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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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에 따라 1년을 살아본 이야기"


도시에 살다 보면 계절, 자연, 날씨 등을 온전히 느끼기 힘든 경우가 많다. 출퇴근길에 잠깐 마주하는 날씨, 춥고 더운 것으로 느끼는 계절, 그리고 근처 산이나 공원을 찾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자연.

때문에 우리는 계절감을 잊고 매일 쳇바퀴 굴러가듯 '그냥' 살아간다. 사실 한때는 나 역시 이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을 만큼 너무 바쁘게 살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매일 지속되는 야근에 막차 타고 오기 바쁜 하루라 날씨, 계절, 자연 이런 것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를 건강하게 하고, 쉼을 주는 힐링 포인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릴 때는 자연 속에서 피톤치드 맞으며 흙, 나무, 꽃, 신선한 과일, 좋은 공기 등과 함께 했는데 그런 것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쳤고, 아팠고 참 많이 힘든 날들을 보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건강한 환경 속에 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계절 따라 우리에게 제철 행복을 주던 것들이 그리워졌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계절을 24절기로 나눠 변화하는 풍경과 제철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전한다.

저자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달력 속에 작은 글씨로만 존재하는 절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서술함으로써 이 속에 얼마나 많은 성장과 변화, 그리고 삶이 숨어있는지를 알려준다.

덕분에 이 계절과 맞물려 있는 우리의 인생 속에 숨어있는 빽빽하고 가지런한 작은 행복의 씨앗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은근히 이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온전히 계절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질 수 있는 눈앞에 있는 행복! 지금부터 그것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제철 행복을 찾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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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기 전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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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건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일.
(...)
그러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 '제철'을 붙이자 사는 일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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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절을 맞이하기 전, 먼저 저자가 구분 지은 24절기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더 촘촘히 계절을 음미하기 위해 지금부터는 24절기로 계절을 만끽해 보자!


■24절기란?
'천구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라 부른다. 황도 한 바퀴인 360도를 15도 간격으로 나누어 계절을 세밀하게 구분한 것이 24절기.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에 여섯 절기가 속하며, 한 절기의 길이는 약 15일로 한 달에 두 번 들어 있다.


■절기 알기
양력(태양력)에 따른 것이다. 보통 우리는 절기를 하루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황도상에서 15도 간격으로 나눈 각 지점을 태양의 정중앙이 통과할 때가 24절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다음 절기까지의 기간을 한 절기로 본다. 달력에 적힌 일자는 입기일(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세종은 조선시대 천문학을 집대성한 역법서 <칠정산>을 펴내며 24절기를 한양의 위치와 기후에 맞게 수정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절기는 이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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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을 챙기기 위한 저자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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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끝자락에 저자가 제안하는 제철 숙제를 풀어보며 나만의 절기를 마음에 꼭꼭 담아두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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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봄, 봄비에 깨어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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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2월 4일 무렵
▷봄이 일어서기 시작하는 한 해의 첫 번째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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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의 숙제는 하나.
꼬박꼬박 때를 맞춰 찾아오는 봄처럼,
지치지 않는 희망을 새해 숙제로 제출할 것.

희망은 어디 숨겨져 있어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사람의 마음에 새것처럼 생겨나는 법이니까. 새싹을 틔우는 게 초목의 일이라면 희망을 틔우는 건 우리의 일.
다시 봄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라 힘주어 말해도 좋은.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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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1월 1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시작을 이야기하지만, 절기로 이야기하자면 봄의 시작은 '입춘'이라 말할 수 있다.

1월 1일 목표를 세웠다면, 새해 희망을 다지는 날은 '입춘'을 기점으로 해보면 어떨까 한다. 이제 진짜 시작!


■춘분
▷3월 20일 무렵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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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그치는 인간 세상과 달리, 자연은 나무라지도 채근하지도 않는다. 나무가 나무로 살고 새가 새로 살듯 나는 나로 살면 된다는 걸 알게 할 뿐. 세상에 풀처럼 돋아났으니 다만 철 따라 한 해를 사는 것. 봄에 새순 같은 희망을 내어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두며, 겨울엔 이듬해를 준비하는 게 자연스러운 한 해 살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땐 큰 질문은 쪼개서 작은 질문으로, 큰 시간은 쪼개서 작은 시간으로. 1년이 막막하다면 다만 봄의 하루를 성실하게.

