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유순미 사진 / 호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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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은 때로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거 같았다. 투명한 풍경 속에 그녀들은 빛-쏟아지는-으로, 안개로, 빗줄기로 떠돌았다. 내가 만난 건 어쩌면 산산히 흩어진 그녀들의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으면서, 빛이면서 형태인, 하나이면서 동시에 만 가지인."

서두에서 접한 이 글이 마음에 들어 선뜻 별점 다섯개를 주게 된 것일까? 가끔 책을 펼쳤을때 강한 인상으로 남는 구절이 있다. 애잔함으로 서글픔으로, 측은함으로 몇번씩 곱씹어 읽으며 작은 설레임이 인다.

눈부신 5월! 고개들면 온통 초록빛 풍경이 설레인다. 마음은 철없던 시절 별 감동없이 지나쳤을 수덕사와 수덕여관으로 가서 여성해방 운동에 앞장섰던 신여성,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혜석의 그림자를 밟고 싶다.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다는 박제상 부인의 망부석이 있는 경주 선도산 커다란 바위도 직접 보고 싶고,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다 상사병에 걸린 지귀의 애절한 사랑도 느끼고 싶다. 

몇년전 강릉 오죽헌에서 열린 허난설헌 축제에 가보긴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곳이 그리워졌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났으나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가부장적인 사회의 희생양이 된 허난설헌의 피우지 못하고 시든 꽃같은 삶에 안타까움이 인다. '부안, 사랑의 방식'으로 남도의 길들은 농염하고, 간드러지고, 에로틱하다고 표현한 작가의 글에 웃음이 나면서 부안의 채석강, 적벽강, 곰소에 가보고 싶고, 매창뜸에 가서 거문고와 노래에 능했던 부안기생 매창의 발자취를 찾고 싶다. 

매창이 마음을 주었던 시인 유희경을 생각하면서 지었다는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는 내용도 모른채 외우기에 바빴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선생님이 이런 사연을 설명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나라 역사속의 한 획을 그었던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이 정겹다. 경주, 강릉, 부안, 수덕사, 해남으로 이어지는 여행길은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해 본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를 적절히 인용한 부분은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꿈을 사서 김춘추와 결혼한 문희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후에 보희도 김춘추와 결혼을 했다니 감추어진 부분이 새롭다.

여행하고 싶은 요즘 간접 경험으로 한층 설레인다. 아이들과 함께한 분주함, 아이들의 코스에 맞춘 엉성한 여행이 아닌, 나만의 오롯한 이야기가 있는 풍경 만끽하고 싶다. 과연 그날이 조만간 올까 의심스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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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4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썼군요. 저도 이제 다 읽었어요~~~ 음, 맛깔나는 문장들이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한층 빛내주는 것 같아요. 정말 이 책 하나 끼고 구석구석 찾아들어 느끼고 싶어요.

세실 2008-05-24 06:50   좋아요 0 | URL
글이 참 예뻐요. 이런 이유로 여성작가들을 선호한답니다.
제일 먼저 수덕사 가야 겠습니다. 님의 멋진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

2008-05-24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8-05-25 07:40   좋아요 0 | URL
여학생들이 특히 좋아할 책입니다. 여성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부드러움이 참 와닿았습니다. 저두 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