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블랙에디션) 마음시선 클래식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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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어린 왕자>를 꽤 오랜만에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다. 어릴 적에는 어린 왕자의 지구별 여행기 혹은 애어른 같은 이야기를 하는 신기한 소년이라는 컨셉에 초점을 두고 가볍게 읽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하고 학습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여느 어른보다 훨씬 나은 어린 왕자를 보며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어른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책임지는 것, 나만의 유일한 것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더불어 잃어버린 낭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구성: 블랙에디션 도서+초판 한정 엽서 2장
여태껏 수많은 <어린 왕자>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만큼은 마주하는 순간 소장 욕구가 뿜뿜 솟아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블랙에디션 바탕에 고급스러운 금박으로 디자인된 표지는 보는 순간 반할 만큼 예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부드러운 촉감과 초판 한정으로 구성된 2장의 엽서는 어쩐지 특별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이즈도 일반 도서에 비해 커다란 판형으로 제작되어 글씨 또한 큼지막하고 그림도 한 면을 채울 만큼 크게 들어가 있는데, 때문에 아이들도 읽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어린 왕자>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 B-612 호에서 여러 별들을 거쳐 지구에 도착한 소년을 만나 겪은 일을 6년이 지난 후 추억하며 쓴 이야기로,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한편,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인간의 본질적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짜 우정이란 무엇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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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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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20년 공군에 입대해 비행기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군용기 조종 자격증을 땄다. 제대한 뒤 민간 항공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아프리카 북서부와 프랑스를 잇는 우편 비행을 담당했다.

비행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는데, 이때 페미나 문학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종군하여 군용기 조종사가 되었다. 1944년, 연합군 반격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찰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1943년 발표한 <어린 왕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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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쓰게 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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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북아메리카에서 망명 중이던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절친한 친구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어린 왕자>를 썼다고 한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절친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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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일곱 번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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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 강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다 자신의 숭배자로 보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칭찬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은 결코 듣지 못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술꾼은 술 마시는 게 창피한 나머지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네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사업가가 살고 있었다.
사업가는 스스로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자 정확한 사람이라 말하며 반복적으로 별들을 관리하며 세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가로등 지기가 가로등을 관리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별은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방문한 별 중 제일 작았다. 가로등 지기는 아침이면 가로등을 켰다가 저녁이면 불을 끄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기가 유독 아쉬웠는데, 그건 그 별이 해지는 광경을 날마다 1,440번이나 볼 수 있는 축복 받은 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여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는 지리학자가 있었다.
그 별은 그전 별보다 열 배는 더 컸는데, 아주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나이 든 신사가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며 그들이 본 것을 기록하는 일을 했는데, 때때로 흥미로운 게 있으면 탐험가의 됨됨이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 신사의 추천으로 어린 왕자는 '지구'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일곱 번째로 방문한 별이 지구였다.
지구는 보통 별과는 달랐다. 수많은 왕과 지리학자, 사업가들과 술꾼들, 그 외에도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을 포함해 20억 명의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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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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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해 지는 광경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
잠시 뒤에 너는 또 이렇게 말했어.

"있잖아 ···. 나는 몹시 슬플 때면 해 지는 광경을 보고 싶거든 ···."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봤던 날, 넌 그렇게나 슬펐던 거야?"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32~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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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 도착하기 전 다섯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 어린 왕자는 유달리 그 별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이유는 해지는 광경을 무려 1440번이나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어쩌면 이때도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홀로 두고 온 장미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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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가 수백수천만 개의 별 중에 단 한 곳에만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사랑한다면, 그는 별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 생각할 거야.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이 꺼져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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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수많은 물건과 사람이 존재해도 결국 내가 마음을 내어준, 사랑하는 단 하나의 존재만이 유일한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항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묵살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울분을 토하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라고 외치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 어쩐지 비통함과 억울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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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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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건 묻고 또 묻는 아이들의 습성이 떠올라 어쩐지 웃음이 배어 나온 문장이다. 더불어 무엇에 대해 탐구하고, 알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의 열정이 느껴져 귀찮다는 이유로 넘기기보다 정성스레 답변을 해주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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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나한테 너는 아직은 수많은 사내아이 중 하나에 불과해. 네가 필요하지 않지. 그리고 너에게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나는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돼. 나에게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너에게도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지."
8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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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물음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여우의 답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의미와 이것이 가지는 무게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누군가를 그냥 '아는'것과는 다른,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가지는 깊은 유대감은 어쩌면 평생에 단 하나의 사랑 혹은 평생의 우정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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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날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나도 몹시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가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이해하고 싶은 것도 많거든."
"누구든지 자기가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이해할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것들만 사니까. 하지만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제 더는 친구가 없는 거야. 친구를 원한다면 날 길들여줘."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하지."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그래, 거기 풀밭에. 내가 곁눈으로 널 볼 건데,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를 낳기 딱 좋거든. 대신에 날마다 내 옆으로 조금씩, 좀 더 가까이 와서 앉아."