빈손으로 돌아온다 생각했는데 내가 펼쳐본 쪽지에 적혀 있던 건 모두 나를 위한 답이었다.
73~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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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생명을 키워내는 방식처럼,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성장하는 이치를 따르면 어떨까 한다. 매 철에 맞게 성장시키고, 수확하고, 다독이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다운 삶에 접어들어있지 않을까?

다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 싶을 땐, 쪼개고 쪼개서 단위를 줄여 하나씩 이뤄나가면 된다. 성실하고 나답게.


■청명
▷4월 5일 무렵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는 맑고 밝은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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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은 365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작 봄의 하루도 시간을 내지 못하며 사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벚꽃 앞에서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꽃놀이만큼은 '내가 나한테 이것도 못 해줘!'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내서 즐기기를.
(...)
환한 꽃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시시각각 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 이 맛에 산다'하는 흡족한 미소를 띨 그날까지.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
꽃은 늘 기다린 시간보다 짧게 머물다 가니,
봄이 오면 언제까지라도 오늘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기를.
내일의 즐거움을 예약할 수 있기를.
85, 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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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오는 봄이지만, 오늘의 봄은 지나가면 끝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올해의 봄을 넘겨버리면 어느새 '이게 사는 건가'와 같은 생각에 접어들기 마련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다가오는 봄을 만끽할 하루를 내어준다면, 적어도 '이 맛에 살지'하는 제철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지런함과 의지, 그리고 계획은 필수다.


■곡우
▷4월 20일 무렵
▷곡식을 기르는 봄비가 내리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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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면 돌미나리 전을 먹는다. 그건 봄마다 친구를 떠올린다는 말.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평생 미나리전 앞에서 친구를 떠올릴 것을 생각하면, 오래전의 약속이 모양만 바뀐 채로 계속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봄 산을 같이 걷길 잘했지. 평상에 앉아 미나리 전을 먹길 잘했지.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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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행복을 누리는 것 중에 먹거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음식은 당시의 디테일한 추억을 상기시키기 좋은 소재인데, 먹었던 음식을 비롯해 당시의 날씨, 함께 한 이들, 코끝에 머물던 향기, 풍경까지 담아낸다.

때문에 우리는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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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여름, 햇볕에 자라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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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
▷5월 20일 무렵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서 대지에 가득 차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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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안부가 원래 그런 일이다. 생각나서 연락하는 일.
(...)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본다. 그중 가장 쉬운 안부의 규칙은 '이름으로 된 간판을 발견하면 연락하기'다. 싱겁기로는 국내 최고인, 저염식 안부라 할 수 있다.
(...)
제대로 할 게 아니면 아예 안 할 거라 마음먹는 것보다야 가볍게라도 하는 게 낫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안부'라는 게 있나? 안부는 짧아도 가벼워도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답장들엔, 직접 보지 못했어도 웃음이 묻어 있단 게 느껴진다. 어떤 안부는 조만간 만나자는 약속으로 이어지고, 또 어떤 안부는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끝나기도 한다. 그거면 됐다. 안부란 정말 별게 아니니까. 편안한지 아닌지 묻는 일.
(...)
작은 안부가 자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소만.
아무렴, 안부를 묻기에 좋은 계절이다.
127, 129, 131~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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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쉽게 작은 안부를 먼저 묻던 때도 있었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하는 것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미루다 보니 이제는 안부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는 소만, 시시한 작은 안부를 먼저 건네보면 어떨까 한다.


■망종
▷6월 5일 무렵
▷까끄라기 곡식인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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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귀담아듣는대서부터 시작하니까. '이런 걸 보니 좋네, 여기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 이걸 먹으니 행복하네' 내가 언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아채고, '이런 걸 보고 싶다, 이런 데 가고 싶다, 이런 걸 먹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알아줄 때. 그 목록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한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종엔 우리 모두 바깥 인간이 되자. 밖으로 나가 초여름을 누리자. 잠시여서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며 스스로를 웃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변치 않는 제출 숙제니까.
145~14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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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바깥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초 여름을 누리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바라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귀담아 들으며 나의 행복을 찾아보라 권한다.

