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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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고요함이 느껴지는 깊은 숲속, 자갈길의 끝자락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이층 형태의 별장 한채와 그 바로 앞에는 고요를 품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은 여름이면 찾는 그들만의 별장이자 휴가지이다. 매년 찾는 곳이니만큼 그 여름날도 그들 가족은 아무도 없는 이 별장을 찾아 나름대로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란하고 다정한 가족처럼 보였다. 개성 있는 삼 형제와 부모가 함께하는 휴가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휴가를 즐기며 무더운 여름을 즐기는듯해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묘한 불편함과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총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의 배경은 여름 별장이고, 2부는 시내의 집이 주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각 장은 현재와 과거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시간의 교차가 일어나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날의 오후 11시 59분부터 2시간 단위로 거꾸로 서술되는 시점과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시점의 두 가지 시간의 교차가 서서히 맞물리면서 비로소 이야기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독특한 형태로 전개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 여름날의 비극적인 사고 이후 다시는 찾지 않았던 그 별장을 세 형제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으로 인해 다시 찾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묻어두었던 한 가족의 불운으로 남아버린 그날의 진실과 마주함과 동시에 유년 시절의 상처에 갇혀 멈춰버린 그들 내면의 성장담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감정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내지 않고 전개되는 것에 반해 풍경이나 주변의 모습에 대해서는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별장의 모습과 주변 풍경들을 상상하며 읽어볼 수 있었다. 별장 앞에 호수의 모습은 어떠한지, 별장으로 향하는 자갈길은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머물던 집의 구조와 풍경들은 어떠한지 눈에 선하도록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림을 그리듯 머릿속에 그려보며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소설은 둘째인 베냐민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는데, 처음에는 왜 둘째인 베냐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무척 궁금했다. 형제 중 둘째라서 일까, 아니면 형제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서 일까 내심 궁금함을 안고 소설을 읽어나갔는데, 결말에 도달할수록 왜 베냐민이어야만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반전과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사건의 중심에 베냐민이 어떤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이들 가족이 어떤 불행한 일들을 겪게 되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부터 2시간씩 거꾸로 되짚어가는 이야기에는 성인이 된 닐스, 베냐민, 피에르의 개성 강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겉모습으로는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부터  숨 막히는 집을 항상 떠나고 싶어 했던 닐스와 어딘가 우울함과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베냐민, 폭력적이고 쉽게 화를 내는 피에르.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던 그 사건 이후로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더 무관심해졌고, 교류가 뜸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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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베냐민은 세 형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그토록 꼭 붙어 다니던 셋이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어색한 사이가 된 건지, 어째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구는지 말이다. 베냐민뿐 아니라 셋 모두 그랬다.

2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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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서술한 장면들을 보면 위의 서술처럼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진 않는다. 때때로 아버지가 일부러 놀이처럼 수영시합을 시키는 일이 아니고서는 닐스와 피에르는 늘 티격태격했으며, 닐스는 대부분 가족의 일에 무관심했고 혼자 떨어져 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럼에도 어색함이 맴돌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에 비해 성인이 된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어색함과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꼭 필요한 대화가 아니고서는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도 없었으며, 함께 하는 자리를 자주 갖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유언에 따라 별장을 찾아가는 여정도 눈여겨볼 만한데 현 시간으로부터 2시간 전으로 돌아가는 시점과 유년 시절부터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교차점을 통해 그 몇 시간 동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었는지를 세세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세 형제 각자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 나와 있어 어딘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유년 시절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시점에서 살펴본 이들 가족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불안함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다정하고 따뜻한 잠깐의 순간을 벗어나면 알코올에 취해있는 부모님이 모습이 일상이요, 때로 달콤한 외식시간 후 벌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폭력성을 띠는 아버지와 애정에 있어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세 형제는 온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별장에서도, 집에서도 방치되듯 키워지는 세 형제는 그렇게 늘 불안하고 의지할 곳 없는 상태로 자라나게 된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저마다 부모로부터 받은 폭행과 상처를 버텨내며 생존했음을 알 수 있는데,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별장을 향해가는 여정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꽁꽁 감춰두었던 서로 간의 오해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솔직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함께 확인해 봐도 좋겠다.

