다로운 진지 방비 작업이나 끔찍한 산악 지형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을 전투에 내보낼 때는 목숨을 잃으라고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고작 내 군대가 영웅들로 이루어졌다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내 소중한 병사들과 심지어 더 소중한 백인대장들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죽은 영웅은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은 영웅은 화장되고 기려지고 잊힌다. 용맹과 열정은 칭찬할 만하지만, 군인의 삶에서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군대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다. 카이사르의 군대에서는 규율과 자제가 다른 어떤 미덕 못지않게 높이 평가된다. 내 병사들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내 병사들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정열이 제 아무리 격렬해도 내정을 유지해야 한다. 용기보다는 차가운 머리와 명확한 사고가 전투에서 더 많은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나를 슬프게 만들지 마라! 카이사르에게 눈물 흘릴 이유를 주지 마라!" _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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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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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에 습관이 좋은 사람이 행복하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 책 읽기가 습관이 되도록 하라, 하지만 완독할 필요도 없고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 그저 언제나 어디서나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가까이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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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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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언제 읽어도 실망을 주지 않는 책이다. 반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출간되는 것도 그 매력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이번 권은 아마도 다음 권을 잇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만 부여받았을텐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하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것은 사람이름이다. 지나치게 길고, 너무 비슷하다. 처음에는 이름과 특징을 정리하면서 읽다가, 매번 이야기가 주는 속도감에 빠져들어 정리하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책의 재미를 느끼는 데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등장인물과 특징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번 권에서는 '로마식 민주주의(?)'에 대한 갈리아인 베스킹게토릭스와 카이사르의 논쟁을 눈여겨 보았다. 베스킹게토릭스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카이사르의 말을 들으면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가 가지는 한계와 장점에 대해 서로 너무나 명쾌하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면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만들고도 '누가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어?' 하고 불평하는 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바꾸는 것도 '민주주의'다. 이런 문답을 통해서 제도의 빛과 어둠을 살펴보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의적절하게 느껴졌다. 이 번 권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 권력 내 암투를 다룬다. 이게 로마의 민주주의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원래 100미터 밖에서 보는 세상과 그 안에 들어와서 보는 세상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저 양껏 즐기고 돌이켜 생각해볼 뿐이다.

카토 그놈은 정말 위선자예요. 공화국이니 모스 마이오룸이니 과거 통치계급이 타락했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읊어대면서, 불량한 자기 행실은 어떻게 해서 ‘올바른 행동‘에 속하는지 잘도 구실을 만들죠. 아마도 철학의 미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잘못을 변명할 구실을 찾도록 도와주는 데 있나봐요. (88쪽)

병사들과 더불어 당당히 행진하던 카이사르는 죽은 떡갈나무들의 벽을 보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쟁을 적의 머릿속에서 치른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매료되었고 전쟁을 벌이는 새로운 방식을 깨달았다. 카이사르 자신과 병사들에 대한 그의 신뢰는 무한했다. 하지만 적의 머릿속을 정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적들은 절대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장발의 갈리아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굴복할 수 없으니까. (101쪽)

민주주의라는 게 그런거니까. 생각 없는 바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어째서 멍청이들이 뽑혔는지 의아해하지. 사람들에겐 왕이 필요하오. 눈 한 번 깜빡하면 새로 바뀌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는 어느 한 집단이 이득을 보고 그 다음엔 또다른 집단이 이득을 볼 뿐, 전체가 이득을 보는 상황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소. 결국엔 왕정만이 유일한 해답이오. _ 베스킹게토릭스가 카이사르에게 (200쪽)

민주주의에서는 바보와 현자가 늘 공존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가의 계보보다는 낫소. 위대한 왕이 하나 나오려면 보잘것없는 왕을 열 명은 거쳐야 하니까. _ 카이사르가 베스킹게토릭스에게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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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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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재미있는 역사책이다. 저자 자신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왕가 계보도도 이해를 돕는다. 익숙한 소재들이지만 이야기를 잘 엮어서 한 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재미 만을 강조해서 내용의 깊이를 잃은 것도 아니다. 


  예컨대, '코르테스'와 '루터'를 다룬 장을 읽다보면 종교의 유익함과 해악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서구의 아메리카 식민지화가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꽃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다보면 원주민 제국이 무너진 내부요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잘못된 믿음이 사람을 어디로 오도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지배체제 하에서 피지배층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코르테스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게 무리도 아닌 것 같다. 물론 바다를 건너온 그들도 자원을 수탈하고, 노예로 부리는 등 각종 만행을 일삼았지만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토속 신앙 뿐만 아니라 면죄부 또는 면벌부를 발행한 중세 가톨릭교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신교는 완벽한가? 종교 개혁가 루터도 그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그가 개혁하려고 했던 '구교' 보다 '신교'가 더 개혁적이고 가치지향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더 억압적으로 사상을 개조하려 들기도 했다. 종교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었던 중세에는 '잔 다르크'처럼 믿음 앞에 자신을 내던지기도 하고, '콜럼버스'처럼 믿음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근대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IS나 원리주의 기독교회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신성성을 상실한 근본주의 도그마'는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이 외에도 얻을 것이 많은 책이다. 볼거리와 읽을 거리도 충분하다. 벌써부터 2권을 기다리게 된다.