푸릇함과 싱그러움이 가득한 6월, 나를 발견하고 환기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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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가을, 이슬에 여물어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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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
▷10월 23일 무렵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지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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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는 단풍의 계절에서 내려다보는 낙엽의 계절까지,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하나다. 이 가을을 끝까지 써야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치약이나 핸드크림의 가운데를 가위로 잘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답게, 이 계절을 끝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
다들 가을에 진심인 것, 아름다움 앞에 열심인 것. 그 마음을 헤아리면 이 모든 소통이 극성이 아니라 정성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성수기가 성수기인 이유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는 저마다의 제철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251~2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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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수기마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바빴는데, 이 글을 읽고 보니 저마다 제철 숙제를 하느라 바빴던 것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유독 알록달록 가을빛으로 물든 가을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면서도 막상 사람들에 치일 생각에 주저앉고는 했는데, 올가을에는 나만의 제철 숙제를 하러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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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겨울, 눈을 덮고 잠드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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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1월 20일 무렵
▷큰 추위가 찾아오는 한 해의 마지막 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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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
꼭 필요치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다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여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겨울 숲의 저 나무들처럼, 신의 부재 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333~3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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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자연을 거스르고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불행한 것이 아닐까 한다. 물 흐르듯 '제때'에 맞춰 살아간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라도 계절의 변화를 눈치채보자. 제때 해야 할 일을 눈여겨보고,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무엇을 하나씩 실행해 보자. 여기에 더해 제철 음식을 충분히 음미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매해 돌아보는 봄이 있어 다행히 우리는 일 년을 주기로 삶을 새로고침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번 봄이 다음 봄과 같지는 않기에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사는 것.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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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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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왜 일 년이 사계절로 이루어져 있고, 또 이것이 24절기로 나누어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무엇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빽빽하게 자리한 절기를 노닐다 보면, 자연 그 자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떼기 어렵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불쑥 커버린 작물을 목격하게 되고, 그러다 울긋불긋 불든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수확의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쌀쌀함이 감돌 때쯤에는 하얗게 뒤덮인 눈 때문에 또 멍을 때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풍경에 압도당하는 느낌에 더해 중간중간 익숙한 먹거리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 새삼 낭만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온전히 계절을 느끼며 살았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부터라도 제철 숙제를 하며 절기별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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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 J.H Classic 2
나태주 지음 / 지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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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책을 읽다가 앞서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시만 모아 출간한 책이 있다고 하여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최초의 인터넷 시집이라고 하는데, 시와 가깝지 않았던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그림, 그리고 각 장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윤문영 화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데, 보다 보면 자꾸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풀꽃부터 다양한 색감을 지닌 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기에 더해 중간중간 여백을 채우는 시인의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시보다 오히려 그림이었는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 나무, 낙엽 등의 자연 소재에 시인의 상상력을 더한 그림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시와 그림들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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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금방 듣고 또 들어도
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목소리 들었던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다시 한번 태어나고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63페이지 中
=====

이 시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서툰 것이 사랑일까? 그러다 오래 사귄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즉 '권태감'이 문득 떠올랐다.

너무 오래 알고 지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나 서투름이 없는 상태. 어쩌면 이 권태감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 새로움, 낯섦, 서툶이 없어진 이유일 테다. 때문에 시인은 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 즉 서투름이야말로 곧 사랑이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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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72페이지 中
=====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복이 별거 없다는 것. 시에 담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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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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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짧은 몇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풀꽃의 사랑스러움과 싱그러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더해, 너도 그렇다는 한마디는 앞의 수식어들이 더해져 누구든 심쿵 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볼매'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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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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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그대로 묘비명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다른 나만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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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지 마세요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 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106~107페이지 中
=====

'아끼다가 똥 된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아끼다가 정작 쓰려고 꺼냈을 때 쓰지 못한 경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게 물건이 됐든, 사람이 됐든 너무 아끼다 보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폐기처분하기 이전에,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용해 보면 어떨까? 감정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중요한 것은 현재이지 나중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은 더 자주 사용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먹으며 음미해 보자. 좋아하고 그리운 마음 또한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 보자. 그게 바로 잘 사는 인생 아닐까?


=====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160~161페이지 中
=====

앞 전의 시와 반대되는 시로, 이 시에서는 배려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책임지지 못할 감정은 마음속에 꾹 담아두기, 나도 겪어본 감정들을 타인이 굳이 겪게 하지 않기.

타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시를 위주로 소개했지만, 중간중간 시선이 갔던 그림도 함께 담아보았다. 섬세한 표현과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을 통해 잠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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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개정증보판 포레스트 에디션)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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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가 공감의 언어가 되는 순간!"


일상의 단어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감정과 관계를 탐색하다 보니, 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출처를 알게 된다.

'아~ 이래서 내가 힘들었던 거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었구나' '나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00이구나' 깨닫게 된다.

