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베트남 - 느리게 소박하게 소도시 탐독 여행을 생각하다 6
소율 지음 / 씽크스마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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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여행책을 통해 여러 번 떠나본 베트남. 더 갈만한 곳이 있을까 싶지만, 새로 출간되는 책을 만날 때마다 친근함과 동시에 새롭게 다가오는 곳이 바로 베트남인 것 같다. 첫 여행은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 위주로 둘러보고, 그다음부터는 취향에 따라, 테마에 따라, 느리지만 여유 있게 둘러보다 보면 걷는 모든 길이 추억이 되고, 낭만이 되곤 하는 여행길.

 

이번 여행책은 베트남의 숨겨진 여행지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이나 소박한 멋을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에세이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지나 여행지 소개보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감정이나 분위기, 일상 등이 주로 담겨 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경험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한 세계 일주를 시작으로 어느새 혼여행을 즐기고 있는 저자의 베트남 방문은 벌써 다섯 번째다. 혼자서 계획 없이 베트남의 작은 도시를 우연히 둘러본 게 계기가 되어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그 이후 '혼자 하는 베트남 소도시 여행'을 테마로 북부부터 중부를 거쳐 남부까지 곳곳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은 해본 자만이 그 맛을 알고, 가본 자만이 그 나라의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는데, 벌써 다섯 번째 여행 중인 저자의 혼자 하는 베트남 소도시 여행은 어땠을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물씬 든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현지에서 직접 느끼는 것의 1/10도 느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책에 실린 모든 것들은 어쩌면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책으로나마 함께 걷고 웃고 웃으며 베트남 소도시 여행을 할 수 있어, 그것으로나마 당장 떠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길고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 그래서 보통은 북부 여행, 중부 여행, 남부 여행을 나눠서 가곤 하는데, 이번 에세이에 실려 있는 저자의 여행 경로는 북부에서 출발해 중부를 거쳐, 남부로까지 이어진다. 총 10개의 소도시를 여행하며 느리고 여유롭게 둘러본 베트남 여행의 소박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베트남인들이 생활상이나 그곳에서 경험한 재미난 이야기들을 통해 소도시만의 매력을 느껴봐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 많이 흔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자 여행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해보고 싶지만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미리 예행연습을 해봐도 좋을듯하다.

 

혼자 씩씩하게 캐리어 끌고 몸 가는 곳, 마음 가는 곳을 두루 여행하며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여유 있게 즐기는 혼자 여행의 맛이 이 책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데, 이는 소박하고 느린 것에 매력을 느끼는 저자의 성격과 소도시 여행이 어쩌면 딱 맞아서 일어나는 시너지 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취향이나 성격에 맞게, 배낭을 메고 오지를 다녀와도 좋고, 때론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도시에서 그 나라만이 주는 특색을 온몸으로 만끽해 봐도 괜찮다. 중요한 건 혼자 여행을 통해 나한테 맞는 나만의 여행을 오로지 느끼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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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깊이 빠져드는 충만감은 혼자일 때라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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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 새롭게 맛보는 음식, 예상치 못한 경험들은 모두 여행을 하기에 채워지는 추억들인데, 특히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타인과 함께 할 때와는 다른 깊은 충족감과 숨겨져 있던 현지의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많은 에피소드들도 이와 같은데,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과의 동행, 지나던 길에 발견한 현지인들의 결혼식 현장, 절대 잊을 수 없는 다양한 쌀국수의 맛, 소문난 잔칫집에서 먹을 게 없었던 맛집의 추억, 예상치 못했던 불행과 행운 그 어디 사이의 이야기, 베트남의 문화를 알 수 있었던 카페 경험담, 최연소 작업남의 대시, 바가지 쓰고 얻은 진짜 현지 정보 등 여행을 하면서 내 취향도 알아가고, 여유도 찾아간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마음이 가는 것, 부족한 것등 이처럼 혼자 여행은 자신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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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국물에 국수 가락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처럼 여행자의 긴장과 불안도 함께 풀어진다. 국물의 온기가 몸속을 흘러 마음까지 덥혀준다. 배 속을 채우는 양식과 더불어 소박한 위로가 든든하게 나를 채운다. 그러면 나는 홀로 하는 이 여행을 씩씩하게 마주할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쌀국수는 베트남 여행의 '닳지 않는 건전지'였다.

