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삶과 죽음이라는 양 끝단의 내용을 하나로 묶어 인간 삶의 원형에 대해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마치 임사체험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또 탄생과 죽음 직전의 모습만 쓰여있을 뿐 사는 동안의 모습은 생략되어 있지만, 어쩐지 삶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은 몇 개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공백과 침묵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하다.


짧은 아침(=탄생)과 나머지 시간 전체를 저녁(=죽음)으로 채운 이 책은 제목부터 중의적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탄생의 순간을 나타내는 아침,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저녁.

또 다른 해석으로 보자면, 짧게 다룬 아침의 순간 요한네스는 금방 숨을 거둔다. 그리고 막내딸 싱네가 그를 발견하기까지 하루 종일 영혼이 이승에 머물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표현된다.

상징적 표현이냐, 분량의 표현이냐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런 것조차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완전히 느낌이 달라진다.

많은 설명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하얀 공백과 침묵을 독자가 채워나가게 된다. 덕분에 스토리는 더 흥미로워지고, 묘하게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에는 마침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마침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불필요한 기호는 모두 삭제되었고, 간간이 쉼표가 그 자리를 대신함을 알 수 있다.


요한네스의 짧은 탄생의 순간과 긴 죽음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딘가 물속을 헤매는 듯한 묘한 표현들과 환상과 착각 사이를 떠돌고 있는듯한 형상은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갑자기 좋아진 몸 상태와 가벼워진 발놀림 덕분에 제자리에 있기보다 여기저기를 떠돌게 된다. 오랜 친구를 만나 함께 낚시를 가기도 하고, 길거리를 거닐다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미처 거들떠보지 못했던 집안 곳곳을 탐험하듯 둘러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 다시 돌아온 집에서 요한네스는 막내딸을 만나지만 평소와 다른 낯선 풍경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갔고, 그에게 남은 건 딸아이의 온기뿐이다.

이후 잠시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절친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자네도 이제 죽었다며 진실을 전한다. 그러면서 제일 친한 친구인 자신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해 왔다며 마지막을 함께 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
이야기 속 진실
=====

홀멘 섬을 산 올라이는 사랑하는 아내 마르타와의 사이에서 딸 마그다와 아들 요한네스를 낳게 된다. 요한네스라는 이름은 올라이의 아버지 이름에서 딴 것이다.

성인이 된 요한네스는 에르나와 가정을 이뤄 일곱 아이를 낳았고 이들은 홀멘 섬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
자세히 들여다보기
=====

요한네스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아주 짤막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후 2장에서는 요한네스의 입장에서 그가 겪은 죽음의 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
에르나가 죽은 후로는 마치 모든 온기가 그녀와 더불어 떠나버린 듯 집안이 너무도 썰렁해졌다.
(...)
어떻게 해도 집은 온전히 따듯해지지 않았다.
33~34페이지 中
-----

일곱 아이를 모두 출가시킨 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집에 남은 요한네스는 썰렁한 집안에서 생활하며 지낸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도 아니고 불을 때지 않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모든 온기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어떤 예고도 없이, 그렇게 느닷없이 떠나야 했다니, 죽기 전날 저녁 그녀는 이 식탁 앞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오랫동안 그래왔듯 그는 거실 옆방, 그녀는 위층 다락방에서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지,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41페이지 中
-----

아내가 떠난 순간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요한네스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첫 번째 복선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떠난 아내의 모습에서 요한네스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된다.


-----
그리고 그는 일어난다 그리고 문득 몸이 너무 가볍다, 무게가 거의 없는 듯하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이상한걸, 뼈마디와 근육 어디 아프고 뻐근한 데도 없이, 그는 가뿐하게 일어나 앉는다, 이거 완전히 풋내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요한네스는 침대 한쪽에 앉아 생각한다,
(...)
오늘은 웬일일까, 몸을 굽힐 때 통증이 전혀 없다, 일어서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듯 수월하다, 너무 아무렇지 않으니 이상하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35~36페이지 中
-----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면서 요한네스는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통증도 무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몸 상태에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
그는 창고 밖으로 나오다 문가에서 멈칫한다, 그리고 문득 그런 느낌이 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어떤 목소리가 그를 부르는 것 같다,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다시 들어가, 요한네스, 잘 둘려봐,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요한네스는 왠지 그 목소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42페이지 中
-----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을 수행해 나가는 듯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행동에 착각과 환각이 스며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둘 덧대어지며 확신했던 일들을 점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
다락문은 사뿐히 열린다, 무게가 전혀 없는 것처럼, 깃털처럼 가볍게, 이렇게 가볍게 열리다니,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둘러보니 물건들은 하나같이 금가루를 덧입힌 듯하다, 그리고 아니 이런 건 정말 처음 보는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정말 이상한걸, 그의 연장은 빠짐없이 제자리에 놓여 있다, 대부분이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인데 그 모든 것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44페이지 中
-----

그렇게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을 무심코 행하게 된다. 무게 때문에 열지 못했던 창고 다락을 찾아가 가볍게 문을 열고 오랜만에 내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들이 전개된다. 물건들이 하나같이 금가루를 덧입힌 듯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시 요하네스가 환상과 착각 속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요한네스는 언덕을 오르며 생각한다, 어쩐지 모든 것이 너무 다른 걸, 사물들도 더 가벼워 보이고, 뭔가가 땅에서부터 그리고 하늘로부터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47페이지 中
-----

요하네스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평소와 매우 다름을 느끼게 된다.