나를 대변하는 언어,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나와 너를 규정할 수 있는 언어,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언어들을 김이나의 언어를 통해 만나보면 어떨까 한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주변에 늘 자리하고 있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 관계,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게 해주는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파트 1 '관계의 언어'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단어를 소개한다. 파트 2 '감정의 언어'에서는 단어가 지닌 특유의 감각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그녀의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파트 3 '자존감의 언어'에서는 나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성찰하게 만드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일으키는 작사가여서인지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다독임을 받을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밑줄을 긋거나 따로 필사를 함으로써 마음에 한 번 더 새겨두면 어떨까 한다.

본론에서 다루는 언어 외에도 'Radio record'와 'Lyrics'를 통해 그녀의 다른 감성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라디오 <김이나의 밤 편지>에서 다뤘던 멘트와 미발표곡의 노랫말을 통해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껴봐도 좋을 것 같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언어들 속에 자리한 숨은 의미와 의도들을 살펴보면, 내심 겉으로 드러내어 어떤 감정을 드러내기 매우 모호할 때가 많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불쾌함을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대놓고 비꼬거나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김이나는 이런 언어들을 비롯해 특정 프레임에 갇혀 우리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언어, 나를 성장시키고 힘을 북돋어 주는 언어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언어가 지닌 힘과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사와는 다르게 해당 언어에 대해 또렷하고 명징하게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은 아마 나처럼 곧바로 피드백을 훅 내뱉게 될 것이다. '맞아 나도 그랬어' '이 땐 이런 마음이었구나'와 같이 말이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어떤 기준이 생긴다.

그러면서 불안하고 어수선했던 마음이 어느새 말끔히 정리되고, 차분해진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애매모호한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면, 나를 다잡을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이 책을 통해 보통의 언어와 나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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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두 약간씩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아니, 친할수록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 세심히 살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당연히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V3가 깔리지 않은 컴퓨터가 된다.'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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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부득이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를 관찰해 주고, 그걸 토대로 내 성향을 점선으로나마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밑그림이 나의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나는 무장해제되곤 한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열심히 점선으로 상대를 스케치해 본다.
(...)
이 섬세한 과정을 퉁치는 말이, '배려'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틈은 서로가 서로를 잘 바라보기 위한 것일 테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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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거리감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그래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가까울수록 선이 필요 없다거나 더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선을 지켜 깍듯한 태도를 보이고,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 함부로 함으로써 관계를 어그러뜨리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쉽게 목격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며, 만약 선 없이 자기 맘대로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V3가 깔리지 않음 컴퓨터가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간혹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들의 귀한 노력과 배려가 있기에 이런 상황이 가능할 수 있다고 전한다.

우리에게 이런 배려와 노력이 동반되기 어렵다면, 일단 안전거리부터 확보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안전한 감정과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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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 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
사과를 받는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화해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호시절에 잘해주는 건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거리가 가깝고 가까울수록, 갈등이 생길 확률은 높다. 그러니 이 갈등을 어떻게 어루만져 다음 단계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잘 마무리된 다툼만큼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건 없다.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차라리 당신에게 이 관계를 더 견고히 만들 기회가 주어진 거다. 잊지 말자. 사과는 A/S 기간이 가장 중요하단 걸.
36~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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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는 상황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과를 하는 사람이 결국 화를 내고, 사과를 받는 사람이 결국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당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어이없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늘 상황은 이렇게 돌아간다.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가해자는 사과한 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상대방이 결국 속 좁고 못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분명 어떤 것이든 예열이 필요한 법인데 왜 잘못한 쪽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그렇게 재빨리 해치우려 하는 걸까?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과까지 받아줘야 하는 걸까? 사과를 받아줄지 말지는 엄연히 내 마음인데, 이것까지 가해자에게 강요받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관계를 잘 풀어가고 싶다면 이런 것까지 고려해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까지 포함해야 진정한 사과라고 말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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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감정 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공감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후, 내가 겪지 않은 일에도 조금 더 적극적인 위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48~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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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감! 어쩌면 우리 사회가 메마르고 까칠해진 건 바로 이 공감 서랍을 꾹 닫아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면 꼭 같은 경험을 해야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우리는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일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일들은 바로 이런 공감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재난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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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자가 받는 이를 오랫동안 세심히 지켜봐온 시간이 선물 받는 이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듯, 조언도 그렇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 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 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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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에 대해 명쾌하고 확실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뱉는 말로 '조언'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상대방을 찌르는 바늘이 되어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만약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 굳이 '조언'을 건네야 하는 상황이라면 듣는 이를 고려한 상황과 고운 말로 조심히 건네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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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염치'다.
(...)
나이와 상관없이 이런 태도를 가진 자들이야 답이 없다 쳐도, 나이와 밀접한 상관이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서글프다. 삶에 지쳐, 육아와 회사에 지쳐, 체면이란 게 사치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태도일 테니 말이다. 수줍음이 있는 어르신이 된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소망한다. 시간이 흘러도 나 또한 염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길.
80~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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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르신들을 보면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많은 게 자랑인 양,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는 것 마냥 행동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어르신뿐만 아니라 염치를 모르고 날뛰는 행동으로 각종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들을 보면 역시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염치를 안다는 말은 점잔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나 역시 소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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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틀릴 수가 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중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가사는 기억의 속성을 잘 활용한, 거의 명언과 같은 표현이다. 반면에 추억은 틀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내가 어떻게 저장하기로 한, 나의 감정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상황이 실제로 좋았든 나빴든, 추억이 되느냐 마느냐의 감독 권한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뼈아픈 슬픔도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잘리기 전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몰랐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나가긴 했지만 소멸되진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1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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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기억에 대한 풀이를 보고 순간 반짝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비슷한 말로 대충 생각하며 살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추억과 기억에는 큰 갭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단면을 잘라낸 기억과 온전한 상태로 담겨있는 추억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왜 그동안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을까 새삼 반성하게 된다.