(...)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널 맞아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뭐든 적절한 의식을 따라야 하는 거야."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 또한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어느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달리,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88~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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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의미를 가르쳐 준 후 이내 여우는 선뜻 자신을 길들여 달라 청한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에 어린 왕자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지만, 여우는 자신이 길들인 것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한번 친구가 되기를 청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서 우정을 파는 가게는 없다며 여우는 친구가 되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준다. 먼저 참을성을 기를 것, 그런 후 적절한 의식을 따를 것을 권한다.

서로의 관계를 좁히는 데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또 선을 지키며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또 함께 하는 시간을 특별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우정을 키우는 방법이라 전하며 '찐 우정'에 대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우정이란 무엇인지, 또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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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해. 그건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네 장미꽃이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이 있어.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9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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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언급되는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것은 내가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것,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것.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보다 큰 가치를 두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렇듯 엉망진창인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점, 그리고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는 점을 명심하자.

더불어 소중한 것의 가치는 내가 들인 시간에 비례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자. 시간을 들인 만큼 애정이 깃들고,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기에 우리에게 의미로 남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길들인 것, 관계를 맺은 것에 있어서 만큼은 반드시 책임을 지자. 책임지는 자세야말로 인연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꿀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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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다. 앞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의 인상에 깊이 남기려고 다시 그렸다. 바로 이곳에서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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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흔적만 남은 그림을 통해 과거 어린 왕자가 자리했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만의 풍경으로 채워 넣어 본다.

그 속에는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왕자와 유일무이한 친구가 된 여우, 그리고 활짝 피어난 장미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어른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는 조종사와 수리된 비행기의 모습도 함께 그려 넣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슬프지 않은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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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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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고전을 어른이 된 이후에 다시 읽어보면 왜 고전을 꼭 다시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고전이 주는 맛이 있다.

읽은 시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크게 다가왔던 것이 작게 보이기도 하며, 감동이 두 배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스토리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들에게 말하건대, 어릴 적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이나 동화 등을 다시 한번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취향에 따라 위인전이나 전기문도 좋고, 고전이 담긴 이야기도 좋다.

어릴 적 쉽게 술술 읽혔던 책이 다시 보일 것이다. 대신 그냥 스토리만 읽기보다는 생각을 조금 비틀어서 다른 관점에서 읽어보거나, 왜라는 물음을 붙여보자. 읽는 방식만 바꿔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놓치고 살았던 정체성이나 중요한 가치, 혹은 삶의 지혜를 다시 다시 발견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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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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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옛이야기의 의미와 이야기가 가진 힘에 관한 이야기"



동화의 재해석 개념으로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이 책은 쉽게 볼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 이상은 읽어야 할 책처럼 느껴진다.


처음은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좋다. 일단 가볍게 읽어나가자. 그리고 두 번째는 여태껏 이야기로만 접하던 동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선 내용을 비롯해 역사, 사회, 종교 등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후 조금 더 심도 있게 읽어보자.


여기에 더해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요즘은 같은 동화도 작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버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분명 차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여러 동화 속 이야기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그것이 가진 의미와 그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인데, 이 책을 통해 이야기가 쓰였던 당시 상황들을 대입해놓고 보니, 마냥 즐겁게 볼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것이 어릴 때부터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떤 편협한 생각을 심어주었는지, 또 이것으로 인해 여성성에 어떤 치명타를 입혔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제라도 올바른 관점으로 동화를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다음 세대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여성이 약한 존재로만 전달되지 않을 것임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해 앞으로 여성들의 언어로 쓰일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졌는데,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거나 희생하지 않는,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어떤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할지 궁금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불문율이 있다. 공주님을 구하는 것은 왕자님, 늘 함정에 빠지는 것은 공주님, 마녀는 착한 사람을 해치는 나쁜 사람 등과 같은 설정이다.


어릴 때는 그저 공주를 용이나 악마로부터 지켜주는 왕자가 멋있고 보이고, 또 늘 어여쁘게 보이는 공주가 그저 좋게만 다가왔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항상 공주를 구하는 것은 왕자일까? 왜 항상 야수와 용 같은 존재들은 아줌마나 아저씨가 아니라 공주만을 데려갈까? 마녀는 진짜 나쁜 존재일까? 왜 항상 공주들은 숲속을 헤맬까? 등등.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통속적인 클리셰가 왜 자주 등장했는지, 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꽤 오랜 시간 이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면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야기가 가진 힘과 무서움에 대해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동화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 더 자주, 많이 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권력자의 논리를 전하기 위해 활용되었던 옛이야기를 이제는 새로운 지혜를 전하는 보물창고로써 활용해 보자. 이야기에는 강력한 호소력과 상징성이 담겨 있다. 또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생각을 이끌어내고, 행동으로 실행시켜보자. 낡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정수를 발견해 삶의 무기로 활용해 보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써야 할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지금 이 책을 꺼내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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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문장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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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통과의례를 따라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성장담은 옛날이야기에도 많고, 소설과 영화에도 많다. 어떤 이야기이든 소년과 소녀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옛날이야기에 숨어 있는 성장의 비밀은 감추어둔 보물과 같다. 비밀을 읽어내면 성장의 힘으로 삼을 수 있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 된다.

