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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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옛이야기의 의미와 이야기가 가진 힘에 관한 이야기"



동화의 재해석 개념으로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이 책은 쉽게 볼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할 책처럼 느껴진다.


처음은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좋다. 일단 가볍게 읽어나가자. 그리고 두 번째는 여태껏 이야기로만 접하던 동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선 내용을 비롯해 역사, 사회, 종교 등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후 조금 더 심도 있게 읽어보자.


여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요즘은 같은 동화도 작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분명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러 동화 속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그것이 가진 의미와 그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인데, 이 책을 통해 이야기가 쓰였던 당시 상황들을 대입해놓고 보니, 마냥 즐겁게 볼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것이 어릴 때부터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떤 편협한 생각을 심어주었는지, 또 이것으로 인해 여성성에 어떤 치명타를 입혔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제라도 올바른 관점으로 동화를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다음 세대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여성이 약한 존재로만 전달되지 않을 것임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해 앞으로 여성들의 언어로 쓰일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는데,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거나 희생하지 않는,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어떤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할지 궁금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불문율이 있다. 공주님을 구하는 것은 왕자님, 늘 함정에 빠지는 것은 공주님, 마녀는 착한 사람을 해치는 나쁜 사람 등과 같은 설정이다.


어릴 때는 그저 공주를 용이나 악마로부터 지켜주는 왕자가 멋있고 보이고, 또 늘 어여쁘게 보이는 공주가 그저 좋게만 다가왔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항상 공주를 구하는 것은 왕자일까? 왜 항상 야수와 용 같은 존재들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아니라 공주만을 데려갈까? 마녀는 진짜 나쁜 존재일까? 왜 항상 공주들은 숲속을 헤맬까? 등등.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통속적인 클리셰가 왜 자주 등장했는지, 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꽤 오랜 시간 이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면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야기가 가진 힘과 무서움에 대해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동화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 더 자주, 많이 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력자의 논리를 전하기 위해 활용되었던 옛이야기를 이제는 새로운 지혜를 전하는 보물창고로써 활용해 보자. 이야기에는 강력한 호소력과 상징성이 담겨 있다. 또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생각을 이끌어내고, 행동으로 실행시켜보자. 낡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정수를 발견해 삶의 무기로 활용해 보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써야 할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지금 이 책을 꺼내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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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문장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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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통과의례를 따라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성장담은 옛날이야기에도 많고, 소설과 영화에도 많다. 어떤 이야기이든 소년과 소녀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옛날이야기에 숨어 있는 성장의 비밀은 감추어둔 보물과 같다. 비밀을 읽어내면 성장의 힘으로 삼을 수 있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 된다.

46~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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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권력자들에 의해 다소 왜곡된 시선으로 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한다.


전해지고 또 전해지며 쌓인 이야기에는 성장의 비밀이 숨겨져있기 때문이다. 만약 감춰진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옛이야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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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에서 왕자와 공주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부모 슬하라는 좁디좁은 왕국에서는 누구나 왕자와 공주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징계에서는 누구나 내면의 귀한 본성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왕자와 공주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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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왕자와 공주인가라는 의문에 이런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맞다! 부모 아래에서 자식은 누구나 귀한 왕자와 공주가 된다. 또 인간은 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이기에 왕자와 공주로 말할 수 있다.


이야기에 왕자와 공주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상징적, 존재론적 입장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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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남성 집단 문화에 길든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예쁜 여자를 얻는다고들 생각한다. 여성을 성공의 트로피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은 열패감에 젖는다. 이 열패감을 여성에게 돌릴 때 여성 혐오가 나타난다.


