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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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다. 책 제목, 작가 소개, 카피 문구, 추천사 등 여러 가지 있으며 책 표지도 그중 하나다. 개인적으론 책을 고를 때 책 제목과 표지의 강렬한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것은 그것만 한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단연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공포와 두려움을 상징하는 마녀라는 단어와 그와 비례하여 암흑을 배경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듯해 보이는 한 여인이 어깨너머로 뒤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그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섬찟하다. 완전히 뒤를 돌아본 순간 섬뜩하게 웃고 있는 마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대체 왜 이런 기이하면서 알듯 모를듯한 여인의 모습을 표지로 삼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의문은 이 소설을 읽고​난 후에 밝혀진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멘눌라라의 모습과 책 표지 속 여인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알팔리페 가문의 하녀인 멘눌라라가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13살 어린 소녀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55살까지 하녀로서의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나 다 아는 그렇고 그런 하녀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알팔리페 가문 일가를 비롯하여 섬마을 주민 사람들 모두가 알았던 멘눌라라는 마치 여러 사람인 듯하다. 그녀의 죽음 이후 하나씩 밝혀지는 그녀의 정체성과 그녀가 삶이 이를 증명한다. 그녀는 알팔리페 가문의 다른 하녀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개 하녀에서 급기야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까지 도맡게 된다. 그 후 알팔리페 가문 일가는 그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삶을 살아간다. 어찌 보면 주인과 하녀의 삶이 뒤바뀌었다고 해도 될까.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알팔리페 가문의 안주인과 자녀들에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멘눌라라에 의해 그동안 흩어져 있던 가문 일가가 한자리에게 모이게 되고 그녀의 계급으로서 불가능한 절차들을 그들에게 요구한다. 그녀를 위한 특별한 장례와 유산 상속을 위한 일련의 절차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말대로 따르면 가문의 유산을 그대로 받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연하듯이 알팔리페 일가는 그녀의 요구 조건에 어이없어하고 불이행한다. ​그러나 마치 그녀가 살아서 그들을 지켜보는 듯한 편지가 속속 도착하게 되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멘눌라라가 죽으면서 알팔리페 가문에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알팔리페 가문과 일생을 함께 했던 그녀의 진짜 삶은 어떠 모습이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살아생전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 후세에 의해 이른바 재조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인간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죽은 후에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 속 주인공 멘눌라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섬마을에서 살아왔지만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그녀의 진짜 모습을 만들어낸다.

보통 소설 속 인물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정반대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주인공의 캐릭터를 알 수 있다. 앞서 책 표지를 다소 길게 얘기했던 이유는 그래서다. 첫인상이 강렬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앞 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은 마치 죽음을 나타내고 뒤를 바라보며 살짝 웃고 있는 표정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어떤 이는 멘눌라라를 마녀로 표현하고 어떤 이는 좋은 여인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누군지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보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마녀. 암흑. 섬뜩한 미소로 점철되는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소설의 말미엔 의외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특이한 소설이다. 한 가문의 하녀이자 재산관리인의 삶을 살았던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간직했던 꿈, 사랑 그리고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멘눌라라가 남겨진 이들에게 바랬던 것은 바로 그들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올 한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매력적인 소설을 만났다. 데뷔작으로 베스트셀러 소설가 된 작가의 차기작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후속작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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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이 무기다 - 소리 없이 강한 사람들
다카시마 미사토 지음, 정혜지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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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을 했다고 여기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낯을 가린다는 건 대체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에 끼지 못한 채 조용히 있다거나 회의를 할 때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한 채 앉아 있다거나 하는 경우다. 단체 생활에 있어 낯가림은 소외당하거나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낯을 가린다'라는 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듯하다.