46~4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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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권력자들에 의해 다소 왜곡된 시선으로 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한다.


전해지고 또 전해지며 쌓인 이야기에는 성장의 비밀이 숨겨져있기 때문이다. 만약 감춰진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옛이야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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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에서 왕자와 공주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부모 슬하라는 좁디좁은 왕국에서는 누구나 왕자와 공주이기 때문이다. 한편 상징계에서는 누구나 내면의 귀한 본성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왕자와 공주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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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왕자와 공주인가라는 의문에 이런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맞다! 부모 아래에서 자식은 누구나 귀한 왕자와 공주가 된다. 또 인간은 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이기에 왕자와 공주로 말할 수 있다.


이야기에 왕자와 공주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상징적, 존재론적 입장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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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남성 집단 문화에 길든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예쁜 여자를 얻는다고들 생각한다. 여성을 성공의 트로피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은 열패감에 젖는다. 이 열패감을 여성에게 돌릴 때 여성 혐오가 나타난다.


진짜 분노할 대상인 상층의 남성 대신 만만한 존재에게 열패감의 탓을 돌리는 굉장히 비겁하고 비열한 기제다. 어쩌면 이 또한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사고와 비판을 통해 이 본성이 향하는 방향을 돌려 자신을 다듬는 성숙한 남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본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이언 존>이라는 옛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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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니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언젠가부터 여성을 마치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처럼 여기는 것이 좀 언짢게 다가왔는데, 옛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결과였구나 싶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어 굉장히 비겁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문화 같은 인식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본성이 아닌, 이성적 사고를 우선하는 남성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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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이야기와 신화에서 남자 영웅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떠나 온갖 여성을 만난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면 돌아와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늙은 여성을 껴안으며 "당신이 최고"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상징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

(...)

고정 좌표가 사라져서 귀환점이 사라지면 남성 주인공의 여정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여자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정의하려고 한다. 여성은 거울 역할을 하느라 남자가 주인인 언어 밖으로 밀려났고, 이해의 밖, 몰이해 속으로 추방당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다. 이것이 언어의 싸움, 이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여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한다.

(...)

여성은 내면의 숲에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62~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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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남성은 전 세계를 돌며 모험을 하는 것을 통해 성장을 하고, 여성은 내면의 숲을 탐험하는 것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남성의 중심 좌표는 고정 좌표인 기다리는 여성이라는 점이고, 여성에게는 본인 자신이 고정좌표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늘 한결같이 기다리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새롭게 쓰이는 여성들의 언어 속에서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가득 메워 보다 풍성한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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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에서 뱀과 용과 벌레는 19세기까지 같은 대상을 가리켰다.

(...)

원래 뱀은 대지에 붙어서 대지의 지혜를 가장 많이 아는 존재로 숭앙되었다.

(...)

그러나 가부장 신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이 하위 신격은 제거되었다. 즉, 여신이 가부장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여신의 하위 신격 중 뱀과 용과 벌레는 죽임을 당하고, 발가벗고 연약한 여성만 남아 구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

메두사와 용은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다.

(...)

메두사의 힘은 여성에게 내재한 커다란 힘을 말한다. 이 힘은 그 자체로 파괴적이고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힘이므로 괴물로 표현되었고, 그 결과 메두사와 용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즉, 남성들의 공포가 투사된 여성 속이 거대한 힘의 상징이 바로 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용을 죽이고 발가벗고 무기력한 공주를 구하는 일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건네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이데올로기다.


"내게 위협적인 네 속의 강력한 힘은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척살할 것이고, 오로지 네 속의 연약한 부분만 골라서 사회에 편입시켜 살게 하겠다"라는.

9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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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여신의 속성이던 용, 뱀, 벌레, 고래는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부장제가 도입되면서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남성들은 이를 괴물로 표현하면서 결국 자신들이 필요한 것만 취하고,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척살한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대물림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가부장 신화를 믿다가 이제는 가부장적인 기독교를 믿게 된 로마인들 역시 메두사를 기둥 밑에 박아두는 것으로, 여성이 가진 힘을 누르고 그 위에 남성들의 제도를 세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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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공주를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주는 용이라서 용과 함께 사라진다. 한 여자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어서, 어떤 속성은 사회가 억압하지만 어떤 속성은 부추기고 권장한다.


억압당하는 속성은 지배 세력에 의해 용, 바다 괴물, 뱀이라 불리고, 권장하는 속성에는 귀한(그러나 연약한) 공주라는 이름이 붙는다.


불행히도 남성이 지배권을 가진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지닌 강력한 힘은 대부분 배척되었고 연약한 여성성만 남을 수 있었다. 가부장 권력이 횡행할 때, 여성이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평범하게는 기가 센 년이 되고 심하면 광녀가 되어 기존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마녀가 되어 학살당한다.

