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Joule > 브레송적인,
사진 넘버 2038. 사진의 묘미는 그런 것이다. 놀이공원 자그마한 분수대 앞에서 요술봉을 가지고 노는 조카가 귀여워 연속샷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훑어보니 마치 조카의 요술봉이 불러낸 물의 요정인 듯 배경으로 어느 자그마한 소녀 하나가 내 카메라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게 발견된다. 조카는 분홍 티셔츠에 파란 요술봉을 들고 있고, 소녀는 파란 옷에 분홍 양말을 신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신발은 도대체 어디에다 두고. 소녀는 마치 조카가 파란 요술봉으로 불러낸 분수의 요정이기라도 한 걸까. 시기적절하게도 조카의 귀여운 얼굴은 소녀의 존재를 부각이라도 시키기 위해서인듯 자못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며 가리워져 있다. 이 사진을 보고 내가 얼른 기억해낸 건 이미 여러분들도 짐작하셨겠지만 브레송의 다음 사진이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Island Of Siphnos The Cyclades Greece, 1961
파란 추리닝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고 분홍양말 채로 뛰어 가는 내 사진 속의 그 자그마한 소녀를 브레송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