틀릴 수도 있는 기억, 절대 틀릴 가능성이 없는 추억!
우리에게 힘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은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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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말하자면, 목표는 어느 만큼의 관객 수를 동원할지, 얼마의 수익을 창출할지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다루는 이야기다. 반면 꿈은 미술을 논한다. 어떤 분위기의 장소, 어떤 색깔과 질감의 의상, 또 어떤 종류의 소품에 둘러싸인 주인공... 즉 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훌륭한 목표와 근사한 꿈, 어울리는 수식어도 각각 다르다.

아직 꿈이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가 자연스럽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끌려 탄생한 꿈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준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 듯 꿈도 그렇다.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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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꿈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서술한 문장인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분명한 선을 제대로 짚어준 느낌이다.

목표는 구체적인 '수치'로 논할 수 있다. 반면 꿈은 '상상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다. 때문에 꿈은 어떤 것으로 구분 짓거나 명확히 성공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리고 꼭 도달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지금 내가 쫓고 있는 것이 목표인지 꿈인지 헷갈린다면 이것으로 구분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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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는 나고 주인공도 나다. 작가가 위기에 빠진 주인공 곁에 같이 앉아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하고 발을 동동 굴러선 안 되는 법이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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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 삶은 내가 주인공이자 작가이며 연출가라 말할 수 있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삶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이끌어갈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당당하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지, 아니면 쭈구리 삼류인생으로 살지는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

김이나가 말하는 보통의 언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과 관계, 삶들이 다시 재정립되는 느낌이다.

덕분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들에 이름표가 하나씩 붙음으로써 시끄럽고 어지러웠던 마음의 방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구분 짓기도 애매했던 것들이 조금씩 분명한 색을 띠면서 내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버려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이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 때론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철학자나 전문가, 고전과 같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보통의 언어들에서 찾을 수도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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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지음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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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계속 읽어왔는데, 최근 읽었던 몇몇 책들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인지, 뭔가 목마름이 일었다.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해소하고자 이번에 찾은 책은, 나태주 시인의 80년 생각들을 그러 모은 에세이 책이다.


적어도 이 작가만큼은 정갈하고 다듬어진 글을 썼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였다.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본 사람,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분들과 나란히 하는 작가,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더불어 요즘은 듣기 어려운 '어른'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듣는 기분이라 '그치', '그렇네' 하며 읽게 되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태주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름의 평가를 내려본다.


여기에 더해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고, 될 것인가에 대한 여러 고민이 앞선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나쁜 어른의 형상은 닮지 말아야지 우선 그것부터 다짐해 본다.



총 4부 69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나태주 작가의 1945년부터 2024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생각들을 그러모은 에세이 책이다. 어떻게 보면,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온 나태주의 인생수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 때문에'라고 하면 나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때문에' 앞에 긍정적 의미를 담아 제목과 주제를 정했다.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음을 그의 글을 통해 깨닫는다. 한 번 사는 인생 '좋은 무엇'으로 삶을 채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저자처럼 고운 말, 예쁜 경험들로 가득 채우면 된다. 그의 책 속에는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 내가 더 좋아지는 방법도 함께 담겨 있으니 참고해 보자.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던 내용과 마음에 새기면 좋을 내용들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온갖 나쁜 것들에 찌들어 있다면, 지금보다 내 인생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이 책을 통해 잠시 정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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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일로 남의 시선과 관계가 있다. 이는 자존심을 높여준다. 반면 좋아하는 것은 안에서 작용하는 일로 자신의 눈길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공헌한다.