8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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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있어 쌀국수는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온기를 주는 음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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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를 커피의 세계로 초대했고 나에게도 '커피 취향'이라는 게 생겨났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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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 혹은 환자 체력을 오가는 내 신체 상태에 걸맞은 느린 산책을 즐긴다. 관광지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뒷전이고 맛집과 쇼핑에 관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욕심 없는 여행자다.

162~1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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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느지막이 시작한 첫 여행이지만, 저자는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렇지만 온전히 나에게 맞는 여행을 하며 행복을 찾아나간다. 책을 읽다 보면 '행복이 뭐 별건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안온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책 제목처럼 저자에게 베트남은 <그래서, 베트남>이다.

주부에서 여행자로, 여행자에서 여행작가로, 여행작가에서 여행 강사로 무한 변신하는 저자의 삶. 어쩌면 여행은 저자의 삶을 무한 변신시키는 일등공신이 아니었을까? 취미이자 일이고,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 그래서 그토록 정겨움이 느껴졌다 보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듯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이 가득 느껴졌던 <그래서, 베트남>.

 

매일을 여행하듯 살아가면 좋겠다. 눈에 띄지 않지만 정겨운 소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나만의 취향을 찾아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삶.

 

베트남에서 찾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행복을 담은 에세이를 읽으며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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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도감 - 캐릭터로 이해하는
스즈키 도모노리 지음, 김한나 옮김 / 생각의집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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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로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3년 넘게 쓰고 있는 마스크, 어딜 가나 있는 손 세정제와 열 측정기, 그리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병원성 바이러스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자주 보도되면서 이제는 과거에는 관심도 없었던 바이러스의 모양까지도 알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너무 자주 접해서일까? 어느새부터는 관심이 생겼고, 궁금해지기 시작했는데, 외부에서 옮겨오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나 균과 같은 것들은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모양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몸속에서 어떤 미생물을 만나, 소화가 되는지 또 어떤 식으로 몸에 도움을 주고 해를 입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존재하는 미생물들의 존재들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 담뿍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간단히 구성을 살펴보면, 총 7장으로 정리되어 있는 각 장에는 미생물의 기초지식을 시작으로 미생물별 모양이 캐릭터로 표현되어 있었으며, 미생물별 특징과 설명들이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미생물의 특징을 캐릭터화하여 그려둔 그림 덕에 한눈에 쏙쏙 들어왔는데, 일상생활과 밀접한 미생물은 물론 피해야 할 미생물들에 대한 정보도 담겨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미생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책을 읽기 전 '이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를 자세히 표기해둔 것도 인상적이었다.

 

김치나 버섯과 같은 익숙하고 자주 먹는 음식들과 몸속에 존재하는 몇 개의 미생물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르는 미생물들. 이 책을 읽으면서 미생물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실제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에 따라서 유익균이 유해균이 되는 경우들을 보고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관심이 갔던 몇 가지 미생물들을 통해 이것들이 우리 몸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활용이 되고 있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표피 포도상구균>
균이 포도송이 모양으로 밀집하는 성질 때문에 '포도상구균'이라고 하는 세균의 일종으로 피부 표면이나 콧속 등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상재균이다. 피부를 촉촉하게 하며 노화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점에서 '피부균'이라고도 한다.

 

 


<아크네균>
유익균인지 유해균인지는 당신의 몸 상태에 달렸는데, 여드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어로 여드름을 의미하는 아크네라는 이름이 붙은 세균으로 피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상재균이며 산소가 적은 환경을 선호한다.