(...)

여성들은 여러 얼굴 중 극히 일부만 내보일 수 있고 나머지는 억압해야 했기에, 여성성은 왜곡되고 분열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여성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압제의 수단이 되었기에 그 매듭 역시 이야기로 풀어야 할 것이다.

106~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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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이야기가 이 하나의 문장에 모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다양한 속성은 남성의 필요에 의해 선택적 속성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속성은 억제되거나 억압당했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속성은 연약한 여성성뿐이었다.


때문에 여성이 이에 반하는 강력한 힘을 드러내면, 기가 센 년이라는 취급을 받거나 혹은 마녀가 되어 학살당했다.


읽으면서도 어딘가 너무 익숙한 내용이라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에서 마녀가 왜 그토록 나쁜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또 기가 센 여성에 대해 안 좋게 표현하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반대로 강한 남성이 최고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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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

내면의 숲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구원의 힘은 늘 여성적인 힘이다.

223, 2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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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숲으로 들어가는 일을 '자신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구원의 힘은 '여성의' 힘이 아니라, '여성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혜와 관용, 이해, 따뜻함 온기 등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에는 가부장제에서 주로 사용되던 억압이나 지배의 방식으로 세상이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터부시되던 '여성적인 힘'을 활용하여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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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현실에서만 살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누구라고 정의하고,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꿈을 꾸고 미래에 투사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힘이 된다. 마을과 숲을 누비는 힘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 밖의 현실을 바꾼다. 영웅의 모험담을 들으며 자란 아이가 영웅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나듯, 환상은 현실을 그렇게 구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에 숨어 있는 빛나는 보석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어떤 보석을 찾느냐에 따라 현실의 내가 얼마나 귀중한 사람이 되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233~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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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현실만 바라보며 살 수 없다. 꿈을 꾸고 환상을 넘나들며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고 미래를 투사한다.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또 미래에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것을 꿈꾸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또 다른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만큼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우리의 염원과 꿈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이야기이기에, 더 많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이야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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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빚기 시작할 때, 사람은 자신이 믿는 모습이 된다.

(...)

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물려준 씨실과 날실이 바로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이 씨실과 날실을 가져다 우리의 이야기를 짜면 된다.

(...)

현실이 되는 기적을 이루어내길.

2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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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옛이야기라고 해서, 억압과 한정된 소재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저 모두 배제하라 말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 권한다.


이야기는 언제든 새롭게 짜면 되므로,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빚기 시작한다면 분명 자신이 되고자 하는, 믿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소 편향된 이야기에 그동안 묶여 있었다면, 이제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자. 더 많은 꿈을 꾸고, 더 다양한 세상을 그려보자.


분명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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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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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내면)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성장담에 대한 이야기>


1. 빨간 모자


●현대적 해석으로 봤을 때 나이 많은 할머니가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왠지 이상한 일이다.


●등장인물 분석

-숲으로 들어가는 것: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

-배고픈 늑대: 욕망의 상징

-할머니: 오래된 지혜를 상징

-빨간 모자: 자아를 상징

-사냥꾼: 초자아를 상징


빨간 모자의 이야기는 자아와 지혜와 욕구와 초자아가 한바탕 어우러지는 내면의 대통합이다. 그래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호소하는 메시지가 무의식중에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2. 아름다운 바실리사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실리사의 힘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실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해골 속 불꽃을 내면에 품은 존재가 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파할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빚어내는 창조의 능력(옷을 짓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왕의 아내로 상징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상징되는 단단한 자기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


1.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셋 중에 하나 고르기'라는 서브 모티프가 플롯을 매듭짓는 주된 장치로 등장하는 <베니스의 상인>에는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청혼하자 포셔는 금, 은, 납으로 된 세 개의 상자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한다.


어떤 상자를 고르는가는 곧 고르는 사람의 참된 본성, 신랑감의 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여러 속성 중 참된 본성 걸러내기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2.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셋 중에 하나를 고르는 모티프는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는 전래동화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금, 은, 동 도끼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지에 따라 참된 본성을 걸러낼 수 있다.



3. 마법에 걸린 공주님

이 이야기 역시 곡식 줍기, 열쇠 건지기, 옳은 것 알아맞히기라는 세 가지 시험을 거침으로써 본성 걸러내기에 동참한다.


