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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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삶과 죽음이라는 양 끝단의 내용을 하나로 묶어 인간 삶의 원형에 대해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마치 임사체험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또 탄생과 죽음 직전의 모습만 쓰여있을 뿐 사는 동안의 모습은 생략되어 있지만, 어쩐지 삶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은 몇 개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공백과 침묵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하다.


짧은 아침(=탄생)과 나머지 시간 전체를 저녁(=죽음)으로 채운 이 책은 제목부터 중의적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탄생의 순간을 나타내는 아침,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저녁.

또 다른 해석으로 보자면, 짧게 다룬 아침의 순간 요한네스는 금방 숨을 거둔다. 그리고 막내딸 싱네가 그를 발견하기까지 하루 종일 영혼이 이승에 머물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표현된다.

상징적 표현이냐, 분량의 표현이냐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런 것조차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완전히 느낌이 달라진다.

많은 설명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하얀 공백과 침묵을 독자가 채워나가게 된다. 덕분에 스토리는 더 흥미로워지고,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마침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불필요한 기호는 모두 삭제되었고, 간간이 쉼표가 그 자리를 대신함을 알 수 있다.


요한네스의 짧은 탄생의 순간과 긴 죽음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딘가 물속을 헤매는 듯한 묘한 표현들과 환상과 착각 사이를 떠돌고 있는듯한 형상은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갑자기 좋아진 몸 상태와 가벼워진 발놀림 덕분에 제자리에 있기보다 여기저기를 떠돌게 된다. 오랜 친구를 만나 함께 낚시를 가기도 하고, 길거리를 거닐다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미처 거들떠보지 못했던 집안 곳곳을 탐험하듯 둘러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 다시 돌아온 집에서 요한네스는 막내딸을 만나지만 평소와 다른 낯선 풍경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갔고, 그에게 남은 건 딸아이의 온기뿐이다.

이후 잠시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절친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자네도 이제 죽었다며 진실을 전한다. 그러면서 제일 친한 친구인 자신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해 왔다며 마지막을 함께 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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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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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멘 섬을 산 올라이는 사랑하는 아내 마르타와의 사이에서 딸 마그다와 아들 요한네스를 낳게 된다. 요한네스라는 이름은 올라이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것이다.

