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 네오픽션 ON시리즈 6
이세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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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모바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발전하면서 주목받게 된 택배. 특히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선포되면서 비대면은 주류가 되었고, 이에 택배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책 <특별배송 하시겠습니까>는 그런 택배기사들의 이야기이자 일반 서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데, 절박한 순간 동아줄처럼 내려온 '특별배송' 제안은 이들에게 삶의 희망이자 빛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특별배송'으로 얻은 시간과 물질적 풍요는 이내 곧 호기심을 유발하고 마침내 목숨을 위협하는 수단으로까지 이어진다.

 

"평온한 삶과 돈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특별한 택배는 단순히 일반 택배보다 수수료가 높아서 '특별한'것이 아니었다. 택배를 전달하는 방식과 이를 받아 가는 사람들의 독특한 모습, 일반 택배보다 몇 배는 높은 수수료,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의 상자 등 일반 택배와는 모든 것이 다르기에 '특별배송'으로 취급되었다.

 

더불어 '특별배송'은 일반 배송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호기심이 드는 것은 물론, 마침내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까지 부추기는 자기와의 사투도 감내해야 했기에 어느 모로 보나 이것은 정말 '특별'했다.

 

그러나 과한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고, 일반 배송에서 특별배송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대부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택배 상자를 확인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을 겪게 되는데, 무엇이 택배기사들로 하여금 이 택배 상자에 관심을 내보이게 만든 것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민호와 용재 역시도 퍽퍽한 삶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게 된다. 김밥 집만으로는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하기가 빠듯했던 민호는 낮에는 김밥 집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고, 밤에서 새벽 사이에는 어니스트 택배사에서 택배 일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어니스트 택배사는 일반 택배와는 다르게 밤에서 새벽에만 근무한다는 것이 특이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민호에게는 오히려 딱 맞는 일이었다. 

 

그러다 친구인 용재에게도 자신이 일하고 있는 택배사를 소개해 주게 되고 둘은 함께 택배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먼저 입사한 민호를 통해 용재는 이 택배사에는 일반 배송 외에도 특별 배송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특별 배송의 기사로 배정되어 일하게 될 경우 고가의 물품을 배송하고 일반 수수료의 약 100배 이상이 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탐은 나지만 원한다고 모두 될 수 없는 특별 배송이기에 그저 기회를 보고만 있던 이들에게 마침내 특별 배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한 푼이 아쉬웠던 이들은 곧 몇 배는 더 손에 거머쥘 돈을 생각하며 각자의 희망을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민호가 기회를 잡게 된다.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가 특별 배송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뭔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으나 단순 강도의 소행으로 일단락된다. 

 

이후 마침내 용재도 특별 배송 제안을 받게 되고 그는 친구인 민호의 죽음에 특별 배송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하며 제안을 수락한다. 용재는 특별 배송을 하며 민호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되는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그는 마침내 택배 상자를 개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판도라 상자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숨 막히는 추격전과 추리 전이 시작되는데, 어니스트 택배사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려는 이들과 비밀을 숨기려는 자들 그 사이에서 위태로운 목숨을 이어나가며 쫓고 쫓기는 사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읽는 내내 피 튀기는 현장과 생생한 묘사들은 영화를 보듯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우리 삶에 가까이 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택배에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그저 단순한 배송만을 위한 서비스가 한편에서는 특별 배송과 특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 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타인의 택배 상자를 개봉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특별 배송 기사들의 행태를 보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니스트 택배사를 보며 과거 이탈리아나 홍콩의 마피아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권력과 힘을 이용해 사업을 장악하고 그들의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찍어 누르거나 이용하다 목숨을 빼앗는 행태라던가 조직원들을 이용해 또 다른 조직을 치는 모습들에서 과거 비슷한 형태의 잔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선택, 다른 결말. 친구인 민호와 용재는 같은 선택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그들이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 혹은 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숨겨진 든든한 조력자들의 존재도 한몫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소설은 스토리 그 자체보다 소설 속 인물들에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가장 의문스러웠던 인물은 어니스트 택배사에서 회계 및 각종 잡무를 담당하고 있던 서미란대리이다. 소설 등장 시점부터 시선이 갔던 그녀는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치트키일지도 모르겠다.

 

공부와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해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20대 중반에는 수십 명을 거느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어니스트 택배사의 실질적 주인인 강수와 태수 형제의 삶도 재조명되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용재가 암이 재발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보고 태수의 속내를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
태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생각했다. 
(...)
자식이나 형제가 뭐라고 그따위 관계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거지?
(...)
차라리  좋지 않은 환경에서 허우적거릴 게 아니라 과감하게 뛰쳐나와 거칠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성공하면 그때 도와주든가 말든가 하면 되지 않은가?
(...)
다 같이 죽도 밥도 아닌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맞는 것인가? 이런 태수의 생각에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서 그렇다."
그 질문에 대한 태수의 대답은 '까고 있네'다.
(...)
태수에게 희생이란 대단한 이유나 가치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큰 것, 보다 중요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본인의 인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선택일 뿐이다.
(...)
그들은 위선자들이며 겁쟁이고 새가슴이다.

62~63페이지 中
=====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용재의 모습을 지켜보며 유달리 불편하게 느끼던 태수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문장이자, 여러모로 자꾸 되새기게 되는 문장이다. 어쩌면 이것은 태수가 가진 가치관이자 그가 이만큼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버팀목이 되어준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다.

