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풍토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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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책을 읽다 보면 종종 나의 좁은 세상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 모습은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매일 들려오는 소리, 매일 만나는 같은 사람들 속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보게 되는 나의 세상이겠다.

이스마엘 카다레, 처음으로 접해보는 알바니아 작가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동구권 나라 중의 나라 중의 하나라는 나라처럼 이들도 우리 한국을 그렇게 알고 있겠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삶을, 그들의 유령을 그래서 조금 엿보게 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광기의 풍토>, <거만한 여자>, <술의 나날>, 세 작품이 실려 있는데, 첫 작품부터 풍기는 그 독특한 분위기에 빠졌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는 가족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나레이터인 어린이가 있다. 한편에선 과거의 유령을 그리워하고 그 옛 유령들은 겨울의 문턱을 어슬렁거리고 ‘나’ 말고는 유령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밤이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더 많은 생각이 우글댔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변장을 한 광기가 교묘히 스며들어 있었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새로운 체제로 인해 쫓겨난 구시대의 인물들 가운데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노파가 있고 새로운 군대에서 소위지만 너무나 못생겼고 노파의 너무나도 못난 딸이 있다. 와중에 소위는 군대에서 쫓겨나고 노파의 그 못난 딸과 결혼한다.   

“노파는 경멸 서린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한 경멸의 대상은 다름아닌 신부나 사위, 예식, 이런 것들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 모두를 뭉뚱그려 멸시했으며, 거기에는 자신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매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노파는 생각했다. 그것이 마치 딸의 책임이라는 듯 다소 짜증을 내면서. 딸의 세련되지 못한 용모에 잠시 눈길이 머물렀다. 매력은 고사하고 얼굴에서 지성미의 흔적 또한 찾아보기 힘들었다. 딸에게 호감을 느껴 잠시나마 마음을 빼앗길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성싶었다.”

그들은 어쨌든 한 가족을 이루며 산다. 어쨌든간에. 그러나 노파는 만족하지 못하고 사위는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사회에서 문제를 안 일으키며 살고자 애쓴다. 사위가 미워둑겠는 노파는 사사건건 사위를 물고 늘어지고 사위는 비굴하게든 아첨을 해서든 그 사회에 그 가족에 적응하며 살고자 한다. 늘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따져보아야 했다. 결국 그는 두 극단만은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즉 지나친 열성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평상시에 하던 일들을 모두 포기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를.”

세 번째 작품은 격동의 물결이 지나고 권태의 세상을 접한 두 젊은이의 ‘살아가기’이다.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도와주지 않는 세상, 늘 같은 그 세상은 그들은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 N시로 떠나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같을 수밖에. 결국 또 술이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사는 게 지겨워진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새롭고도 신선한 무언가가 이 삶에 끼어들어야 했다. (...) 결국 그 시기에 우리는 여러 술집을 전전하며 코냑을 마셔대면서 말없이 술기운에 젖곤 했다.”

한편 신비스러워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또 한편 그 역사, 그 당시의 분위기, 그 사회,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내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밖에. 어느 사회나, 어느 세대나, 어느 나라나 그런 격동, 그런 권태를 겪기 나름인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다른 분위기,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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