 

피지를 주요 영양분으로 삼기 때문에 얼굴의 모공에서 잘 증식하는 성질이 있고,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약산성으로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으로 호르몬의 균형이 변화하면 피지 분비가 증가하고 각질이 악화되면서 피지가 점점 쌓여 유해한 아크네균이 지나치게 증식하게 되는데 이때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성분을 발생시켜서 여드름을 악화(적여드름화) 시킨다.

 

 


<대장균>
인간이나 가축의 장 속에 서식하는 상재균의 일종으로 길쭉한 막대기 모양을 띠며 산소가 있든 없든 생존할 수 있다. 대부분이 무해하지만 복통이나 설사 등을 일으키는 유해한 균도 존재하는데 그런 종은 병원성 대장균이라고 한다.

 

 


<비피두스균>
장내 환경을 정비하는 기능이 있는 유익균의 대표적인 존재로 V자 모양, 막대 모양 등 불규칙한 형태와 배열을 보이며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비피두스균은 당질을 분해해서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젖산과 강력한 살균력을 가진 초산을 발생시키는데 비피두스균을 늘리려면 양파와 대두 등에 포함된 올리고당을 섭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효모>
효모는 공기 중이나 흙 속, 물 속 등 어디에나 존재하는 단세포성 진균류의 총칭으로 당을 분해해서 에탄올(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발효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술이나 빵 등의 발효 식품을 만들 때 이용한다.

 

효모는 유용성이 높지만 원래의 '단세포 진균류의 총칭'이라는 의미에서는 말라세치아균이나 칸디다 등도 같은 그룹에 속하며 인간에 대한 병원성이 있는 종류도 존재한다.

 

 


존재하지만 실제 눈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아 잘 몰랐던 미생물. 이번 기회에 미생물 탐구를 통해 몸 곳곳은 물론 관심 있는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에는 막연히 미생물이라고 하면 김치, 치즈 등과 같은 발효식품만 떠올리곤 했는데, 미생물의 범위가 상상이상으로 넓은 것을 보고 놀라웠다.

 

미생물만 잘 알고 관리해도 일상생활에서 건강한 삶을 살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를테면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를 원한다면 '표피 포도상구균'과 '아크네균'을 잘 관리해 보자.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모공관리에 유념하면 매끄럽고 촉촉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심점이 장관리라는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장! 장의 건강을 위해 어떤 미생물을 확인해 보면 좋을까? 바로 '대장균'과 '비피두스균'이다. 양파와 대두 등의 음식 섭취를 통해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장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해 보자.

 

특정 계절에 취약한 바이러스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바로 특히 겨울에 많이 발생하는 감염력 최강의 '노로바이러스'이다. 지름 약 30mm의 엄청 작은 바이러스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에만 조심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데, 저온이나 건조를 좋아하는 노로바이러스는 겨울에 유행하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하자. 충분히 가열하고, 꼼꼼히 세척하고, 손 청결에 유의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생물을 잘 활용해서 맛있고 건강한 식단, 아름답고 건강한 몸, 나아가 지구환경까지 챙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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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왜 왔니?
임유섬.권혜원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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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이 강력 추천할 만큼 읽는 내내 깔깔깔 웃음 짓게 만들었던 이 책에는 유머, 발랄, 귀염, 엉뚱, 액션, 로맨스, 코미디 등의 모든 장르가 들어있었는데, 어릴 적 한 번쯤 해볼 만한 엉뚱한 상상과 현대적 해석이 맞물려 읽는 내내 웃음 짓게 만들었다.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발길을 붙잡는 소히 도사라는 이들과 어릴 적 보았던 SF 영화 에이리언 속 외계인과 비행접시, 그리고 한때 붐처럼 일었던 코미디 프로그램 속 유행어가 마구 뒤섞여 어딘가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유머 코드로 자리하면서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한 소재를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게 풀어나간다.

 

스토리를 간단히 풀어보면, 지구가 인간들로 인해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병들어 가면서 더 이상 다른 생명체가 살기 힘들어졌다고 판단한 우주의 절대자인 안드로메다 황제는 인류를 없애기로 결정하고 마지막 조사차 생식 능력을 없애는 약품 테스트를 위해 가장 아끼는 막내 공주 수정을 지구 여성의 모습으로 만들어 지구로 파견한다.

