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코트 심해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이수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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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잃어버린 세계>가 의외로 만족스러웠던지라 내처 후속편 격인 이 책까지 찾아 읽었는데 역시 섣부른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전작에서 홀린 듯 책에 빨려들게 만들었던 재미는 어디론가 실종되었고, 짜임새 있던 이야기 구성은 지루하게 늘어진다. 특히 매력적이던 캐릭터의 힘이 현격히 떨어진다. 사실 <잃어버린 세계>를 읽는 가장 큰 재미라면 20세기 초 영국인들의 자부심과 거만함을 유머러스한 필치 속에 태연히 드러내 보인 점일 텐데, 그런 즐거움이 퇴색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굳이 이 책의 의미를 찾자면,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살며 과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모험 소설을 발표했던 쥘 베른, 허버트 조지 웰즈의 작품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같은 심해 모험을 다룬 베른의 <해저 2만리>와 <마라코트 심해>를, 그리고 갑자기 지구에 닥친 파국을 그린 웰즈의 <우주전쟁>과 <독가스대>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세 작가 모두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과학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모험 소설의 형식을 통해 반영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믿음과 영적 신비에 대한 동경, 탐험 정신과 문명에 대한 경고 등. 그런데 상대적으로 아서 코난 도일의 일차적 관심은 과학적 발명품과 비판 정신보다 표면적 재미의 추구에 있는 것 같다. <마라코트 심해>에서 모험담을 이야기하다가 돌연 선악의 대결을 통해 교훈조로 몰아가는 마지막 대목, <독가스대>의 파국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명랑한 희극적 문체를 잃지 않는 점 등은 도일의 매력이자 한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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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문화 예찬
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이은주 옮김 / 나누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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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문화는 과연 예술 창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경제학자이자 예술 애호가인 타일러 코웬의 대답은 단호하게 긍정적이다. 언제나 시장이 예술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왔으며, 자본주의는 다양한 예술이 융성할 수 있는 최적의 체제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의 일차적인 도전 대상은 예술과 같은 창조적인 분야가 시장과 같은 세속적인 영역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그의 보다 근본적인 표적은 문화 비관주의자들이다. 자본주의가 문화의 질을 퇴보시키는 주범이며 언제나 옛날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한탄하는 사람들 말이다.

