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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블랙에디션) ㅣ 마음시선 클래식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4년 5월
평점 :
오랜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어린 왕자>를 꽤 오랜만에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다. 어릴 적에는 어린 왕자의 지구별 여행기 혹은 애어른 같은 이야기를 하는 신기한 소년이라는 컨셉에 초점을 두고 가볍게 읽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하고 학습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여느 어른보다 훨씬 나은 어린 왕자를 보며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어른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책임지는 것, 나만의 유일한 것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더불어 잃어버린 낭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구성: 블랙에디션 도서+초판 한정 엽서 2장
여태껏 수많은 <어린 왕자>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만큼은 마주하는 순간 소장 욕구가 뿜뿜 솟아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블랙에디션 바탕에 고급스러운 금박으로 디자인된 표지는 보는 순간 반할 만큼 예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부드러운 촉감과 초판 한정으로 구성된 2장의 엽서는 어쩐지 특별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이즈도 일반 도서에 비해 커다란 판형으로 제작되어 글씨 또한 큼지막하고 그림도 한 면을 채울 만큼 크게 들어가 있는데, 때문에 아이들도 읽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 왕자>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 B-612 호에서 여러 별들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 소년을 만나 겪은 일을 6년이 지난 후 추억하며 쓴 이야기로,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한편,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간의 본질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짜 우정이란 무엇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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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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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20년 공군에 입대해 비행기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군용기 조종 자격증을 땄다. 제대한 뒤 민간 항공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 북서부와 프랑스를 잇는 우편 비행을 담당했다.
비행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는데, 이때 페미나 문학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종군하여 군용기 조종사가 되었다. 1944년, 연합군 반격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찰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1943년 발표한 <어린 왕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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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쓰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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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북아메리카에서 망명 중이던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절친한 친구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어린 왕자>를 썼다고 한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절친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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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일곱 번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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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 강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다 자신의 숭배자로 보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칭찬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은 결코 듣지 못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술꾼은 술 마시는 게 창피한 나머지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네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사업가가 살고 있었다.
사업가는 스스로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자 정확한 사람이라 말하며 반복적으로 별들을 관리하며 세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가로등 지기가 가로등을 관리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별은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방문한 별 중 제일 작았다. 가로등 지기는 아침이면 가로등을 켰다가 저녁이면 불을 끄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기가 유독 아쉬웠는데, 그건 그 별이 해지는 광경을 날마다 1,440번이나 볼 수 있는 축복 받은 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여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지리학자가 있었다.
그 별은 그전 별보다 열 배는 더 컸는데, 아주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나이 든 신사가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며 그들이 본 것을 기록하는 일을 했는데, 때때로 흥미로운 게 있으면 탐험가의 됨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 신사의 추천으로 어린 왕자는 '지구'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일곱 번째로 방문한 별이 지구였다.
지구는 보통 별과는 달랐다. 수많은 왕과 지리학자, 사업가들과 술꾼들, 그 외에도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을 포함해 20억 명의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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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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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해 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잠시 뒤에 너는 또 이렇게 말했어.
"있잖아 ···. 나는 몹시 슬플 때면 해 지는 광경을 보고 싶거든 ···."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봤던 날, 넌 그렇게나 슬펐던 거야?"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3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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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도착하기 전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 어린 왕자는 유달리 그 별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이유는 해지는 광경을 무려 1440번이나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이때도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홀로 두고 온 장미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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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가 수백수천만 개의 별 중에 단 한 곳에만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그는 별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 생각할 거야.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이 꺼져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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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수많은 물건과 사람이 존재해도 결국 내가 마음을 내어준, 사랑하는 단 하나의 존재만이 유일한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묵살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울분을 토하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라고 외치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 어쩐지 비통함과 억울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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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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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 묻고 또 묻는 아이들의 습성이 떠올라 어쩐지 웃음이 배어 나온 문장이다. 더불어 무엇에 대해 탐구하고, 알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의 열정이 느껴져 귀찮다는 이유로 넘기기보다 정성스레 답변을 해주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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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나한테 너는 아직은 수많은 사내아이 중 하나에 불과해. 네가 필요하지 않지. 그리고 너에게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는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돼. 나에게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너에게도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지."
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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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물음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여우의 답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와 이것이 가지는 무게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누군가를 그냥 '아는'것과는 다른,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가지는 깊은 유대감은 어쩌면 평생에 단 하나의 사랑 혹은 평생의 우정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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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날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나도 몹시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가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이해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
"누구든지 자기가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이해할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것들만 사니까. 하지만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제 더는 친구가 없는 거야. 친구를 원한다면 날 길들여줘."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하지."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그래, 거기 풀밭에. 내가 곁눈으로 널 볼 건데,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를 낳기 딱 좋거든. 대신에 날마다 내 옆으로 조금씩, 좀 더 가까이 와서 앉아."
(...)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널 맞아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뭐든 적절한 의식을 따라야 하는 거야."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 또한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어느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달리,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88~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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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의미를 가르쳐 준 후 이내 여우는 선뜻 자신을 길들여 달라 청한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에 어린 왕자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지만, 여우는 자신이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한번 친구가 되기를 청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서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다며 여우는 친구가 되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준다. 먼저 참을성을 기를 것, 그런 후 적절한 의식을 따를 것을 권한다.
서로의 관계를 좁히는 데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또 선을 지키며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또 함께 하는 시간을 특별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우정을 키우는 방법이라 전하며 '찐 우정'에 대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우정이란 무엇인지, 또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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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해. 그건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네 장미꽃이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이 있어.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9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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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언급되는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것은 내가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것,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것.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보다 큰 가치를 두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렇듯 엉망진창인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점, 그리고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는 점을 명심하자.
더불어 소중한 것의 가치는 내가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자. 시간을 들인 만큼 애정이 깃들고,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기에 우리에게 의미로 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길들인 것, 관계를 맺은 것에 있어서 만큼은 반드시 책임을 지자.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인연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꿀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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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다. 앞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의 인상에 깊이 남기려고 다시 그렸다. 바로 이곳에서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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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흔적만 남은 그림을 통해 과거 어린 왕자가 자리했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만의 풍경으로 채워 넣어 본다.
그 속에는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왕자와 유일무이한 친구가 된 여우, 그리고 활짝 피어난 장미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어른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는 조종사와 수리된 비행기의 모습도 함께 그려 넣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슬프지 않은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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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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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고전을 어른이 된 이후에 다시 읽어보면 왜 고전을 꼭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고전이 주는 맛이 있다.
읽은 시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크게 다가왔던 것이 작게 보이기도 하며,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스토리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들에게 말하건대,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이나 동화 등을 다시 한번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취향에 따라 위인전이나 전기문도 좋고, 고전이 담긴 이야기도 좋다.
어릴 적 쉽게 술술 읽혔던 책이 다시 보일 것이다. 대신 그냥 스토리만 읽기보다는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다른 관점에서 읽어보거나, 왜라는 물음을 붙여보자. 읽는 방식만 바꿔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놓치고 살았던 정체성이나 중요한 가치, 혹은 삶의 지혜를 다시 다시 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