 

약사로 위장하고 미리 지구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던 미자와 함께 살며 수정은 알래스카 공기라고 속이고  약국을 방문하는 지구 남성들을 대상으로 시음행사를 진행하며 생식 능력을 없애는데 열중한다.

 

그러던 중 테스트가 거의 끝나갈 즈음 약이 듣지 않는 유일한 지구인 남성인 진석을 만나게 되면서 외계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를 전해 들은 안드로메다 황제는 철저한 분석과 조사를 지시하고 이에 따라 미자는 지구인들의 모든 것을 철저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인이 되어야 한다며 수정에게 제안한다. 사랑과 연애에 관한 개념이 없는 안드로메다에서 살다 온 수정은 난감했지만, 미자와 함께 훈련하며 적극적으로 진석에게 대시하지만 진석으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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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미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니 애초에 집에 왜 있는 건지 모를 군복과 빨간 조교 모자를 갖춰 입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웃으면 복이 와요. 웃는 사람은 다 예뻐. 너의 웃음 소리가 들려. 웃기고 앉아있네. 다 웃는 얼굴과 관련된 말들이에요. 그만큼 웃는 게 중요하단 뜻이죠."

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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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하 넘흐 조아효. 옵하 죄송한데 삼천원만 주세효. 금연초 사 피게요.

 

차라리 지식인들이 가득한 초록창에 질문을 올리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초록창이 뭔지도 잘 모를 수정은 그저 미자의 말만을 따라 또다시 개그우먼의 애교를 따라 하고 또 따라 했다.
"옵하 넘흐 조아효. 옵하 죄송한데 삼천원만 주세효. 금연초..."

 

"다시요. 그래서 어디 삼천원 꺼내겠어요?"
"옵하 넘흐 조아효."
"단 돈 천원도 안돼. 천원도!"
"옵하 넘흐...."
"다시!"

1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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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랭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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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에서의 신분은 공주님과 보좌역이지만 지구에서는 엄마와 딸로 지내는 수정과 미자의 언행은 어딘가 모르게 엉뚱함과 웃음을 자아낸다. 지구의 상식을 어설프게 알고 있는 미자와 그런 미자를 믿고 연애 필승을 다지는 수정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님아 제발~'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데, 어설프고 엉뚱해서 오히려 더 외계인이라는 설정과도 찰떡처럼 들어맞는다.

 

 

그러던 중 진석과 그의 친구 춘혁이 참여하는 지구환경 지키기 캠페인 참여 및 진석이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점차 수정에 대한 진석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둘은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하고, 감정이 깊어질 무렵 안드로메다 황제로부터 귀환 명령을 받게 된다. 이후 연인이 된 진석과 수정, 그리고 미자의 행방과 또 외계인이라 굳게 믿고 오랫동안 미자의 뒤를 쫓아다니던 병구와 지구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결말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톡톡 튀는 젊은 감성에 올드한 유머 한 방울, 장르는 로맨틱 판타지와 SF, 국정원이 등장하는 추격신까지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와 담긴 의미를 통해 사랑에 대한 정의와 지구환경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사랑과 연애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던 안드로메다 외계인 수정이 지구에 적응해가면서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는 부분은 어딘가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그녀만이 가진 엉뚱 발랄한 매력을 이 책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이 모든 이야기의 가장 정점이자 핵심이기도 한데, 인류의 모든 근본이자 바탕이 되는 지구의 실상을 그 어떤 것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함께 나눈 느낌이 들어 이후 이 책에 서술된 다양한 방법들을 현실에서 실천으로까지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닐포장을 쓰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식료품 가게 운영하기, 흔하게 쓰는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채식하기,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는 폐그물과 어망 수거하기, 분리수거 잘하기, 에코백 사용하기, 지구 환경을 위한 세미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등등.