진짜 분노할 대상인 상층의 남성 대신 만만한 존재에게 열패감의 탓을 돌리는 굉장히 비겁하고 비열한 기제다. 어쩌면 이 또한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사고와 비판을 통해 이 본성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 자신을 다듬는 성숙한 남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본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언 존>이라는 옛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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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니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언젠가부터 여성을 마치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처럼 여기는 것이 좀 언짢게 다가왔는데, 옛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결과였구나 싶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어 굉장히 비겁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문화 같은 인식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본성이 아닌, 이성적 사고를 우선하는 남성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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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이야기와 신화에서 남자 영웅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떠나 온갖 여성을 만난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면 돌아와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늙은 여성을 껴안으며 "당신이 최고"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상징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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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좌표가 사라져서 귀환점이 사라지면 남성 주인공의 여정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여자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정의하려고 한다. 여성은 거울 역할을 하느라 남자가 주인인 언어 밖으로 밀려났고, 이해의 밖, 몰이해 속으로 추방당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다. 이것이 언어의 싸움, 이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여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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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내면의 숲에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6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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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남성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하는 것을 통해 성장을 하고, 여성은 내면의 숲을 탐험하는 것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남성의 중심 좌표는 고정 좌표인 기다리는 여성이라는 점이고, 여성에게는 본인 자신이 고정좌표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늘 한결같이 기다리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새롭게 쓰이는 여성들의 언어 속에서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가득 메워 보다 풍성한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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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에서 뱀과 용과 벌레는 19세기까지 같은 대상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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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뱀은 대지에 붙어서 대지의 지혜를 가장 많이 아는 존재로 숭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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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부장 신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이 하위 신격은 제거되었다. 즉, 여신이 가부장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여신의 하위 신격 중 뱀과 용과 벌레는 죽임을 당하고, 발가벗고 연약한 여성만 남아 구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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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와 용은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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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힘은 여성에게 내재한 커다란 힘을 말한다. 이 힘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고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므로 괴물로 표현되었고, 그 결과 메두사와 용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즉, 남성들의 공포가 투사된 여성 속이 거대한 힘의 상징이 바로 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용을 죽이고 발가벗고 무기력한 공주를 구하는 일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건네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이데올로기다.


"내게 위협적인 네 속의 강력한 힘은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척살할 것이고, 오로지 네 속의 연약한 부분만 골라서 사회에 편입시켜 살게 하겠다"라는.

9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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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신의 속성이던 용, 뱀, 벌레, 고래는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부장제가 도입되면서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남성들은 이를 괴물로 표현하면서 결국 자신들이 필요한 것만 취하고,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척살한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대물림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부장 신화를 믿다가 이제는 가부장적인 기독교를 믿게 된 로마인들 역시 메두사를 기둥 밑에 박아두는 것으로, 여성이 가진 힘을 누르고 그 위에 남성들의 제도를 세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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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공주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주는 용이라서 용과 함께 사라진다. 한 여자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어서, 어떤 속성은 사회가 억압하지만 어떤 속성은 부추기고 권장한다.


억압당하는 속성은 지배 세력에 의해 용, 바다 괴물, 뱀이라 불리고, 권장하는 속성에는 귀한(그러나 연약한) 공주라는 이름이 붙는다.


불행히도 남성이 지배권을 가진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지닌 강력한 힘은 대부분 배척되었고 연약한 여성성만 남을 수 있었다. 가부장 권력이 횡행할 때, 여성이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평범하게는 기가 센 년이 되고 심하면 광녀가 되어 기존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마녀가 되어 학살당한다.

(...)

여성들은 여러 얼굴 중 극히 일부만 내보일 수 있고 나머지는 억압해야 했기에, 여성성은 왜곡되고 분열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압제의 수단이 되었기에 그 매듭 역시 이야기로 풀어야 할 것이다.

106~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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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가 이 하나의 문장에 모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다양한 속성은 남성의 필요에 의해 선택적 속성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속성은 억제되거나 억압당했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속성은 연약한 여성성뿐이었다.


때문에 여성이 이에 반하는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기가 센 년이라는 취급을 받거나 혹은 마녀가 되어 학살당했다.


읽으면서도 어딘가 너무 익숙한 내용이라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에서 마녀가 왜 그토록 나쁜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또 기가 센 여성에 대해 안 좋게 표현하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반대로 강한 남성이 최고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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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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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원의 힘은 늘 여성적인 힘이다.

223, 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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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숲으로 들어가는 일을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구원의 힘은 '여성의' 힘이 아니라, '여성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혜와 관용, 이해, 따뜻함 온기 등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에는 가부장제에서 주로 사용되던 억압이나 지배의 방식으로 세상이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터부시되던 '여성적인 힘'을 활용하여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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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실에서만 살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누구라고 정의하고,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꿈을 꾸고 미래에 투사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힘이 된다. 마을과 숲을 누비는 힘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 밖의 현실을 바꾼다. 영웅의 모험담을 들으며 자란 아이가 영웅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나듯, 환상은 현실을 그렇게 구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에 숨어 있는 빛나는 보석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어떤 보석을 찾느냐에 따라 현실의 내가 얼마나 귀중한 사람이 되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233~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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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현실만 바라보며 살 수 없다. 꿈을 꾸고 환상을 넘나들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고 미래를 투사한다.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또 미래에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것을 꿈꾸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또 다른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만큼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우리의 염원과 꿈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이야기이기에, 더 많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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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빚기 시작할 때, 사람은 자신이 믿는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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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물려준 씨실과 날실이 바로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이 씨실과 날실을 가져다 우리의 이야기를 짜면 된다.

(...)

현실이 되는 기적을 이루어내길.

2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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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옛이야기라고 해서, 억압과 한정된 소재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저 모두 배제하라 말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 권한다.