 

태수라는 캐릭터를 지우고 보면 굉장히 현실적으로 와닿는 문장인데, 사람은 누구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던,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어쨌든 결론적으로 보면 모두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을 태수는 '성향'으로 본다는 것이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을 선택하는 자들을 향해 위선자들이고 겁쟁이, 새가슴으로 표현했는데,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다른 '성향'의 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사이다적인 대답으로 큭큭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까고 있네'라는 답이 그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모두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지는 않으므로 '까고 있네'라는 태수의 말은 무심히 가정사나 환경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시원한 한방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가담하게 된 범죄. 그 실체를 파악하는 순간 죽음 혹은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어니스트 택배사의 룰이다. 단순히 눈 감고 귀 막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택배 배달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삶이 바뀌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머리를 굴리며 탈출을 도모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한다. 가장 밑바닥의 피식자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속에 다른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뿐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이들이 그리는 반전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상황과 환경은 비슷했다. 그런데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단순히 환경 탓을 하기에는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정말 환경만의 탓일까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또 수많은 선택지를 갖는다.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것이고,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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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심리법칙 - 우리는 왜 가끔 미친 짓을 하는 걸까
야오야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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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마음 편히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래서 평온한 하루를 소망하면서도 막상 방법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이 그런 사람들에게 묻는다. 

 

힘들고 괴로운데 왜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는가?

 

마음이 어지럽고,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서 잠은 오지 않는 날들이 쌓이게 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때론 나도 모르는 말실수를 하거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때도 있으며, 불면증이 깊어지고, 가끔은 미친 짓을 감행할 때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뜨끔'하는 느낌이 들거나, '내 이야기'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은근 많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자 증상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현대인들이 감기처럼 한 번쯤 겪어봤음직한 심리적 질병을 조명하고 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거론된 질병들이 많아 아마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를테면, 우울증, 수면장애, 몽유병, 꿈, 해리성 장애 등이 그것이다.

 

가장 흔하지만 많이 겪는 대표적인 증상과 그것들이 발생하는 원인, 그리고 치유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면서 내 마음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 깊은 동굴에 빠져 우울감을 느끼는지, 밤마다 수많은 생각에 갇혀 잠을 설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수면시간 동안 이상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등 흔하게 겪는 일이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잠재의식]
살면서 감당하기 어렵거나, 큰 충격을 받은 일들을 우리는 으레 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 의식을 무의식으로 밀어내는 것인데, 이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의식의 세계인 잠재의식 속에서도 이것이 흘러넘쳐 겉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곧 부정적 감정의 상태나 특정 질병으로 나타나 우리의 평온한 삶을 망가뜨린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아 의식 저편으로 밀어뒀을 뿐이지 사실은 모두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 계속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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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마주하고 싶지 않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잠재의식으로 모두 '이양'한다.
(...)
하지만 잠재의식에 이양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잠재의식 속에 '암울한 것'이 너무 많이 쌓이면 동요가 심해져서 의식의 영역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영향으로 여러 부정적인 감정과 심리적 질병이 표출되는 것이다. 즉, 심리적 질병의 근본 원인은 모두 잠재의식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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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곧 초조하고 우울한 이유이자, 불면증을 겪는 원인인데, 이유도 모르고 그저 불편한 감정을 끌어안고 살았던 내 마음의 원인을 발견한 순간이다.

 

이를 통해 의식 너머 무의식은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육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활용해 무의식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예시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무언가를 무의식중에 계속 인지하고 있다가 불현듯 물건을 찾는다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잠재의식의 힘이라던가, 혹은 무의식중에 위험에서 피하는 행동 등 의식과 무의식의 환상적인 팀워크는 우리가 삶을 보다 편안하게 사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부분에서는 우리가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이 '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담겨있는데, 예지몽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암시가 바로 그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 위험에서 피할 수 있도록 꿈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무의식의 하나로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거나 위험에서 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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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건네는 긍정적인 암시는 빠른 속도로, 그 사람을 발전하게 만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건네는 부정적인 암시는 그 사람이 자포자기하고 노력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당신도 자신에게 긍정적인 암시를 걸어보자.

6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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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꿈을 통해서 무언가를 바라고 꿈꿀 필요는 없다. 암시는 스스로에게 매일 다짐처럼 속삭이는 것으로 무의식에 새기는 방법도 있다. 긍정적인 말로 오늘부터 나에게 암시를 걸어보면 어떨까? 이런 암시들이 모여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은 앞선 내용들을 통해 확신할 수 있다.

 

 


[우울증]
우울감이 온몸을 휘감을 때, 세상 가장 깊은 절망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 싶다. 책에서는 우울감의 단계별로 느끼는 증상과 상태, 그리고 다양한 예시들이 담겨 있는데, 우울증에 빠지는 다양한 사유와 이를 통해 느끼는 무기력증과 부정적 감정들의 발현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종교에 심취한다던가, 혹은 무의식적인 분노와 적의를 느끼는 것도 우울증이 불러오는 증상 중 하나라고 하는데, 우울함이 일종에 마음속 '분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울하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흔하게 쓰는 말이자, 심각한 질병 중에 하나로 정도에 따라 어쩌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질병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 우울증도 특별히 좋아하는 인류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일까?

