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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개정증보판 포레스트 에디션)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평점 :
"보통의 언어가 공감의 언어가 되는 순간!"
일상의 단어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감정과 관계를 탐색하다 보니, 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출처를 알게 된다.
'아~ 이래서 내가 힘들었던 거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었구나' '나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00이구나' 깨닫게 된다.
나를 대변하는 언어,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나와 너를 규정할 수 있는 언어, 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언어들을 김이나의 언어를 통해 만나보면 어떨까 한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주변에 늘 자리하고 있는 일상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 관계,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게 해주는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파트 1 '관계의 언어'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단어를 소개한다. 파트 2 '감정의 언어'에서는 단어가 지닌 특유의 감각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그녀의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파트 3 '자존감의 언어'에서는 나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성찰하게 만드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일으키는 작사가여서인지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다독임을 받을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밑줄을 긋거나 따로 필사를 함으로써 마음에 한 번 더 새겨두면 어떨까 한다.
본론에서 다루는 언어 외에도 'Radio record'와 'Lyrics'를 통해 그녀의 다른 감성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라디오 <김이나의 밤 편지>에서 다뤘던 멘트와 미발표곡의 노랫말을 통해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껴봐도 좋을 것 같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언어들 속에 자리한 숨은 의미와 의도들을 살펴보면, 내심 겉으로 드러내어 어떤 감정을 드러내기 매우 모호할 때가 많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불쾌함을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대놓고 비꼬거나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김이나는 이런 언어들을 비롯해 특정 프레임에 갇혀 우리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언어, 나를 성장시키고 힘을 북돋어 주는 언어 등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언어가 지닌 힘과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사와는 다르게 해당 언어에 대해 또렷하고 명징하게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은 아마 나처럼 곧바로 피드백을 훅 내뱉게 될 것이다. '맞아 나도 그랬어' '이 땐 이런 마음이었구나'와 같이 말이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어떤 기준이 생긴다.
그러면서 불안하고 어수선했던 마음이 어느새 말끔히 정리되고, 차분해진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애매모호한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면, 나를 다잡을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이 책을 통해 보통의 언어와 나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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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모두 약간씩의 거리를 두는 편이다. 아니, 친할수록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 세심히 살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당연히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V3가 깔리지 않은 컴퓨터가 된다.'
28~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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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부득이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를 관찰해 주고, 그걸 토대로 내 성향을 점선으로나마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밑그림이 나의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나는 무장해제되곤 한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열심히 점선으로 상대를 스케치해 본다.
(...)
이 섬세한 과정을 퉁치는 말이, '배려'인 것 같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틈은 서로가 서로를 잘 바라보기 위한 것일 테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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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거리감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그래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가까울수록 선이 필요 없다거나 더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선을 지켜 깍듯한 태도를 보이고,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 함부로 함으로써 관계를 어그러뜨리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쉽게 목격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며, 만약 선 없이 자기 맘대로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V3가 깔리지 않음 컴퓨터가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간혹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들의 귀한 노력과 배려가 있기에 이런 상황이 가능할 수 있다고 전한다.
우리에게 이런 배려와 노력이 동반되기 어렵다면, 일단 안전거리부터 확보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안전한 감정과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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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 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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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받는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화해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호시절에 잘해주는 건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거리가 가깝고 가까울수록, 갈등이 생길 확률은 높다. 그러니 이 갈등을 어떻게 어루만져 다음 단계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잘 마무리된 다툼만큼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건 없다.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차라리 당신에게 이 관계를 더 견고히 만들 기회가 주어진 거다. 잊지 말자. 사과는 A/S 기간이 가장 중요하단 걸.
