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날 때 우리들의 작문교실 11
송재찬 지음, 윤문영 그림 / 계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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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김연아 선수가 생각났고 박태환 선수가 생각났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열광했고 그 뒷이야기를 궁금해 했다. 아무리 천재선수라도 그 노력과 열정이 얼마만큼이었는지, 그 뒤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뒷바라지를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상대에서 메달을 가슴에 달고 태극기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지만 그 눈에서 감격의 눈물도 보게 된다. 그 눈물엔 아마 그 동안 해온 끊임없는 노력과 혹독한 훈련 그리고 쉬임 없이 쏟아낸 땀방울이 모두 녹아 있었을 것이다. 

서울 필하모닉의 창단 신년 음악회에서 사람들은 맨 앞 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휘자의 손이 올라가자, 빈자리를 보며 나기철은 바이올린을 든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8 사계’의 막이 오른 것이다. 아지랑이 봄이 연주되는 동안 기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해온 기철인 학교 공부가 끝나면 늘 레슨을 받으러 달려가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 수도 없고 아이들과도 잘 알지 못한다. 6학년이 되자 짝궁이 된 서녕을 좋아하지만 기철인 축구도 잘 못하고 서녕인 주호와 더 친하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도 불구하고 엄마 등쌀에 못 이겨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은 기철인 담임 선생님과 서녕의 응원 편지를 받게 된다. 음악가가 꿈이었던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을 이루지 못했고 서녕이도 피아노를 치다 그만둔 상태였지만 기철이와 서녕인 스승의 날에 합주를 한다. 그때부터 기철인 서녕이와 쪽지를 주고 받고 그게 나중엔 교환일기가 된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서녕이네가 야반도주를 하게 되자, 교환일기도 끝나게 된다. 

그 사이 음악은 나른하고 권태로운 여름으로 넘어간다. 바이올린도 시큰둥한 기철에게 여름캠프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동안은 연습만을 강조하던 억척 엄마가 기철에게 캠프를 다녀오라고 한다. 캠프에서 신나게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기도 하고 하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큰일이 날 뻔도 하지만 기철일 구하려다 다치는 건 오히려 선생님이다. 옥수수 서리를 함께 하던 밤, 기철인 선생님께 정약대 얘기를 듣는다. 

“조선 시대 이야기인데, 대금 연주의 명인 정약대라는 사람이 있었어. 정약대는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인왕산에 올라 대금 연습을 했다는구나. ‘도드리’라고 7, 8분 걸리는 곡을 한 번 불고 나면 모래알 하나를 나막신에 넣었대. (...)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모래알 하나하나가 쌓여 나막신에 모래가 넘쳤고, 거기서 풀까지 돋았다는구나.” 

음악은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의 무더위와 폭풍을 물리치고 청초한 가을꽃을 피워내는 들판과 수확의 풍성함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무사히 예술중학교에 입학한 기철은 혹독한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도 보게 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다잡고 더 독한 연습을 해,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기회까지 잡는다. 

하지만 풍성한 가을이 지나고 차가운 시련이 다가오는 겨울처럼 음악은 칼날 같은 겨울바람을 연주하고, 기철에겐 왼손마비라는 절망이 닥친다.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그 말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철은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견딘다. 그 사이 한국에서 찾아온 한의사의 진료도 받고 한약도 먹으면서 마비되었던 손은 조금씩 치료가 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 것이다. 그럼 빈자리의 뜻은 무엇일까? 서녕인 다시 만났을까? 

“고통이 없는 성공은 없는 법이야. 성공한 사람들은 다 고통이라는 세월을 이겨 냈어.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 자기가 스스로 이겨 낸 고통을 쌓아 놓으면 거기서 천재란 싹이 움트는 거야. 그걸 가꾸어 세상에 내놓기가 또 얼마나 힘든데. 그런데 그 좋은 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꾸지 않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는 천재 소리를 듣지 못해. 내가 보기에 넌 할 수 있어. 네 안엔 그 싹이 이미 돋았어. 잘 가꾸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똑같이 시작했고 똑같이 잘하는데도 10년, 20년 세월이 흐른 뒤에는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보지. 한 사람은 고통을 참아 내며 열심히 했고, 한 사람은 끝내 자기 자신을 이겨 내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해 버린 거야.” 

단지 이 말은 악기를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무언가에 재능을 갖고 있다. 그 재능을 살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선 희생과 노력 그리고 고통이 필요한 것이다. 천재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모래알 하나하나의 노력으로 나막신을 넘치게 하고 그 나막신에서 풀이 돋았는지 말이다. 정말 두고두고 새겨볼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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