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열매술꾼 열림원 이삭줍기 1
아모스 투투올라 지음, 장경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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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이것이 어떤 작품인지 묻는다면 어쩌면 이런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1. 이국적 배경으로 꾸며낸 동화, 2. 중남미의 환상 문학, 3. 비서구 문학의 관습을 차용한 포스트모던 실험작 등등. 물론 정답은 아프리카(정확히 말하면 나이지리아의 요루바 족)의 구전 민담을 기록한 것이다. 세상에는 많고도 많은 문화가 있고 따라서 이야기 전통 역시 셀 수 없이 다수이지만, 대개는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기 마련. 하여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야기에서 어떤 메시지나 교훈을 끌어내려고 하며, 혹은 형식적 완결성과 이야기의 짜임새로 눈을 돌린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잊고 있는 것이 있으니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다.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은 간만에 내게 순전한 이야기의 재미를 맛보게 해준 작품이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자마자 든 생각은 프랑스의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를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민담을 소재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키리쿠와 마녀>가 아빠를 잡아먹은 마녀를 물리치기 위해 길을 나선 키리쿠의 모험담이듯, <야자열매술꾼>은 자신의 죽은 야자열매술시중꾼을 만나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마을'을 찾아나선 야자열매술꾼의 이야기다.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원형적인 구성 속에 황당하고 엉뚱하고 기발한 모험을 담아둔 이 작품에 굳이 문학성이라는 잣대를 들여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관념을 훌훌 날려버린 참신한 재미에 흠뻑 빠져들면 그만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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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향학
이석원 지음 / 심설당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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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음악 문화가 탄생하여 현재까지 흘러온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사 공부가 필요하며, 그러한 전개 양상에서 중요했던 논점들을 제시하고 음악사에 관점을 부여해주는 미학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소리의 속성과 음 재료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도와주는 음향학 공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석원 교수가 쓴 <음악 음향학>은 이렇게 음악적인 관점에서 소리의 현상을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교재이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장과 악기에 관련된 음향학적 지식을 위해 책을 집어들었기에 그 부분이 조금 소홀하게 다뤄진 감이 없지 않지만, 책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문제는 성의 없는 교열이다. 아니 오탈자와 비문의 속출로 보건대 교열 자체를 보지 않은 게 분명하며, 종종 통일되지 않은 용어 사용도 보인다. 교재로서는 충실한 내용이지만 책으로서는 다소 값어치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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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의 아내
이세욱 옮김, 프랑수아 부크 그림, 제롬 차린 글 / 교보문고(교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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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죽음의 행군>을 시작으로 한때 유럽의 만화들이 유행처럼 출간된 적이 있었다. 이에 힘입어 유럽 만화의 양대 산맥인 <아스테릭스>와 <땡땡> 시리즈가 출간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만화들은 시장에서 미미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었고, 결국 유럽 만화는 일시적인 하나의 유행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대안적이고 참신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럽 만화가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속성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언어나 악기, 카메라의 제약을 받으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문학, 음악, 영화와 달리 종이 위에 마음껏 펜을 놀리는 만화는 상대적으로 상상력의 운신의 폭이 넓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의 입장에서도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빈 공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따라서 만화는 그것이 비롯된 문화의 이해가 어떤 매체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다. 뭔가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90퍼센트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제롬 차린이 글을 쓰고 프랑수아 부크가 그림을 그린 <마술사의 아내>는 유럽 만화의 일시적 붐을 타고 운 좋게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과 낯선 것을 접하는 곤혹스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늑대 인간의 전설, 연쇄 살인 사건을 기본 얼개로 하여 모녀와 부부 사이에 얽힌 애증의 관계를 다룬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 환상적인 작풍과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세계 각지의 문화적 관습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회화적인 묘사와 강렬한 색채,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내러티브와 대사, 대담한 생략과 반복 등 유럽 만화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징에다가 대중 문화의 박진감까지 갖추고 있는데, 특히 누군가를 길들이려는 사람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역학 관계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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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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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작인 <개미>에 이어 죽음의 비밀, 인류의 비밀, 뇌의 비밀로 이어지는 도정의 중간에 위치한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발견과 소동을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에 담고 있다. 이 작품에도 베르베르의 트레이드마크인 특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과거와 현재를 다룬 병행하는 두 이야기는 긴밀한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대구를 이루며 진행되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한시도 독자의 흥미의 끈을 놓지 않는다. 단서와 암시를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적절한 긴장과 이완의 호흡을 성취하는 솜씨라든지, 과학적 지식에 더해 신화와 성경 이야기를 적극 활용하고 숫자를 통해 진화의 단계를 풀어간 재치는 특히 인상적이다. 권위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소 안일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소설 자체가 백과사전적 지식을 강조하는 유형임을 감안하면 그런 대로 눈감아줄 만하며, 사건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우연이 이어지는 것도 방만한 정도는 아니다.