(...)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일이다. 결코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일종의 몰입니다. 좋아서 하면 만족하게 될 것이고, 그 나름대로 성과를 낼 것이고, 기쁜 마음이 생기면서 행복한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끝까지 해보라.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만족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끝내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26~27페이지 中

=====


자존심과 자존감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존심은 밖으로 드러나는 일로 남의 시선과 관계가 있다. 반면 자존감은 안에서 작용하는 일로 나 자신과 관계가 있다.


저자는 자존감을 높이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며, 그 방법도 함께 전하고 있다. 살펴보면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자존감이 바닥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아보자.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다.



=====

자존감과 자존심은 얼핏 같은 뜻으로 보인다.

(...)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두 단어는 그 적용이 서로 다르다. 자존심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어울릴 때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혼자서 생각할 때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라 하겠다.

(...)

이런저런 삶의 내력과 현실 안에서 우리는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과 어울릴 때는 제법 그럴듯한 사람 같아도 혼자가 되면 여지없이 후줄근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두 가지 마음의 간극 속에서 우리의 부정적 감정이 싹튼다.

(...)

이것은 곧장 불행감으로 직결된다.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인과 비교하길 좋아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존감이 낮으니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

자존감은 또 하나의 목숨이다.

(...)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하자.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신뢰하자. 내일은 분명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믿고 기다려보자.

62~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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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해 또 한번 언급하는데, 살펴보면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특히 남과 어울릴 때는 그럴듯해 보여도 혼자 있을 때 후줄근한 사람이 된다는 말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실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거나 지극히 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데, 이것은 곧 행복지수가 낮은 것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하기,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신뢰하기를 지금부터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실천하다 보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

어떤 선배 시인은 회갑을 넘기자, 자기는 이제 문학상 같은 것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한 바 있다.

(...)

반면 요즘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생각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젊은 시절 받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받자는 식이고, 나이 들었으니 더욱 대접받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 같다. 낯 뜨거운 일이다.

(...)

정말로 요즘 나이 든 어른들은 연극이 끝났는데도 무대에서 내려가지 않는 연극배우와 같다.

(...)

나이 들어 이것저것 욕심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건 좀 그렇다. 민망한 일이다. 그런 걸 노욕이라고 그런다. 나이 든 사람이면 문학상 같은 것도 자기들이 만들어서 젊은 사람에게 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이다.

147~148페이지 中

=====


나이'만' 먹은 사람들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어쩐지 통쾌함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나이를 먹었다'라는 말이 수더분한, 관대한, 지혜로운 과 같은 의미와 일맥상통했다면, 요즘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욕심 많은, 똥고집, 대접받기를 바라는 등과 거의 맥락이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각자도생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노욕을 받아주고 싶지 않고, 노인들은 그런 대접을 받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듯하다.



=====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단면이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라니!

(...)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공자 님의 말씀이다.

(...)

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방책과 문제의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를 내면 망하는 길만 빨라질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래서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

162~164페이지 中

=====


지금 우리는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도 든다.


세상 따라 같이 미쳐야 하는지, 아니면 소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길로 가라고 말한다.


주변 따라 무조건 빨리 가기 위해 재촉하기보다 스스로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 달리라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살피며 나만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

거리 두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뿐 아니라 세상살이 전반에 걸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선은 나와 세상 사이에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

조금쯤은 세상일을 멀리하며 살 필요도 있다. 즉각 반응하는 게 아니라 지그시 지켜보며 살 필요가 있다. 세상일에든 자연에든 자정작용이란 것이 있다. 시간의 법칙이란 것도 있다.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 제 갈 길을 가게 마련이다. 이것을 옛 어른들 말씀으로는 사필귀정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거리 두기는 자신의 삶과 거리를 두는 일이다.

(...)

이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 입장에서 보는 것인데 이는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문제다. 오랫동안 마음을 모아 연습해야만 그 가능성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166페이지 中

=====


코로나로 인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거리 두기'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거리감, 그것을 코로나가 일깨워 주었다.


나와 세상 사이, 나와 너 사이가 너무 가까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문제점을 거리 두기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거리를 두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제껏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연습해 보자.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야 제대로 세상을, 나 자신을, 너를 볼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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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일에 두 번이란 없다. 모두가 한 번뿐이다. 연습으로 해보는 일도 단 한번이자 유일본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는 그녀의 시 <두 번은 없다>에서 이렇게 썼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정신 차려서 살 일이다.