 

흔하지 않고 특이해서 더 자꾸만 손이 갔던 이 책을 통해 무해한 사랑 이야기는 물론,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기 위한 여러 방법들도 함께 배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심각한 지구환경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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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독서법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9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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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연상시키는 분홍분홍한 옷을 입고 있던 10주년 특별판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김선영 작가의 신간이 출판된다고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먼저 읽었던 <시간을 파는 상점>이 청소년 문학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여러 이면과 의미를 담고 있어 기억에 많이 남았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떤 내용으로 새로운 마음의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기대심과 궁금증이 일었다.

 

이번 신작은 앞서 읽었던 <시간을 파는 상점>과 같이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살짝 결이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는데, 청소년기 때 한 번쯤 겪게 되는 상처와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는 판타지와 SF적 요소의 결합을 통해 독특하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염원을 담아 읽어봐도 재미있을듯 하다.

 

더불어 몸과 마음이 한참 자라나며 혼동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기에 겪는 격동의 상황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들이 담겨있는 이 책을 통해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혹은 그 시기를 이미 겪어온 이들 모두 함께 공감하며 자신의 내면과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기 우리는 어떤 것으로 상처를 입었었는지, 무엇이 가장 힘들었었는지, 어떤 계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공부, 친구, 가족, 학교, 성적, 놀이 등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당시의 우리에겐 전부였던 소재의 이야기들을 통해 추억과 마음을 함께 나누어봐도 좋을 것 같다.

 

 


<바깥은 준비됐어>

 

반에 꼭 한 명쯤은 있는 모두가 좋아하고 동경했던 아이, 유라. 그래서 더 단짝이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우연한 일을 계기로 유라와 인서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된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인해 인서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소중했기에 그만큼 더 배신감과 상처로 남았던 그 일은 인서로 하여금 친구를 사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 새 학기 새 학교에서 맞이한 낯섦속 익숙한 유라를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인서는 과거의 상처가 다시 되살아나며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워 피하게 된다. 편모 가정 속에서 의지할 곳 없이 혼자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인서는 엄마의 소개로 방문하게 된 심리 상담 센터를 방문하게 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세상을 향해 다시금 나아가는 인서의 발걸음을 함께 지켜보면서 응원하게 되는 <바깥은 준비됐어>를 통해 가족과 친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요소는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들이기에 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와 성장을 돕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의 독서법>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바람의 독서법>에는 학창 시절 한 번쯤 꿈꾸게 되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바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문제의 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책을 자세히 읽지 않아도 순식간에 내용 파악이 가능한 능력을 가진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비한 능력을 가진 강우는 사실 뭐든 뛰어난 형과 항상 비교가 되면서 기 한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살던 아이였다. 엄마의 관심은 물론 선생님들 마저 형과 비교하며 늘 주눅 들어 살았기에 언제나 튀는 것을 싫어했고 대부분의 생활을 거의 포기하며 되는대로 살던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분 뒤에 특정 키워드가 크게 보이고 글꼴이 달라지면서 도드라져 보이는 돋을새김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를 통해 책이나 시험문제의 핵심 키워드나 정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적은 쑥쑥 올랐고, 포기로 일관하던 엄마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갑작스러운 선생님들의 주목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갑작스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두문불출 중인 형의 숨겨진 진실도 알게 된다.

 

갑자기 생긴 능력과 그로 인해 성적이 오른 것을 시작으로 받게 된 온갖 관심. 강우는 어리둥절한 동시에 이 현상의 원인과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저 오로지 성적에만 관심 있는 어른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이 특이한 현상의 원인에만 관심을 가지는 강우. 현상을 쫓는 강우와 성적이 오른 강우를 쫓는 사람들의 대비가 어쩐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허무맹랑하고 특이한 현상을 담고 있는 이 내용은 그저 결과만을 중시하고 공부만 앞세우는 욕심 많은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바람이자 그것을 대변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내 눈앞에 돋을새김 현상이 나타나며 모든 글자들이 한눈에 쏙쏙 들어온다면 어떨까? 그 자체를 즐길까? 아니면 그 현상에 의문을 품을까?