성인이 된 요한네스는 에르나와 가정을 이뤄 일곱 아이를 낳았고 이들은 홀멘 섬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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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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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아주 짤막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후 2장에서는 요한네스의 입장에서 그가 겪은 죽음의 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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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나가 죽은 후로는 마치 모든 온기가 그녀와 더불어 떠나버린 듯 집안이 너무도 썰렁해졌다.
(...)
어떻게 해도 집은 온전히 따듯해지지 않았다.
33~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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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아이를 모두 출가시킨 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집에 남은 요한네스는 썰렁한 집안에서 생활하며 지낸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아니고 불을 때지 않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모든 온기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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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고도 없이, 그렇게 느닷없이 떠나야 했다니, 죽기 전날 저녁 그녀는 이 식탁 앞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오랫동안 그래왔듯 그는 거실 옆방, 그녀는 위층 다락방에서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지,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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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떠난 순간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요한네스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첫 번째 복선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떠난 아내의 모습에서 요한네스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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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일어난다 그리고 문득 몸이 너무 가볍다, 무게가 거의 없는 듯하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이상한걸, 뼈마디와 근육 어디 아프고 뻐근한 데도 없이, 그는 가뿐하게 일어나 앉는다, 이거 완전히 풋내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요한네스는 침대 한쪽에 앉아 생각한다,
(...)
오늘은 웬일일까, 몸을 굽힐 때 통증이 전혀 없다, 일어서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듯 수월하다, 너무 아무렇지 않으니 이상하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35~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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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면서 요한네스는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통증도 무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몸 상태에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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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창고 밖으로 나오다 문가에서 멈칫한다, 그리고 문득 그런 느낌이 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어떤 목소리가 그를 부르는 것 같다,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다시 들어가, 요한네스, 잘 둘려봐,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요한네스는 왠지 그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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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을 수행해 나가는 듯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행동에 착각과 환각이 스며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둘 덧대어지며 확신했던 일들을 점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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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문은 사뿐히 열린다, 무게가 전혀 없는 것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이렇게 가볍게 열리다니,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둘러보니 물건들은 하나같이 금가루를 덧입힌 듯하다, 그리고 아니 이런 건 정말 처음 보는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정말 이상한걸, 그의 연장은 빠짐없이 제자리에 놓여 있다, 대부분이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인데 그 모든 것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4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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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을 무심코 행하게 된다. 무게 때문에 열지 못했던 창고 다락을 찾아가 가볍게 문을 열고 오랜만에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들이 전개된다. 물건들이 하나같이 금가루를 덧입힌 듯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요하네스가 환상과 착각 속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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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는 언덕을 오르며 생각한다, 어쩐지 모든 것이 너무 다른 걸, 사물들도 더 가벼워 보이고, 뭔가가 땅에서부터 그리고 하늘로부터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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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평소와 매우 다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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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놀림이 조금 둔한 거 아닌가? 감각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것 같은데, 아닌가? 생각하며 팔을 들어보는데 간신히 올라간다 그리고 그의 길고, 앙상한 손가락이 보인다, 손톱이 서서히 푸르스름해진다
아니, 이런, 이게 뭐야, 요한네스는 말한다
정말 이상한걸, 그가 말한다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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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는 분명 몸이 평소와 다르게 가벼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감각이 둔해지고 손톱이 서서히 푸르스름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이상해진 자신을 발견한 요하네스의 모습에서 뭔가 마지막을 향해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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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아침이 싫었다, 오랜 세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토해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속이 거북하고 욕지기가 치솟다가도 대게는 별로 나오는 게 없었다,
(...)
한번 게우고 나면, 그러면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나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게우지 않았다, 원래 아침이면 늘 그랬는데, 에르나가 죽은 뒤로는. 역시 오늘 아침은 아무래도 뭔가 여느 날과 다른 것이다.
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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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증상을 통해 생략된 그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가 죽은 이후 그는 아침마다 게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괴롭고 또 괴로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기분이 나아졌기에 어쩔 수 없는 패턴이었다. 더불어 꽤 오랜 시간을 아내 없이 혼자 살아왔음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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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오늘 이 흐린 아침 모든 것이 이토록 크고 선명하게 눈앞에 보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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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가벼운 몸, 토하지 않고 시작한 하루, 여기에 더해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시야는 어쩌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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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는 페테르에게 얘기해도 될까 생각한다. 루어가 가라앉지 않고 배 밑바닥에서 일 미터쯤 아래 계속 멈춰 있다는 걸, 아무 이유도 없이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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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복선 부분이다. 평소 즐기던 루어 낚시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루어가 가라앉지 않고 배 밑바닥에 멈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요한네스는 절친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자 페테르는 바다가 더 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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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남는 건 땅분인가, 페테르가 말한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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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돌아가는 것! 죽음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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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 거냐, 그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깊은 절망에 휩싸인다, 싱네가 그를 보지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그저 그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만 한다
(...)
그리고 싱네는 마주 다가와 그의 몸 한가운데로 쑥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를 통과해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싱네의 온기를 느낀다.
1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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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막내딸 싱내를 집 앞에서 만나지만, 그녀는 요한네스를 알아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그저 자신의 몸을 통과해 지나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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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네는 아버지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마가 차갑다 손을 잡아본다 역시 차다
(...)
손목을 잡아보니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입과 코에 손을 대보지만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돌아가셨구나, 싱네는 생각한다
1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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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되지 않는 아버지를 만나러 온 싱네는 침대에 잠든 듯 누워있는 아버지를 마주한다. 차가운 몸, 뛰지 않는 맥박, 느껴지지 않는 숨결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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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
128~1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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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페테르는 직접적으로 요한네스에게 죽음을 언급하며, 친구의 죽음을 돕기 위해 왔노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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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은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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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도 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다면 마그다, 내 누이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럼 물론이지, 페테르가 말한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는데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래, 그렇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1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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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가 두려웠던 요한네스는 자신이 죽었다는 소리에 궁금한 것들을 페테르에게 묻는다. 이에 대해 페테르는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의 다 있다며, 사랑하지 않는 건 없다고 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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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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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워한다. 어쩌면 이 책이 그것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태어나고, 살다가, 사랑하고 이내 죽음에 이르는 삶의 원형을 통해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지만, 마지막 순간 요한네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 좋은 반려자를 만나 사랑하며 사는 것,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것, 화목한 가정을 꾸려 서로 아끼며 사는 것이 곧 삶을 이루는 구성요소이자,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삶의 마지막 순간 방문한 장소, 떠올린 사람, 습관과 행동들은 그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로, 환상 속에서 어쩌면 그것들을 짜 맞추며 떠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생전 그는 자신의 신념이 옳거나 맞는다고 확신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시점에 과연 그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을까? 아니,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아침에서 저녁으로 향해갈수록 확신했던 일들은 점차 불확실해진다.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끝내 확실성으로 향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버리고 싶지 않은 희망은, 사후세계에서만큼은 페테르의 말처럼 아픔도, 슬픔도, 무서움도 없는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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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30년째 - 휴일 없이 26만 2800시간 동안 영업 중
니시나 요시노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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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이 운영되는 편의점 24시간 극한 밀착 운영기"


자영업을 하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직접 편의점을 30년간 운영한 저자의 글을 읽고 보니 '정말 쉽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다.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편의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충 눈에 그려지기는 했는데, 직접 운영하는 점주의 입장에서 세세히 들여다보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별 문화적 차이나 프랜차이즈별 운영 방침이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전반적인 운영방식은 비슷할 것이기에 저자의 편의점 생존기는 어쩌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편의점 점주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남편과 함께 약 30년간 직접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었던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에세이로 허둥지둥하던 초창기부터, 변화와 성장을 겪었던 시기를 비롯해 편의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편의점의 전반적인 운영방식이나 SV의 역할, 수익 배분 문제, 아르바이트 고용문제, 24시간 운영에 대한 어려움, 가지각색 손님들의 유형까지 다양한 편의점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테리어와 시대착오를 겪으며 달라지는 운영방식, 여기에 더해 10년 계약 갱신시마다 함께 진화하는 편의점의 모습까지 살펴보며 지금 우리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편의점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충격적일 만큼 큰 사건사고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까이에서 24시간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편의점에 대한 고마움과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국도변에서 30년 넘도록 편의점을 경영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편의점 점주가 다시 한번 계약 갱신을 앞두고 쓴 편의점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매장 내 보유하고 있는 수만 가지 상품을 익히고, 다양한 결제방식을 능숙하게 다루고, 예상치 못한 손님을 다루는 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보낸다.