36~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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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하는 상황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과를 하는 사람이 결국 화를 내고, 사과를 받는 사람이 결국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당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어이없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늘 상황은 이렇게 돌아간다.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가해자는 사과한 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상대방이 결국 속 좁고 못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분명 어떤 것이든 예열이 필요한 법인데 왜 잘못한 쪽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그렇게 재빨리 해치우려 하는 걸까?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과까지 받아줘야 하는 걸까? 사과를 받아줄지 말지는 엄연히 내 마음인데, 이것까지 가해자에게 강요받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관계를 잘 풀어가고 싶다면 이런 것까지 고려해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까지 포함해야 진정한 사과라고 말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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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감정 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공감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후, 내가 겪지 않은 일에도 조금 더 적극적인 위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48~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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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감! 어쩌면 우리 사회가 메마르고 까칠해진 건 바로 이 공감 서랍을 꾹 닫아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면 꼭 같은 경험을 해야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우리는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일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일들은 바로 이런 공감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재난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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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자가 받는 이를 오랫동안 세심히 지켜봐온 시간이 선물 받는 이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듯, 조언도 그렇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 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 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
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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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에 대해 명쾌하고 확실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뱉는 말로 '조언'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상대방을 찌르는 바늘이 되어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만약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 굳이 '조언'을 건네야 하는 상황이라면 듣는 이를 고려한 상황과 고운 말로 조심히 건네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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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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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상관없이 이런 태도를 가진 자들이야 답이 없다 쳐도, 나이와 밀접한 상관이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서글프다. 삶에 지쳐, 육아와 회사에 지쳐, 체면이란 게 사치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태도일 테니 말이다. 수줍음이 있는 어르신이 된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소망한다. 시간이 흘러도 나 또한 염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길.
80~8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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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르신들을 보면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많은 게 자랑인 양,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는 것 마냥 행동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어르신뿐만 아니라 염치를 모르고 날뛰는 행동으로 각종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들을 보면 역시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염치를 안다는 말은 점잔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나 역시 소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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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틀릴 수가 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중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가사는 기억의 속성을 잘 활용한, 거의 명언과 같은 표현이다. 반면에 추억은 틀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내가 어떻게 저장하기로 한, 나의 감정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상황이 실제로 좋았든 나빴든, 추억이 되느냐 마느냐의 감독 권한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뼈아픈 슬픔도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잘리기 전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몰랐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나가긴 했지만 소멸되진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1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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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기억에 대한 풀이를 보고 순간 반짝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비슷한 말로 대충 생각하며 살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추억과 기억에는 큰 갭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단면을 잘라낸 기억과 온전한 상태로 담겨있는 추억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왜 그동안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을까 새삼 반성하게 된다.
틀릴 수도 있는 기억, 절대 틀릴 가능성이 없는 추억!
우리에게 힘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은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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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말하자면, 목표는 어느 만큼의 관객 수를 동원할지, 얼마의 수익을 창출할지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다루는 이야기다. 반면 꿈은 미술을 논한다. 어떤 분위기의 장소, 어떤 색깔과 질감의 의상, 또 어떤 종류의 소품에 둘러싸인 주인공... 즉 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훌륭한 목표와 근사한 꿈, 어울리는 수식어도 각각 다르다.
아직 꿈이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가 자연스럽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끌려 탄생한 꿈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준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 듯 꿈도 그렇다.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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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꿈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서술한 문장인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분명한 선을 제대로 짚어준 느낌이다.
목표는 구체적인 '수치'로 논할 수 있다. 반면 꿈은 '상상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다. 때문에 꿈은 어떤 것으로 구분 짓거나 명확히 성공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리고 꼭 도달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지금 내가 쫓고 있는 것이 목표인지 꿈인지 헷갈린다면 이것으로 구분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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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는 나고 주인공도 나다. 작가가 위기에 빠진 주인공 곁에 같이 앉아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하고 발을 동동 굴러선 안 되는 법이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
1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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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 삶은 내가 주인공이자 작가이며 연출가라 말할 수 있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삶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이끌어갈 것인가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당당하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지, 아니면 쭈구리 삼류인생으로 살지는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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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가 말하는 보통의 언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과 관계, 삶들이 다시 재정립되는 느낌이다.
덕분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들에 이름표가 하나씩 붙음으로써 시끄럽고 어지러웠던 마음의 방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구분 짓기도 애매했던 것들이 조금씩 분명한 색을 띠면서 내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버려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이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 때론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철학자나 전문가, 고전과 같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보통의 언어들에서 찾을 수도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