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외) 범우 사르비아 총서 632
0. 헨리 지음, 송관식 옮김 / 범우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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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헨리는 왜 이렇게 단편을 잘 쓰는 건가요.
<마지막 잎새><크리스마스 선물>은 워낙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니 차치하고라도
나머지 단편들도 훌륭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마음에 들어왔던 건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와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
 
먼저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
가난한 떠돌이 스터피 피트는 매년 추수 감사절마다 유니온 스퀘어 파크에서 한 노신사를 만나 명절 음식을 얻어먹곤 했다.
이 일은 몇년째 되풀이되던 터라 둘 다에게 관습처럼 지켜지던 건데
아뿔싸, 이번 추수 감사절엔 그만 다른 집에서 배불리 얻어먹게 된 스터피 피트.
그러나 노신사와의 관습을 어길 수는 없어서 유니언 스퀘어 파크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게 되고
배가 안 고픈 척, 매우 고마운 척 식당까지 따라가 정말로 배가 터질만큼 '또' 얻어먹는다.
그리고 식당 문 앞에서 헤어져 첫번째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스터피는 과식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원래의 단편이라면 여기에서 코믹하게 끝날 수도 있지만, 이건 오 헨리의 단편!
한 시간 후 다른 구급차가 아까의 그 노신사를 싣고 온다.
두둥. 과연 그 이유는?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은 비누회사로 떼돈을 번 안토니 로크월 노인의 부성애(?) 이야기.
이 비누왕의 아들 리처드가 렌트리라는 아가씨를 좋아하는데 이 렌트리 양은 얼마 후 2년 예정으로 유럽으로 떠날 예정.
청혼하고 싶어 죽겠지만 상류사회의 일원인 그 아가씨는 언제나 정해진 스케줄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이 숫기없는 청년과 상류사회 아가씨가 단둘이 있을 시간은 도통 생기질 않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브로드웨이의 극장가로 그 아가씨를 데려다줄 7~8분 남짓.
이 7~8분 안에 청혼을 하지 못하면 둘의 사랑은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큐피트라도 강림한 건지 마차가 34번가를 지날 무렵 리처드가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떨어뜨리고
이걸 줍느라 잠시 지체하는 동안 사상 유례없는 교통체증이 생겨버린다!
결국 마차 안에서 2시간을 함께 보낸 두 청춘남녀는 결혼을 약속한단 행복한 이야기... 여기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이쯤되면 오 헨리도 이쯤에서 대놓고 고백을 한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맺어져야 좋을 것이다. 독자인 여러분만큼이나 나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찾으려면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 헨리 말대로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아, 역시. ㅇ이 최고? ㅋㅋ
 
이것 말고도, '연인의 사소한 습관을 기억하라'는 만고의 진리를 깨우쳐주는(ㅋㅋ) <봄날 이야기>는 완전히 내 취향이고,
<붉은 추장의 몸값>은 어딘가 드라마극장 같은 데서 본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나 낄낄대고 웃을 수 있을 만큼 유쾌하다.
 
여기 실린 18편의 단편은 거의 모두가 뉴욕 소시민의 삶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간혹 범죄성이 짙은 일이라 해도 어쩐지 밉지가 않다.
마지막에는 결국 반성하고 '사랑'을 깨닫게 되기 때문.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 보면 가끔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얼토당토않는 결말을 보기도 하지만 (특히 헐리우드 재난영화)
오 헨리 단편 속 해결사인 '사랑'은 헐리우드 재난영화처럼 가식적이지 않다.
소박하고 풋풋하다.
 
아참. <봄날 이야기>에 나온 '연인의 사소한 습관' 말인데, Ryu는 나랑 사귈 때 나의 사소한 습관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가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와 일반 볼펜으로 글씨를 쓸 때, 글씨체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윗쪽 모서리를 접고, 오타를 발견할 때는 아랫쪽 모서리를 접는다는 건?
초코케익을 먹을 땐 손으로 들고 손가락마다 잔뜩 묻혀가며 먹는 걸 좋아하는 건?
나는 다 아는데 걔는 몰랐던 것 같아서 어쩐지 억울한 느낌이다.
다음 연애 땐 이순재 고사처럼 나도 객관식 시험을 봐야겠다.
100점 맞으면 상품도 푸짐하답니다.

 

P.S... 그의 전 여자친구가 간혹 여기 와서 글들을 읽고 가는 모양인데, 이제 헤어진 거 알았으니 만세삼창 부르시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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