안정기가 올 때쯤이면 마치 놀리듯 팡팡 터지는 불행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늘 마음 졸이며 제대로 잠 못 드는 날이 여러 날, 그 와중에 하나뿐인 아들도 번듯하게 자라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변화하는 편의점만큼이나 성장하는 점주 부부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절대 좋아지지 않을 것 같던 편의점 일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된 저자에게 있어 편의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자 삶,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의 사람 보는 관점과 태도까지 변하게 만든 24시간 편의점의 다사다난한 에피소드 중 특별히 더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그럼 이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노동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편의점의 면면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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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하며 괴로웠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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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일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더럽혀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소리치는 손님에게 겉으로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가정 교육도 제대로 못 배워먹은 것들이", "천박한 것이" 같은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차별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그런 내 마음을 객관화하는 나 자신이었다. 난 정말 저열한 사람이구나, 그 사실을 매일 사무치게 느끼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대면케 한 이 일이 너무나 싫었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식품 폐기 문제다.
(...)
쓰레기봉투 안에서 입도 한번 대지 않은 음식들이 영수증 쓰레기, 가게에서 나온 쓰레기, 손님이 버린 쓰레기와 함께 마구 섞인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쓰레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때의 기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는 죄책감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종종 이렇게나 많은 음식을 버린 업보로 언젠가 아사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질 때가 있다. 편의점을 시작하면서 느낀 이 괴리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98~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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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며 두 가지 괴로웠던 점에 대해 토로한다. 첫 번째는 스스로 알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저열함에 대해 깨닫게 된 점, 두 번째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본사 시스템에 의해 폐기해야 하는 점이었다.

첫 번째 부분은 후에 단점이 장점이 된 부분으로 소개하고 있는 부분인데,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편의점을 운영하기 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저자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고개 숙일 일은 있어도 자신은 고개 숙일일이 없어 스스로 잘못된 우월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때문에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꽉 막힌 관점에서 봤을 때 마음에 차지 않는 손님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봤던 것 같다고 말하며 오히려 편의점 일을 통해 이런 관점이 달라졌다고 전한다.

두 번째 부분은 편의점 정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나 역시 버리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자의 경우 초반에는 본사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느라 그대로 폐기했지만, 후에는 따로 빼두고 아르바이트생이 먹거나 저자의 가족들이 끼니를 때우는데 사용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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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하며 좋았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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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과 직업이 제각기 다른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접촉하는 이 일은 내 인생의 경험치를 높여주었다. 초반 몇 개월은 손님에게 세 개 이상의 말을 들으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새파랗게 질려버렸던 내가 반년 후에는 1시간에 50명 이상의 손님을 상대하면서 다양한 요구를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틀림없이 젊었을 때 보다 뇌세포가 훨씬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알바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쉬는 시간에 이야기해 주는 장래의 꿈과 가족을 생각하는 애틋한 감정에 대해 듣고 있노라면, 듣기 좋은 허울이 아니라 정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배울 점도 많았다.

나는 암중모색을 거듭하며 편의점 점주로서 앞으로 나아갔다.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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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이었던 저자는 처음에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섞거나 접촉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하지만 오랜 시간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일은 물론,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일도 능숙해진다.

더불어 많은 알바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다양한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 보는 안목도 생긴듯 하다. 후에 부부 사이에서 그녀가 전적으로 알바생 채용에 대한 위임을 갖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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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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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낮 1시가 되면 편의점을 찾아와 계산대 근처에서 잡담을 나누다 가시는 할머니 계셨는데 그녀는 항상 같은 시간에 나타나 식료품과 생필품을 몇 개 구입한 다음 아르바이트 여사님이나 저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항상 활짝 웃으시면 말씀하셨는데 편의점에서 나누는 대화가 즐거우신 듯했다. 저자나 아르바이트 여사님도 그분과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고 난 할머니는 1만 엔권을 내밀었다. 저자는 우선 지폐로 8000엔을 거슬러 주었고 다음은 잔돈을 줄 차례였는데, 그때 할머니가 언제나 그렇듯 말을 거는 바람에 대답하는 사이 이미 8000엔을 건네주었다는 것을 깜빡하면서 잔돈과 함께 다시 8000엔을 할머니에게 건네주게 된다.

몇 시간 후에야 잔액에서 8000엔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서둘러 CCTV를 확인했고 이를 통해 두 번째로 할머니에게 8000엔을 건네던 순간 할머니의 '응?'하는 표정이 스쳤다가 곧바로 교활한 얼굴을 하고는 서둘러 지폐를 챙긴 뒤 가게를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저자는 그녀가 알고도 그랬다는 것을 눈치챘고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실망감이 컸다. 다음날 할머니가 오시면 실수로 두 번 거슬러 드린 것 같다며 운을 뗄 생각이었는데 할머니는 그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예전과 마찬가지로 할머니는 오후 1시가 지난 무렵 다시 가게를 방문하게 된다. 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이 대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귀갓길,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게 귀찮았는지 할머니는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국도를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던 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

저자는 자신의 뇌리에 박혀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몇 년에 걸쳐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주름 가득한 함박웃음이 아니라 CCTV에 포착된 교활한 미소라는 사실이 슬펐다고 전했다.
218~2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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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를 읽는데 어쩐지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웃이 어느날 돈에 눈이 멀어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고도 모른척하고, 그렇게 행방을 감췄다가 3개월이 지나 다시 나타나서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러다 결국 그날 자신의 실수로 그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어쩐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같아서 읽는데 순간 섬찟한 느낌도 들었는데, 저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돌아선 할머니의 모습이 가히 좋게만 보이지 않았으리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왜 손해 보면서 착하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지만, 착하게 사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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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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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객만래라는 말이 있다. 편의점은 24시간, 온갖 종류의 손님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무섭다.

※천객만래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씩 온다는 뜻으로 많은 손님이 번갈아 계속 찾아옴을 이르는 말.