잉글랜드가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선구자가 폭군이자 편집증 환자이자 호색한인 헨리 8세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겠지만, 역사의 발전은 반드시 선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169쪽)

자기네들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언어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종교가 없는 것과 같다. 말을 빨리 따라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말을 금방 배울 것이니 곧 좋은 하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돌아갈 때 본보기로 여섯 명을 붙잡아서 군주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것이다. 약 1만 5,000년 정도 서로 격리되어 살아온 사람들이 마침내 만난 첫날, 유럽인들은 곧장 이곳을 지배해 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리라 결정한 것이다. (198쪽)

루터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극단적인 공격성을 띠게 된다. 그는 독설로 남을 공격하고 자신을 옹호했는데, 때로 그 말과 글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은 무엇을 하셨느냐고 묻자 "당신처럼 건방지고 촐랑거리고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영혼을 가두기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을 거요"하고 답했다(이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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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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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읽다가 잊고 있었던 책인데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읽기 시작해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로마에서 가보았던 장소와 가이드의 설명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되새김질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사랑도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책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감흥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4세기 후반 로마는 이름만 로마지 사실상 도시국가 로마의 가치와 시스템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을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한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에 급급했고, 국가의 활력은 잃어버렸다. 지키고 가꿔나가기에는 너무 비대해져버린 로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제국 유지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기독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그 영향력을 점점 키워간다. 물론 그 이면에는 기독교에 대한 세금 면제 등 국가적인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 기독교의 확대는 말하자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 흐름을 뒤바꿔보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 책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제1부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 '제2부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 그리고 '제3부 암브로시우스 주교'이다. 제위 순서대로라면,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라고 제목을 뽑을 만한데도 밀라노의 주교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는 로마황실의 자양강장제로 도입되었던 기독교가 오히려 로마제국을 장악하게 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다른 종교도 아닌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고 그 세력을 펼친 것이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로마 카타콤베에서 보았던 그 초기 기독교인들의 열정 때문인지, 교리 자체가 가지는 차별성 때문인지, 이민족의 빈번한 침입에 따른 제국민들의 불안 또는 말세의식 때문인지, 시대적 사상적 사조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신의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승리'로 4세기는 정리되어 간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의 로마 가치에 대한 '승리'라고 매우 비관적으로 평가했지만, 로마제국 이후에도 (허울뿐이지만)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이름으로 이후에도 오랫동안 '로마'라는 이름이 존속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비관을 가지기 힘들다. 


  이는 이성과 합리, 효율성과 법률체계 등 로마의 가치와 문화가 유럽사회에 남긴 영향이 크고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로마에 가면 기독교 유적과 로마시대 유적들이 혼재되어 있듯이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다. 포로 노마노와 판테온, 성베드로성당 등 그 모습 그대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감흥을 자극한다. 로마의 가치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롯이 살아남아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 이유는 로마가 지켜야할 가치는 '만신(萬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과 관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세금 징수를 되풀이하는 것만 능사로 삼는 황궁의 무신경한 도둑놈들한테서 민중을 지켜내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전투가 한창일 때 대대장이 자신에게 맡겨진 부서를 방기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형뿐이야. 그리고 시신을 매장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불명예뿐이야. 대대장보다 훨씬 높고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고 그에 상응하는 책무를 짊어진 내가 그 책무를 방기하면 어떤 처벌이 어울릴까. 신들이 나에게 이 기회를 주었다면, 그 일을 하는 동안은 신들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네. 이 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고뇌가 나를 덮쳐도, 순수하고 올곧은 이 자각이 나를 떠받쳐줄 걸세. - 율리아누스가 쓴 편지 중에서 (158쪽)

관료 기구는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바꿔 말하면 ‘기생충‘-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99쪽)

로마 시대의 모작이 모작의 영역을 넘어설 만큼 훌륭한 것은 로마인이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고, 패배자한테도 그 사람이 잘하는 일을 맡기는 일관된 관용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전 그리스의 걸작이 만들어진 지 2천 4, 5백 년이 지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로마 시대의 모작‘ 이라는 단서가 붙더라도 전 세계의 미술관이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모작‘이기 때문이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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