돈과 창조성이 상호 배타적이라는 속설과 달리 상업적으로 융성한 시대와 예술이 활력에 넘쳤던 시기가 어떻게 일치하는지, 그리고 자본주의가 예술의 획일화를 조장했다는 비판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다양한 예술이 화려한 꽃을 피웠는지를 그는 서양의 문학, 미술, 음악의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펼쳐 보인다. 물론 상황은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렇게만 보이는 법이라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친지들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생계를 꾸려가며 자신의 비타협적 세계를 고집한 것은 사실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맹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학의 후원을 받거나 교수직을 겸하면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 또한 순전히 자신의 예술만으로는 시장에서 홀로 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게다가 빈한한 경제력과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탁월한 예술적 창조력을 보여주었던 19세기 말의 제정 러시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노력과 성취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이제까지 예술 논의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시장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그런 가운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상대적으로 규정되고 서로 교환 가능한 개념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여러 견해들과 반응들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다. 고전 음악가들의 거짓 신화를 폭로하는 장면이나, 작곡가 중심의 음악과 연주자 중심의 음악의 관점으로 20세기 음악의 역사를 서술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특히 20세기에 들어 소수를 만족시키는 회화의 사례와 완연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음악의 사례가 어떻게 갈라서는지를 보여주는 대목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현대 문화에 대한 저자의 끝없는 자부심과 낙관적인 비전이다.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예술에 대한 획일화된 시각을 교정시켜줄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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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블루스
김종광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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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로부터 요즘 작가 같지 않게 글을 쓴다는 추천을 받아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랑 마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그의 자산이랄 수 있는 독특한 문체 때문이겠는데, (주로 앞쪽에 포진한)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를 바탕으로 현실의 고통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글들은 그의 번뜩이는 재능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만, (뒤쪽에 배치된) 궁상맞은 밑바닥 인생을 그저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서술한 글에서는 다른 작가들과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그의 재능이 발휘되는 쪽은, 언어에 대한 타고난 감각과 낙관적인 활력이 리얼리즘의 답답한 틀을 교묘하게 뒤흔드는 글들이다. 네 번째 단편 '언론낙서백일장'까지만 적극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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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지음, 장혜영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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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 소설의 먼 조상 정도로 여겨지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달나라 여행>과 <해나라 여행>은 우리에게 친숙한 비교를 들자면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웰즈의 <타임 머신>의 아이디어를 혼합해 17세기 식으로 각색한 소설 같다. 발명한 기계를 타고 달나라와 해나라를 방문하는 가상의 여행을 기록한 것으로, 당대 사회를 향한 비판과 풍자, 기계와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적절히 섞어 우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사상가들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흥미진진한 모험과 지루한 철학적 논쟁이 번갈아 등장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잘 짜여진 유기적인 이야기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런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색다른 상상력을 즐기는 것일 테고, 따라서 관건은 이런 상상력이 단순한 고고학적 취미를 넘어 얼마나 현재 우리의 현실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솔직히 그렇게 흥미롭지 않다. 구약성서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과 그리스 철학자들이 등장하는 <달나라 여행>은 그나마 당대 사회의 고정 관념을 뒤집어보려는 발상이 그럭저럭 참신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균형은 <해나라 여행>에서 철저하게 무너진다. 작품 자체가 미완성인 탓도 있겠지만, 중심을 이루고 있는 '새들의 재판'은 너무 메시지가 직접적이라 따분하고, 그 밖의 모험들은 너무 모호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 궤변과 황당함, 무의미한 퍼즐 맞추기 같은 인상인데, 이런 것들을 떠나서도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없다.

상상력을 즐길 수 없다면 당대 사회의 맥락에서 작가의 사상과 세계관의 관점으로 읽는 방법이 있다. 오히려 이것이 이 작품에 대한 합당한 처우일 듯한데, 그러려면 보다 자세한 해설이 첨부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기이한 사람의 횡설수설 정도로 읽힐 가능성이 많다. 정리하자면 순수한 상상력과 비판적 이성이 기묘하게 얽혀있는 작품이다. 물론 기묘한지 절묘한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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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 더글러스 애덤스의 멸종 위기 생물 탐사
더글라스 아담스 외 지음, 최용준 옮김 / 해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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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퓨전'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동물학자(마크 카워다인)와 베스트셀러 SF 작가(더글러스 애덤스)가 함께 한 <마지막 기회>는 멸종 위기 생물에 관한 보고를 여행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독특한 매력의 조합이다. 멸종을 주제로 한 책이 대개 인간에 경종을 울리는 엄숙하고 교훈적인 필치라면, 더글러스 애덤스의 문체는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이 가볍고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다.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득력에는 모자람이 없다. 아니 그 이상인데, 그것은 이 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동물이 아닌 인간인 까닭이다.

외견상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찾아 세계 각지로 떠나는 구성이지만, 실은 그 동물들에 대한 정보보다 동물들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더 상세히 나온다. 어떻게 보면 시시콜콜하고 산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대표적으로 양쯔강돌고래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는 장을 보자. 처음 도착했을 때 도무지 낯설고 혼란스럽게만 보였던 중국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차츰 이해해가고 그들과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장이다. 여기서 돌고래는 오히려 조연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아마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상이한 관습과 문화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같은 인간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동물을 보호하려 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저자가 남긴 마지막 한 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생태계 보존이라는 생존 차원의 절박함 때문도 아니고 지구상의 최고의 종으로서 베풀어야 하는 의무감 때문도 아니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좀더 비참해지고 암울해지고 쓸쓸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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