2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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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내내 응대하며 견뎌야 한다는 것이 실상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면 그게 오히려 거짓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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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으로 만나보는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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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에피소드 중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 페이지를 통해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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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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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람들이 드나드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다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한밤중 누군가에게는 불빛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퇴근길 만나는 어떤 이에게는 동네 편의점이 휴식과 쉼의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이나 형사들에게는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증거 수집 장소가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약탈하기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바생에게 내뱉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좋은 마음으로 내어준 화장실이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이처럼 언제, 누가, 어떤 식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편의점은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론 좋지 못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공간을 더 가꾸고 소중히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적어도 알바생에게 폭언을 일삼거나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등의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혀주고 있는 편의점이 점점 더 진화하고 있는 만큼,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알바생도 점주도,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도 모두 성숙한 면모를 지녔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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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블랙에디션) 마음시선 클래식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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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어린 왕자>를 꽤 오랜만에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다. 어릴 적에는 어린 왕자의 지구별 여행기 혹은 애어른 같은 이야기를 하는 신기한 소년이라는 컨셉에 초점을 두고 가볍게 읽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하고 학습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여느 어른보다 훨씬 나은 어린 왕자를 보며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어른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책임지는 것, 나만의 유일한 것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더불어 잃어버린 낭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구성: 블랙에디션 도서+초판 한정 엽서 2장
여태껏 수많은 <어린 왕자>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만큼은 마주하는 순간 소장 욕구가 뿜뿜 솟아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블랙에디션 바탕에 고급스러운 금박으로 디자인된 표지는 보는 순간 반할 만큼 예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부드러운 촉감과 초판 한정으로 구성된 2장의 엽서는 어쩐지 특별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이즈도 일반 도서에 비해 커다란 판형으로 제작되어 글씨 또한 큼지막하고 그림도 한 면을 채울 만큼 크게 들어가 있는데, 때문에 아이들도 읽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 왕자>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 B-612 호에서 여러 별들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 소년을 만나 겪은 일을 6년이 지난 후 추억하며 쓴 이야기로,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한편,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간의 본질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짜 우정이란 무엇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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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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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20년 공군에 입대해 비행기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군용기 조종 자격증을 땄다. 제대한 뒤 민간 항공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 북서부와 프랑스를 잇는 우편 비행을 담당했다.

비행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는데, 이때 페미나 문학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종군하여 군용기 조종사가 되었다. 1944년, 연합군 반격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찰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1943년 발표한 <어린 왕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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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쓰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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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북아메리카에서 망명 중이던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절친한 친구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어린 왕자>를 썼다고 한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절친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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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일곱 번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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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 강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다 자신의 숭배자로 보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칭찬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은 결코 듣지 못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술꾼은 술 마시는 게 창피한 나머지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네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사업가가 살고 있었다.
사업가는 스스로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자 정확한 사람이라 말하며 반복적으로 별들을 관리하며 세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가로등 지기가 가로등을 관리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별은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방문한 별 중 제일 작았다. 가로등 지기는 아침이면 가로등을 켰다가 저녁이면 불을 끄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기가 유독 아쉬웠는데, 그건 그 별이 해지는 광경을 날마다 1,440번이나 볼 수 있는 축복 받은 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여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지리학자가 있었다.
그 별은 그전 별보다 열 배는 더 컸는데, 아주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나이 든 신사가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며 그들이 본 것을 기록하는 일을 했는데, 때때로 흥미로운 게 있으면 탐험가의 됨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 신사의 추천으로 어린 왕자는 '지구'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일곱 번째로 방문한 별이 지구였다.
지구는 보통 별과는 달랐다. 수많은 왕과 지리학자, 사업가들과 술꾼들, 그 외에도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을 포함해 20억 명의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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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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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해 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잠시 뒤에 너는 또 이렇게 말했어.

"있잖아 ···. 나는 몹시 슬플 때면 해 지는 광경을 보고 싶거든 ···."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봤던 날, 넌 그렇게나 슬펐던 거야?"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3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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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도착하기 전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 어린 왕자는 유달리 그 별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이유는 해지는 광경을 무려 1440번이나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이때도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홀로 두고 온 장미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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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가 수백수천만 개의 별 중에 단 한 곳에만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그는 별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 생각할 거야.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이 꺼져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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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수많은 물건과 사람이 존재해도 결국 내가 마음을 내어준, 사랑하는 단 하나의 존재만이 유일한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묵살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울분을 토하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라고 외치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 어쩐지 비통함과 억울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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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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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 묻고 또 묻는 아이들의 습성이 떠올라 어쩐지 웃음이 배어 나온 문장이다. 더불어 무엇에 대해 탐구하고, 알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의 열정이 느껴져 귀찮다는 이유로 넘기기보다 정성스레 답변을 해주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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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나한테 너는 아직은 수많은 사내아이 중 하나에 불과해. 네가 필요하지 않지. 그리고 너에게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는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돼. 나에게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너에게도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지."
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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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물음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여우의 답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와 이것이 가지는 무게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누군가를 그냥 '아는'것과는 다른,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가지는 깊은 유대감은 어쩌면 평생에 단 하나의 사랑 혹은 평생의 우정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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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날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나도 몹시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가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이해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
"누구든지 자기가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이해할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것들만 사니까. 하지만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제 더는 친구가 없는 거야. 친구를 원한다면 날 길들여줘."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하지."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그래, 거기 풀밭에. 내가 곁눈으로 널 볼 건데,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를 낳기 딱 좋거든. 대신에 날마다 내 옆으로 조금씩, 좀 더 가까이 와서 앉아."