 

학창 시절 누구나 겪는 공감 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특히 더 마음이 갔던 스토리 중에 하나였다. 공부와 성적에 대한 과도한 관심, 성적순에 따라 달라지는 선생님들의 대우, 그리고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되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 강우에게 나타난 현상보다 공부를 둘러싼 강우 주변 인물들에 더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흔들리는 난타>

 

흔들리고 있는 교육의 현장 속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은 스토리를 담고 있는 <흔들리는 난타>.

 

가을 새 학기에 부임한 쌍절곤 혹은 난타쌤이라고 불리는 선생님은 학교에서 소히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만을 모아 난타반을 만든다. 모두가 문제아라고 포기한 이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회유하여 이들에게 각종 악기와 쌍절곤을 가르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무 의욕도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 스토리는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의 가족에까지 영향을 주는데, 학교라는 울타리와 선생님의 관심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과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잘 지내>

 

뛰어난 미모로 소문이 자자했던 언니가 어느 날 성폭행을 당하면서 언니의 삶은 고꾸라지기 시작한다. 몇 번의 자해와 파혼, 그리고 죽음. 이 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의 딸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나는 불안함에 딸을 숨 막히도록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엄마를 모르지 않았던 딸은 엄마에게 유럽 여행을 제안하고, 이 여행을 통해서 모녀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를 풀어낸다. 오랜 시간 그저 숨기기에 급급했던 슬픔과 상처가 봇물 터지듯 터지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서러움과 힘듦을 털어내게 되면서 어느새 제대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딸을 통해 듣게 된 언니의 유언과도 같은 이야기를 통해 언니의 진심도 전해 듣게 된다.

 

가족이었기에 안 좋은 일은 더 묻어두려 했고, 그래서 더 오랫동안 아팠던 한 가족의 3대에 걸린 불행한 가족사.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변했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나는 딸을 통해 그 상처를 마주하고 드러냄으로써 마침내 치유와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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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끼리, 특히 가족끼리는 본질을 건드리는 말은 피하고 싶어 한다. 안 그래도 늘 바닥을 보고, 보여주는 관계인데 더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본들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쑥스럽고 민망함만 남아 더욱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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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마침내 인생의 의미를 비로소 찾게 된 나 자신과의 화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상처나 꾹꾹 눌러둔 묵은 감정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털어내보면 어떨까?

 

 


<중독>

 

처음에는 단순한 수집에서 시작됐다. 예뻐서 하나둘 모으던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로 재평가 받으면서 점차 그 수가 늘어나고 어느새 방대해졌다. 수집은 인생도 변화시켰다. 배우자를 만나게 했고, 삶의 모습도 변화시켰다.

 

수집은 어느새 중독처럼 되어버렸고, 인해의 삶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물난리로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되면서 비로소 수집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까운 마음보다 그저 후련했다. 

 

엄마의 수집벽은 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손 사진을 찍고 모으면서 어느새 남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눈치챈 친구 건도로 인해 타인에게 노출될 뻔한 위험한 상황을 겨우 넘긴 후 나는 혼자만 간직했던 손 사진 수집을 중단하게 된다.

 

엄마 인해와 아들의 수집은 처음에 그저 예쁘거나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내 이것은 삶의 전반을 자치하게 될 만큼 중독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것은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메우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과 시부모의 관심 밖에서 결혼생활을 버텨내야 했던 며느리의 공허함과 부모의 사랑 밖에서 자신만의 삶을 구축해야 했던 아들이 각자 도생을 위해 만든 버팀목인 건 아니었을까?

 


한 번쯤은 했을법한 고민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다섯 편의 스토리를 읽다 보면 나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추억, 부모와 가족, 학교생활과 성적에 관한 고민, 그리고 취미생활에 이르기까지 추억과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많은 고민과 수없이 반복되던 상처와 치유의 과정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아가는 힘이자 경험이 되었다.