곡식 줍기는 반복적이고 사소한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알아보는 과제이고, 연못 속 열쇠 건지기는 도끼 찾기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옳은 것 알아맞히기는 참된 대상을 분별하는 시험으로 이 이야기에서는 여성적 속성을 통해 저주의 마법을 푸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국 뉴캐슬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15명의 마녀들>


1650년 영국 뉴캐슬 지역에서 행해진 마녀 처형을 그린 판화에서는 남자들이 여성들을 목매달고 돈을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녀사냥의 본질이 여성의 손에서 지식과 권력과 부를 빼앗아 남자의 손에 넘기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결국 수백 년 동안 공포와 터부의 대상이었던 마녀는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1990년대 이후로 이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부른다. 즉, 마녀는 실존하지 않고 허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2022년, 스코틀랜드 정부는 16~18세기에 마녀로 기소된 4천여 명의 사람과 실제로 처형된 사람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400년 만에 마녀사냥이 허구에 바탕한 폭력이었음을 권력이 인정한 셈이다. 이렇듯 여자를 복속시켜 지배하려는 작업은 현실계에서는 마녀사냥으로, 상상계에서는 용을 죽이고 구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용과 공주의 관계는 물론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주는 이야기>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2015년 스티븐 렌턴의 그림책 <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는 용과 공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여성성을 잘 키우는 법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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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내면의 거대한 힘을 갈무리해서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우유, 안아주기, 그리고 책이다.

(...)

그러니까 여성이 내면의 용을 잘 갈무리해서 성장하려면 우유로 상징되는 양분이 필요하다.

(...)

안아주기는 관용과 이해, 따뜻함과 온기와 같은 힘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책, 즉 지식이다. 여성이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공급받으며 자랄 때 내면의 용은 더 이상 부정적인 힘을 내뿜는 괴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힘을 발휘한다.

111~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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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반영한 적법한 이야기>


메리 포프 오스본의 그림책 <케이트와 콩나무>

사라져야 하는 권력자와 새로 부상하는 상속자 사이의 오랜 원형을 담고 있는 <잭과 콩나무>를 새롭게 재해석해서 쓴 메리 포프 오스본의 <케이트와 콩나무>는 성별과 나이를 넘나드는 상속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의 지분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딸을 비롯하여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도 상속자의 자격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책은 원전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변용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잘 쓰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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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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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뭔가 구체화된 이야기의 매력을 알게 된 느낌이다. 덕분에 한동안은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살듯 하다.


더불어 여러 분야의 책 중에 '소설' 장르, 즉 이야기를 담은 분야를 낮게 보는 사람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가 주는 힘과 감동,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언젠가 예전에 재밌게 보던 애니메이션을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내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것 같다.


가부장제에 찌들어 여성성이 무너진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꽤 불편한 심정이었다는 것을, 또 그것이 아이들이 즐겨보는 이야기였기에 더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 어쩐지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어른을 위한 동화나 잔혹동화를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 새로 써야 할 이야기들을 낱낱이 파헤쳐 보며 나만의 보석을 찾아 헤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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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온 언니의 편지
김보림.김다인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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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3년 5월, 우애가 깊었던 언니가 루푸스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를 그리며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동생의 회고록이자, 작가가 되고자 했던 언니의 바람을 담은 진혼과도 같은 책이다.


특히 언니의 일본 유학생활을 기점으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주고받았던 편지글 중심으로 담겨있는데, 곁에 함께 있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유난히 남달랐던 우애 때문인지 작년 언니를 떠나보내고 추억을 그리고자 보관하던 편지글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학창 시절부터 언니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주고받은 편지글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유학 생활은 어땠는지, 또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동생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으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나이차가 3살밖에 나지 않음에도 마치 큰 어른과 아이의 대화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글에서 훈장님 같은 말투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배경이 되는 시기가 1990년대 초, 중반인데, 자매 사이에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는 것이 당시에도 조금 특이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번째는 장녀 딸이라는 표현이다. 엄마가 첫째 딸에게 쓰는 편지와 첫째 딸이 엄마에게 쓴 편지글에서 '장녀 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흔하게 쓰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첫째 딸 혹은 큰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읽으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언니가 보낸 편지글이나 엽서를 동생이 직접 타이핑하여 컴퓨터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원문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는데, 이를테면 하트 두 개, 한자 표기, 느낌표 등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편지글 말미에는 언니가 보낸 편지의 원문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데, 여행한 장소나 의미 있는 순간들이 담긴 엽서를 정성스레 골라 그곳에서 느낀 감정이나 상황들을 빼곡히 채운 것을 통해 얼마나 동생을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전체적으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여기에는 부모님 외에도 알 수 없는 JS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실려있다.


해외 생활을 해서인지 한글, 한자, 일본어, 영어 외에도 외국어를 두루 섞어 쓰는 방식으로 편지를 썼는데, 그 사이에서 유달리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시시콜콜한 안부 인사이자 동생을 염려하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마치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 같은, 이를 잘 닦아라, 학업에 정진해라, 꿈을 가져라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이렇듯 멀리 있으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서 얼마나 둘의 우애가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이런 언니의 내리사랑이 서로에게 익숙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쪽만 일방적인 경우 이렇듯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었을 테니)


편지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타국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동생에 대한 염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끔씩 보이는 유머러스함을 통해 언니의 장난기를 엿볼 수 있는데 몇 부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타지 생활의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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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널랑은 유학 같은 건 생각지 마라. 고독함이 느껴지는 것만큼 괴로움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란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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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지금 무척 외로움에 지쳐 있는 것 같다. 내면에 밀물처럼 다가드는 외로움, 어디론가 날아가기 위해 헛된 몸짓으로 '파닥'거려 보아도 쇠창살로 둘러싸인 차갑고 음습한 새장 속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만이 명백해질 따름이다. 언니의 방황의 표면을 조금만 벗겨 보아도 그곳엔 여러 겹의 고독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넌 알 수 있을 게다.

