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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온 언니의 편지
김보림.김다인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평점 :
이 책은 2023년 5월, 우애가 깊었던 언니가 루푸스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를 그리며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동생의 회고록이자, 작가가 되고자 했던 언니의 바람을 담은 진혼과도 같은 책이다.
특히 언니의 일본 유학생활을 기점으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주고받았던 편지글 중심으로 담겨있는데, 곁에 함께 있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난히 남달랐던 우애 때문인지 작년 언니를 떠나보내고 추억을 그리고자 보관하던 편지글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학창 시절부터 언니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주고받은 편지글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유학 생활은 어땠는지, 또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동생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으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나이차가 3살밖에 나지 않음에도 마치 큰 어른과 아이의 대화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글에서 훈장님 같은 말투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시기가 1990년대 초, 중반인데, 자매 사이에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는 것이 당시에도 조금 특이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번째는 장녀 딸이라는 표현이다. 엄마가 첫째 딸에게 쓰는 편지와 첫째 딸이 엄마에게 쓴 편지글에서 '장녀 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흔하게 쓰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첫째 딸 혹은 큰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읽으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언니가 보낸 편지글이나 엽서를 동생이 직접 타이핑하여 컴퓨터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원문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는데, 이를테면 하트 두 개, 한자 표기, 느낌표 등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편지글 말미에는 언니가 보낸 편지의 원문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데, 여행한 장소나 의미 있는 순간들이 담긴 엽서를 정성스레 골라 그곳에서 느낀 감정이나 상황들을 빼곡히 채운 것을 통해 얼마나 동생을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여기에는 부모님 외에도 알 수 없는 JS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실려있다.
해외 생활을 해서인지 한글, 한자, 일본어, 영어 외에도 외국어를 두루 섞어 쓰는 방식으로 편지를 썼는데, 그 사이에서 유달리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시시콜콜한 안부 인사이자 동생을 염려하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 같은, 이를 잘 닦아라, 학업에 정진해라, 꿈을 가져라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이렇듯 멀리 있으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서 얼마나 둘의 우애가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이런 언니의 내리사랑이 서로에게 익숙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쪽만 일방적인 경우 이렇듯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었을 테니)
편지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동생에 대한 염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끔씩 보이는 유머러스함을 통해 언니의 장난기를 엿볼 수 있는데 몇 부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타지 생활의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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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널랑은 유학 같은 건 생각지 마라. 고독함이 느껴지는 것만큼 괴로움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란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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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지금 무척 외로움에 지쳐 있는 것 같다. 내면에 밀물처럼 다가드는 외로움, 어디론가 날아가기 위해 헛된 몸짓으로 '파닥'거려 보아도 쇠창살로 둘러싸인 차갑고 음습한 새장 속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만이 명백해질 따름이다. 언니의 방황의 표면을 조금만 벗겨 보아도 그곳엔 여러 겹의 고독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넌 알 수 있을 게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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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전화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목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언니는 곧 견디지 못하곤 하는구나.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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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서 느낀 거지만, '고립'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그 밑바닥까지 이해된 듯하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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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이 꽤 외롭고 고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단한 집념과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에 비해 종종 느껴지는 외로움에 꽤나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초반에 외로움에 대한 글이 자주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기댈 곳 없는 타향살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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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너의 모의고사가 걱정이다. 자는 시간 같은 걸 잘 조정해서 꾸준히 학력고사 당일까지 밀고 나가면 될 것 같다. 미안하다. 옆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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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는 것 주의하고, 아침에 학교 지각하지 말기.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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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기를 그리고 많이 공부하기를. 거대한 해안에 도착하기까지... 열심히 저어라.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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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늘 꼬박꼬박 챙겨 먹기를. 아침에 JS와 함께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꼭 먹고 가라. 그게 힘들면 빵이랑 우유라도 먹고. 환절기인데 감기 주의하고, 찬물에 세수나 머리 감는 일이 없도록.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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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이 결코 달지만은 않으며, 혼자 갖는 시간들이 결코 즐겁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 자신의 목표를 향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결과는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바람직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1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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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편지에는 이토록 절절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가 베여있다. 단순한 안부에서 그치기 보다,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하게 챙기며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함께 전한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꼬맹이 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3살 차이인데 말이다.
■언니의 유머러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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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림은 왜 그리 머리에 집착을 하는 걸까' 심층 분석해 본 결과, 얼굴이 좀 안 생긴 아해들이 머리에 지나칠 정도로 애착심을 가진다는 게 그 결론이었다. 이의 있어?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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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정한다 해도 언니는 너를 밀어 줄 테니까(벼랑 말고)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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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편지 곳곳에는 동생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유머도 발견할 수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헤어스타일에 집작하는 동생을 향해 언니는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집착하는 거라며 강한 팩폭을 날리며 이의 있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사춘기나 대학생 새내기 시절에는 으레 신경 쓰는 부분인데, 언니는 오히려 자매의 입장에서 그만 신경 쓰라는 말을 돌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매들의 일상에서 흔히 하는 농담 섞인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이라 이 글을 읽다 순간 푸핫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는 든든한 언니의 모습 뒤에 괄호에 담은 (벼랑 말고)라는 말에서 슬며시 웃음이 세어 나온다. 훈장님 같은 말투에 섞인 이런 유머 덕에 자매는 자매인가 보다 싶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저자는 어쩌면 언니의 편지글을 이토록 정성스레 엮은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살뜰히 챙겨주고 아껴주었던 언니였기에,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아픔이 더 컸으리라.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언니를 추억하고 기릴 수 있는 마지막 앨범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언니에게는 못다 한 작가로서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자 남은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하며 볼 수 있는 흔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후 언니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동생의 애도 방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