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 헤세가 본 삶, 사람 그리고 그가 스쳐 지나간 곳들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엮음.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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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문학에 심취한 이들 치고 헤세의 작품을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꼭 문학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작품들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여러 버전으로 국내외 꾸준히 출간되고 있기에 접해 봤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특히,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헤세의 작품들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헤세가 동양적인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이 고스란히 그의 작품들 속에 녹아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동안 접해온 헤세의 작품들은 많이 있음에도 그의 모든 작품을 접해본 것은 아니다. 국내 출간되지 않은 그의 시집과 산문집을 비롯해서 헤세의 많은 글들이 미번역되어 만나지 못 했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의 헤세의 글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헤세의 많은 글들을 직접 선별하고 번역한 이는 그처럼 글을 쓰는 소설가 배수아다. 헤세의 작품들 속에서 알지 못 했던 헤세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글들이 담겨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책 제목처럼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크게 4가지 테마로 분류되어 헤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 ​헤세의 방랑, 사랑, 생각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을 통해서 그간 헤세의 작품들 속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헤세를 만나게 될 것이다.

헤르만 헤세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데미안>을 통해서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때의 나에게 <데미안>은 자아 발견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탈출구였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투철한 신앙심과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부모와 ​그가 발을 내디딘 낯선 사회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부조리로 점철되는 악의 세계로 인해 내면의 정신세계는 무너지고 방황을 일삼는다. 그러던 중에 신비한 소년 데미안과의 만남은 그에게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발전한다. 소설 속 싱클레어의 모습에 그 시절 나의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심적인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헤세의 작품들은 헤세의 경험들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데미안>이 그렇고 ​불교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가 그렇다. 그런 소설 속에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헤세의 인간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면을 이 책에 실린 그의 글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풍족하진 않더라도 부족함 없는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란 헤세의 삶은 생각만큼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전쟁에 대한 고통과 아내의 정신병 그리고 자신의 병까지 육체적인 아픔보다 정신적인 아픔이 컸던 헤세다. 그런 만큼 그는 자신의 내면을 글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가 남긴 짧은 자서전과 그가 쓴 편지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삶은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작가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글을 쓰는 작가이자 헤세를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소설가 배수아가 고르고 번역한 글들은 헤세를 더 잘 알 수 있게 한다. 생전의 헤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헤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헤세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를 조금 이해한다 싶었는데 새로운 헤세를 만난듯한 기분이다. 지금껏 내가 알았던 헤세의 모습과 그동안 몰랐던 헤세의 모습이 합쳐져 온전한 헤세가 되게 한다. 다른 이들도 이 책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 통해 진정한 헤세의 모습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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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책 봤어? - 철학을 놔버린 당신도 빠져들 재미있는 철학자 열전
시미즈 요시노리 지음, 함인순 옮김 / 현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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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이 어렵다고? 그럼 이 책 한번 읽어봐." 철학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위대한 철학가이자 사상가로 알려진 이들에 대해 지금껏 이렇게 재미있게 써낸 철학책은 없었다. 우리가 아는 철학책은 철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나 어울릴법한 일반 대중들에겐 조금 어렵고 따분한 그런 인상이 강하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라고 해야 될까?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금껏 봐왔던 어떤 책보다 위대한 철학가들의 사상과 삶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책에 쓰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점만 명심하길 바란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철학의 철자도 잘 모르는 소설가다. 더구나 주로 유머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런 그에게 재미있는 소설을 청탁하는 일은 그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나이가 듦에 따라 점차 그런 유형의 글보다는 여행후기나 노후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많다고 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그 일을 못 해서 욕구불만까지 쌓이게 되었다는 저자. 그런 그가 철학자들에 대해 쓰게 된 계기는 어쩌면 작가 인생의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유머소설 작가의 유쾌한 철학자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한없는 궁금증을 일게 하는 것도 모자라 목차를 보는 순간 황당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위대한 철학가들의 이름을 '돌머리'라든지, '어이없다', '이상하다', '비상식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먹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렇게 제목을 정했을까. 앞으로 위대한 철학가들의 삶과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겨왔던 소크라테스. 그는 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무지한 사람에게 진지를 일깨워주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작가는 소크라테스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하하.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리. 위대한 철학가인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돌머리로 만들어버리다니.

이렇게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사르트르까지 총 12명의 철학자들을 유머러스하게 뒤집어 까발린다. 철학이라면 두 손 두발 다 들어버리는 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그런 철학책이다. 저자가 12명의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 철학 입문서와 철학가들의 대표작들을 몇 번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자신에겐 철학은 버거운 학문이라 말한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모르면서 아는체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런데 그런 점이 오히려 철학을 처음 접하거나 어려워했던 이들에게 공감이 되는 듯하다.

철학책은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누구고 그가 어떤 철학가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쳤던 데카르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니체가 왜 초인 사상과 영원회귀에 심취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라. 철학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줄 유쾌한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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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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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음식에 조예가 깊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가리켜 미식가라고 부른다. 예전엔 미식가라 함은 전문가처럼 특정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는 것이 대중화가 되었기 따름이다. 그와 더불어 자신이 먹은 음식에 대해서 전문가 못지않은 나름의 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기도 하다.