(...)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널 맞아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뭐든 적절한 의식을 따라야 하는 거야."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 또한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어느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달리,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88~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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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의미를 가르쳐 준 후 이내 여우는 선뜻 자신을 길들여 달라 청한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에 어린 왕자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지만, 여우는 자신이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한번 친구가 되기를 청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서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다며 여우는 친구가 되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준다. 먼저 참을성을 기를 것, 그런 후 적절한 의식을 따를 것을 권한다.

서로의 관계를 좁히는 데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또 선을 지키며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또 함께 하는 시간을 특별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우정을 키우는 방법이라 전하며 '찐 우정'에 대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우정이란 무엇인지, 또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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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해. 그건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네 장미꽃이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이 있어.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9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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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언급되는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것은 내가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것,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것.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보다 큰 가치를 두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렇듯 엉망진창인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점, 그리고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는 점을 명심하자.

더불어 소중한 것의 가치는 내가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자. 시간을 들인 만큼 애정이 깃들고,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기에 우리에게 의미로 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길들인 것, 관계를 맺은 것에 있어서 만큼은 반드시 책임을 지자.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인연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꿀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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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다. 앞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의 인상에 깊이 남기려고 다시 그렸다. 바로 이곳에서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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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흔적만 남은 그림을 통해 과거 어린 왕자가 자리했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만의 풍경으로 채워 넣어 본다.

그 속에는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왕자와 유일무이한 친구가 된 여우, 그리고 활짝 피어난 장미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어른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는 조종사와 수리된 비행기의 모습도 함께 그려 넣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슬프지 않은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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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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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고전을 어른이 된 이후에 다시 읽어보면 왜 고전을 꼭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고전이 주는 맛이 있다.

읽은 시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크게 다가왔던 것이 작게 보이기도 하며,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스토리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들에게 말하건대,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이나 동화 등을 다시 한번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취향에 따라 위인전이나 전기문도 좋고, 고전이 담긴 이야기도 좋다.

어릴 적 쉽게 술술 읽혔던 책이 다시 보일 것이다. 대신 그냥 스토리만 읽기보다는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다른 관점에서 읽어보거나, 왜라는 물음을 붙여보자. 읽는 방식만 바꿔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놓치고 살았던 정체성이나 중요한 가치, 혹은 삶의 지혜를 다시 다시 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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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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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옛이야기의 의미와 이야기가 가진 힘에 관한 이야기"



동화의 재해석 개념으로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이 책은 쉽게 볼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할 책처럼 느껴진다.


처음은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좋다. 일단 가볍게 읽어나가자. 그리고 두 번째는 여태껏 이야기로만 접하던 동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선 내용을 비롯해 역사, 사회, 종교 등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후 조금 더 심도 있게 읽어보자.


여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요즘은 같은 동화도 작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분명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러 동화 속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그것이 가진 의미와 그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인데, 이 책을 통해 이야기가 쓰였던 당시 상황들을 대입해놓고 보니, 마냥 즐겁게 볼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것이 어릴 때부터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떤 편협한 생각을 심어주었는지, 또 이것으로 인해 여성성에 어떤 치명타를 입혔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제라도 올바른 관점으로 동화를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다음 세대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여성이 약한 존재로만 전달되지 않을 것임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해 앞으로 여성들의 언어로 쓰일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는데,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거나 희생하지 않는,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어떤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할지 궁금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불문율이 있다. 공주님을 구하는 것은 왕자님, 늘 함정에 빠지는 것은 공주님, 마녀는 착한 사람을 해치는 나쁜 사람 등과 같은 설정이다.


어릴 때는 그저 공주를 용이나 악마로부터 지켜주는 왕자가 멋있고 보이고, 또 늘 어여쁘게 보이는 공주가 그저 좋게만 다가왔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항상 공주를 구하는 것은 왕자일까? 왜 항상 야수와 용 같은 존재들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아니라 공주만을 데려갈까? 마녀는 진짜 나쁜 존재일까? 왜 항상 공주들은 숲속을 헤맬까? 등등.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통속적인 클리셰가 왜 자주 등장했는지, 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꽤 오랜 시간 이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면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야기가 가진 힘과 무서움에 대해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동화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 더 자주, 많이 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력자의 논리를 전하기 위해 활용되었던 옛이야기를 이제는 새로운 지혜를 전하는 보물창고로써 활용해 보자. 이야기에는 강력한 호소력과 상징성이 담겨 있다. 또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생각을 이끌어내고, 행동으로 실행시켜보자. 낡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정수를 발견해 삶의 무기로 활용해 보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써야 할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지금 이 책을 꺼내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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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문장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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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통과의례를 따라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성장담은 옛날이야기에도 많고, 소설과 영화에도 많다. 어떤 이야기이든 소년과 소녀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옛날이야기에 숨어 있는 성장의 비밀은 감추어둔 보물과 같다. 비밀을 읽어내면 성장의 힘으로 삼을 수 있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 된다.

46~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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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권력자들에 의해 다소 왜곡된 시선으로 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한다.


전해지고 또 전해지며 쌓인 이야기에는 성장의 비밀이 숨겨져있기 때문이다. 만약 감춰진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옛이야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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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에서 왕자와 공주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부모 슬하라는 좁디좁은 왕국에서는 누구나 왕자와 공주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징계에서는 누구나 내면의 귀한 본성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왕자와 공주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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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왕자와 공주인가라는 의문에 이런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맞다! 부모 아래에서 자식은 누구나 귀한 왕자와 공주가 된다. 또 인간은 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이기에 왕자와 공주로 말할 수 있다.


