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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을 너에게
산밤 지음 / 부크럼 / 2024년 4월
평점 :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색상이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어쩐지 지난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많이 보던 그림체와 감성들이 묻어나 오랜만에 회상에 젖어본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보낸 시간들, 벽면 한편을 가득 채우던 포스터와 꿈꾸던 미래의 모습들, 그리고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까지.
그때의 풍경과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가 진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긴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파스텔 소녀의 모습에서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또 이 책에 담긴 솜사탕 같은 가지각색의 색상은 꿈꾸는 '나'의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일상과 환상의 어디쯤 공간에서 꿈꾸고, 사랑하고, 즐기고, 녹아들던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글과 그림은 오래된 앨범을 들쳐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친구들과 수다 떨며 지나던 풍경들, 한낮에 텅텅 빈 지하철을 타고 가며 느낀 감정들, 유명인들의 노래와 포스터가 즐비하던 거리의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익숙함과 새로움을 전한다.
살아가다 문득 단조로운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 무채색의 색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들고 파스텔로 만들어진 환상에 풍덩 뛰어들어 보면 어떨까?
잠시 낭만 속에서 나만의 고요한 일탈을 감행해 보거나, 평소 살펴보지 못했던 풍경을 둘러보며 꿈을 꾸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의 반짝이는 삶을 위해, 때론 환상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삶과 이상을 꿈꿔보자. 꽤 괜찮은 힐링타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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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있을 때
나는 조퇴를 했다.
거짓말처럼 텅텅 빈 공간에서
지하철 안으로 쏟아지는
새털구름과 연둣빛 공기를 독점했다.
문득 일탈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숨을 돌리며
이런 세상도 있구나 느끼는
그 시간이 모두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안내 방송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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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굴러가듯 바쁜 일상에서 어느 날 한낮의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꽉꽉 들어찬 사람도, 답답한 공기도 없었던 한적한 지하철은 꽤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온 적이 있는데, 이 글을 읽으며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여유가 공간에 들어선 순간,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과 당시의 상황이 그저 설렘으로 다가왔다.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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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방 안에 붙여 놓은
커다란 영화 포스터.
뭐였더라.
우주선과 외계인이 있었고
주인공은 늠름하게 웃고 있었지.
나도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
불 꺼진 어두운 거리.
못된 괴물들을 해치우는 정의의 용사.
어디서나 당당한 주인공으로
오늘 밤 꿈에 등장하고 싶어.
하룻밤만이라도
이곳 저것 달려가 멋진 박수를 받아 낼
용감한 기분이 필요하니까.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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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문득 학창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갈 때면 방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포스터들과 잡지와 앨범이 성행하던 그 시절. 힙한 스트릿 패션이 매체를 가득 채우던 그때 '무엇을' 꿈꾸던 우리가 떠올랐다.
더불어 내 방 벽 한 면의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며 먼 훗날 온 세상을 항해하리라 마음먹었던 당시의 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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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한여름 땀에 흠뻑 젖도록 달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찾기 힘들다는 걸.
너와 주거니 받거니
시시하고 새파란 농담으로 가득 채울 수 있던 여름이
정말로 영화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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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진실. 사소한 것으로도 깔깔거리며 웃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라는 것. 더불어 그런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찾기 힘들다는 걸 어른이 된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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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은 좀 더
드라마 같을 줄 알았지.
보이는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면서
내가 그동안 꿈꿔 왔던
새벽 공기 같은 상쾌한 미래로
미끄러지듯 끌려갈 줄 알았지.
그런데 말이야
뜀틀을 하나 넘어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어제와 다를 것이 없어.
내가 생각했던 동요는 파도 정도인데
실은 풀 끝에 떨어진 이슬 정도야.
오늘도 나는 여전하고
생각했던 미래는 아직도 아득해.
끝이라는 건 생각보다 덤덤한 건가 봐.
1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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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초년생, 새해 등의 허들을 넘으며 다양한 졸업을 경험해 본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그토록 고대하던 무언가와 안녕을 고하면 드라마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미미한 파동만 남을 뿐이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나도 한결같이 그 상태 그대로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끝이라는 감정이 크게 실감 나지 않는다. 어쩐지 앞선 일들의 연장선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의 일들에만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현실만 직시하며 살게 된다. 조금만 돌아보면 반짝이는 날들이 가득한데, 발밑만 뚫어져라 보느라 그 모든 것들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때로는 환상에 젖어보기도 하고, 꿈도 꾸면서 삶에 색상을 입혀보자. 추억도 떠올리고 엉뚱한 상상도 하며 보다 다채로운 삶으로 가꾸어보자.
그 모든 조각들이 모이다 보면, 이 책처럼 알록달록 파스텔 색으로 물든 매력적인 내 삶의 집이 완성될 것이다. 지금 어떤 꿈을 꾸는지, 또 어떤 낭만적인 삶을 그리고 있는지가 내일의 내 삶을 다르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