1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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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착각하며 살고는 하는데, 우리 삶에 두 번이란 없음이다. 인생도, 연습도 그 어떤 것도 우리 삶에 두 번은 없다.


그렇기에 매 순간 신중하고, 정신 차려서 살 일이다. 항상 기회가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인생이 '좋다'라고 확실할 만한 요소를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나 평가 말고, 내가 내 안에서 느끼는 '좋다'라는 감정을 자신할 수 있는 인생을 더 격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내 감정에 솔직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 책을 계기로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내가 나에게 더 좋은 말, 예쁜 말, 격려의 말을 들려주려 한다.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 보면 어떨까 한다.


때때로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는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와 노력, 스스로의 신념이 굳건하다면 천천히라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나이 먹기를 꿈꾸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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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상했어요?
양선이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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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읽다 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방향이 많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일단 문학적(혹은 인문적) 접근이기보다, 학문적 접근에 더 가깝게 쓰여 있었고, 내용은 여러 학술 자료들을 모아 추론, 검증, 예시, 인용 등을 활용하여 분석하고 여기에 저자의 약간의 의견을 더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읽는 내내 깊게 내용에 빠져들기보다 약간 겉핥기 형태로 읽는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저자는 분노(혹은 화)라는 감정의 본성을 파헤치고 이를 분석하여 보여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기재하고 있는데, 큰 관점에서 '화'를 분석하기보다 '진화론자'와 '사회 구성 주의자들' 간의 화의 근원에 대한 논쟁을 소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고 있다.


보다 보편타당한 관점, 일반적인 접근 방식으로 '화'에 대해 다루었으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다. 더불어 더 많은 생각할 거리들이 있었을 텐데, 이 책의 서술 방식을 따라 접근하자니 개인적인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덧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각 장마다 소개되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진화론자와 사회 구성 주의자들 간의 화의 근원에 대한 논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분노'에 대한 분석과 저자의 의견을 담고 있다.


감정 전반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 오롯이 '분노'에 대한 감정에 집중해 서술하고 있는데, 철학자의 입장에서 파헤치는 '분노의 본성'과 이를 분석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책은 1-2장 '분노'에서 출발하여, 3장 감정의 본성, 4-5장 연민과 공감, 6장 사랑을 논한다. 그리고 7-9장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감정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과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만일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과 사랑과 공감이 가능할까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10장에서는 '감정과 인간의 행복'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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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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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 중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분노'로부터 출발한다. 1장에서 저자는 인류가 진화를 통해 보편적으로 갖게 된 기본 감정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욱 도덕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분노'감정을 논하기 위해 저자는 특별히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철학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 불평등, 부정의에 관한 인간 본성에 있는 감정을 통해 접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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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관계의 격차 때문에 생기는 감정일 뿐만 아니라 기본 감정으로서 인간 본성에 있는 성향이라는 입장을 살펴보았다.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무시당하거나 부정의를 경험하게 될 경우,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촉발하는 심리적 계기가 바로 '분노'이다. 분노는 인류가 진화를 통해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기본 감정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욱 도덕적 감정의 씨앗을 포함한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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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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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인간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하여 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다원주의 '진화심리학'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회 구성주의'의 입장을 비교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이론의 난점을 밝히고 이 둘이 화해할 수 있는 하나의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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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자들은 문화의 공헌과 학습을 경시한다. 그들은 감정이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한 결함 있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회 구성 주의자들은 신체적인 반응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인지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들은 감정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함 있는 이론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프로그램도 아니며, 인지적으로 매개된 규약적인 것도 아니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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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감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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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감정 이론을 소개하고 각각의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저자의 입장을 밝힌다. 나아가 저자는 감정과 관련하여 '규범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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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정의 적합성과 적절성은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 평가를 해 가는 삶의 과정에 달려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웃김, 역겨움, 창피함 등등을 발견한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감정과 판단에 의해 부과된 사회적 강제를 통해 우리는 반성과 숙고를 하게 되고 서로 다른 공동체가 공유한 서로 다른 역사가 수치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확립한다.