하지만, 이제는 낯가림에 대한 그동안의 편견을 버릴 때가 왔다. 오히려 낯가림이 무기가 되어 자신만의 강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일명 '소리 없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산증인이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다고 하는 저자는 현재 연 30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CEO이며 여러 기관으로부터 강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대형 입시 전문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 낯가림이 심한 그녀가 어떻게 해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강의를 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낯가림을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로 활용하는 순간부터 가능했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낯가림을 어떻게 자신만의 무기로 만들 수 있는지 저자만의 비법 노하우가 담겨있다. 낯가림은 결코 서투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낯가림 센서를 통해 오히려 상대방을 주의 깊게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총 36가지 방법이 자세히 실려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머리가 새하얘지지 않기 위한 규칙'은 낯가림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유용하고 실용적인 비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낯가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낯가림은 극복할 수 없는 평생 감수해야 하는 나만의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그 부담이 말끔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억지로 낯가림을 극복해내려고 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낯을 가리기 때문에 나와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저자의 36가지 비법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된다. 가장 좋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바로 경청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면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에도 수월하다. 낯가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경청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낯을 가리는 사람들은 이미 최고의 커뮤니케이터가 아닐까. 이제는 자신감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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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초등교사는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 자녀의 진로지도에 성공한 초등교사 23인의 노하우
이정원 지음 / 알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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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첫 번째로 신경을 많이 쏟게 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엄마, 아빠라면 24시간 365일 아이에게 온 신경을 쏟지 않는 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꼽으라면 단연 아이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때인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거나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이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15개월 된 어린 아들을 둔 아빠지만 절대 공감, 폭풍공감이다. 부모 마음은 아이가 어리든 크든 상관없이 다 똑같은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가 진짜 부모의 역할이 시작되는 것 같다. 물론, 영유아 시기부터 부모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이의 두뇌는 3세 이전에 이미 다 발달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예비 부모 때부터 태교와 육아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아이에게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간 부모의 노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다. 동시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초등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입학 전에 부모가 준비해야 될 것은 무엇이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주의해야 할 점들은 무엇일까. 나처럼 초보 부모들에겐 그저 답이 안 보이는 막막한 ​질문일 뿐이다. 하지만, 참 다행이다. 훌륭하신 선배 부모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있기에 안심이 된다.

이 책은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직접 교육현장에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점들을 정리해 모아놓았다. 아이들의 선생님으로서 아이의 엄마, 아빠로서 누구보다 자녀의 교육에 열의를 갖고 계신 선생님들의 자녀교육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저자가 직접 선배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생생한 교육열을 정리하고 기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책보다 자녀와 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다.'

'아이는 야단치는 대로 변하지 않고 칭찬하는 대로 변한다.'

'자녀교육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 아니라 부모력이다.​​'

'여행은 나이 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경험에 불과하지만,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최고의 교육이 된다.'

'​부모의 단호하고 즉각적인 대처만이 아이를 따돌림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

책을 보면서 너무 좋은 말들이 많이 있어 밑줄을 너무 많이 그은 나머지 책이 지저분해진 듯하다. 그 정도로 자녀를 둔 부모에게 피와 살이 되는 주옥같은 말들은 많다. 훌륭한 교사이자 선배 부모이신 분들의 말씀이라 그런지 더더욱 깨닫게 해주는 말들이다. 책 속에서 소개된 인디언의 자녀교육 11계명은 이 세상 모든 부모가 머리와 가슴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어야 될 점들이다.

​인디언의 자녀교육 11 계명

1. 비판받으며 자란 아이는 비난을 배운다.

2. 적대감 속에서 자란 아이는 싸움을 배운다.

3. 관대한 속에서 자란 아이는 참을 성을 배운다.

4.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배운다.

5.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는 고마움을 배운다.

6. 인정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7.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누구보다 아이를 원했고 멋진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여전히 걱정스럽고 겁이 나고 앞으로가 잘해나갈 수 있을지 두렵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이를지도 모르지만 자녀교육에 좀 더 신경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육아와 자녀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역시 부모란 아무나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책에 소개된 분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셨고 여전히 현직에서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계신다. 이렇게 완벽한 분들에게도 후회가 남는다고 한다. '만약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하고 물었을 때 하나같이 '아이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라고 답하신다. 아주 간단 명료한 대답이지만 참 많은 깨달음을 준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평소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고 주말엔 피곤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잠으로 대신하기 일쑤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라는 꿈과는 거리가 먼 행동에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심하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책에서 한 선생님께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이렇게 당부하신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말고 동행하라'고 말이다. 우리 부모들은 의례 아이를 위해 희생할 줄만 알았지 동행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싶다. 부모의 희생보다 더 갚진 것은 바로 부모의 동행이라는 점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책속에서 소개된 부모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들