 

안타깝게도 여성이 이에 해당된다. 여성은 여러 가지 생리적, 외적 요인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남성의 두 배나 된다고 한다. 심지어 여성들만이 앓는 우울증도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산후우울증, 생리 전 우울증, 생리 중 우울증이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여성에게 더 취약하다고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데에는 남녀 구분이 없고, 나이나 직업군 등 특정 조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라는 '요괴'를 처단하는 방법>

 

1. '인지-행동' 전술
1단계: 현재 상태를 기록하라.
2단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라.
3단계: 중앙처리장치를 수리하라.

 

2. 단기적 충격요법-전기 전술
전기 전술의 원래 이름은 '전기 충격 요법'으로 처음에 정신분열증 치료에 이용되었다. 전기 충격 요법은 약물치료에 민감하지 않은 환자에게 쓰이며 이런 환자들의 50~60% 정도는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논란이 되는 치료방법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정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증상이 사람마다 다르며, 얼마나 오래 겪었느냐에 따라 그 치료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울증이 오는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뿌리 깊이 박혀있는 경우도 있어 전문가와 상의 후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수면 장애]
우리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 중에 수면장애만큼 괴로운 게 또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 혹은 생각이 많은 날이면 으레 잠 못 드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런 날 만큼은 머리만 대면 쿨쿨 잔다는 이들만큼 부러운 이들이 없다.

 

수면장애는 단기적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하루 이틀은 그냥 넘어갈지라도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생활하는 모든 순간이 몽롱하고 심하면 두통을 유발하거나 행동이 느려지는 등 생활 전반에 다양한 불편을 야기할 수 있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질병이기도 하다.

 

수면장애에서 질병으로 인식되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 '몽유병'을 꼽을 수 있는데, 몽유병의 형성 원인과 현상들, 그리고 치료방법은 프로이트 박사의 이론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몽유병의 형성 원인>
몽유병의 형성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개의 나'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첫번째 나-이드Id (본능적인 '나')
'이드'는 인간 심리의 가장 원시적인 부분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바로 갖게 되는 본능적인 자아를 말한다. 대개 타고났거나 천부적이고 선천적인 것들을 일컫는다. '이드'는 쾌락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도리나 논리를 다르지 않고 가치관이나 도덕관도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는 성향이 있다.

 

◆두번째 나-자아 (이드의 통제관)
제멋대로 소란을 피우는 '이드'의 특성 때문에 등장한 것이 바로 '자아'로 , 자아는 철저하게 '현실원칙'을 따른다. 자아는 이드가 직접적으로 방출하려는 충동을 막거나, 바꾸거나, 뒤로 미루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세번째 나-초아아 ('나'의 심리 재판관)
초자아는 사회적 가치, 도덕과 관념을 이해하도록 '나'를 가르치는데,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면, 초자아는 우리에게 죄책감, 수치심,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면 초자아는 우리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 준다. 초자아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양심'이라 할 수 있다.

 

▷▷자아는 아래로는 이드의 상황을 통제하고 위로는 초자아의 질책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잠재의식 속에 눌러놓고 비밀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몽유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몽유는 잠재의식의 억압된 정서가 적당한 시기에 발작하며 표현된 것이다.

 

몽유병을 겪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수면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데, 프로이트는 '세 개의 나' 중에서 '자아'가 '이드'를 잠재의식 속에 누르던 중에 발작하며 표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몽유병자가 깨어난 후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혀 모르는 것은, 잠재의식 속에 완전히 감춰놓은 이드와 의식 중에 무수히 존재하는 초자아 사이를 오직 자아만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 박사의 분석을 통해 몽유가 소망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 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몽유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몽유를 통해 자신의 소망을 보상받는 일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면 되는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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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우리의 소망에 대한 보상이며, 꿈을 통해 우리 마음에 균형이 잡힌다. 깨어있을 때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여 실제 능력으로 해낼 수 없는 원대한 계획 을 세우는 유형의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153~1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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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 외에도 수면 중에 발생하는 또 다른 현상을 언급하자면 '꿈'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는 잠재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늘 꿈꾸고 소망하는 것이 꿈을 통해서 실현되거나, 반대로 무섭고 우울한 감정을 꿈을 통해 겪는 일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래서 꿈은 우리의 소망에 대한 보상이며, 꿈을 통해 마음의 균형이 잡힌다고 이야기하는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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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진짜로 발생하기 전에 꿈은 때때로 한발 앞서 경고해 준다는 사실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사람이 맡지 못하는 냄새를 동물이 알아차리듯, '의식'이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을 예민한 '잠재의식'이 미리 알아차려서 꿈을 통해 사람들에게 경고해 주는 것이다.

156~15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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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의식과 무의식에서도 다뤘던 내용과도 연결된다.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현상이자 때론 무섭게도 다가오는 부분이다. 꿈은 때때로 한발 앞선 경고를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주기도 하고, 때론 로또 복권과 같은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읽을수록 무의식의 세계가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아찔하고 짜릿한 동행은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어쩌면 의식과 무의식처럼 우리 마음속에 이미 문제와 정답이 함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최면]
심리치료를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최면'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건해결이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원인을 찾기 위해서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로 많이들 알고 있다.

