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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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영화 '집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외할머니와 서먹한 사이의 손녀가 오롯이 둘이서만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나서야 할머니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주인공 서현이는 '집으로'의 주인공처럼 싸가지 없는 아이는 아니지만 여느 도시 아이처럼 푸세식 화장실을 두려워하고 도시의 생활방식에 길들여진 아이다. 그런 아이가 차츰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할머니와 생활하는 모습이나 할머니를 점점 더 배려하는 모습은 예정된 결과지만 따듯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레시피를 받아적는 기특함이라니.

 

  나도 할머니의 레시피를 받아 적었더라면 서현이처럼 할머니와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게 되었을까? 올해 94세 되신, 이제는 살짝 기억이 흐려지신 할머니는 서현이네 할머니처럼 손맛 좋은 분이었다. 철마다 해주시던 제철 음식들과, 오전 내 밀어서 만들어주시던 칼국수, 지금도 같은 맛을 찾을 수 없는 추어탕, 명절이면 만들어주시던 한과, 약과들하며. 나는 한번도 할머니의 요리법을 물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옆에서 거들면서도 내게 그건 그냥 '일'이었지 즐거움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 할머니와 있는 시간은 항상 고역이었다. 할머니의 힘든 삶과 하소연을 듣는 사람은 나였기에 요리는 얼른 해치우고 벗어나야할 무엇이었다. 내가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더 이상 요리하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요리는 엄마에게, 나에게 레시피 없이도 전해졌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에는 여전히 불편한 무언가가 남아있다. 얼마전 심하게 앓으신 뒤로 아이처럼 변해버린 할머니가 낯설다. 해맑게 웃는 할머니는 이제야 행복해 보이시지만...

 

  할머니와 진하고 행복한 기억을 만들 수 있었던 서현이가 부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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