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소설가들은 독특한 인물을 창조하고, 어떤 소설가들은 독특한 문체를 만든다. 그런데 가끔은 아예 세계 자체를 창조하는 소설가들이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누구보다 세계의 창조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개성적인 필력을 자랑하는 소설가이다.

<제5도살장>과 더불어 1960년대 보네거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고양이 요람>은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그다운' 작품이다. 이 말은 그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낯설고 황당하고 어지럽고 상징적인 세계에 어지럼증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나 또한 예전에 새와물고기 판을 읽고 당혹해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보네거트를 접하는 사람은 <갈라파고스>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 책과 <타이탄의 미녀>는 절대 피하라! 영영 보네거트와 멀어질 수가 있다.)

보네거트가 창조한 세상은 어리석은 인물이 지배하는 엉망진창인 세상이다. 이 책에 나오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처럼 도덕적인 책임감 없는 사람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겨놓은 꼴이다. 그리고 평범한 일반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이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를 위해 그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단순한 플롯에 또 다른 플롯을 잘게 나눠 덧붙이는데, <고양이 요람>에는 허구의 바이블과 엉터리 시, 생소한 개념용어, 산 로렌초의 방언이 등장한다. 보네거트만의 거리두기 전략인 셈이다. 궁극적으로 <고양이 요람>은 핵에 대한 공포를 블랙유머로 뒤집은 소설이다. 과학, 종교, 정부, 진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조롱이 이보다 더 신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단순한 빈정거림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그에게서 진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외견상 가벼운 필체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슬픈 연민이 있다. 어쩌면 그의 독특한 세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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