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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신부 1
말리 지음 / 길찾기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떠들썩한 명성 때문에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도깨비 신부를 대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만화를 폄하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지 않는다.
김혜린과 박희정, 이진경, 이향우 등은 존경해 마지 않지만,
원수연이나 황미나 등의 작가들과 근래의 학원물 작가들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해서 '말리'라는 이 신예의 작가도 색안경을 쓰고 꼬투리부터 잡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대했다.
물론 꼬투리야 있다. 헌데 그게 딱 하나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데생력. 앞으로 더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캐릭터들이 일관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작가가 정밀하게 묘사한 통 컷의 캐릭터와 개그컷으로 그린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로 보인다는 점은 책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일련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별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도깨비 신부>는 놀랍다.
우선 탄탄한 주제의식을 꼽을 수 있다.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보다는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게다가 무게도 있다.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의 도깨비를 그린다.
또한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취재력이다. 뜬구름 잡는 식으로, 어린 머릿속을 정신없게 만드는 원수연의 작품들 속의 엉터리 대사들과는 달리, 뚜렷한 주제의식을 지닌 직설적인 대사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확실하게, 두눈 부릅뜨고 전달하고 있다. 덧붙여 설명해야 할 것 하나는 어색하거나 과장됨 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연출력이 탁월하며 물 흐르듯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점이다.
아직은 매끈매끈한 그만의 캐릭터나 멋진 꽃미남의 주인공 대신, 냄새나는 도깨비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 작품이 처녀작임을 볼 때 말리라는 작가가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은 무한하고도 기대에 차다.
일정 정도 완성된 경지에 이른 작가들의 초기작을 만나는 기쁨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1권을 시작으로 점차 권수를 늘려가며 발전해 가는 그림의 데생력을 지켜보는 것은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들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이리라.
이러한 연유들로 이 작가, 말리를 참으로 많이, 기대한다.
아직은 거친 얼굴을 한 '신선비'와 도깨비 '광수'가 지극히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