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30년째 - 휴일 없이 26만 2800시간 동안 영업 중
니시나 요시노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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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이 운영되는 편의점 24시간 극한 밀착 운영기"


자영업을 하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직접 편의점을 30년간 운영한 저자의 글을 읽고 보니 '정말 쉽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다.

아르바이트로 편의점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편의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충 눈에 그려지기는 했는데, 직접 운영하는 점주의 입장에서 세세히 들여다보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별 문화적 차이나 프랜차이즈별 운영 방침이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전반적인 운영방식은 비슷할 것이기에 저자의 편의점 생존기는 어쩌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편의점 점주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남편과 함께 약 30년간 직접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었던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에세이로 허둥지둥하던 초창기부터, 변화와 성장을 겪었던 시기를 비롯해 편의점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편의점의 전반적인 운영방식이나 SV의 역할, 수익 배분 문제, 아르바이트 고용문제, 24시간 운영에 대한 어려움, 가지각색 손님들의 유형까지 다양한 편의점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테리어와 시대착오를 겪으며 달라지는 운영방식, 여기에 더해 10년 계약 갱신시마다 함께 진화하는 편의점의 모습까지 살펴보며 지금 우리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편의점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충격적일 만큼 큰 사건사고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까이에서 24시간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편의점에 대한 고마움과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국도변에서 30년 넘도록 편의점을 경영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편의점 점주가 다시 한번 계약 갱신을 앞두고 쓴 편의점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매장 내 보유하고 있는 수만 가지 상품을 익히고, 다양한 결제방식을 능숙하게 다루고, 예상치 못한 손님을 다루는 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보낸다.

안정기가 올 때쯤이면 마치 놀리듯 팡팡 터지는 불행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늘 마음 졸이며 제대로 잠 못 드는 날이 여러 날, 그 와중에 하나뿐인 아들도 번듯하게 자라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변화하는 편의점만큼이나 성장하는 점주 부부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절대 좋아지지 않을 것 같던 편의점 일이 어느새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된 저자에게 있어 편의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자 삶,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저자의 사람 보는 관점과 태도까지 변하게 만든 24시간 편의점의 다사다난한 에피소드 중 특별히 더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그럼 이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노동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편의점의 면면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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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하며 괴로웠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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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일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더럽혀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소리치는 손님에게 겉으로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가정 교육도 제대로 못 배워먹은 것들이", "천박한 것이" 같은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차별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그런 내 마음을 객관화하는 나 자신이었다. 난 정말 저열한 사람이구나, 그 사실을 매일 사무치게 느끼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대면케 한 이 일이 너무나 싫었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식품 폐기 문제다.
(...)
쓰레기봉투 안에서 입도 한번 대지 않은 음식들이 영수증 쓰레기, 가게에서 나온 쓰레기, 손님이 버린 쓰레기와 함께 마구 섞인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쓰레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때의 기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는 죄책감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종종 이렇게나 많은 음식을 버린 업보로 언젠가 아사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질 때가 있다. 편의점을 시작하면서 느낀 이 괴리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98~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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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며 두 가지 괴로웠던 점에 대해 토로한다. 첫 번째는 스스로 알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저열함에 대해 깨닫게 된 점, 두 번째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본사 시스템에 의해 폐기해야 하는 점이었다.

첫 번째 부분은 후에 단점이 장점이 된 부분으로 소개하고 있는 부분인데,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편의점을 운영하기 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저자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고개 숙일 일은 있어도 자신은 고개 숙일일이 없어 스스로 잘못된 우월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때문에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꽉 막힌 관점에서 봤을 때 마음에 차지 않는 손님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봤던 것 같다고 말하며 오히려 편의점 일을 통해 이런 관점이 달라졌다고 전한다.

두 번째 부분은 편의점 정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나 역시 버리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자의 경우 초반에는 본사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느라 그대로 폐기했지만, 후에는 따로 빼두고 아르바이트생이 먹거나 저자의 가족들이 끼니를 때우는데 사용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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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하며 좋았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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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과 직업이 제각기 다른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접촉하는 이 일은 내 인생의 경험치를 높여주었다. 초반 몇 개월은 손님에게 세 개 이상의 말을 들으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새파랗게 질려버렸던 내가 반년 후에는 1시간에 50명 이상의 손님을 상대하면서 다양한 요구를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틀림없이 젊었을 때 보다 뇌세포가 훨씬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함께 일하는 알바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쉬는 시간에 이야기해 주는 장래의 꿈과 가족을 생각하는 애틋한 감정에 대해 듣고 있노라면, 듣기 좋은 허울이 아니라 정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배울 점도 많았다.

