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자머리로 장식된 의자 하나를 가져오더니 이젤 가까이 놓았다. 하지만 의자는 이젤과는 직각을 이루며 창문을 향한 채였다.
"여기 앉아라."
"무얼 하시려고요, 주인님?" 앉으면서 물었다.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한 번도 함께 마주 앉은 적이 없었으니까.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마구 떨렸다.
"말은 하지 마라." 그가 창의 덧문을 열자 빛이 내 얼굴로 곧장쏟아졌다. "창문 쪽을 봐라." 이젤 앞의 자기 의자에 앉으며 그가말했다.
창문 너머 신교회의 탑을 바라보며 나는 침을 삼켰다. 점점 턱이뻣뻣해지고 눈이 커지는 것 같았다.
"이제 나를 봐라."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나의 눈과 얽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그의 잿빛 눈동자가 굴 껍질의 속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 외에는.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내 얼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지 마라."
그는 나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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