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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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전화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목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언니는 곧 견디지 못하곤 하는구나.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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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서 느낀 거지만, '고립'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그 밑바닥까지 이해된 듯하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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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이 꽤 외롭고 고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단한 집념과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에 비해 종종 느껴지는 외로움에 꽤나 힘들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초반에 외로움에 대한 글이 자주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기댈 곳 없는 타향살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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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너의 모의고사가 걱정이다. 자는 시간 같은 걸 잘 조정해서 꾸준히 학력고사 당일까지 밀고 나가면 될 것 같다. 미안하다. 옆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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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는 것 주의하고, 아침에 학교 지각하지 말기.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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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기를 그리고 많이 공부하기를. 거대한 해안에 도착하기까지... 열심히 저어라.

4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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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늘 꼬박꼬박 챙겨 먹기를. 아침에 JS와 함께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꼭 먹고 가라. 그게 힘들면 빵이랑 우유라도 먹고. 환절기인데 감기 주의하고, 찬물에 세수나 머리 감는 일이 없도록.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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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이 결코 달지만은 않으며, 혼자 갖는 시간들이 결코 즐겁지는 않더라도 그 안에 자신의 목표를 향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결과는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바람직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1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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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편지에는 이토록 절절한 동생을 향한 걱정과 염려가 베여있다. 단순한 안부에서 그치기 보다, 디테일한 부분을 세밀하게 챙기며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함께 전한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꼬맹이 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3살 차이인데 말이다.



■언니의 유머러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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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림은 왜 그리 머리에 집착을 하는 걸까' 심층 분석해 본 결과, 얼굴이 좀 안 생긴 아해들이 머리에 지나칠 정도로 애착심을 가진다는 게 그 결론이었다. 이의 있어?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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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정한다 해도 언니는 너를 밀어 줄 테니까(벼랑 말고)

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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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편지 곳곳에는 동생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유머도 발견할 수 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헤어스타일에 집작하는 동생을 향해 언니는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집착하는 거라며 강한 팩폭을 날리며 이의 있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사춘기나 대학생 새내기 시절에는 으레 신경 쓰는 부분인데, 언니는 오히려 자매의 입장에서 그만 신경 쓰라는 말을 돌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매들의 일상에서 흔히 하는 농담 섞인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이라 이 글을 읽다 순간 푸핫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는 든든한 언니의 모습 뒤에 괄호에 담은 (벼랑 말고)라는 말에서 슬며시 웃음이 세어 나온다. 훈장님 같은 말투에 섞인 이런 유머 덕에 자매는 자매인가 보다 싶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저자는 어쩌면 언니의 편지글을 이토록 정성스레 엮은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살뜰히 챙겨주고 아껴주었던 언니였기에,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아픔이 더 컸으리라.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언니를 추억하고 기릴 수 있는 마지막 앨범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언니에게는 못다 한 작가로서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자 남은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하며 볼 수 있는 흔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후 언니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동생의 애도 방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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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 삶과 인간관계로부터 지친 당신에게
윤글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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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때문에 힘든 순간을 보낸 적이 있는가? 혹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책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운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펼쳐들고 잠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저자는 일상 속에서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수많은 상황들을 섬세하게 집어내며 괜찮다, 애썼다 말한다. 그리고 이내 진심을 담아 이제 웃는 날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며 토닥토닥 문장으로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혼란스러울 때,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을 때, 타인의 말에 상처받았을 때, 남에게 휘둘리며 내가 사라진 것 같다 느끼는 순간 등 살면서 수없이 나를 무너뜨리는 순간들에 대해 저자는 마음을 담은 위로를 건네며 그 순간을 이겨낼 방법들도 함께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절대 이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라며, 지금부터 저자가 전하는 공감의 글을 통해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삶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받고 지친 나와 당신을 위한 저자의 진심 어린 위로의 글을 가득 담고 있다. 더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어 마음의 위로뿐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마저 든다.


살다가 문득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 책에 담긴 지혜를 빌어 현명하게 상황을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힘든 순간 절대 자기애와 자존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따뜻하고 다정한 저자의 글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어느 누구에게나 갈팡질팡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

괜찮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럴 때는 그냥 그런대로 미지근하고 밍밍하게 지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지내봤음에도 마땅한 돌파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면 현재 자신이 너무 많은 생각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찬찬히 잡념을 비워 내는 연습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 가까운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해도 좋고, 영상을 보며 요리를 따라 해 봐도 좋고, 매일 잠들기 전에 간단한 일기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이것저것 따지면서 머뭇거리거나 의미 없이 배회만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자. 세상을 꼭 복잡하고 어렵게만 살 필요는 없다.

