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박 - 무에타이의 후예 [dts]
프라차 핀케우 감독, 토니 쟈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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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영화는 장르성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액션영화에는 '액션'이 공포영화에는 '공포'가 코미디영화에는 '코미디'가 중요하다. 장르는 취향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취향의 차이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에 달한다. 장르가 분명한 영화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옹박은 '액션영화'라는 뚜렸한 장르를 가진 영화이다. 만약 액션 이상의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옹박의 스토리는 한줄로 요약할 수 있을만큼 단순명료하다(어설프게 꼬아놓는 것보다 낫다). 주인공(토니쟈)이 마을의 수호신 옹박(불상)을 훔쳐간 악당들을 해치우고 되찾는다는 내용이다(한줄 요약). 보는 기준에 따라 취약점일 수 있지만 '보여주기'를 위한 관점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불상을 훔친자 불상에 깔려 멸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을 통해 단순한 희열을 맛 볼 수 있으며, 이야기가 단순해질수록 액션은 커지기 때문이다.

장르가 모호한 어떤 영화에서는 '싸움신'이 이야기 전개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필요요소' 라면, 옹박에서는 영화의 생명과도 같은 '필수요소'이다. 이렇듯 옹박은 스토리와 액션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 액션이 영화의 '본 내용'이고 스토리는 액션의 전개에 필요한 '기본적인 형식'인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영화의 내용(액션)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움으로 알차다.   

토니쟈의 탄력있는 몸에서 용수철처럼 뿜어져나오는 빠르고 박력있는 몸짓들, 무릎과 팔꿈치를 찍을 때 나는 골 깨지는 소리들은 '탄탄한 스토리의 영화' 못지 않은 일종의 해방감과 감동을 맛보게 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보기 전과는 다른 자기 '몸의 무게'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극장을 들어서기 전 짐을 진듯 무거웠던 내 몸이 나올 때는 새털처럼 가벼워서 날아다닐 수 있을 듯 했다(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용기로 충만해진 나는 실제로 뜀질과 무릎찍기를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착각은 여운과 달리 길지 못해서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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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 [초특가판]
기타노 다케시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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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장 - 폭력

그들(영화 속 야쿠자)의 폭력과 피는 잔인하지만 순수하다. 죽음에 대한 어떠한 망설임도, 삶에 대한 애착도 없이 담담히 죽고 죽이는 비정하고 공허한 세계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인 것이다.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는 말한다. "죽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면, 오히려 죽고싶어 지거든."



2 악장 - 순수

그들은 조직의 내분으로 바다에 은신하게 되는데, 바다에서 아이처럼 노는 천진난만함은 폭력과 대조되면서도 함께 간다. 바다는 지독한 세상에 찌들린 그들에게 정화와 포용의 의미인지 모른다.



3 악장 - 죽음

무라카와는 한데 모인 야쿠자 보스들을 무심하게 죽인다. 바다와 교차되면서 그가 심어놓은 불꽃이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그리고 바다로 가는 도중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단순하고 아름답다.

그들이 다녀간 바다에는 아무도 없다.

*악장을 나눈 것은 순수, 폭력, 죽음, 이렇게 3악장으로 나눈 소나티네 소개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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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버튼의 화성침공 - [할인행사]
팀 버튼 감독, 글렌 클로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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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준 안락함에 심취된 지구에 어느날, 화성인이 탄 UFO가 몰려온다. 과학자(피어스 브로스난)는 기술적으로 발달된 선진 문명은 곧 야만적이지 않다는 뜻이므로 화성인은 평화적이고 우호적일 것이라고 판단한다(맞는 말일까?). 그래서 미국 대통령(잭 니콜슨)은 화성인들을 환영한다. 화성인들은 '평화의 메세지'를 화답하면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쏘는 것을 시작으로 지구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화성인의 이중성은 '평화'와 '정의'를 외치면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계를 '통치'하는 지배 국가(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화성인의 고도로 발단된 문명을 통해 거대하다고 믿는 현문명의 초라함을 보여주고 조롱한다. 화성인들은 인류의 유산이고 자랑인 에펠탑, 인면석상, 러시모어산의 대통령상 등등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부셔 버린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던 그 무서운 핵폭탄마저 화성인들 앞에는 장난감 BB탄 총알처럼 하찮게 사라진다. 화성인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저 옛날 미개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문명인들처럼 킥킥거린다.

인류 문명이 이렇게 비소한데, 지구는 누가 지킬까? 바로, 거대한 문명 앞에 보잘 것 없는 벌거벗은 본연의 순수함이 지킨다. 이집트옷을 입고 술집에서 일하던 복서는 '문명의 옷'을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맞서고, 아이들은 게임을 하던 실력으로 물총처럼 생긴 화성인의 총으로 맞서고, 할머니와 손자는 음악으로 맞선다.

화성인은 이런 것들을 잃고 '힘'과 '첨단기술' 앞에 노예화 된 인간의 모습이며, 화성인의 침공은 인류가 이루어놓은 문명은 다시 그 문명의 손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의 메세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성인의 생김새는 우스꽝스럽고 흉측하다.   

영화는 화성인으로부터, 아니 인간들로부터 파괴된 지구를 태초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재건하며 끝이난다. 이제 화성인의 침공은 '희망의 메세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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