 

'최면'은 고통을 잊기 위해서 무의식 속에 꽁꽁 숨겨둔 것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잊은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그런데 최면은 빠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최면에서 깨어난 이후 기억의 유무도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의 이유는 무엇이고, 최면 중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 장에서는 최면에 빠져드는 단계와 단계별 느끼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최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진실과 거짓에 대해 담고 있는데, 영화 인셉션에서 꿈에 들어가는 현상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최면으로 들어가는 총 9단계의 과정과 최면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단계별 증상과 느낌들이 어떻게 '인셉션'에서 말하는 증상들과 다른지 비교해가면서 읽어보고, 최면의 장단점에 대해서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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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은 외부의 생각을 어떤 사람의 잠재 의식 속에 '심는'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에 원래 존재하는 자원을 끌어내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최면에 걸린 사람의 원래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들은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

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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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는데, 외부의 생각을 '심는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던 자원을 끌어내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최면상태에서 모두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놀라웠다.

 

결국 무의식 세계 역시도 나의 의지와 생각이 반영된 것이며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호스피스]
죽음을 앞둔 이들에 대한 다양한 예시를 통해 그들이 겪는 심리상태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관해 다루고 있었는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순간'이라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이 장을 가장 마지막에 담은 이유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이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때 그냥 넘기지 말걸',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를 떠올리기 싫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삶에 충실해 보자.

 

 


현재 나에게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인지, 왜 힘들고 아픈지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자. 그리고 반복적인 우울과 슬픔에 잠식당하지 말자. '괜찮아지겠지'라는 말로 무의식 저편으로 나의 감정을 미뤄두기보다 원인을 파악하여 나의 내면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행복과 평온한 삶을 되찾는 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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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물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 예술가의 책무와 인간 욕망
등작 지음 / 드림공작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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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다양한 예술가로 활동하며 살아온 삶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철저히 작가 자신에게 맞춰진 에세이집이다. 스스로 고뇌하고 창조한 예술의 세계와 삶의 어느 곳에 맞닿아 있는 현실과의 접점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조금 모호하기도 하고 명확하게 무언가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독자는 무언가를 명확히 하기보다 짐작하고 희미한 경계선을 그저 들여다볼 뿐이다. 내용만큼이나 담겨있는 글의 형태도 다양한데 수필, 시, 산문, 노래 작사, 영화 시나리오 등이 여기저기 곳곳에 펼쳐져 담겨있다. 마침표와 쉼표도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끝나지 않는 산문 같은 글을 줄 따라 그저 읽어내려가야 한다.
(블로그에 옮긴 인용 부분은 편의상 임의로 쉼표와 마침표를 추가했다)

 

어떤 것은 내면의 감정을 담은 글이고, 또 어떤 것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또 어떤 글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피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때론 동그라미, 세모, 네모 처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기도 한다. 삶과 영혼에 새겨진 색채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있는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어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모호하고 애매한, 혹은 이해하기 힘든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저자는 20년간 그림을 만 점 정도 그렸고 시를 4000편 정도 썼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안타깝게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만나볼 수 없었다. 단,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겪은 고뇌나 우울감, 색채 등의 내면의 이야기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작가 본인의 감정 상태를 포함한 정치, 자연, 사회 이슈 등 무수히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그때그때 느낀 감정의 언어들을 시나 영화 시나리오, 에세이 등의 형태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색채에 대한 표현한 부분을 옮겨보면, 색채 그 자체보다 각 색감에서 느끼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나 형상화를 더 깊이 있게 다뤘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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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검정의 미덕은 하나의 빛으로 일어서는 데 있다. 검은색의 아름다움은 빛의 변화에 시시각각 변한다.
■남색: 짙은 낭만의 색깔. 무지개를 지탱해 주는 색채로서 인생에 비유하자면 청년이라기보다 중년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자연에서 나오는 촘촘하고 면밀한 단단함은 남색의 고독과도 닮았다.
■노랑: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숨결을 넣어주는 색채가 노랑이다. 희망을 주는 색깔. 자연의 색채에서 드러내지 않으며 빛의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이 바로 노랑의 아름다움이다.

색채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색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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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부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그림은 몸과 정신이 함께 움직여야 되는 노동이며, 일심동체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혼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대목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
그림이 배워서 되는 것이라면 모든 이들이 배워서 훌륭한 화가가 되겠지만 그림은 간절한 삶의 아픔과 아득한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몸과 정신이 함께 움직여야 되는 노동이다. 정신적인 시달림이 많으면 손조차 잘 움직여 주질 않는다.
(...)
가난한 건 호주머니가 아니라 내 영혼임을 알고 사랑 찾아 헤매는 방랑자처럼 그림 안에서 헤매고 싶다. 갈 곳 잃은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생겼기 때문에 진정 하얀 화면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154페이지 中
=====

 

 


책 내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인데, 이 중에서 '봄'에 대해 서술한 시를 일부 옮겨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봄'에 대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로, 고독하고 우울한 계절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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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눈물 쏟는 봄
(...)
고독의 봄
(...)
나에겐 봄은 사랑도 아픔도 아닌 다만 영혼의 조울증이 극심하게 뿌리를 건드려 절망하는 계절이었다. 계절이다.
다시는 찾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약봉지를 
찢어 입 안에 털어내고 약물의 힘에 잠을 잃어버리는 잠의 시간.

