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섬의 아이
이네스 카냐티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작품을 읽는 내내 난 주인공 여자아이와 함께 지독히도 외롭고 고독했다. 아이가 조용히 엄마에게, 세상에게 보살핌, 애정 아니 작은 손길만을 갈구하며 보내는 그 작은 시선이 어찌나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작가의 고요하고 조근조근한 문체조차 지독히 서늘하다.   
 
주홍글자를 얼굴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엄마는 어쩌면 본인이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여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모녀에게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다. 약점을 가진 자의 침묵과 요구하지 못하는 약자의 처지를 최대한 이용해먹고 악용한다. 가족은 더 심하다. 주홍글자를 달았으니 그녀는 집안의 수치이자 결점인 것이다. 그래서 더 가혹하게 군다.

‘엄마가 안개 속 깊숙이 사라져갔다. 나는 거기에 그대로 앉아 엄마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엄마가 다시 나타날 순간만 기다렸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다. 엄마가 나를 내버려둔 채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또 다시 들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으니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나왔고 아이가 믿을 거라곤 엄마밖에 없다. 그런 아이는 말없이 일만 하는 엄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다. 언젠가 아무 쓸 데도 없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가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다. 엄마는 도망을 가지는 않지만 자신의 아이에게 애정으로 보살피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가난에 엄마는 그저 먹고살려고 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니, 더구나 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세상의 조롱을 받는 처지이고 보면 엄마도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너를 협죽도 향기가 가득한 어린 시절의 섬으로 데려갈 거야. 바닷물이 몰려와 죽어버리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야생 오렌지나무들이 있는 정원의 그늘 속으로 데려갈 거야. 우리는 언덕의 필라오 속에서 바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거야.”

그런 아이에게 파란 섬에 대한 얘기를 하는 피에르가 나타난다. 잠시 동안의 희망, 한 줄기 밝은 빛이지만 그 빛은 희미하기만 하다. 그리고 곧 사라지는 빛, 그 빛은 꿈과 희망의 파란 섬과 함께 사라져간다. 슬픔과 외로움, 세상의 더러움과 공격에 그대로 방치된 아이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견딜 뿐…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내가 있잖아요.”라고 말하지만 엄마에겐 그 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다. 어쩌면 엄마도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 능욕당할 때 생각이 멈춰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보살피고 사랑해줘야 할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의 인심은 사납기만 하고 없는 자, 약자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그건 세상의 폭력이었다. 그 폭력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둑이는 잔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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