이야기는 언제든 새롭게 짜면 되므로,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빚기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이 되고자 하는, 믿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소 편향된 이야기에 그동안 묶여 있었다면, 이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자.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다양한 세상을 그려보자.


분명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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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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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내면)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성장담에 대한 이야기>


1. 빨간 모자


●현대적 해석으로 봤을 때 나이 많은 할머니가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왠지 이상한 일이다.


●등장인물 분석

-숲으로 들어가는 것: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

-배고픈 늑대: 욕망의 상징

-할머니: 오래된 지혜를 상징

-빨간 모자: 자아를 상징

-사냥꾼: 초자아를 상징


빨간 모자의 이야기는 자아와 지혜와 욕구와 초자아가 한바탕 어우러지는 내면의 대통합이다. 그래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호소하는 메시지가 무의식중에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2. 아름다운 바실리사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실리사의 힘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실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해골 속 불꽃을 내면에 품은 존재가 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파할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빚어내는 창조의 능력(옷을 짓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왕의 아내로 상징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상징되는 단단한 자기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


1.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셋 중에 하나 고르기'라는 서브 모티프가 플롯을 매듭짓는 주된 장치로 등장하는 <베니스의 상인>에는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청혼하자 포셔는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한다.


어떤 상자를 고르는가는 곧 고르는 사람의 참된 본성, 신랑감의 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여러 속성 중 참된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2.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셋 중에 하나를 고르는 모티프는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는 전래동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금, 은, 동 도끼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지에 따라 참된 본성을 걸러낼 수 있다.



3. 마법에 걸린 공주님

이 이야기 역시 곡식 줍기, 열쇠 건지기, 옳은 것 알아맞히기라는 세 가지 시험을 거침으로써 본성 걸러내기에 동참한다.


곡식 줍기는 반복적이고 사소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알아보는 과제이고, 연못 속 열쇠 건지기는 도끼 찾기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옳은 것 알아맞히기는 참된 대상을 분별하는 시험으로 이 이야기에서는 여성적 속성을 통해 저주의 마법을 푸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 뉴캐슬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15명의 마녀들>


1650년 영국 뉴캐슬 지역에서 행해진 마녀 처형을 그린 판화에서는 남자들이 여성들을 목매달고 돈을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녀사냥의 본질이 여성의 손에서 지식과 권력과 부를 빼앗아 남자의 손에 넘기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결국 수백 년 동안 공포와 터부의 대상이었던 마녀는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1990년대 이후로 이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부른다. 즉, 마녀는 실존하지 않고 허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2022년, 스코틀랜드 정부는 16~18세기에 마녀로 기소된 4천여 명의 사람과 실제로 처형된 사람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400년 만에 마녀사냥이 허구에 바탕한 폭력이었음을 권력이 인정한 셈이다. 이렇듯 여자를 복속시켜 지배하려는 작업은 현실계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상상계에서는 용을 죽이고 구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용과 공주의 관계는 물론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주는 이야기>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2015년 스티븐 렌턴의 그림책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는 용과 공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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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내면의 거대한 힘을 갈무리해서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우유, 안아주기, 그리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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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여성이 내면의 용을 잘 갈무리해서 성장하려면 우유로 상징되는 양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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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기는 관용과 이해, 따뜻함과 온기와 같은 힘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책, 즉 지식이다. 여성이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공급받으며 자랄 때 내면의 용은 더 이상 부정적인 힘을 내뿜는 괴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힘을 발휘한다.

111~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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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한 적법한 이야기>


메리 포프 오스본의 그림책 <케이트와 콩나무>

사라져야 하는 권력자와 새로 부상하는 상속자 사이의 오랜 원형을 담고 있는 <잭과 콩나무>를 새롭게 재해석해서 쓴 메리 포프 오스본의 <케이트와 콩나무>는 성별과 나이를 넘나드는 상속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지분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딸을 비롯하여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도 상속자의 자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원전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변용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잘 쓰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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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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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뭔가 구체화된 이야기의 매력을 알게 된 느낌이다. 덕분에 한동안은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살듯 하다.


더불어 여러 분야의 책 중에 '소설' 장르, 즉 이야기를 담은 분야를 낮게 보는 사람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가 주는 힘과 감동,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예전에 재밌게 보던 애니메이션을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내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것 같다.


가부장제에 찌들어 여성성이 무너진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꽤 불편한 심정이었다는 것을, 또 그것이 아이들이 즐겨보는 이야기였기에 더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어쩐지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어른을 위한 동화나 잔혹동화를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 새로 써야 할 이야기들을 낱낱이 파헤쳐 보며 나만의 보석을 찾아 헤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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