166페이지 中
=====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된 내용이라 난해한 부분도 생각보다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가의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는 느낌도 들어 독특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오랫동안 예술가로 살아온 작가의 오랜 고심과 감정적으로 느끼는 힘듦, 삶에서 겪고 느끼는 일련의 생각들을 어쩌면 이렇게 글로 풀어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색채를 표현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위에 언급한 <색채로 읽는 언어, 언어로 읽는 색채> 부분이다. 보통 단조롭게 표현하는 색채들이 글을 읽다 보면, 하나씩 옷을 입듯 이미지와 형상화가 덧입혀지는 느낌이 들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색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감정들이 담긴다. 그래서 상상하게 되고 표현된 언어들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음에는 색채에 집중된 글이나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쪽이 더 내 취향에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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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키드의 생애 - 테이프는 사라져도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 갈 줄을 모르고
정율리 지음 / 카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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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모처럼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본다. 즐거운 상상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게, 함께 공유하고 떠올릴 추억이 있다는 게 이토록 소중하고 달콤한 것이었나 깨닫게 된다. 추억이 가지는 힘이, 어릴 적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던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참 많은 것을 지탱해 주고 있었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비디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 시대를 추억하며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소히 아날로그 세대에서 디지털 세대로 넘어가던 시대를 경험한 이들은 많은 변화를 겪으며 그 과정을 겪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 시대만이 주는 전유물 같은 비디오는 잊고 있던 보물 같기도 하고, 시간을 담고 있는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성장과정 속에 늘 함께 했던 비디오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이 책에 담았는데, 나의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어 반갑고 즐거웠다. 처음 비디오를 접하게 된 계기와 처음 선택한 비디오, 첫 빨간 딱지가 붙은 비디오에 얽힌 추억, 인생에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었던 비디오, 비디오에 담긴 인연과 사람들 등 지금은 기억 저편에 묻힌 빛바랜 추억의 모습들이 방울방울 담겨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때 그 시절의 정다운 모습들은 책 곳곳에 등장하는 가전제품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솔솔 밀려든다. 

 

LG가 럭키금성이라 불리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기 위해 텔레비전 앞 손잡이를 돌리던 시절 텔레비전은 집집마다 색다른 무언가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변압기를 달고 있거나 더듬이처럼 솟은 안테나를 삐죽빼죽 머리에 달고 이리저리 방향을 잡아야만 나름 선명한 화질의 TV를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채널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머리 부분을 툭툭 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장착되고 어느새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다 조만간 비디오의 세계는 전멸했고, 그 짧은 사이 DVD도 쇠퇴하고 컴퓨터 CD도 사라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가전제품은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그 속에서 나름 선전했던 것이 '비디오'였다. 그래서인지 비디오가 주는 묘한 감성적 느낌이 있는데, 그런 느낌들을 이 책에서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삶에 고단함이 느껴지는 순간, 문득 떠올리며 살아갈 힘을 얻게 해주는 추억의 힘! 그것을 온전히 담고 있었던 이 책을 통해 진짜 소중한 것과 보물 같은 사람들을 추억해 보길 바란다.

 

 


●내가 선택한 첫 비디오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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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 마샬 감독의 영화 <빅>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모두 함께 영화관에서 본 영화였다. 네 살 무렵, 어두운 극장 안이 낯설어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엄마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다.
(...)
그럼에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
관객들의 웃음소리. 극장 안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에는 우리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
다들 행복해 보였다. 그때부터 <빅>은 내게 행복을 주는 영화로 각인되었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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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저자가 처음 선택한 것은 <빅>이었다. 첫 영화관 나들이에서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서 고단함을 지워주었던 그 행복의 실체를 알고 싶었던 저자는 <빅>을 선택한다. 다시 본 영화는 기대보다 더 흥미로웠고 대번에 <빅>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날한시 두 편의 빨간 비디오를 보게 되다!

 

1. 새엄마는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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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계인이 새엄마가 된다는 감동적인 설정에 혹해 하필 그 옆에 19가 그려진 붉은 당구공을 보지 못했다.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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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발마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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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평소 나의 장국영 사랑을 알고 있었고 무협 영화의 시퀀스가 칼싸움, 몸싸움, 만두를 두고 벌이는 젓가락 싸움, 전통 악기를 이용한 기싸움 등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온갖 싸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편견 때문이었는지 <백발마녀전> 또한 쉽사리 수락해 주셨다.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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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딱지가 붙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보게 된 두 편의 빨간 비디오는 시각적인 충격만큼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전한다. 처음 19세 미만 관람불가를 보았던 기억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삶의 비루함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날 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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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삶의 비루함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날이면 맥주 한 잔을 준비한 뒤 홀로 <스모크>를 본다.
(...)
돌이켜 보면 비디오가 나를 구원했다.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며 오기의 사진첩처럼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100~1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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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라 불리는 영화가 꼭 하나씩은 있다. 삶을 지탱해 주고, 무료함과 덧없음을 온전히 버티게 해주는 영화. 저자에게 있어 이 영화가 어쩌면 그런 영화가 아니었을까?

 

 


●마음이 바닥을 치는 날 보면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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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로 상처받은 제자를 끌어안은 모습을 보고 나 또한 그 말에 상처를 씻을 수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일까? 아니다. 나는 마음이 바닥을 치는 날이면 다시금 <굿윌 헌팅>의 명장면을 찾아본다. 상처받아 해진 마음에는 사랑만큼 훌륭한 처방이 없음을. 폭력 안에서 배운 것은 분노뿐이다.
(...)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떠올릴 때, 로빈 윌리엄스를 빼놓지 않는다.

