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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생명은 부모의 보살핌에 의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 인간의 성장과정에 부모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하지만, 부모라는 존재 자체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영국에서 실제로 아기들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한 방의 아기들에게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음식만 제공했고 다른 방의 아기들에게는 음식과 더불어 안아주고 볼을 비벼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들려줬다고 한다.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음식만 제공했던 방의 아기들은 반 정도가 죽거나 병에 걸렸다. 결국 이후 이와 같은 실험은 금지되었다. 이 충격적인 실험 결과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 단순히 '의식주'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감정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해외근무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마후유. 그녀의 가족은 낯선 이곳에서 평범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해나가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의 갈등은 심해진다. 그 이유까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어린 마후유에게는 언젠가부터 집안 분위기를 살피는 습관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마후유를 대할 때는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울려 퍼지는 총성. 그 소리에 놀란 마후유는 아버지의 서재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피가 흥건한 바닥에 쓰러져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그녀는 고국인 일본에서 어머니와 살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자살과 가족의 불행을 모두 마후유 그녀 탓으로 돌린 채 가정폭력을 일삼는다. 부모의 사랑이 한창 필요한 사춘기 시절을 어머니의 학대와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자라게 된 그녀는 결국 18살이 된 후 어머니가 있는 일본을 떠나 미국을 되돌아온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사람인 마후유. 지금은 머피라는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으로 살아간다. 사랑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온 그녀에게 삶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 랠리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랠리에 대한 감정에 낯설어한다. 한 번도 사랑이란 것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이기에 이런 감정이 사랑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 사랑으로 감싸주는 랠리다. 결국 그녀는 랠리의 마음에 응답하게 되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너에게 다가온 사람은 모두 불행해진다'라고 했던 어머니의 저주도 이제 끝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혼 직후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 랠리를 잃고 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닮은 랠리의 아이만 남겨둔 채 그는 그렇게 그녀 곁을 떠나간다. 평생 사랑의 감정을 모른 채 살아온 그녀가 희망이라는 '날개'를 달고 다시금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별을 담은 배>로 129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중 한 명인 무라야마 유카의 이 소설은 인간에게 필요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흔하디흔한 소재라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 많고 많은 작가 중 한 명의 그렇고 그런 소설이라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이보다 더 절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싶다.
일본 작가의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태평양을 건너 광활한 미 대륙을 횡단한다. 미국의 중심 뉴욕에서 시작하여 태초의 지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한 장엄한 그랜드 캐니언이 자리 잡은 애리조나까지 스케일이 크다. 남다른 스케일만큼이나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사랑'이지만 그 안에는 부모의 이혼, 아동학대, 집단 따돌림, 인종차별까지 모든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다룬다. 처절하리만치 불행한 한 일본 여성이 낯선 이국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슬픔을 경험하지만 결국 그녀가 찾아낸 것은 '희망'이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기에 다시 오를 수 있는 희망이라는 '날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삶의 모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고 위안을 받으면서 말이다. 비단 이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그녀가 만난 모든 이들에게 같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사랑, 그까짓 것 내가 살아가는데 머가 그리 중요할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니던가.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한 생각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 더더욱.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사랑의 무게와 크기 그리고 이제 내가 주어야 할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을 읽고 난 지금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애리조나의 배경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머릿속의 상상들이 눈으로 직접 펼쳐질 때의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해낼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