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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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읽다가 잊고 있었던 책인데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읽기 시작해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로마에서 가보았던 장소와 가이드의 설명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되새김질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사랑도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책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감흥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4세기 후반 로마는 이름만 로마지 사실상 도시국가 로마의 가치와 시스템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을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한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에 급급했고, 국가의 활력은 잃어버렸다. 지키고 가꿔나가기에는 너무 비대해져버린 로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제국 유지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기독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그 영향력을 점점 키워간다. 물론 그 이면에는 기독교에 대한 세금 면제 등 국가적인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 기독교의 확대는 말하자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 흐름을 뒤바꿔보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 책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제1부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 '제2부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 그리고 '제3부 암브로시우스 주교'이다. 제위 순서대로라면,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라고 제목을 뽑을 만한데도 밀라노의 주교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는 로마황실의 자양강장제로 도입되었던 기독교가 오히려 로마제국을 장악하게 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다른 종교도 아닌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고 그 세력을 펼친 것이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로마 카타콤베에서 보았던 그 초기 기독교인들의 열정 때문인지, 교리 자체가 가지는 차별성 때문인지, 이민족의 빈번한 침입에 따른 제국민들의 불안 또는 말세의식 때문인지, 시대적 사상적 사조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신의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승리'로 4세기는 정리되어 간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의 로마 가치에 대한 '승리'라고 매우 비관적으로 평가했지만, 로마제국 이후에도 (허울뿐이지만)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이름으로 이후에도 오랫동안 '로마'라는 이름이 존속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비관을 가지기 힘들다. 


  이는 이성과 합리, 효율성과 법률체계 등 로마의 가치와 문화가 유럽사회에 남긴 영향이 크고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로마에 가면 기독교 유적과 로마시대 유적들이 혼재되어 있듯이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다. 포로 노마노와 판테온, 성베드로성당 등 그 모습 그대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감흥을 자극한다. 로마의 가치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롯이 살아남아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 이유는 로마가 지켜야할 가치는 '만신(萬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과 관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세금 징수를 되풀이하는 것만 능사로 삼는 황궁의 무신경한 도둑놈들한테서 민중을 지켜내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전투가 한창일 때 대대장이 자신에게 맡겨진 부서를 방기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형뿐이야. 그리고 시신을 매장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불명예뿐이야. 대대장보다 훨씬 높고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고 그에 상응하는 책무를 짊어진 내가 그 책무를 방기하면 어떤 처벌이 어울릴까. 신들이 나에게 이 기회를 주었다면, 그 일을 하는 동안은 신들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네. 이 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고뇌가 나를 덮쳐도, 순수하고 올곧은 이 자각이 나를 떠받쳐줄 걸세. - 율리아누스가 쓴 편지 중에서 (158쪽)

관료 기구는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바꿔 말하면 ‘기생충‘-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99쪽)

로마 시대의 모작이 모작의 영역을 넘어설 만큼 훌륭한 것은 로마인이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고, 패배자한테도 그 사람이 잘하는 일을 맡기는 일관된 관용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전 그리스의 걸작이 만들어진 지 2천 4, 5백 년이 지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로마 시대의 모작‘ 이라는 단서가 붙더라도 전 세계의 미술관이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모작‘이기 때문이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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