이야기에 왕자와 공주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상징적, 존재론적 입장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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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남성 집단 문화에 길든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예쁜 여자를 얻는다고들 생각한다. 여성을 성공의 트로피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은 열패감에 젖는다. 이 열패감을 여성에게 돌릴 때 여성 혐오가 나타난다.


진짜 분노할 대상인 상층의 남성 대신 만만한 존재에게 열패감의 탓을 돌리는 굉장히 비겁하고 비열한 기제다. 어쩌면 이 또한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사고와 비판을 통해 이 본성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 자신을 다듬는 성숙한 남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본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언 존>이라는 옛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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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니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언젠가부터 여성을 마치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처럼 여기는 것이 좀 언짢게 다가왔는데, 옛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결과였구나 싶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어 굉장히 비겁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문화 같은 인식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본성이 아닌, 이성적 사고를 우선하는 남성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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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이야기와 신화에서 남자 영웅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떠나 온갖 여성을 만난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면 돌아와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늙은 여성을 껴안으며 "당신이 최고"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상징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

(...)

고정 좌표가 사라져서 귀환점이 사라지면 남성 주인공의 여정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여자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정의하려고 한다. 여성은 거울 역할을 하느라 남자가 주인인 언어 밖으로 밀려났고, 이해의 밖, 몰이해 속으로 추방당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다. 이것이 언어의 싸움, 이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여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한다.

(...)

여성은 내면의 숲에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6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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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남성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하는 것을 통해 성장을 하고, 여성은 내면의 숲을 탐험하는 것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남성의 중심 좌표는 고정 좌표인 기다리는 여성이라는 점이고, 여성에게는 본인 자신이 고정좌표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늘 한결같이 기다리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새롭게 쓰이는 여성들의 언어 속에서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가득 메워 보다 풍성한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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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에서 뱀과 용과 벌레는 19세기까지 같은 대상을 가리켰다.

(...)

원래 뱀은 대지에 붙어서 대지의 지혜를 가장 많이 아는 존재로 숭앙되었다.

(...)

그러나 가부장 신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이 하위 신격은 제거되었다. 즉, 여신이 가부장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여신의 하위 신격 중 뱀과 용과 벌레는 죽임을 당하고, 발가벗고 연약한 여성만 남아 구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

메두사와 용은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다.

(...)

메두사의 힘은 여성에게 내재한 커다란 힘을 말한다. 이 힘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고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므로 괴물로 표현되었고, 그 결과 메두사와 용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즉, 남성들의 공포가 투사된 여성 속이 거대한 힘의 상징이 바로 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용을 죽이고 발가벗고 무기력한 공주를 구하는 일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건네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이데올로기다.


"내게 위협적인 네 속의 강력한 힘은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척살할 것이고, 오로지 네 속의 연약한 부분만 골라서 사회에 편입시켜 살게 하겠다"라는.

9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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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신의 속성이던 용, 뱀, 벌레, 고래는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부장제가 도입되면서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남성들은 이를 괴물로 표현하면서 결국 자신들이 필요한 것만 취하고,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척살한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대물림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부장 신화를 믿다가 이제는 가부장적인 기독교를 믿게 된 로마인들 역시 메두사를 기둥 밑에 박아두는 것으로, 여성이 가진 힘을 누르고 그 위에 남성들의 제도를 세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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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공주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주는 용이라서 용과 함께 사라진다. 한 여자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어서, 어떤 속성은 사회가 억압하지만 어떤 속성은 부추기고 권장한다.


억압당하는 속성은 지배 세력에 의해 용, 바다 괴물, 뱀이라 불리고, 권장하는 속성에는 귀한(그러나 연약한) 공주라는 이름이 붙는다.


불행히도 남성이 지배권을 가진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지닌 강력한 힘은 대부분 배척되었고 연약한 여성성만 남을 수 있었다. 가부장 권력이 횡행할 때, 여성이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평범하게는 기가 센 년이 되고 심하면 광녀가 되어 기존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마녀가 되어 학살당한다.

(...)

여성들은 여러 얼굴 중 극히 일부만 내보일 수 있고 나머지는 억압해야 했기에, 여성성은 왜곡되고 분열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압제의 수단이 되었기에 그 매듭 역시 이야기로 풀어야 할 것이다.

106~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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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가 이 하나의 문장에 모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다양한 속성은 남성의 필요에 의해 선택적 속성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속성은 억제되거나 억압당했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속성은 연약한 여성성뿐이었다.


때문에 여성이 이에 반하는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기가 센 년이라는 취급을 받거나 혹은 마녀가 되어 학살당했다.


읽으면서도 어딘가 너무 익숙한 내용이라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에서 마녀가 왜 그토록 나쁜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또 기가 센 여성에 대해 안 좋게 표현하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반대로 강한 남성이 최고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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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

내면의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원의 힘은 늘 여성적인 힘이다.

223, 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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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숲으로 들어가는 일을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구원의 힘은 '여성의' 힘이 아니라, '여성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혜와 관용, 이해, 따뜻함 온기 등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에는 가부장제에서 주로 사용되던 억압이나 지배의 방식으로 세상이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터부시되던 '여성적인 힘'을 활용하여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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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실에서만 살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누구라고 정의하고,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꿈을 꾸고 미래에 투사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힘이 된다. 마을과 숲을 누비는 힘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 밖의 현실을 바꾼다. 영웅의 모험담을 들으며 자란 아이가 영웅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나듯, 환상은 현실을 그렇게 구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에 숨어 있는 빛나는 보석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어떤 보석을 찾느냐에 따라 현실의 내가 얼마나 귀중한 사람이 되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233~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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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현실만 바라보며 살 수 없다. 꿈을 꾸고 환상을 넘나들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고 미래를 투사한다.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또 미래에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것을 꿈꾸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또 다른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만큼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우리의 염원과 꿈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이야기이기에, 더 많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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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빚기 시작할 때, 사람은 자신이 믿는 모습이 된다.