1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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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도덕적이기 위해 왜 공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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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감이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공감'이 어떻게 '도덕적' 행위로 이끌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저자는 '연민'과 '공감'이 제대로 작동하여 도덕적일 수 있도록 도덕감정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4장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의 공감 이론과 흄의 공감 이론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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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공동체 내에서 행위자의 성품에 대해 관찰자가 승인 또는 불승인해 주는 감정적 상호작용, 즉 공감이 중요하며, 이러한 작용이 도덕적 행동을 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와 같은 도덕감의 상호작용을 통해 행위자로 하여금 그 도덕 공동체의 적합한 인간이 될 수 있게 교육하고 양육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

도덕적 책임 귀속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이나 양육, 훈계 등을 통해 행위자의 성격적 성향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성격적 성향을 바꿀 기회가 열려 있으므로 교정 가능한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교정하지 않았거나 지속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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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왜 이성이 감정의 노예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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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철학과 이를 지지하는 뇌인지 과학적 근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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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사회적 산물이지만 특정한 방식으로 사회적 세계에 대해 해석, 반응하기 위해서는 진화되어 내재된 '준비' 위에서 가능하다. 이렇게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갖고 있는 기초적 직관으로서 기본 감정이 수천 년에 걸쳐 생존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극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몸에 부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

나아가 그와 같은 '적절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덕의 '습관화'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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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사랑에 이유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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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사랑의 이유와 사랑의 대상 그 자체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어떤 이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과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은 양립 불가능성을 우리는 '사랑에 관한 퍼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말하며 저자는 6장에서 이와 같은 '사랑의 퍼즐'을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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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유를 역사성, 관계성, 그리고 경험을 통해 갖게 되는 필연성에서 찾고자 했다. 이러한 입장은 고정 지시적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

사랑의 퍼즐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저자는 앞서 제시한 해결책 중 일부를 받아들이고 보완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하고자 했다. 즉 프랑크푸르트의 '부여함'이론, 즉 '나는 사랑하는 이가 갖고 있는 어떤 실제의 속성에다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과 솔로몬의 '아리스토파네스적 역사성'을 강조한 '부여함' 이론을 양립 가능하게 만들고, 콜로드니가 강조한 관계 가치와 필자가 강조한 상호 역동성을 받아들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이러한 이유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de re(데 레) 적'인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9~2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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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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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입장을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적용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영화 <그녀 her>를 통해 분석해 본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에 관한 이 영화의 분석을 통해 필자는 현시점에서 사용자들, 즉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한 의인화와 과몰입 등을 경계해야 할 것을 제안하며, 그들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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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욕망의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은 손쉽게 더 자극적인 것들을 얻고자 인공지능에 과몰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의인화와 과몰입 등을 경계해야 할 것이며, 사용자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윤리가 필요하다.

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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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인공 감정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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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본떠서 만든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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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행위의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도덕감정이 필요하다. 즉 도덕적 행위자는 도덕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어려운 문제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으냐는 것이 될 것이다.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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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윤리적 인공지능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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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인간과 공존할 윤리적 인공지능을 위한 이상적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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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도덕적 행위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도덕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인공지능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논의되어야 한다.

(...)

남에게 해를 가하지 말고 배려해야 한다는 직관이 진화를 통해 모듈로서 준비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연민'이라는 감정을 통해 실천할 수 있으며, 그렇게 했을 때 배려심 있고 친절한 성품의 소유자로 칭찬을 받게 된다.

260~2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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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어떻게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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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꼭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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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차분한/격렬한 정념의 미묘함에 관해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든다. 둘 다 행복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흄의 첫 번째 핵심은 차분한 정념의 섬세함을 바람직한 것이고 격렬한 정념의 거칠고 난폭함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흄의 두 번째 핵심은 차분한 정념의 미묘함이 격렬한 정념의 미묘함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

행복에 이르는 길은 차분한 정념을 강화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방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문예가 필요하다. 문예교육을 통해 취미를 개발함으로써 우리의 판단 능력이 향상된다고 흄은 주장한다. 나아가 우리가 읽고, 연구하고, 우리의 세계관을 넓힐 때 우리는 차분한 정념을 강화하고 최대 행복을 얻게 된다.

(...)

우리는 차분한 정념을 강화함으로써 행복에 이를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취미를 개발하고 관점을 기르고 지식을 쌓는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하나의 중요한 길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잘 쓰인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277~2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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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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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라는 감정을 분석한 내용을 따라 쭉 읽어왔는데, 결론은 약간 급진적인 느낌이 드는 행복에 이르는 방법에 도달했다.


흄의 이론을 들어 결국 결론은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취미를 개발하고 관점을 기르고 지식을 쌓는 것, 여기에 더해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켜 줄 잘 쓰인 에세이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돌고 돌아 도착지에 도착해 보니 그토록 찾던 결론은 약간 시시하고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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