36~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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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복잡하거나, 생각이 많아 잠 못 드는 날들이 반복된다면 의미 없이 생각에만 갇혀있지 말고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 보자. 산책을 해도 좋고,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거나 취향에 맞는 요리를 해도 좋다. 혹은 글쓰기를 통해 머릿속의 생각들을 꺼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다.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생각을 비워내고 가볍게 세상을 살아보자. 때론 복잡한 것보다 쉽고 간단한 것이 정답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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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을 좀 믿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 너무 고생이 많았고 마주친 어려움을 잘 물리쳐 왔으며 맡은 것들을 역시 너무 잘 해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 정말 잘하고 있다.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당신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원하는 결실을 끌어올 만큼의 아주 굉장한 힘을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믿고 열심히 끌어당기자. 바라는 일을 간절하고 꾸준하게 끌어당기다 보면 결국 그것에 가까워지게 되어 있으니까.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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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할 때가 있다. 못할 거라고,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내용이라며 주눅 들어 하지만 사실은 지금까지 잘해왔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고 간절히 바라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자. 결국 당신은 그것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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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이다. 그래서 대응할 가치도 없는 왜곡에 쉽게 흔들려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미련 없이 무시해 버리자. 이왕이면 예쁘고 따뜻한 말들에 더 집중하며 지내자. 그러다가 과하게 선을 넣는 비난에는 떳떳이 맞서며 목소리도 시원하게 내면서 살자.

(...)

세상에 아파도 되는 사람은 없다. 아파도 되는 이유도 없다. 그러니 당신이 행복해야 할 근거는 많다. 위축되지 말고 당당해지자.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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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언가에 마음을 주었다고 해도 당신이 약자일 이유는 없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과한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자. 혹은 미련 없이 무시하며 상황을 종결시켜도 좋다.


보다 따뜻하고 예쁜 말들 속에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관계에 더 집중해 보자. 당신은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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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문장 하나하나에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는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주제가 민감한 내용이라면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전달하는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인지, 벌어진 상황에 꼭 필요한지, 당사자에게 상처나 피해를 줄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이것에 무지한 사람과의 대화는 참 영양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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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마음이 들어 있고 마음에는 생각이 묻어 있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날카로운 말을 건넨다면 그 말은 곧 당신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길 것이다.


그렇기에 말은 늘 조심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말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는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관계를 깊이 하지 마라. 당신의 삶에 결코 좋을 것이 없다. 부디 긍정적인 말을 나누는 이들과 인연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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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 인해 당신이 겪어야만 했던 힘듦은 얼마든 미워해도 되지만 한때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던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는 말자. 그것은 참 멋이 없는 일이니까. 벌어진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마주한 결과에는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깨달음이 존재한다. 시련을 좀 겪었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이 순간에도 더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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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은 포함시키지는 말자. 당신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저 벌어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련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자.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성장해 나간다.


실패를 통해 나를 더 사랑하고 성장해 가는 것에 집중한다면 적어도 후에 나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못난 나를 마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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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생각들


하나, 모든 사람을 좋게 대할 필요는 없다.

둘,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셋, 그 누구도 당신에게 상처를 줄 권리는 없다.

넷, 당신이 있어야 당신의 세상도 있을 수 있다.

다섯, 무시할 것은 그냥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여섯, 가끔은 다 내려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곱,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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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인생 조언 일곱 가지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있어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일곱 가지 사항들은 마음 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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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잘하는 방법


하나, 눈치를 보지 않기.

둘,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기

셋, 여지를 남기지 않기.

넷, 이해할 만한 이유를 덧붙이기.

다섯, 알맞은 시기를 활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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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생각보다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삶에서 거절은 필수다. 그럼에도 여전히 머뭇거려진다면, 저자가 제안하는 거절을 잘하는 방법을 활용해 보자.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되 단호하고 명백한 태도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상대방에게 거절의 의사 표현을 해보자. 당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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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관심도, 배려도, 이해도, 용서도, 포용도,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부터 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자.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사람과의 관계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지속해 봤자 결국 감정 낭비만 심해질 뿐이다. 그런 사람과의 교류는 이만하면 됐다. 그래, 그만하자. 고작 그 정도의 사람에게 마음을 헤프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당신이 애쓰지 않으면 금세 끊어져 버리는 관계도 그냥 정리해 버리는 것이 좋다. 관계는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이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설령 그렇게 일방적으로 끌고 가더라도 얼마 가지 못하게 된다.


당신에게 그토록 무례하고 차가운 사람에 대한 마음을 비우자.

내려놓아도 된다. 그 사람을, 그 상황을.

212~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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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관계'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제부터는 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나를 소중히 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연하지 않은 것들 당연하다 여기거나,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한쪽에서만 애를 쓰는 관계라면 과감히 정리해 보자.


시작이 어려울 순 있지만, 막상 정리해 보면 별거 아니다. 쓸데없는 감정 낭비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곳에 나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자.




삶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글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때론 내려놓음이나 끊어내기로, 또 어떨 때는 거절이나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잘 풀 수 있도록 돕는다.