-----
손놀림이 조금 둔한 거 아닌가? 감각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것 같은데, 아닌가? 생각하며 팔을 들어보는데 간신히 올라간다 그리고 그의 길고, 앙상한 손가락이 보인다, 손톱이 서서히 푸르스름해진다
아니, 이런, 이게 뭐야, 요한네스는 말한다
정말 이상한걸, 그가 말한다
53페이지 中
-----

이른 새벽에는 분명 몸이 평소와 다르게 가벼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감각이 둔해지고 손톱이 서서히 푸르스름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이상해진 자신을 발견한 요하네스의 모습에서 뭔가 마지막을 향해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
그는 늘 아침이 싫었다, 오랜 세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토해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속이 거북하고 욕지기가 치솟다가도 대게는 별로 나오는 게 없었다,
(...)
한번 게우고 나면, 그러면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나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게우지 않았다, 원래 아침이면 늘 그랬는데, 에르나가 죽은 뒤로는. 역시 오늘 아침은 아무래도 뭔가 여느 날과 다른 것이다.
55페이지 中
-----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증상을 통해 생략된 그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가 죽은 이후 그는 아침마다 게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괴롭고 또 괴로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기분이 나아졌기에 어쩔 수 없는 패턴이었다. 더불어 꽤 오랜 시간을 아내 없이 혼자 살아왔음도 알 수 있다.


-----
어째서 오늘 이 흐린 아침 모든 것이 이토록 크고 선명하게 눈앞에 보일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75페이지 中
-----

평소와 다른 가벼운 몸, 토하지 않고 시작한 하루, 여기에 더해 크고 선명하게 보이는 시야는 어쩌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듯하다.


-----
요한네스는 페테르에게 얘기해도 될까 생각한다. 루어가 가라앉지 않고 배 밑바닥에서 일 미터쯤 아래 계속 멈춰 있다는 걸, 아무 이유도 없이
81페이지 中
-----

두 번째 복선 부분이다. 평소 즐기던 루어 낚시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루어가 가라앉지 않고 배 밑바닥에 멈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요한네스는 절친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자 페테르는 바다가 더 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을 한다.


-----
그럼 남는 건 땅분인가, 페테르가 말한다
82페이지 中
-----

땅으로 돌아가는 것! 죽음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
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 거냐, 그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깊은 절망에 휩싸인다, 싱네가 그를 보지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그저 그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기만 한다
(...)
그리고 싱네는 마주 다가와 그의 몸 한가운데로 쑥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를 통과해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싱네의 온기를 느낀다.
114페이지 中
-----

이후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된다. 막내딸 싱내를 집 앞에서 만나지만, 그녀는 요한네스를 알아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그저 자신의 몸을 통과해 지나칠 뿐이다.


-----
싱네는 아버지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이마가 차갑다 손을 잡아본다 역시 차다
(...)
손목을 잡아보니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입과 코에 손을 대보지만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돌아가셨구나, 싱네는 생각한다
120페이지 中
-----

연락이 되지 않는 아버지를 만나러 온 싱네는 침대에 잠든 듯 누워있는 아버지를 마주한다. 차가운 몸, 뛰지 않는 맥박, 느껴지지 않는 숨결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알게 된다.


-----
자네도 이제 죽었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 자네가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야지, 그가 말한다
128~129페이지 中
-----

이제 페테르는 직접적으로 요한네스에게 죽음을 언급하며, 친구의 죽음을 돕기 위해 왔노라 전한다.


-----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은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132페이지 中
-----

-----
한기도 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다면 마그다, 내 누이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럼 물론이지, 페테르가 말한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는데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래, 그렇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133페이지 中
-----

사후 세계가 두려웠던 요한네스는 자신이 죽었다는 소리에 궁금한 것들을 페테르에게 묻는다. 이에 대해 페테르는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의 다 있다며, 사랑하지 않는 건 없다고 답해준다.


=====
마무리
=====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워한다. 어쩌면 이 책이 그것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태어나고, 살다가, 사랑하고 이내 죽음에 이르는 삶의 원형을 통해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지만, 마지막 순간 요한네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 좋은 반려자를 만나 사랑하며 사는 것,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것, 화목한 가정을 꾸려 서로 아끼며 사는 것이 곧 삶을 이루는 구성요소이자,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삶의 마지막 순간 방문한 장소, 떠올린 사람, 습관과 행동들은 그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로, 환상 속에서 어쩌면 그것들을 짜 맞추며 떠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생전 그는 자신의 신념이 옳거나 맞는다고 확신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시점에 과연 그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을까? 아니,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아침에서 저녁으로 향해갈수록 확신했던 일들은 점차 불확실해진다.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끝내 확실성으로 향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버리고 싶지 않은 희망은, 사후세계에서만큼은 페테르의 말처럼 아픔도, 슬픔도, 무서움도 없는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