1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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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스승, 존경할 만한 사람이 꼭 곁에 있는 누구일 필요는 없다. 마음의 안식이 되는 존재가 영화 속 그 누구이면 어떠랴. 이 영화는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영화 중 하나로 언제 다시 봐도 좋은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 속 로빈 윌리엄스는 모두가 선망하는 스승의 모습 그 자체로, 나 역시도 마음 깊이 담고 있는 영화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저자는 자신의 삶 많은 부분에 닿아 있는 영화(비디오)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소개하는데, 주성치 영화 <희극지왕>으로 사랑을 배우고, <타인의 삶>은 저자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애정 하는 배우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탁월한 연기만큼 인간적인 신뢰를 주는 배우로 메릴 스트립을 꼽는다.

 

=====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메릴 스트립이다.
(...)
별 한 개도 아까운 엉망진창인 영화라도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면 오로지 그녀의 연기력으로 별 세 개쯤은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이건 생각이 아니다. 단연코 확신한다.

2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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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우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신뢰할 만한 좋은 사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열한 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의 에피소드도 잠깐 소개되었는데, 동생이 일곱 살 되던 해 함께 본 첫 영화는 <파워퍼프 걸> 이었다고 한다. 서로 취향이 달라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를 볼 때만큼은 한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음이 여실히 증명될 만큼 단단한 결속력을 보여 줬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릴 적 형제자매를 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떠올릴법한 에피소드라 공감이 많이 갔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어릴 적 무언가에 빠져 집중하는 것을 보고 어른들은 이를 저지하거나 부정하는 말들을 쉽게 내뱉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오히려 무언가에 흡족할 만큼 충분히 빠져봤기에 더없이 좋았다고, 그래서 더 다른 것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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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는 마치 마법의 열쇠를 쥐어 주듯 내게 온 세계의 관문을 넘나들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
시간을 낭비했다고 하기에 비디오는 나를 '너무나도' 견고하고 유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라는 유일성을 지킬 수 있게, 나에게 닥칠 불행에 부서지지 않도록.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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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알려주고 윤리적 화두를 제시하고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게 해 준 것은 8할이 비디오였다.

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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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한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도망치듯 달리다 내 발에 내가 걸려 자빠질 때면, 어김없이 비디오 속 인물들을 떠올렸다. 현실에는 생각보다 그럴싸한 조언을 건네 줄 어른들이 많지 않았다. 인생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비디오를 통해 미리 가 본 세계의 풍경들이 오히려 더 훌륭한 예제가 되어 줬다. 내가 본 것들을 마음에 담아 힘이 들 때면 그것들을 꺼내 먹었다. 비상식량이라도 되는듯.

2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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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얼마나 비디오를 애정 했는지, 또 비디오가 삶에서 어떤 역할들을 해줬는지 엿볼 수 있었다. 비디오는 마음을 다독이는 스승이자 길잡이였으며, 때론 존중과 사랑을 알려주고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 다양한 영화를 통해 온 세계를 누비며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또 차곡차곡 쌓인 비디오 속 예제들은 추후 힘든 순간 달콤한 양식이 되어주곤 했다.

 

 


어떤 순간 과거의 무언가를 떠올리고 꺼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힘에 대해 이토록 당당하게 말하는 자칭 비디오 키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흠뻑 빠져들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좋아하고, 가슴 깊이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을 통해 함께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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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로그 - 생존과 쾌락을 관장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
이자벨 시몽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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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성'에 대한 책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내심 그런 방향성의 흥미로운 인체를 다루는 책일 거라 기대하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인체를 다루는 책들에서 과감함과 적극성, 개방적인 사고방식들이 엿보여 폐쇄적이지 않고 건강하고 흥미롭게 잘 다루고 있어 정보성이나 교육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건전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이 책은 과연 어떨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흔히 잘 다루지 않는 인체의 숨겨진 부분인 '항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더 기대감과 궁금증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항문이라고 하면 '음습함', '더러움',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항문은 감춰야 할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독소를 배출해 주는 중요한 부위이기도 하고, 사람을 비롯해 웬만한 동물들 또한 가지고 있는 부위이기에 이상하거나 굳이 언급을 꺼릴만한 부위가 아님에도 오랜 시간 항문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조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항문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항문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인체의 탄생에서부터 항문의 중요성, 역할, 인류 문화와 현실의 문제, 그리고 성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항문과 관련 있는 대부분의 내용을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다. 때로는 조금 진지하지만 과감하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탐구적이지만 거침없이 항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약간의 위트 있고 재미있는 항문에 얽힌 이야기도 엿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어 19금 내용이 사실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중후반부에는 항문성교에 대해 집착적으로 다루고 있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편집자분께서 책과 함께 엽서를 하나 같이 보내주셨는데, 내용인즉슨 불편한 부분은 패스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항문성교에 대해 지나치게 다루고 있다는 점만 빼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어 우리가 그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항문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어쩌면 편견 속에서 인체의 중요한 기관을 너무 모른척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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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토리스, 페니스, 음낭, 항문의 성감을 좌우하는 음부 신경은 한때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도덕이 부과한 이 불명예스러운 낙인은 정상적인 신체 기관에 죄의식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 기관들의 자연스러운 기능을 교란하기에 충분했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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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항문에 얽힌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색다른 의미에서 항문이 가지는 의미와 인체 기관으로서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소 난해하다고 느끼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은 과감 없이 패스하길 추천한다.