인류의 진화의 비밀을 폭로하는 장면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로 인해 앞뒤로 배치된 사건들의 전모가 일순간 드러나면서, 베르베르가 얼마나 치밀하게 세세한 점을 배려했는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야기를 쉽게 풀어 가는 그의 재주는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3백 7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누볐던 '그'라는 존재다. <개미>에 나왔던 벨로캉의 선구자 개미처럼 호기심 많고 고독한 존재인데, 그가 자신의 동족을 바라보며 종의 진화에 대해 사색하는 장면은 베르베르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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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킹 음악하기 - 지금 음악회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크리스토퍼 스몰 지음, 조선우.최유준 옮김 / 효형출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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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제로 소리를 만들어내지도 않는 지휘자가 어떻게 해서 현대 클래식 음악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을까? 왜 연주회장에 오르는 레퍼토리는 모두 과거 작곡가들의 작품일까? 크리스토퍼 스몰의 <뮤지킹 음악하기>는 이렇듯 자명하게 보이지만 실은 기묘하기 그지없는 사항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던져준다. 그에 따르면 교향악 연주회 전통은 현대인을 위한 일종의 제의, 이벤트, 나아가 신화로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교향악 제의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 고찰이다.

먼저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향악 연주회의 전통에 적절한 역사적 자리를 매겨준다. 그러는 과정에서 좁게는 작곡가의 존재의 부상과 음악 작품(텍스트)의 절대화, 전문 연주회장의 건립이, 넓게는 과학적 세계관과 산업화가 가져온 시민 사회의 등장과 중산 계층의 부상이 자연스럽게 거론된다. 결국 돈을 지불한 청중이 특정한 장소에 모여 침묵과 수동성으로 음악을 듣는 문화는 기껏 19세기 중반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확립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모든 영역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오케스트라로 대표되는 현대 음악 문화에서 군사 조직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계급 관계, 기업 조직의 기능주의 관계를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향악 연주회 전통은 보편적인 현상이기는커녕 세계의 음악 역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역학 관계를 반영한 사회적 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스몰의 기획은 서구의 교향악 문화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여기에 본연의 기능을 돌려주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음악은 곧 연주'라는 신념으로 요약된다. 영구불변의 작품이 존재하고 여기에 연주가 부수적 활동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위해 작품이 만들어지고 그 의미는 작곡가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음악이 일종의 제스처 언어로서 인간의 사회화 과정의 도구라는 그의 믿음, 음악의 참된 의미는 삶의 관계들 속에서 찾아진다는 그의 믿음과 일치한다. 이 지점이 바로 종족음악학자로서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따라서 스몰은 현대의 교향악 문화가 일상과 단절된 세계, 일방향적이고 익명인 세계에 갇혀있지 말고 청중과 보다 능동적인 교류를 나누기를 희망한다.

<뮤지킹 음악하기>는 음악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당연하게 여겨진 그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음악의 의미를 악보에서 해방시켜 삶 속으로 가져오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체 왜 우리가 음들의 집합을 듣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하는 근본적인 미학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배우게 된다. 그런 점에서 피터 키비의 <순수음악의 미학>을 이 책과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키비는 스몰과 달리 음악 작품에 일차적 강조를 두며 구조와 형식의 음미를 통해 음악의 의미에 접근해 가는 전통적인 관점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 두 학자는 아마 오늘날 음악의 의미와 관련한 여러 입장들 가운데 양극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일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다양한 관점을 접함으로써 대상을 보다 폭넓고 정당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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