나는 암중모색을 거듭하며 편의점 점주로서 앞으로 나아갔다.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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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이었던 저자는 처음에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섞거나 접촉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하지만 오랜 시간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일은 물론,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일도 능숙해진다.

더불어 많은 알바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다양한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 보는 안목도 생긴듯 하다. 후에 부부 사이에서 그녀가 전적으로 알바생 채용에 대한 위임을 갖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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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었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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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낮 1시가 되면 편의점을 찾아와 계산대 근처에서 잡담을 나누다 가시는 할머니 계셨는데 그녀는 항상 같은 시간에 나타나 식료품과 생필품을 몇 개 구입한 다음 아르바이트 여사님이나 저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항상 활짝 웃으시면 말씀하셨는데 편의점에서 나누는 대화가 즐거우신 듯했다. 저자나 아르바이트 여사님도 그분과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고 난 할머니는 1만 엔권을 내밀었다. 저자는 우선 지폐로 8000엔을 거슬러 주었고 다음은 잔돈을 줄 차례였는데, 그때 할머니가 언제나 그렇듯 말을 거는 바람에 대답하는 사이 이미 8000엔을 건네주었다는 것을 깜빡하면서 잔돈과 함께 다시 8000엔을 할머니에게 건네주게 된다.

몇 시간 후에야 잔액에서 8000엔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서둘러 CCTV를 확인했고 이를 통해 두 번째로 할머니에게 8000엔을 건네던 순간 할머니의 '응?'하는 표정이 스쳤다가 곧바로 교활한 얼굴을 하고는 서둘러 지폐를 챙긴 뒤 가게를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저자는 그녀가 알고도 그랬다는 것을 눈치챘고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실망감이 컸다. 다음날 할머니가 오시면 실수로 두 번 거슬러 드린 것 같다며 운을 뗄 생각이었는데 할머니는 그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예전과 마찬가지로 할머니는 오후 1시가 지난 무렵 다시 가게를 방문하게 된다. 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이 대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귀갓길,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게 귀찮았는지 할머니는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국도를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던 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

저자는 자신의 뇌리에 박혀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몇 년에 걸쳐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주름 가득한 함박웃음이 아니라 CCTV에 포착된 교활한 미소라는 사실이 슬펐다고 전했다.
218~2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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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를 읽는데 어쩐지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웃이 어느날 돈에 눈이 멀어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고도 모른척하고, 그렇게 행방을 감췄다가 3개월이 지나 다시 나타나서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러다 결국 그날 자신의 실수로 그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어쩐지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같아서 읽는데 순간 섬찟한 느낌도 들었는데, 저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돌아선 할머니의 모습이 가히 좋게만 보이지 않았으리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왜 손해 보면서 착하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지만, 착하게 사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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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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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객만래라는 말이 있다. 편의점은 24시간, 온갖 종류의 손님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도망치고 싶을 만큼 무섭다.

※천객만래
천 명의 손님이 만 번씩 온다는 뜻으로 많은 손님이 번갈아 계속 찾아옴을 이르는 말.

2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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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내내 응대하며 견뎌야 한다는 것이 실상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면 그게 오히려 거짓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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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설명으로 만나보는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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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에피소드 중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 페이지를 통해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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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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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람들이 드나드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다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한밤중 누군가에게는 불빛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퇴근길 만나는 어떤 이에게는 동네 편의점이 휴식과 쉼의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이나 형사들에게는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증거 수집 장소가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약탈하기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바생에게 내뱉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좋은 마음으로 내어준 화장실이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이처럼 언제, 누가, 어떤 식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편의점은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하고 때론 좋지 못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공간을 더 가꾸고 소중히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적어도 알바생에게 폭언을 일삼거나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등의 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환하게 불을 밝혀주고 있는 편의점이 점점 더 진화하고 있는 만큼,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알바생도 점주도,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도 모두 성숙한 면모를 지녔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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