<초등부모학교​>

<아이의 미래, 초등교육이 전부다>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

​<초등 독서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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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원경 옮김 / 박하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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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인류가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즉, 인류의 기원이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인류의 기원은 한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한계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은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인류학자와 같은 지식인들이 그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풀기 위해서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노력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존재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해 엉뚱하지만 유쾌하게 풀어쓴 소설이 있다. 스티븐 킹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소설이며 2014년에는 딜런 토마스상을 수상하기도 한 바로 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게 과연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 내용이 디테일하다.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다.

뉴욕에서 성공한 치과의사인 폴 오로르크. 그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환멸, 냉소적, 심드렁, 무신론자. 미프로야구 보스턴 레드 삭스의 광팬임에도 불구하고 86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또한, 그 자신은 무신론자이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속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그들의 종교에 집착하기도 한다. 타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냉소적인 말투와 분위기는 이 세상에서 그를 홀로 만든다. 모두가 잠든 사이 자신만 깨어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 인터넷상에 그의 명의를 도용하여 병원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계정을 만들고 그의 이름으로 이상한 글들을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철저히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칭한 누군가가 올리는 글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성향의 글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일을 벌인 작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그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체성의 기원을 쫓아가기에 이른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삶의 변화에 맞딱드리게 된 폴.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될까.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 주인공 폴 오로르크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는데 혹여 작가 본인의 모습을 소설 속에 그려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치과의사 폴의 냉소적이고 심드렁한 면이 사진 속 작가의 얼굴에서 보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뉴욕에서 살고 있는 뉴요커라서? 어찌 되었든 내게는 그런 상상이 더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가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생소한 종교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짬뽕해놓은 듯한 신흥 종교라고 해야 될까. 헌데, 이게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엔 그저 알 수 없는 종교적 색채를 띈 블랙코미디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아~ 이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충치가 생긴 것 같지만, 통증이 없다면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아프지 않다면 당장은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은 시간이 많다. 걱정은 나중에 해라. 그때까지는 즐겨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진짜다. 너는 충분히 건강하고 눈앞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씁쓸하고 비참한 온갖 고민에 묻혀 살 이유가 있는가?

그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남들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생각이 나를 세상의 안으로 편입시켰다. 더 이상 나는 밖의 존재가 아니라 안의 존재였다. 제대로 안에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자가 떠올랐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저 독백이야말로 저자가 치과의사 폴 오로르크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처음 받은 날 느꼈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지금 조슈아 페리스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면서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그의 작품들을 읽어볼 차례다. 떨쳐낼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을 지닌 그의 소설 세계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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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월간샘터 2015년 8월호 월간 샘터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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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잡지를 접해본 것이 대학교 시절 신문사 활동을 하던 때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사회, 문화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취재하여 발간하는 잡지는 신문이나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월간 샘터는 올해로 창간한지 45년이 되었다. 1970년 4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자타 공인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접하게 된 월간 샘터 2015년 8월호는 통권 546호다.

월간 샘터를 읽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솟아남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잡지에 실린 글들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부터 여행, 책, 음악 등 문화 이야기를​ 비롯하여 유명인사들의 진솔한 이야기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여름 시즌을 맞이하여 8월 호의 표지는 시원한 바다를 연상케한다. 또한, 2회에 걸쳐 여름 특집 기사까지 실려 있다.

이번 호의 목차를 훑어 내려가다 보니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띈다. 흰 구름 러브레터 '이해인 수녀님', 기생충에게 배우다 '서민 교수님', 참살이 마음공부 '법륜스님',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성석제 작가님'까지. 그분들은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그분들을 잘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분들이 쓰신 글을 잘 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창간 이래 45년 동안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기사만을 선별하여 잡지에 싣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행복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샘터 편집부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월간 샘터를 통해 사람 냄새나는 좋은 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이유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있듯이 읽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글도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내게 월간 샘터는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 첫 번째 교양 잡지가 되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달려온 만큼 앞으로도 멈추지 말고 독자들을 위해 함께 달려나가는 월간 샘터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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