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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 ㅣ J.H Classic 2
나태주 지음 / 지혜 / 2015년 6월
평점 :
나태주 시인의 책을 읽다가 앞서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시만 모아 출간한 책이 있다고 하여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최초의 인터넷 시집이라고 하는데, 시와 가깝지 않았던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그림, 그리고 각 장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윤문영 화백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데, 보다 보면 자꾸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풀꽃부터 다양한 색감을 지닌 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기에 더해 중간중간 여백을 채우는 시인의 그림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시보다 오히려 그림이었는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 나무, 낙엽 등의 자연 소재에 시인의 상상력을 더한 그림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시와 그림들을 지금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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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금방 듣고 또 들어도
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목소리 들었던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다시 한번 태어나고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다시 한번 죽는다.
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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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서툰 것이 사랑일까? 그러다 오래 사귄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 즉 '권태감'이 문득 떠올랐다.
너무 오래 알고 지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서로에 대한 궁금증이나 서투름이 없는 상태. 어쩌면 이 권태감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 새로움, 낯섦, 서툶이 없어진 이유일 테다. 때문에 시인은 늘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 즉 서투름이야말로 곧 사랑이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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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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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복이 별거 없다는 것. 시에 담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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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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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짧은 몇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풀꽃의 사랑스러움과 싱그러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더해, 너도 그렇다는 한마디는 앞의 수식어들이 더해져 누구든 심쿵 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볼매'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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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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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그대로 묘비명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다른 나만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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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지 마세요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 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106~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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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가 똥 된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아끼다가 정작 쓰려고 꺼냈을 때 쓰지 못한 경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게 물건이 됐든, 사람이 됐든 너무 아끼다 보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다.
폐기처분하기 이전에,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용해 보면 어떨까? 감정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중요한 것은 현재이지 나중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은 더 자주 사용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먹으며 음미해 보자. 좋아하고 그리운 마음 또한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 보자. 그게 바로 잘 사는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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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160~1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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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전의 시와 반대되는 시로, 이 시에서는 배려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책임지지 못할 감정은 마음속에 꾹 담아두기, 나도 겪어본 감정들을 타인이 굳이 겪게 하지 않기.
타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져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시를 위주로 소개했지만, 중간중간 시선이 갔던 그림도 함께 담아보았다. 섬세한 표현과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을 통해 잠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