 

항문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어떤 것을 떠올릴까? 보편적으로는 신체 기관 중 가장 말하기 꺼려지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항문은 인간 신체의 배출구이자 또 다른 숨구멍으로 사실상 인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신체 기관 중 하나다. 그래서 저자는 항문을 '인체의 중심'으로도 표현하는데, 그것의 근거로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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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간은 항문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초기 성장 발달은 항문이 형성되며 시작된다. 여자의 몸에서, 흔히 '두 번째 구멍'이라고 부르는 이 구멍이 사실상 명실상부한 첫 번째 구멍이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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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많이들 알고 있는 '루이 14세의 치루 이야기'와 항문을 악기로 삼아 연주했던 '방귀꾼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항문 이야기에서 잠시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면 이 에피소드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동물들의 항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동물들의 세계에서 항문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처 몰랐던 동물들의 삶과 성에 대한 부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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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희미한 단서 하나만으로도 뇌에 냄새를 전달하며, 그 즉시 뇌는 냄새를 분석하고 분류한다. 상대방 엉덩이에서 맡은 냄새로 성별, 기분, 건강 상태, 식생활 등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가 암컷일 경우에는 생리주기까지 알 수 있다.
(...)
개가 꼬리를 들어 올리며 항문을 내보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신분증과 건강검진 확인서, 페이스북 프로필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이다.

14페이지 中
=====

 

개에게 있어 항문을 내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단순히 짝짓기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는 것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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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호두빗 해파리에게는 항문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사라지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이 해파리는 그런 배설기관을 가졌다고 알려진 생명체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체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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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사라지게 하는 유일한 생명체인 바다 호두빗 해파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
'한 동물당 하나의 항문.' 단, 예외로 둔 동물이 있다. 하루살이와 모낭충이다. 섭취물이 소화되는 시간보다 생존 기간이 더 짧은 하루살이 같은 생물에게 항문 기관이란 부질없는 것이다. 
(...)
기생성 진드기 모낭충은 끝까지, 다시 말해 자가분해될 때까지,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당신의 모공 속에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20~21페이지 中
=====

 

한 동물당 하나의 항문을 가진다는 것에서 예외로 두는 동물 두 가지! 하루살이와 모낭충이다. 하루살이는 이름값을 정말 톡톡히 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절절히 느껴진다. 반면 모낭충은 '윽! 내 피부!!' 소리가 절로 나온다.

 

 


=====
코끼리는 하루의 생존에 필요한 200킬로그램의 풀, 나뭇잎, 나무껍질 같은 먹이를 충분히 먹지 못했을 때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의 똥구멍에 코를 처박아 부족한 먹이를 보충한다. 
(...)
공기가 희박한 얼음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붉은귀거북들은 항문으로 숨을 쉰다.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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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코끼리 코의 쓰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저마다 먹고사는 방식이 제각각이라지만 항문으로 숨을 쉬는 붉은귀 거북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동물들의 난교와 성행위에 대한 내용들도 다루고 있어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성적으로 매우 자유분방함을 알 수 있었다.

 

=====
침팬지, 고릴라, 마카크 원숭이 같은 다른 원숭이들도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기는 마찬가지다.
(...)
사실 그들은 양성애와 난교를 통해 미개하지만 다 함께 잘 사는 행복한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
단, 오랑우탄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오랑우탄은 나뭇조각으로 인공 음경을 만들어 사용한다.
(...)
쥐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코끼리, 사자, 족제비, 얼룩말, 그리고 야생 양도 항문성교를 한다. 들소도 사자처럼 번식기에만 암컷을 만나 아주 신속하게 교미한다. 나머지 계절에는 수컷끼리 생활하며 서로 수작을 걸고,  만족할 때 물밑에서 춤을 추며 서로를 얽어맨다.
(...)
이처럼 생물학적 성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확인된 동물들은 현재까지 1500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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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세상에서는 항문성교가 거의 일상처럼 보인다. 더불어 번식을 위한 성교 외에 수컷끼리 성교를 나누는 것도 흔함을 알 수 있었다. 성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확인된 동물이 현재까지 1500종이 넘는다는 것을 보니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성이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인다.

 

 


항문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배변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는데, 배변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반적인 성인에게 배변은 '더러운 것'이나 '변비', 혹은 '건강한 것' 과 같은 것들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반면 같은 의미 다른 말로 '똥'이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는 까르르 웃는 웃음 포인트가 된다.

 

배변에 대한 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순조로운 배변을 위한 효과적인 자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쪼그려 앉는 자세가 가장 이상적인 자세라는 점을 통해 과거 흔했던 재래식 화장실을 설계하고 사용했던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인체공학적 재래식 화장실을 썼던 그때는 아마 변비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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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려앉은 배변 자세를 취하면, 치골직장근이 이완되어 항문직장이 항문관과 160도를 이루며 항문이 열리므로, 치질 같은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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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 같은 질환도 예방해 주고, 원활한 배변활동까지 돕는 쪼그려 앉는 자세를 요즘은 양변기 사용으로 원해도 실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슷한 자세를 위해 발받침을 활용해 비슷한 자세를 유지하면,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 보자.

