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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원경 옮김 / 박하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온갖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인류가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즉, 인류의 기원이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인류의 기원은
한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한계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은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인류학자와 같은
지식인들이 그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풀기 위해서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노력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존재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해 엉뚱하지만 유쾌하게 풀어쓴 소설이 있다. 스티븐 킹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소설이며 2014년에는 딜런 토마스상을
수상하기도 한 바로 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게 과연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 내용이 디테일하다.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다.
뉴욕에서 성공한 치과의사인 폴
오로르크. 그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환멸, 냉소적, 심드렁, 무신론자. 미프로야구 보스턴 레드 삭스의 광팬임에도
불구하고 86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또한, 그 자신은 무신론자이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속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그들의 종교에 집착하기도 한다. 타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냉소적인 말투와 분위기는 이 세상에서 그를 홀로 만든다. 모두가 잠든 사이 자신만
깨어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
인터넷상에 그의 명의를 도용하여 병원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계정을 만들고 그의 이름으로 이상한 글들을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철저히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칭한 누군가가 올리는 글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성향의 글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일을 벌인 작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그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체성의 기원을 쫓아가기에
이른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삶의 변화에 맞딱드리게 된 폴.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될까.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 주인공 폴
오로르크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는데 혹여 작가 본인의 모습을 소설 속에 그려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치과의사 폴의 냉소적이고 심드렁한 면이 사진 속 작가의 얼굴에서 보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뉴욕에서 살고 있는
뉴요커라서? 어찌 되었든 내게는 그런 상상이 더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가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생소한 종교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짬뽕해놓은 듯한 신흥 종교라고 해야 될까. 헌데, 이게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엔 그저 알 수
없는 종교적 색채를 띈 블랙코미디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아~ 이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충치가 생긴 것 같지만, 통증이 없다면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아프지 않다면 당장은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은 시간이 많다. 걱정은 나중에 해라. 그때까지는 즐겨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진짜다. 너는 충분히 건강하고 눈앞에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씁쓸하고 비참한 온갖 고민에 묻혀 살 이유가 있는가?
그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남들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생각이 나를 세상의 안으로 편입시켰다. 더 이상 나는 밖의 존재가 아니라 안의 존재였다.
제대로 안에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자가 떠올랐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저 독백이야말로 저자가 치과의사 폴 오로르크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처음 받은 날 느꼈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지금 조슈아 페리스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면서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그의 작품들을 읽어볼 차례다. 떨쳐낼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을 지닌 그의 소설 세계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