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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ㅣ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다.
책 제목, 작가
소개, 카피 문구, 추천사 등 여러 가지 있으며 책 표지도 그중 하나다. 개인적으론 책을 고를 때 책 제목과 표지의 강렬한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것은 그것만 한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단연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공포와 두려움을 상징하는 마녀라는 단어와
그와 비례하여 암흑을 배경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듯해 보이는 한 여인이 어깨너머로 뒤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그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섬찟하다. 완전히 뒤를 돌아본 순간 섬뜩하게 웃고 있는 마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대체 왜 이런 기이하면서 알듯 모를듯한 여인의 모습을 표지로 삼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의문은 이 소설을
읽고난 후에 밝혀진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멘눌라라의 모습과 책 표지 속 여인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알팔리페
가문의 하녀인 멘눌라라가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13살 어린 소녀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55살까지 하녀로서의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나 다 아는 그렇고 그런 하녀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알팔리페 가문 일가를 비롯하여 섬마을 주민 사람들 모두가 알았던 멘눌라라는
마치 여러 사람인 듯하다. 그녀의 죽음 이후 하나씩 밝혀지는 그녀의 정체성과 그녀가 삶이 이를 증명한다. 그녀는 알팔리페 가문의 다른 하녀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개 하녀에서 급기야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까지 도맡게 된다. 그 후 알팔리페 가문 일가는 그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삶을 살아간다. 어찌 보면 주인과 하녀의 삶이 뒤바뀌었다고 해도 될까.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알팔리페 가문의
안주인과 자녀들에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멘눌라라에 의해 그동안 흩어져 있던 가문 일가가 한자리에게 모이게 되고 그녀의 계급으로서 불가능한
절차들을 그들에게 요구한다. 그녀를 위한 특별한 장례와 유산 상속을 위한 일련의 절차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말대로 따르면 가문의 유산을
그대로 받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연하듯이 알팔리페 일가는 그녀의 요구 조건에 어이없어하고 불이행한다. 그러나 마치 그녀가 살아서
그들을 지켜보는 듯한 편지가 속속 도착하게 되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멘눌라라가 죽으면서 알팔리페 가문에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알팔리페 가문과 일생을 함께 했던 그녀의 진짜 삶은 어떠 모습이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살아생전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 후세에 의해 이른바 재조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쩌면 인간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죽은 후에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 속 주인공 멘눌라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평생을
섬마을에서 살아왔지만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그녀의 진짜 모습을 만들어낸다.
보통 소설 속 인물에 대한 묘사는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정반대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주인공의 캐릭터를 알 수 있다. 앞서 책 표지를 다소 길게
얘기했던 이유는 그래서다. 첫인상이 강렬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앞 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은 마치 죽음을 나타내고
뒤를 바라보며 살짝 웃고 있는 표정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어떤 이는 멘눌라라를 마녀로 표현하고 어떤 이는 좋은
여인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누군지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보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마녀. 암흑. 섬뜩한 미소로 점철되는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소설의 말미엔 의외의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특이한 소설이다. 한 가문의 하녀이자 재산관리인의 삶을 살았던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그녀가 간직했던 꿈, 사랑 그리고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멘눌라라가 남겨진 이들에게 바랬던 것은 바로 그들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올 한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매력적인 소설을 만났다. 데뷔작으로 베스트셀러 소설가 된 작가의 차기작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후속작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