(...)

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물려준 씨실과 날실이 바로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이 씨실과 날실을 가져다 우리의 이야기를 짜면 된다.

(...)

현실이 되는 기적을 이루어내길.

2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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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옛이야기라고 해서, 억압과 한정된 소재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저 모두 배제하라 말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 권한다.


이야기는 언제든 새롭게 짜면 되므로,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빚기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이 되고자 하는, 믿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소 편향된 이야기에 그동안 묶여 있었다면, 이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자.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다양한 세상을 그려보자.


분명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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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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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내면)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성장담에 대한 이야기>


1. 빨간 모자


●현대적 해석으로 봤을 때 나이 많은 할머니가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왠지 이상한 일이다.


●등장인물 분석

-숲으로 들어가는 것: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

-배고픈 늑대: 욕망의 상징

-할머니: 오래된 지혜를 상징

-빨간 모자: 자아를 상징

-사냥꾼: 초자아를 상징


빨간 모자의 이야기는 자아와 지혜와 욕구와 초자아가 한바탕 어우러지는 내면의 대통합이다. 그래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호소하는 메시지가 무의식중에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2. 아름다운 바실리사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실리사의 힘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실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해골 속 불꽃을 내면에 품은 존재가 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파할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빚어내는 창조의 능력(옷을 짓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왕의 아내로 상징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상징되는 단단한 자기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


1.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셋 중에 하나 고르기'라는 서브 모티프가 플롯을 매듭짓는 주된 장치로 등장하는 <베니스의 상인>에는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청혼하자 포셔는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한다.


어떤 상자를 고르는가는 곧 고르는 사람의 참된 본성, 신랑감의 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여러 속성 중 참된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2.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셋 중에 하나를 고르는 모티프는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는 전래동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금, 은, 동 도끼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지에 따라 참된 본성을 걸러낼 수 있다.



3. 마법에 걸린 공주님

이 이야기 역시 곡식 줍기, 열쇠 건지기, 옳은 것 알아맞히기라는 세 가지 시험을 거침으로써 본성 걸러내기에 동참한다.


곡식 줍기는 반복적이고 사소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알아보는 과제이고, 연못 속 열쇠 건지기는 도끼 찾기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옳은 것 알아맞히기는 참된 대상을 분별하는 시험으로 이 이야기에서는 여성적 속성을 통해 저주의 마법을 푸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 뉴캐슬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15명의 마녀들>


1650년 영국 뉴캐슬 지역에서 행해진 마녀 처형을 그린 판화에서는 남자들이 여성들을 목매달고 돈을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녀사냥의 본질이 여성의 손에서 지식과 권력과 부를 빼앗아 남자의 손에 넘기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결국 수백 년 동안 공포와 터부의 대상이었던 마녀는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1990년대 이후로 이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부른다. 즉, 마녀는 실존하지 않고 허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2022년, 스코틀랜드 정부는 16~18세기에 마녀로 기소된 4천여 명의 사람과 실제로 처형된 사람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400년 만에 마녀사냥이 허구에 바탕한 폭력이었음을 권력이 인정한 셈이다. 이렇듯 여자를 복속시켜 지배하려는 작업은 현실계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상상계에서는 용을 죽이고 구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용과 공주의 관계는 물론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주는 이야기>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2015년 스티븐 렌턴의 그림책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는 용과 공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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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내면의 거대한 힘을 갈무리해서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우유, 안아주기, 그리고 책이다.

(...)

그러니까 여성이 내면의 용을 잘 갈무리해서 성장하려면 우유로 상징되는 양분이 필요하다.

(...)

안아주기는 관용과 이해, 따뜻함과 온기와 같은 힘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책, 즉 지식이다. 여성이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공급받으며 자랄 때 내면의 용은 더 이상 부정적인 힘을 내뿜는 괴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힘을 발휘한다.

111~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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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한 적법한 이야기>


메리 포프 오스본의 그림책 <케이트와 콩나무>

사라져야 하는 권력자와 새로 부상하는 상속자 사이의 오랜 원형을 담고 있는 <잭과 콩나무>를 새롭게 재해석해서 쓴 메리 포프 오스본의 <케이트와 콩나무>는 성별과 나이를 넘나드는 상속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지분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딸을 비롯하여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도 상속자의 자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원전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변용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잘 쓰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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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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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뭔가 구체화된 이야기의 매력을 알게 된 느낌이다. 덕분에 한동안은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살듯 하다.


더불어 여러 분야의 책 중에 '소설' 장르, 즉 이야기를 담은 분야를 낮게 보는 사람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가 주는 힘과 감동,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예전에 재밌게 보던 애니메이션을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내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것 같다.


가부장제에 찌들어 여성성이 무너진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꽤 불편한 심정이었다는 것을, 또 그것이 아이들이 즐겨보는 이야기였기에 더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어쩐지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어른을 위한 동화나 잔혹동화를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 새로 써야 할 이야기들을 낱낱이 파헤쳐 보며 나만의 보석을 찾아 헤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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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온 언니의 편지
김보림.김다인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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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3년 5월, 우애가 깊었던 언니가 루푸스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를 그리며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동생의 회고록이자, 작가가 되고자 했던 언니의 바람을 담은 진혼과도 같은 책이다.