살아간다는 특별함을 온전히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안온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온기를 전한다.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 말하는 저자의 글처럼 당신도 자신을 지키며 사랑하는 삶을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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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을 너에게
산밤 지음 / 부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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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색상이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어쩐지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많이 보던 그림체와 감성들이 묻어나 오랜만에 회상에 젖어본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보낸 시간들, 벽면 한편을 가득 채우던 포스터와 꿈꾸던 미래의 모습들, 그리고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까지.


그때의 풍경과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가 진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긴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파스텔 소녀의 모습에서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또 이 책에 담긴 솜사탕 같은 가지각색의 색상은 꿈꾸는 '나'의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일상과 환상의 어디쯤 공간에서 꿈꾸고, 사랑하고, 즐기고, 녹아들던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글과 그림은 오래된 앨범을 들쳐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친구들과 수다 떨며 지나던 풍경들, 한낮에 텅텅 빈 지하철을 타고 가며 느낀 감정들, 유명인들의 노래와 포스터가 즐비하던 거리의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익숙함과 새로움을 전한다.


살아가다 문득 단조로운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 무채색의 색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들고 파스텔로 만들어진 환상에 풍덩 뛰어들어 보면 어떨까?


잠시 낭만 속에서 나만의 고요한 일탈을 감행해 보거나, 평소 살펴보지 못했던 풍경을 둘러보며 꿈을 꾸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의 반짝이는 삶을 위해, 때론 환상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삶과 이상을 꿈꿔보자. 꽤 괜찮은 힐링타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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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있을 때

나는 조퇴를 했다.

거짓말처럼 텅텅 빈 공간에서

지하철 안으로 쏟아지는

새털구름과 연둣빛 공기를 독점했다.


문득 일탈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숨을 돌리며

이런 세상도 있구나 느끼는

그 시간이 모두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안내 방송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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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굴러가듯 바쁜 일상에서 어느 날 한낮의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꽉꽉 들어찬 사람도, 답답한 공기도 없었던 한적한 지하철은 꽤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온 적이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며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여유가 공간에 들어선 순간,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과 당시의 상황이 그저 설렘으로 다가왔다.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

어릴 때 방 안에 붙여 놓은

커다란 영화 포스터.

뭐였더라.

우주선과 외계인이 있었고

주인공은 늠름하게 웃고 있었지.


나도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

불 꺼진 어두운 거리.

못된 괴물들을 해치우는 정의의 용사.

어디서나 당당한 주인공으로

오늘 밤 꿈에 등장하고 싶어.


하룻밤만이라도

이곳 저것 달려가 멋진 박수를 받아 낼

용감한 기분이 필요하니까.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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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문득 학창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갈 때면 방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포스터들과 잡지와 앨범이 성행하던 그 시절. 힙한 스트릿 패션이 매체를 가득 채우던 그때 '무엇을' 꿈꾸던 우리가 떠올랐다.


더불어 내 방 벽 한 면의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며 먼 훗날 온 세상을 항해하리라 마음먹었던 당시의 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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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한여름 땀에 흠뻑 젖도록 달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찾기 힘들다는 걸.


너와 주거니 받거니

시시하고 새파란 농담으로 가득 채울 수 있던 여름이

정말로 영화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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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진실. 사소한 것으로도 깔깔거리며 웃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 더불어 그런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찾기 힘들다는 걸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는 것을.



=====

졸업은 좀 더

드라마 같을 줄 알았지.

보이는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면서

내가 그동안 꿈꿔 왔던

새벽 공기 같은 상쾌한 미래로

미끄러지듯 끌려갈 줄 알았지.


그런데 말이야

뜀틀을 하나 넘어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어제와 다를 것이 없어.

내가 생각했던 동요는 파도 정도인데

실은 풀 끝에 떨어진 이슬 정도야.

오늘도 나는 여전하고

생각했던 미래는 아직도 아득해.

끝이라는 건 생각보다 덤덤한 건가 봐.

1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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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초년생, 새해 등의 허들을 넘으며 다양한 졸업을 경험해 본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그토록 고대하던 무언가와 안녕을 고하면 드라마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미미한 파동만 남을 뿐이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나도 한결같이 그 상태 그대로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끝이라는 감정이 크게 실감 나지 않는다. 어쩐지 앞선 일들의 연장선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의 일들에만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현실만 직시하며 살게 된다. 조금만 돌아보면 반짝이는 날들이 가득한데, 발밑만 뚫어져라 보느라 그 모든 것들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환상에 젖어보기도 하고, 꿈도 꾸면서 삶에 색상을 입혀보자. 추억도 떠올리고 엉뚱한 상상도 하며 보다 다채로운 삶으로 가꾸어보자.


그 모든 조각들이 모이다 보면, 이 책처럼 알록달록 파스텔 색으로 물든 매력적인 내 삶의 집이 완성될 것이다. 지금 어떤 꿈을 꾸는지, 또 어떤 낭만적인 삶을 그리고 있는지가 내일의 내 삶을 다르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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