 

때로 이 기억들과 경험들이 다시금 스멀스멀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했고, 치열하게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살아온 자신을 부디 믿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다섯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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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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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고요함이 느껴지는 깊은 숲속, 자갈길의 끝자락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이층 형태의 별장 한채와 그 바로 앞에는 고요를 품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은 여름이면 찾는 그들만의 별장이자 휴가지이다. 매년 찾는 곳이니만큼 그 여름날도 그들 가족은 아무도 없는 이 별장을 찾아 나름대로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란하고 다정한 가족처럼 보였다. 개성 있는 삼 형제와 부모가 함께하는 휴가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휴가를 즐기며 무더운 여름을 즐기는듯해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묘한 불편함과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총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의 배경은 여름 별장이고, 2부는 시내의 집이 주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각 장은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시간의 교차가 일어나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날의 오후 11시 59분부터 2시간 단위로 거꾸로 서술되는 시점과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시점의 두 가지 시간의 교차가 서서히 맞물리면서 비로소 이야기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독특한 형태로 전개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 여름날의 비극적인 사고 이후 다시는 찾지 않았던 그 별장을 세 형제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으로 인해 다시 찾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묻어두었던 한 가족의 불운으로 남아버린 그날의 진실과 마주함과 동시에 유년 시절의 상처에 갇혀 멈춰버린 그들 내면의 성장담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감정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내지 않고 전개되는 것에 반해 풍경이나 주변의 모습에 대해서는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별장의 모습과 주변 풍경들을 상상하며 읽어볼 수 있었다. 별장 앞에 호수의 모습은 어떠한지, 별장으로 향하는 자갈길은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머물던 집의 구조와 풍경들은 어떠한지 눈에 선하도록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림을 그리듯 머릿속에 그려보며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소설은 둘째인 베냐민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는데, 처음에는 왜 둘째인 베냐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무척 궁금했다. 형제 중 둘째라서 일까, 아니면 형제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서 일까 내심 궁금함을 안고 소설을 읽어나갔는데, 결말에 도달할수록 왜 베냐민이어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반전과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사건의 중심에 베냐민이 어떤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이들 가족이 어떤 불행한 일들을 겪게 되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부터 2시간씩 거꾸로 되짚어가는 이야기에는 성인이 된 닐스, 베냐민, 피에르의 개성 강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겉모습으로는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부터  숨 막히는 집을 항상 떠나고 싶어 했던 닐스와 어딘가 우울함과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베냐민, 폭력적이고 쉽게 화를 내는 피에르.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던 그 사건 이후로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더 무관심해졌고, 교류가 뜸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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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베냐민은 세 형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그토록 꼭 붙어 다니던 셋이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된 건지, 어째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구는지 말이다. 베냐민뿐 아니라 셋 모두 그랬다.

2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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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서술한 장면들을 보면 위의 서술처럼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진 않는다. 때때로 아버지가 일부러 놀이처럼 수영시합을 시키는 일이 아니고서는 닐스와 피에르는 늘 티격태격했으며, 닐스는 대부분 가족의 일에 무관심했고 혼자 떨어져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럼에도 어색함이 맴돌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에 비해 성인이 된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어색함과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꼭 필요한 대화가 아니고서는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없었으며, 함께 하는 자리를 자주 갖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유언에 따라 별장을 찾아가는 여정도 눈여겨볼 만한데 현 시간으로부터 2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시점과 유년 시절부터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교차점을 통해 그 몇 시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었는지를 세세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세 형제 각자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 나와 있어 어딘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유년 시절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시점에서 살펴본 이들 가족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불안함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다정하고 따뜻한 잠깐의 순간을 벗어나면 알코올에 취해있는 부모님이 모습이 일상이요, 때로 달콤한 외식시간 후 벌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폭력성을 띠는 아버지와 애정에 있어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세 형제는 온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별장에서도, 집에서도 방치되듯 키워지는 세 형제는 그렇게 늘 불안하고 의지할 곳 없는 상태로 자라나게 된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저마다 부모로부터 받은 폭행과 상처를 버텨내며 생존했음을 알 수 있는데,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별장을 향해가는 여정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꽁꽁 감춰두었던 서로 간의 오해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솔직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함께 확인해 봐도 좋겠다.