사람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먹는다는 건 인간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만큼 원초적이면서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먹는 것의 가치가 조금 바뀐 듯하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는 것의 의미를 넘어 삶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에게 먹는 것이란 어떤 의미이며 그 안에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요즘의 현대인들에게 먹는다는 것은 그저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떻게 먹는지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말이다. 편의점이나 도시락으로 대충 한 끼를 때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엉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똑같은 음식이라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좀 더 기분 좋은 하루, 나아가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밥 먹는 거에 무슨 그런 거창한 의미를 두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저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굳이 바꾸려고 하진 않는다. 그저 나름의 '먹는다'에 약간의 품격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만약 한 번쯤 그런 품격을 갖추고 싶다면 저자의 미식 수업을 따라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기서 미식 수업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이라 함은 때론 맛있는 식당을 찾아 혼자서 먹는 경우도 해당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서는 식사를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데 혼자서 식사를 해봐야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무리를 지어 식사를 하다 보면 다수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이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외롭고 초라한 약간의 고통이 따르는 일이지만 진정한 미식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다. 즐거운 미식의 세계가 앞에 있는데 한 번의 초라함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극복해내자.

저자의 미식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먹는 것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미식이란 반드시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옷차림으로 매너 있게 먹는 식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그 음식을 통해 즐거움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이 곧 미식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으로만 여겼다면 이제부턴 자신만의 미식 세계를 추구해보자. 먹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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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 - 어쩌다 내가 회사의 가축이 됐을까
강백수 지음 / 꼼지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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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 모든 직장인들은 회사라는 주인으로부터 사육되는 가축이라는 뜻이다. 섬뜩하다. 23살부터 지금까지 만 13년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회사의 가축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 생활에 대한 회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농장에서 길러지는 가축과 별반 다르지 않는 또 하나의 가축이란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아니,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하고 스스로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은 어쩌면 대학을 졸업한 청춘들에게 사회생활을 위한 등용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사라는 곳은 앞으로 내가 독립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거쳐야 하는 곳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회사다. 그렇기에 직장인들의 삶은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많은 부분 이루어진다. 그곳에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책 <사축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사축일기>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맞아. 맞아'를 속으로 외치면서 고개도 끄덕이면서 읽게 된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 상사와의 불협화음, 부하직원들이 친 사고 뒷수습 등 웃지 못할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은 리얼 직장인들의 속내가 담겨있다. 그런 사축들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웃픈' 이야기들이다. 웃기면서도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그중에서도 절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야기는 바로 '우리 회사의 7대 불가사의'가 아닐까 싶다. 그 불가사의란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의 7대 불가사의

1. 월급이 적을수록 업무량이 많다.

2. 일을 빨리하면 퇴근이 늦어진다.

3. 일을 못하면 회사 생활이 편하다.

4. 일을 너무 잘하면 욕을 먹는다.

5. 그 높을 경쟁률을 뚫고 쟤가 입사를 했다.

6. 저 인간이 팀장이고.

7. 저 인간이 부장이다.

정말 '웃픈' 현실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 '웃픈' 이야기를 읽는 내내 단 한가지 명제가 내 머리를 휘감는다. 내가 사축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우리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사축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웃지 못할 현실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사축이 되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이 답일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것도 사축의 일환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아직 인생을 덜 살아서 답을 찾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내가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나의 신념이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사축 생활이라 한다면 내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생활을 즐길 수 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난 사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앞서 얘기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 과정 속에서 반드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를 포함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든 사축들의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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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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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사건과 함께 올 한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노라면 그릇된 정책으로 국민들의 피를 말리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나라 없는 나라'라는 책 제목만큼 대한민국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없을 듯하다.'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에겐 나라가 없다.' 존재하나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나라, 대한민국.

<나라 없는 나라>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에 맞서 전봉준 장군을 앞세워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을 다룬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에게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많은 문학 작품을 통해 다루어져 왔기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회 혼불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이 작품은 그간의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소설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전달한다. 소설의 힘을 빌리고 있음에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소설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덧대어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의 말마따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현대적인 사건으로 육박해온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조선의 왕실을 지키기 위해 경복궁에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는 병사들은 어명에 돌연 아연실색하고 만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무기를 버리고 궁을 떠날 것을 명하는 조선의 왕. 이게 대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조선의 국왕이 왜놈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멋대로 넘기려는 수작인 건가. 필시 이는 개화당의 음모에 따름이겠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는 병사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일뿐이다. 이때 누군가 외친다. '이것은 나라도 아니다. 나라는 없다.' 그 외침과 동시에 일제히 총칼을 버리고 군복마저 갈기갈기 찢어 버린 채 궁을 버리고 떠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작금의 시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노라면 1890년대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 재현되는 듯하다. 이 땅의 주인은 나라를 살리고자 목숨까지 내놓은 채 싸우고 있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의 행태는 과거 개화당의 음모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월호 사건을 기억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슬픔도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를 대처했던 무능한 국민의 대표와 자기 이속 챙기기에 급급했던 일부 정계 인사들의 참상을 기억한다.

어쩌면 작가는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악행이 지긋지긋한 나머지 이 땅의 주인이 진정 누구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이지 되새기고자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락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라는 작가의 말은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염원했던 그날은 잊어버린지는 오래다. 그렇다고 우리의 뿌리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뼈아픈 역사는 왜곡해서 없었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우리의 올바른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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