특히 언니의 일본 유학생활을 기점으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주고받았던 편지글 중심으로 담겨있는데, 곁에 함께 있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난히 남달랐던 우애 때문인지 작년 언니를 떠나보내고 추억을 그리고자 보관하던 편지글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학창 시절부터 언니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주고받은 편지글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유학 생활은 어땠는지, 또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동생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으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나이차가 3살밖에 나지 않음에도 마치 큰 어른과 아이의 대화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글에서 훈장님 같은 말투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시기가 1990년대 초, 중반인데, 자매 사이에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는 것이 당시에도 조금 특이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번째는 장녀 딸이라는 표현이다. 엄마가 첫째 딸에게 쓰는 편지와 첫째 딸이 엄마에게 쓴 편지글에서 '장녀 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흔하게 쓰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첫째 딸 혹은 큰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읽으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언니가 보낸 편지글이나 엽서를 동생이 직접 타이핑하여 컴퓨터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원문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는데, 이를테면 하트 두 개, 한자 표기, 느낌표 등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편지글 말미에는 언니가 보낸 편지의 원문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데, 여행한 장소나 의미 있는 순간들이 담긴 엽서를 정성스레 골라 그곳에서 느낀 감정이나 상황들을 빼곡히 채운 것을 통해 얼마나 동생을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여기에는 부모님 외에도 알 수 없는 JS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실려있다.


해외 생활을 해서인지 한글, 한자, 일본어, 영어 외에도 외국어를 두루 섞어 쓰는 방식으로 편지를 썼는데, 그 사이에서 유달리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시시콜콜한 안부 인사이자 동생을 염려하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 같은, 이를 잘 닦아라, 학업에 정진해라, 꿈을 가져라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이렇듯 멀리 있으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서 얼마나 둘의 우애가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이런 언니의 내리사랑이 서로에게 익숙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쪽만 일방적인 경우 이렇듯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었을 테니)


편지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동생에 대한 염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끔씩 보이는 유머러스함을 통해 언니의 장난기를 엿볼 수 있는데 몇 부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타지 생활의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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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널랑은 유학 같은 건 생각지 마라. 고독함이 느껴지는 것만큼 괴로움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란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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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지금 무척 외로움에 지쳐 있는 것 같다. 내면에 밀물처럼 다가드는 외로움, 어디론가 날아가기 위해 헛된 몸짓으로 '파닥'거려 보아도 쇠창살로 둘러싸인 차갑고 음습한 새장 속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만이 명백해질 따름이다. 언니의 방황의 표면을 조금만 벗겨 보아도 그곳엔 여러 겹의 고독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넌 알 수 있을 게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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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전화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목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언니는 곧 견디지 못하곤 하는구나.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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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서 느낀 거지만, '고립'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그 밑바닥까지 이해된 듯하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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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이 꽤 외롭고 고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단한 집념과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에 비해 종종 느껴지는 외로움에 꽤나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초반에 외로움에 대한 글이 자주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기댈 곳 없는 타향살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

참, 너의 모의고사가 걱정이다. 자는 시간 같은 걸 잘 조정해서 꾸준히 학력고사 당일까지 밀고 나가면 될 것 같다. 미안하다. 옆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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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는 것 주의하고, 아침에 학교 지각하지 말기.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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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기를 그리고 많이 공부하기를. 거대한 해안에 도착하기까지... 열심히 저어라.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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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늘 꼬박꼬박 챙겨 먹기를. 아침에 JS와 함께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꼭 먹고 가라. 그게 힘들면 빵이랑 우유라도 먹고. 환절기인데 감기 주의하고, 찬물에 세수나 머리 감는 일이 없도록.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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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이 결코 달지만은 않으며, 혼자 갖는 시간들이 결코 즐겁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 자신의 목표를 향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결과는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바람직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1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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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편지에는 이토록 절절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가 베여있다. 단순한 안부에서 그치기 보다,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하게 챙기며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함께 전한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꼬맹이 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3살 차이인데 말이다.



■언니의 유머러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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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림은 왜 그리 머리에 집착을 하는 걸까' 심층 분석해 본 결과, 얼굴이 좀 안 생긴 아해들이 머리에 지나칠 정도로 애착심을 가진다는 게 그 결론이었다. 이의 있어?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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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정한다 해도 언니는 너를 밀어 줄 테니까(벼랑 말고)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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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편지 곳곳에는 동생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유머도 발견할 수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헤어스타일에 집작하는 동생을 향해 언니는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집착하는 거라며 강한 팩폭을 날리며 이의 있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사춘기나 대학생 새내기 시절에는 으레 신경 쓰는 부분인데, 언니는 오히려 자매의 입장에서 그만 신경 쓰라는 말을 돌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매들의 일상에서 흔히 하는 농담 섞인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이라 이 글을 읽다 순간 푸핫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는 든든한 언니의 모습 뒤에 괄호에 담은 (벼랑 말고)라는 말에서 슬며시 웃음이 세어 나온다. 훈장님 같은 말투에 섞인 이런 유머 덕에 자매는 자매인가 보다 싶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저자는 어쩌면 언니의 편지글을 이토록 정성스레 엮은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살뜰히 챙겨주고 아껴주었던 언니였기에,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아픔이 더 컸으리라.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언니를 추억하고 기릴 수 있는 마지막 앨범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언니에게는 못다 한 작가로서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자 남은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하며 볼 수 있는 흔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후 언니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동생의 애도 방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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