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Fithele > 과연 <올드보이>의 수상이 곧 한국 영화의 경쟁력인가?

방금 한국 영화 "올드보이"가 칸느 심사위원상 대상을 타는 장면을 뉴스에서 구경했다. 이럴 때 늘 나오는 소리가 "한국 영화도 경쟁력이 있다"는 둥,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과시" 뭐 이런 얘긴데,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취향과는 살짝 빗겨 나가지만, 정신없이 재미있게 보긴 했다.) 영화에 대해 쥐뿔 아는 것도 없지만 그런 이상한 논리에 대해 잠깐 영화를 위해 변호를 하고 싶어졌다. 과연 "올드보이"가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탄 것이 곧 한국 영화의 우수성으로 직결되는가?

 

일단 말해두고픈 것이, 일본만화가 원작이니까 무효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랑 만화를 모두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독이 원작에서 따온 소재는 10여년동안 갇혀 있었다는 사건, 원한, 중국집 정도이며, 전개는 물론이고 캐릭터와 동기의 대부분이 다르다. 필립 딕-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폿"처럼 거진 팬픽션 수준의 각색이다. 그 동기나 정서의 한국적인 필은 말할 것도 없다. 소재만 따온 한국 영화인 셈이다. 근데......

언론의 입에 발린 한국영화 칭찬을 반박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특별 케이스의 지나친 일반화"이다. 한번 작년의 영화들을 돌이켜 보자. 그 영화들은 다들 "올드보이" 와 비슷한 특질을 지니고 있는가? "올드보이"의 미학이 다른 한국영화와의 공통점이 있는가? 대부분은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다. 기억에 작년에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는...... "실미도" 였다. 올드보이는 330만이 들었으니 대박이긴 하지만, 무려 천만, 인구의 1/5가 봤다는 모 영화랑 모 영화가 올드보이랑 비슷한 것은 낭자한 피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 달마다 개봉하는 연인들을 위한 트렌디 코미디하고 비교하는 것은 영화를 두 번 죽이는 짓이고,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와 같은 시대극(?)과도 거리가 멀다. 요컨대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의 경향과 그다지 공통점이 없는 유니크한 영화에 가까운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영화를 꼽아 본다면 CJ가 JSA보고 투자했지만 20만도 못 넘겼다는 "복수는 나의 것" (왼쪽)이다. 박찬욱이 자기 색깔대로 한번 찍어봤다고 말했던 이 영화는 그 극단적인 폭력의 묘사와 잔인한 표현 수위, 그리고 전혀 야하지 않은 베드신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외국에서는 정말 호평을 받았다 (호러/스릴러 영화로서) 사실, 이 영화를 12세 관람가용으로 만든 것이 올드보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씬 때문에 15세가 되려나?) 타란티노의 극찬을 받을 정도로 익세시브하고 유니크한 폭력 미학과, 박찬욱 특유의 깔끔한 촬영빨, 항상 파국으로 끝나는 낯선 이들과의 조우 같은 소재들이 두 영화를 정말 비슷하게 느끼게 하는 공통점으로 작용한다. 같은 스타일로 찍은 두 영화가 하나는 쪽박, 하나는 대박이라는 건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올드보이"는 "복수의..."의 장점을 거의 대부분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관객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게 깔끔하게 결정적 장면을 자체검열(?)하여 편집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어쨌든 "올드보이"는 한국 영화의 대체적인 경향과는 거의 상행선과 하행선처럼 엇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본 것이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이 국제적으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의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긴 해도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한국 영화 판도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은근슬쩍 쓰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올드보이"는 끔찍하게 좋은 영화지만, 일부가 전체의 결점을 커버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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