 

 


항문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현대인들이 말 못 할 여러 질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여기 담긴 내용들을 통해 예방과 정보를 습득해 두면 도움이 될듯하다. 

 

■항문소양증
항문 주변은 민감해서 가려움증에 걸리기 쉬운데, 특히 건조한 부위에 스키드 마크가 조금이라도 남은 경우 가려움증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항문소양증은 위생관리에 소홀했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닦아대는 바람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질환이나 징후가 동반하지 않는 경우라면, 배변 후 항문 주변에 수분크림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가려움증을 충분히 가라앉힐 수 있다.

 

■요충증
요충이라 불리는 작은 기생충들이 그 주변에 몰려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 기생충은 장내에 살지만 가늘고 긴 띠처럼 생긴 암컷들은 항문 가장자리에 알을 낳기 위해 밤이 되면 밖으로 기어 나온다. 구충제를 한 두번만 복용하면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다.

 

■치핵
일반적으로 치질이라고 불리는 질환이다. 이 질병은 항문에의 달갑지 않는 침입, 즉 불명예스러운 침입들에서 정조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정신이 세워놓는 경비병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직장염
혈변, 점액변, 가짜 변의와 잔변감, 직장이 당기거나 욱신거리면서 복통이 일어날 경우 직장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치열
항문의 피부와 점막 사이가 헐어서 문드러지거나 궤양, 파열 등이 생긴 상태를 의미한다. 배변 시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인한 변비를 초래할 수 있다.

 

■항문농양
항문선들이 위치한 항문벽은 항문농양 발병률이 아주 높은 곳이다. 박테리아가 아주 풍부한 배설물이 주기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치루
치루 수술은 누공이 통하는 항문관 내부까지 죽 절개한 다음 수술로 잘라낸 괄약근을 정확하게 봉합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된 의사가 극도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탈항
항문 및 직장 점막 또는 전층이 항문 밖으로 빠져나와 들어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탈장
변비증 환자들과 산모들이 힘주어 밀어내기를 한 결과 탈장(일명 직장 헤르니아)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항문암
항문에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편평상피세포함이 가장 흔하다. 50세 이상부터는 예방을 위해 결장암과 직장암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항문암은 발견 시 완치율이 80퍼센트에 달한다.

 

항문은 섬세하고 민감한 부위이긴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관리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단순하고 까다롭지 않은 기관이므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루기만 하면 큰 재앙을 겪지 않고 건강한 항문을 오랫동안 별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항문의 중요성에 다룬 부분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저자는 항문이 우리 인체 기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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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 세상의 중심과 세계의 기원은 같다. 이런 의미에서 항문과 똥구멍은 결국 같은 배설기관이지만 확실히 구분된다.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찾는 위치적인 관점에서 이 기관은 똥구멍이라 불리지만, 세계의 기원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 기관은 항문이라 불린다.

158~1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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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항문이 신체의 모든 문제들을 바로잡아준다. 모든 화와 독소를 정화시켜 다시 살아나게 한다. 항문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한쪽 눈을 잃거나 두 눈 모두를 잃는다 해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 팔과 다리가 잘린다 해도, 귀가 막혀버렸다 해도, 여전히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만약 항문이 막힌다면, 장담컨대 나흘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

1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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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중후반부에 다루는 항문성교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동성과 이성 상관없이 항문성교가 굉장한 쾌감을 주며 해방감을 준다고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인용 글들을 통해 과거 행해지던 행위나 상식, 인식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또 항문성교의 현실과 항문에 관한 환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연구 조사 자료를 통해 현실적인 항문성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항문에 관한 환상은 복종/지배 게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여러 욕망과 인식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내용은 물론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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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할 의무에 직면한 남자로서 자신의 성감대에 항문을 편입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과감하게 감행해 본다면 억압에서 풀려나 되는대로 몸을 맡기고 엄격한 태도를 벗어던진 채 은밀한 그 밤에 속마음이 읽히도록 내보이는 게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될 것이다.

2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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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항문성교를 지지하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편견처럼 가지고 있는 유리천장을 깨면 보다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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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항문은 우리가 동물에 속하는 존재이면서도, 항문에 대한 수치심을 통해 우리를 동물과 구분 지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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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화된 항문 성애는 우리의 본능을 세련된 에로티시즘으로 변형시킨다. 승화된 항문 성애는 변태적 행위를 예술로 탈바꿈시킨다. 공유된 항문 성애는 사회적 향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방식이 더 좋고 나쁜지 토론하에 행해지는 항문 성애는 평등 속에서 가능한 유대감을 가치판단 없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309~3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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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밑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에 가닿으면서 서로를 격려할 수 있게 해준다.
항문은 상호 불가침의 담보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이 부드럽고 은밀한 신체 부위는 우리의 취향점이기 때문이다.

3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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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항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항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편견과 음침함을 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과감하고 노골적인 문장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맞닥뜨리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은 유하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가지고 있지만 그 쓰임이나 의미는 다른 항문! 그동안 의식적으로 저 아래 두고 숨겨왔기에 어쩌면 더 폐쇄적으로 다뤄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의식 위로 끌어올려 오픈된 상황에서 이를 다루면 조금은 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수월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 취향점이자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항문. <애널로그>를 통해 폭넓은 항문의 세계를 탐험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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