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의 아내
이세욱 옮김, 프랑수아 부크 그림, 제롬 차린 글 / 교보문고(교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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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98년 <죽음의 행군>을 시작으로 한때 유럽의 만화들이 유행처럼 출간된 적이 있었다. 이에 힘입어 유럽 만화의 양대 산맥인 <아스테릭스>와 <땡땡> 시리즈가 출간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만화들은 시장에서 미미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었고, 결국 유럽 만화는 일시적인 하나의 유행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대안적이고 참신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럽 만화가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속성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언어나 악기, 카메라의 제약을 받으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문학, 음악, 영화와 달리 종이 위에 마음껏 펜을 놀리는 만화는 상대적으로 상상력의 운신의 폭이 넓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의 입장에서도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빈 공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따라서 만화는 그것이 비롯된 문화의 이해가 어떤 매체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다. 뭔가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90퍼센트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제롬 차린이 글을 쓰고 프랑수아 부크가 그림을 그린 <마술사의 아내>는 유럽 만화의 일시적 붐을 타고 운 좋게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과 낯선 것을 접하는 곤혹스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늑대 인간의 전설, 연쇄 살인 사건을 기본 얼개로 하여 모녀와 부부 사이에 얽힌 애증의 관계를 다룬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 환상적인 작풍과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세계 각지의 문화적 관습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회화적인 묘사와 강렬한 색채,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내러티브와 대사, 대담한 생략과 반복 등 유럽 만화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징에다가 대중 문화의 박진감까지 갖추고 있는데, 특히 누군가를 길들이려는 사람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역학 관계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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