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테라 6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은 온통 11월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고 외치는 <두더지>를 그리던 와중에 작가 후루야 미노루는 잠시 봄날 오후의 산책이라도 필요했던가 보다. <두더지>의 연재 사이에 시작된 <시가테라>는 학교폭력, 상해, 강간, 청부살인 등 섣불리 접근하기 꺼려지는 힘겨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분명 숨막히는 긴장과 절망과는 한발 떨어져 밝은 색조를 띠고 있다.
'시가테라'는 '독어가 몸에 지닌 독'을 의미한다. 독은 공격의 수단이자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는 잠재적인 무기가 된다. 고교생 오기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닌 시가테라의 힘으로 쉽사리 지나기 힘든 성장의 어두운 터널들을 애써 버텨나간다. 성장기의 거부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을 관통하는 데 필요한 여과장치를 그는 오토바이와 여자친구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젊음의 시간은 그렇게 알맞게 식은 죽처럼 편하게 넘길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기노는 망가지고 배신당하고 좌절한다. 자신이 불행 덩어리가 아닐까 고민하며 악몽을 꾼다. 눈물과 콧물 범벅의 시간들을 보내며 오기노는 강한 어른이 된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이 지닌 독으로 서서히 단련하여 어른이 되어 강해진다. 
'젊음의 푸가'라는 부제가 붙은 <시가테라>, 이나중에서 징글징글하게 귀여운 악동의 시간을 보내고, 그린힐에서 맘껏 오토바이를 타며 일탈을 맛본 작가는 젊음 또한 시가테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을 지키면서 타인을 죽일 수도 있는 독, 이 양날의 힘을 지닌 독을 누구를 향해 어떻게 쓸 것인가는 독을 쥔 자에게 달려 있다. 독을 지닌 모든 것들이 현란한 겉모습으로 주의를 끌어 옭아매듯, 젊음의 어설픈 풋내는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길 때에야 쓴맛의 정체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타인을 향했던 독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피를 흘린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오직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만 그리워하고 푸념할 수 있으며, 태풍에 몸을 맡긴 그 시간에는 안타깝게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곁눈질은 허락되지 않는다. 해서 젊음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푸르른 열정의 독인 것이다.  
전봇대 뒤에 숨어 목을 길게 빼던 괴물은 벽장에서 얼굴을 내밀고 성장기의 변방에 다다른 오기노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다. 정말로 이대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오기노는 말한다. 나도 알아. 공부해서, 대학에 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돼서, 그래서..

그때 상상하던 것보다 몇 배로 괜찮은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자신을 지나치게 의심하거나 집요하게 따지거나 불행 덩어리라고 저주하는 일은 없어졌다.
불안정함의 결정체였던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난 재미없는 녀석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점잖은 표정의 어른이 되어 모범답안의 수순을 걷는다면 망상의 폭주가 특기인 사랑스런 오기노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만큼 오기노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나 보다.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었던 오기노에게는 다행히도 훈풍의 시가테라가 남아 있었다.
예의 그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며 오기노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두카티나...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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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1-0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즐겁게 완결되었어요. 아, 그리고 그 잠깐 스치는 생각은 제게 몹시 영광인걸요? 마나마나를 열심히 들여다보긴 했지요..^^

날개 2005-11-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금붕어님의 리뷰가 올라올걸 기대하고 있었어요..^^*
리뷰 넘 멋집니다..!

superfrog 2005-11-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오기노 너무 귀엽지요? 어른이 된 오기노도 귀여워요.^^
후루야미노루님의 다음 작품은 뭘지 궁금합니다..!

어룸 2005-11-0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멋집니다, 꼬옥 읽어볼께요!! ^ㅂ^)b
(아...낑깡모가 이작가 좋아하는데 안사려나...^^a)

2005-11-04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1-0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ofool님, 아, 낑깡엄마가 후루야미노루님을 좋아하시는군요? ㅎㅎ 아무래도 저랑 친구맺어야겠어요..^^ 시가테라 보세요, 재밌어요..^^
아침 일찍 다녀가신 님, 님이 편협하심 저는 어쩝니까..;; 만화는 긴 시간 감각이 적응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익숙해지지 않으면 놓치고 못 보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하긴 책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다 마찬가지죠. 헌데 만화를 너무 쉽고 가볍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가테라 같은 만화만 봐도 절대 아닌데 말이죠. 그 책, 보셨군요. 동경만경을 볼 때는 동경만이, 그 책을 볼 때는 히비야공원이 그렇게 그리웠더랬죠. 가본적도 없으면서 말예요..^^

쎈연필 2005-11-0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벌써 완결인가요 ㅠ.ㅠ

superfrog 2005-1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님,ㅎㅎ 네, 끝났어요. 글고 보니 님과는 시가테라로도 인연이 있군요!^^
저는 맘에 드는 결말이었답니다..! 꼭 보세요..^^

panda78 2005-11-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후루야미노루님과는 코드가 안 맞아서 안 보지만, 금붕어님의 리뷰는 정말 멋져요. 저도 철썩! ^ㅂ^

panda78 2005-11-0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og in Car-Alex Colville 모모 생각나서 얼른 업어 왔어요. 모모보담 덜 이쁘고 더 꺼멓긴 하지만.. ㅎㅎㅎ

superfrog 2005-11-05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추천 감사드려요..^^;; (옆구리 좀 아프시죠??!)
판다님, 후루야 미노루 놓치기에는 좀 아까운데요.. 시가테라는 다른 작들과는 다르니 한번 다시 시도해보세요.. 아, 저는 참 많이 존경하는 작간데..^^;;;
ㅋㅋ 요즘 모모가 반항기인지 말도 잘 안듣고 그래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건가..;; 그림 감사합니다!!^^

플레져 2005-11-1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향해 품었던 독이 곧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요..............
이렇게 뼈저린 말은 근래에 첨이야요.
멋진 리뷰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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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11-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시가테라 제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이에요..^^ 오죽하면 제 서재 소개글에도 나왔겠어요..ㅎㅎ
음, 음전한 님과 맞을지는 좀 우려되어 감히 추천은 못하겠어요..^^;;
독이 가진 의미를 좀 잘 풀어내야 했는데 머릿속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참 어려워요. 그러니 님처럼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어찌나 부러운지..ㅠ.ㅜ

2005-12-07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dddpower 2006-04-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천재입니다

superfrog 2006-05-0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ddpower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