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인 1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삶. 이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유한한다. 즉, 언젠가는 그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불로불사의 삶은 어쩌면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의해 생겨난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원불멸의 삶을 원했던 이들 치고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가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행운보다는 불행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뱀파이어. 우리가 알고 있는 불로불사의 존재 중 가장 친숙한 이름이다. 뱀파이어의 역사 또는 신화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그 유래는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기원전 125년경 그리스 신화에서 처음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뱀파이어라는 어원은 1047년 러시아 대공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뱀파이어 전설의 근원은 중동에서 발원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지중해로 전해지게 되며 이후 슬라브 영토와 중부 유럽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뱀파이어라는 존재 자체는 그것이 지닌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우리들에게 신비한 존재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 영향은 영화나 소설, 뮤지컬 등으로 뱀파이어가 지닌 묘한 매력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뱀파이어의 존재는 사실 동양보다 서양의 문화에 잘 어울린다. 물론, 동양에서도 그런 존재가 없진 않았다. 옛날 중국 영화에 등장했던 강시들이 비슷한 존재다. 흡혈귀 측면에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둘은 차이가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강시는 뱀파이어보다는 서양의 좀비에 가깝다. 뱀파이어를 떠올리면 인간과의 애절한 로맨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강시나 좀비는 호러가 떠오른다는 점도 큰 차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렇게 동양의 문화에 익숙지 않은 뱀파이어란 존재가 옛 조선 시대에 나타났다고 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점차 서양 문물이 흘러들어오는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말이다.

인조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고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이 17대 조선 왕에 오른다. 소현세자를 비롯 세빈과 3명의 어린 아들 역시 역모로 몰려 죽거나 귀양에 보내진다. 그를 측근에서 보필하던 신하들도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염일규. 그는 소현세자를 보필하던 무관이던 형의 역모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후 조정의 하급 관리 시체 나르는 일을 도맡아 오며 색주가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할 종사관에 그가 뽑히게 된다. 한순간 종 6품 벼슬에 오른 염일규는 사건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색주가를 넘나들었던 그다. 그러나 그런 염일규의 바램과는 달리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관비인 아리의 도움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조사는 철저하게 진행되고 점점 그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목에 물린 자국과 함께 몸 안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채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제주에 표류하게 된 하멜 선박에 있었던 고지인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지만 용의자의 탈옥으로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종결되고 만다. 한편, 그 과정에서 염일규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관비 아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리는 염일규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후 조정으로부터 하멜 일행을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신분의 차이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결국 함께 제주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제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고지인이 나타나며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목이 물린 채 쓰러진다. 고지인의 연쇄 살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자신조차 고지인이 되어버린 염임규. 그는 과연 영원불멸의 삶을 얻었지만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또 다른 고지인과의 만남과 더 큰일이 염일규를 기다리고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하멜 표류기의 역사가 소설 속에서 되살아 났다. 서양의 뱀파이어 전설과 함께 한데 어우러져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조선 역사에서 과연 뱀파이어 존재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시공간을 넘어 완벽히 조화를 이뤄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드라마 <닥터 이방인>의 원작인 <소설 북의>의 작가이자 또 다른 드라마 <추노>, <아이리스>, <공주의 남자>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저자답게 이번 소설도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도 될 만큼 스토리가 재미있다. 2권짜리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했을 때는 장르가 <트와일라잇>과 같은 고지인과 인간의 절절한 로맨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초고를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무협 액션 스릴러 장르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주인공 염일규와 아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너무 아쉽기는 했다.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 차이로 인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어느 순간 고지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맥이 끊겨버린다. 중간중간 고지인이 된 염일규가 아내와 아이를 걱정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지만 결국 스토리의 큰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그래서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만약 앞서 얘기했듯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작가의 바램대로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좀 더 비중이 실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국내 최초 조선 시대 뱀파이어 이야기 너무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