 

그 여름날의 사고 이후 멈춰있던 세 형제의 내면의 시간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다시 그때 그날과 마주하면서 점차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곡되어 있던 기억,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켜켜이 쌓인 오해들이 하나 둘 파헤쳐 지면서 비로소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어린 날의 추억과 상처가 담겨있는 별장에서 보낸 몇 시간은 몇 년 동안 쌓인 모든 응어리를 한 번에 씻어준다.

 

그동안 얼마나 가족과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했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서로에게 얼마나 대화가 필요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해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유품을 정리하는 순간에도 등을 지고 서로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이들을 비로소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체가 되어준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이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눈을 감는 순간 아들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사랑이자 용서를 구하는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9살의 베냐민이 가족 안에서 관찰자로 살아야 했던 이유이자 평생에 걸쳐 마음에 커다란 짐을 이고 살았던 이유가 비로소 유언으로 남긴 어머니의 편지 내용을 통해 밝혀지는데, 끝까지 소설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유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의문을 품었던 왜 베냐민이어야 했는지, 또 왜 항상 가족들을 관찰하는 눈으로 소설이 전개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감추어진 감정의 실타래와 대조되는 디테일한 풍경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 내용안에서도 몇몇 문장에서는 간혹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의 찌꺼기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상처와 마음속에 품은 감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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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가 유골 단지를 들고 있다. 유골 단지가 무거운 나머지 닐스는 몇 번이나 단지를 고쳐 잡으며 마치 어머니의 무게에 당황하기라도 한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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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고 모범생이었던 큰아들 닐스. 부모는 그런 그에게 기대가 컸고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 이 문장은 닐스가 어머니 혹은 부모님께 가지고 있던 장남으로서의 무게감과 부담감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해석된다. 어느 순간부터 갑갑한 집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의 행동패턴과도 매치가 되어 닐스의 감정적 묘사가 잘 드러나는 부분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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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지막이 돌을 향해 응원의 말을 한다. "서로 잘 돌보거라. 너무 뜨거워지면 밖으로 나간다고 약속해 주렴." 아빠와 베냐민은 창밖의 호수를 배경으로 팔을 쭉 뻗어 손 크기를 잰다. "나는 너야." 아빠가 말한다.

2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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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의존성이 높고 폭력적인 아버지이지만, 간혹 다정하고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는 순간들이 있다. 그 사고 이후 아버지는 베냐민과 간혹 단둘이 시간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어쩌면 아버지 나름대로 아들을 위로하고자 보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대화는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 중 하나인데, 어쩌면 아버지가 죽기 전에 베냐민이 떠올린 기억 속 마지막 대화여서 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어 기뻐하는 베냐민의 심정과 마치 이 상황을 예측한 것 같은 아버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와 첫 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에 그냥 넘겼던 피 터지도록 싸우고 난 뒤 서로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던 닐스와 피에르의 모습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형제들의 과격한 몸싸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을 모두 확인하고 보니 이들의 몸싸움이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한 형제간의 최후의 전투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한편으론 개운하기도 하고 벅참이 느껴지기도 한다.

 

몸만 큰 어른 아이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을 세 형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버티며 견뎌왔던 시간들 속에서 이제는 제대로 형제애를 나누며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때론 그 상처가 너무 크고 아파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잠시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처가 낫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고름이 나면 짜고, 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야 새살이 솔솔 나는 것처럼 때로는 마주 보고 소통하고 화해해야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머물고 있다면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이제 그만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고통스러운 과거의 나를 보듬고 치유해보자. 이제 그만 과거는 놓아주고 미래의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해보자. 닐스, 베냐민, 피에르가 그러했듯 과거는 멀어지고 어느새 새 삶의 시작선에 서게 될 것이다. 과거에 묻어둔 상처가 있다면 현재 화해를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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