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부터 서재에 음악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기억할 만한 느낌을 알게 되었다. 먼저, 나는 평소에 재즈를 주로 듣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재즈를 90% 이상 올리고 나머지 음악들이 한두 곡 묻어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곡을 올릴 때면 재즈 못지않게 다른 음악들을 찾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짐작건대, 변변찮은 내 서재에 음악을 들으러 오는 분들이 남겨놓고 가는 멘트 탓이 크다. 특히, 자주 멘트를 남겨주시는 몇몇 분들의 의견은 음악을 고를 때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되고 있고, 해당 음원을 찾다가 결국 못 찾았을 때는 허탈함과 아쉬움을 느낄 때도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음악 올리기가 어떤 면에서 내가 그간 들어온 음악의 소사(小史)를 기록하는 역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즐겨 듣는 음악만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 속속 기억 밖으로 걸어나와 주고 있어 음악을 들으면서 20대의 나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2.

특히, 며칠 전에 올린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올린 음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을 올리기 전에 보통은 10여 분, 길게는 며칠씩 생각을 하던 때와 달리, 이 음악은 바로 떠올랐고, 올리는 중에도 빨리 올리고 싶어질 지경이었으니까. 그 참에 서재 대문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앨범 표지에서 잘라서 올리기도 했다.

조금 전에도 나는 문득, 마우로 펠로시라는 이탈리아 칸타토레(Cantautore : 싱어송라이터)의 곡을 찾았고, 긴 설명을 덧붙여 서재에 올렸다. 내가 갖고 있는 앨범은 지난 91년 라이선스로 나온 LP인데, 당시에 꽤 자주 들었던 음악이고, 아직까지도 내 서재(진짜 서재 ^^..)에 꽂혀 있는 운 좋은 경우이다. 오늘 서재에 올리면서 거의 7, 8년만에 들어본 마우로 펠로시의 음악은 여전히, 참 좋았다.

3.

끝으로, 페이퍼에 음악을 올리는 데 있어 참조하고 있는 기준 같은 것을 여기 공개하고자 한다. 우선, 페이퍼에 올리는 음악은 별다른 이슈(이를테면 뮤지션의 사망이나 내한 같은)가 없을 때는 그야말로 무순으로 선택하고, 올리고 있다.

둘째, 가급적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보다는 다소라도 덜 알려져 있는 곡들을 올린다. 이유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다만, 대중적이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까지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기준은 자주 어기는 편이다.

셋째,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함께 올리기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주 못 넣고 있다. 그 대신 음악에 대한 설명이나 느낌은 특정 웹문서에서 퍼오지 않고, 대부분 내 방식대로 새로이 쓰고 있다(여기서 한 마디 뱀꼬리를 달자면, 페이퍼의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것이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노래만 올릴 때와 달리 이럴 때는 길게는 1시간 넘게 시간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서재에 음악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 나는 좀더 음악에 가까이 다가선 꼴이 되었고, 책으로부터는 조금 멀어져버린 듯하다. 걱정하지는 않는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릴 것이고, 음악도 조금 덜 올리게 될 것이다.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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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6-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질을 하면서 저의 변화 중 하나는 알리디너들이 올린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을 듣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사실 음악을 잘 안 듣는 편에 속하죠. 듣기 시작하면 듣는데 안 들으면 아주 안 들을 수 있는 그런 류요. 근데 알라딘에서는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 특히 제가 즐겨찾기 한 분들이 올려주신 음악들은. 그중 한 사람이 브리즈님이시구요.
'페이퍼의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것이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신다는 브리즈님의 생각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전 음악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올리신 분이 그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음악을 올리시는 그 정성이 남다르시다는 거 님의 서재 팬의 한사람으로서 벌써부터 알고 있었구요, 앞으로도 좋은 음악 많이 올려주시길 바래요. 좋은 책 리뷰와 함께.^^

브리즈 2004-06-2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 님의 관심에 감사드려요.
제 서재의 팬이라는 말씀에도 고마움과 함께 기분 좋은 부담감을 가져봅니다. :)

음악을 올리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음원을 찾아서 링크를 거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링크가 없는 곡은 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음악을 저장해서 올리면 좋은데, 그렇게는 안 되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 알라딘 서재에 붙어 있을 테니까요. ^^..

호밀밭 2004-06-2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서재에서 듣는 음악들 다 좋아요. 다 좋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곡이 없네요. 유행을 타거나 순간의 감흥이나 음에만 매달리는 곡들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곡이라 그렇게 느껴지나 봐요.
음악 한 곡, 한 곡 올리는 정성도 잘 느껴지고요. 얼마 전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음악을 듣는데 그동안 잊고 사는 듯하면서도 잊지 않고 있던 음악을 일깨워 주는 듯해서 더욱 좋았어요.
한동안 OST를 많이 샀던 이유도 음악을 들으면 영화가 생각나는 그 연상 작용이 좋아서였는데, 요즘은 참 음반을 안 사게 되네요.

님의 서재에 오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처럼 님도 행복한 음악지기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브리즈 2004-06-2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한 곡, 한 곡 올리는 정성"이라고까지 하시니 감사의 마음만큼 무안함도 느끼게 됩니다.
어쨌든 제 서재에서 듣는 음악이 좋으시다니 다행이에요. 항상 호밀밭 님이 전해주시는 관심과 마음 씀씀이가 고맙습니다.

제 서재에 오셨다 가시는 분들이 잠시라도 기분이 유쾌해지거나 혹은 편안함을 얻어가시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욕심을 내어 OST에도 좀더 시간을 할애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구요.
주말이네요. 좋은 계획 세우셨나요? 건강하고 시원한 주말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