 

그 여름날의 사고 이후 멈춰있던 세 형제의 내면의 시간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다시 그때 그날과 마주하면서 점차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곡되어 있던 기억,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켜켜이 쌓인 오해들이 하나 둘 파헤쳐 지면서 비로소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어린 날의 추억과 상처가 담겨있는 별장에서 보낸 몇 시간은 몇 년 동안 쌓인 모든 응어리를 한 번에 씻어준다.

 

그동안 얼마나 가족과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했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서로에게 얼마나 대화가 필요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해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유품을 정리하는 순간에도 등을 지고 서로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이들을 비로소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체가 되어준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이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눈을 감는 순간 아들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사랑이자 용서를 구하는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9살의 베냐민이 가족 안에서 관찰자로 살아야 했던 이유이자 평생에 걸쳐 마음에 커다란 짐을 이고 살았던 이유가 비로소 유언으로 남긴 어머니의 편지 내용을 통해 밝혀지는데, 끝까지 소설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유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의문을 품었던 왜 베냐민이어야 했는지, 또 왜 항상 가족들을 관찰하는 눈으로 소설이 전개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감추어진 감정의 실타래와 대조되는 디테일한 풍경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 내용안에서도 몇몇 문장에서는 간혹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의 찌꺼기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상처와 마음속에 품은 감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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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가 유골 단지를 들고 있다. 유골 단지가 무거운 나머지 닐스는 몇 번이나 단지를 고쳐 잡으며 마치 어머니의 무게에 당황하기라도 한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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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고 모범생이었던 큰아들 닐스. 부모는 그런 그에게 기대가 컸고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 이 문장은 닐스가 어머니 혹은 부모님께 가지고 있던 장남으로서의 무게감과 부담감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해석된다. 어느 순간부터 갑갑한 집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의 행동패턴과도 매치가 되어 닐스의 감정적 묘사가 잘 드러나는 부분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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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지막이 돌을 향해 응원의 말을 한다. "서로 잘 돌보거라. 너무 뜨거워지면 밖으로 나간다고 약속해 주렴." 아빠와 베냐민은 창밖의 호수를 배경으로 팔을 쭉 뻗어 손 크기를 잰다. "나는 너야." 아빠가 말한다.

2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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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의존성이 높고 폭력적인 아버지이지만, 간혹 다정하고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는 순간들이 있다. 그 사고 이후 아버지는 베냐민과 간혹 단둘이 시간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어쩌면 아버지 나름대로 아들을 위로하고자 보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대화는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 중 하나인데, 어쩌면 아버지가 죽기 전에 베냐민이 떠올린 기억 속 마지막 대화여서 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어 기뻐하는 베냐민의 심정과 마치 이 상황을 예측한 것 같은 아버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와 첫 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에 그냥 넘겼던 피 터지도록 싸우고 난 뒤 서로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던 닐스와 피에르의 모습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형제들의 과격한 몸싸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을 모두 확인하고 보니 이들의 몸싸움이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한 형제간의 최후의 전투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한편으론 개운하기도 하고 벅참이 느껴지기도 한다.

 

몸만 큰 어른 아이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을 세 형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버티며 견뎌왔던 시간들 속에서 이제는 제대로 형제애를 나누며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 때론 그 상처가 너무 크고 아파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잠시 덮어두고 모른척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처가 낫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고름이 나면 짜고, 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야 새살이 솔솔 나는 것처럼 때로는 마주 보고 소통하고 화해해야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머물고 있다면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이제 그만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고통스러운 과거의 나를 보듬고 치유해보자. 이제 그만 과거는 놓아주고 미래의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해보자. 닐스, 베냐민, 피에르가 그러했듯 과거는 멀어지고 어느새 새 삶의 시작선에 서게 될 것이다. 과거에 묻어둔 상처가 있다면 현재 화해를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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